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18
#917.
계획하다 (2)
이현수는 아연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간다고?
어딜? 일본을?
이현수가 마른침을 삼켰다. 강진호가 대책 없는 것이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날이 갈수록 대책을 찾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회, 회주님.”
이현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일단 운을 뗐다. 하지만 무슨 말을 이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뭐라고 해야 하지?
하얗게 비어버린 머리가 제대로 된 대사를 짜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를 도와주는 이가 있었다.
“일본이라…….”
위긴스가 수염을 쓸어내렸다.
‘저건 배워야 해.’
이현수는 위긴스에게 살짝 감탄하는 중이었다. 뜻밖에 상황에 대한 당황이 목소리에 그대로 드러나는 이현수와는 다르게 위긴스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나쁘지 않은 생각입니다.”
위긴스가 빙그레 웃었다.
“확실히 로드의 말이 맞습니다. 눈에는 눈이고, 이에는 이인 법이죠. 상대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정당합니다.”
강진호가 빤히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그 정도로 사설을 풀어놓았으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라는 눈빛이다. 위긴스가 살짝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시기가 있는 법입니다.”
“시기?”
“예. 시기입니다.”
위긴스가 살짝 주변을 둘러본다. 적당한 시기에 동조해 달라는 눈짓이다. 이현수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나쁜 때는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좋은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은 혼비백산했을 것이고, 사기가 떨어졌습니다. 병법으로 보자면 적을 치기에 가장 좋은 시점인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사람들의 시선이 위긴스에게로 집중되었다.
“그 이상의 것을 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지요.”
강진호가 막 대답을 하려는 찰나, 위긴스가 능청스럽게 그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물론 로드의 생각이 옳습니다. 그리고 바토르 님의 의견 역시 옳습니다. 얌전히 당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제 말은 그 대가를 치르게 만드는 시기가 반드시 지금일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강진호가 가만히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그 차가운 눈을 보면서도 위긴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흠.”
강진호가 고개를 돌렸다.
“다들 같은 생각인가?”
이현수가 재빨리 위긴스를 지원했다.
“저는 같은 생각입니다. 물론 회주님의 말대로 희생자는 안타깝지만, 그 복수가 반드시 지금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회는 지금 더없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회주님이 자리를 비우시면 우리가 받아야 할 피해가 너무 큽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바토르를 바라보았다.
“바토르와 장민은 생각이 다른 것 같은데?”
“아니다, 주인.”
바토르가 고개를 내저었다.
“주인은 지금 소수를 이끌고 쳐들어갈 생각이겠지.”
“그렇다.”
“그렇다면 나도 주인의 의견에 반대한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장민은 좀 더 단호했다.
“마존이시여! 마존께서 제게 교도를 이끌고 저들의 목을 따 오라 하시면 이 미천한 늙은이는 마존의 명을 충심으로 받들 것입니다. 제 한목숨을 바치는 것에 어찌 주저함이 있겠습니까! 마존의 명이라면 교도들 역시 목숨을 아끼지 않고 그 명을 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장민이 바닥에 부복했다.
“그 명은 거두어주십시오. 마존의 옥체는 세상의 그 무엇보다 존귀합니다. 제가 일백 번, 일천 번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마존의 옥체가 상할까 두렵습니다.”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주인.”
바토르가 격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자꾸 이 영감과 의견을 같이하게 되는 것 같아 껄끄러운데…… 소수로 일본에 가는 것은 반대다. 특히나 주인이 그곳에 가는 것은 더더욱 반대다.”
“음…….”
“주인, 자각해야 한다. 주인은 총회의 중심이자 모든 것이다. 이제는 주인도 세상이 주인을 노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저렇게 합심하면 그도 도리가 없다.
저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원하는 대로 이끌어간다?
물론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건 강진호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과거의 그와 달라지기 위해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다른 이들의 말을 무시하지 않는 것 아닌가.
‘청마가 지금 상황을 봤으면 거품 물고 쓰러졌겠군.’
강진호는 쓴웃음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수록 그가 과거에 청마에게 얼마나 가혹했는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지옥에서 만나게 된다면 술 한 번 거하게 사야 할 것 같다.
“알았다.”
이현수가 반색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다만, 지금이 아닌 것뿐이다. 나는 이 일을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다.”
“그건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맞고는 못 삽니다.”
“때가 무르익는다면 내가 가장 앞장서겠다, 주인.”
이걸로 일단은 정리를 해야 한다.
“이현수.”
“예, 회주님.”
“오래 기다리지는 않을 거다.”
“물론입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리에는 내가 필요 없겠지. 나는 먼저 일어난다.”
“고생하셨습니다.”
모두의 인사를 받으며 강진호가 회의실을 나섰다.
그 모습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이현수가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자리에 앉았다.
“휴우.”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잘했다.”
위긴스가 이현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사부님이 잘해주셨죠. 다른 분들도요.”
바토르가 코웃음을 쳤다.
“나는 도운 게 아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뿐이지.”
이현수가 빙그레 웃었다.
“그래도 바토르 님이 나서주시지 않았다면 회주님을 말리기가 힘들었을 겁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예?”
바토르가 묘한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네가 반대하는 이상 주인은 하지 않았을 거다.”
“……에이, 설마요.”
“글쎄,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주인은 이 중에서 네 말을 가장 신뢰하시니까.”
“아니, 그런 건…….”
이현수가 살짝 고개를 돌려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도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확실히 그런 면이 있지.”
“대책 없을 정도로 믿을 때도 있고 말이야.”
살짝 몰아가는 분위기에 이현수가 서둘러 말을 돌렸다.
“여, 여하튼 다행입니다. 어쨌든 막았으니까요.”
“그럴까?”
바토르가 묘한 눈으로 위긴스를 돌아보았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둘만의 교감에 이현수가 슬그머니 발을 밀어 넣었다.
“두 분만 그러지 마시고, 같이 좀 알면 안 될까요?”
“쯧쯧쯧.”
위긴스가 혀를 찼다.
“로드께서는 너를 그렇게 신뢰하시는데, 너는 로드를 왜 그렇게 모르느냐.”
“…….”
뭔가 항변할 말은 굉장히 많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닌 것 같다. 이현수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자 위긴스가 설명을 해주었다.
“얼마 못 갈 거다.”
“예?”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구실로 다시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시겠지.”
“아…….”
위긴스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한 번 뭐가 눈에 박히시면 다른 게 보이지 않는 분이시다. 앞으로도 언제쯤이면 일본에 쳐들어갈 수 있을지를 계속 생각하시겠지.”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가 알고 있는 강진호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항상 그렇지 않았던가. 반대하는 이가 있어서 물러날지라도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신의 뜻을 관철했다.
돌이켜 보면 강진호가 원하고 이현수나 다른 이들이 반대한 일이 마지막까지 이뤄지지 않은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추진력이 없으면 로드가 아니시겠지. 그러니 너는 항상 로드의 성향을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최대한 로드께서…….”
그 순간이었다.
“이 간악한 놈들!”
장민이 삿대질을 해댔다.
“어디 불경스럽게 마존께서 계시지 않는 곳에서 그분을 논한다는 말이더냐! 이 똥물에 튀겨 죽일 놈들!”
바토르가 이마를 짚었다.
“영감, 제발 상황을 봐가며 끼어들어라.”
“네놈도 마찬가지다! 네놈에게 마존을 위하는 충심이 없었다면, 내가 진즉 네놈의 대가리를 깨버렸을 것이다.”
“대가리?”
바토르의 눈썹이 꿈틀했다.
“영감!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모양인데, 나는 예전에 영감이 상대했던 그 바토르가 아니다. 그사이 영감은 더 늙었을 텐데, 뼈마디 다 부서져서 인공 관절로 대체하고 싶지 않으면 말조심하는 게 좋을 텐데?”
“쯧쯧쯧쯧.”
장민이 혀를 찼다.
“못 배워 처먹은 놈이 말하는 꼬락서니는 제멋대로구나. 아서라. 그러다가 안 그래도 나쁜 머리 더 나빠질라.”
“나와!”
“오냐!”
바토르와 장민이 으르렁대기 시작하자 이현수가 불안에 빠졌다. 하지만 둘을 말려야 할 위긴스는 커피를 내려와 향을 음미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사부님, 말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음, 누굴? 저 둘을?”
“예.”
“누가?”
“…….”
누구긴 누구야! 당신이지!
이현수의 시선에 위긴스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곰이랑 호랑이가 싸우는데 여우가 무슨 수로 말리겠느냐. 냅 둬라. 둘 중 하나가 죽으면 끝나겠지.”
“…….”
이현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어쩌면 이 중에서 가장 이상한 것은 위긴스가 아닐까 하는.
“사부님이 그러시면 어떻게 합니까?”
“응? 왜?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느냐?”
“그래도 말리셔야죠.”
“다 큰 성인도 아니고, 다 늙은 양반들이 붙어 싸우겠다는데 그걸 어떻게 말리느냐. 아서라. 그건 양로원에 부탁해야 하는 일이다.”
이현수가 한숨을 쉬고 뒤를 돌아봤다.
으르렁대고 있는 바토르와 장민, 그리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 위긴스,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별말도 없이 턱을 괴고 있는 방진훈까지…….
‘개판이네.’
이 양반들이 어떻게 같은 소속으로 일하고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확실히 회주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돼.’
강진호는 총회에 있어서 더없이 중요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강진호가 강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 개성 넘치는 이들은 한데 묶어주는 사람이 바로 강진호다. 강진호가 없어지는 순간, 이들은 관계는 순식간에 붕괴하고 말 것이다.
어떻게든 강진호가 일본에 가는 시간을 최대한 늦춰야 한다고 결심하는 이현수였다.
“너는 그런 것보다 제대로 된 것에 신경을 쓰거라.”
“예?”
“아이들 말이다.”
“아이들이라시면?”
말귀를 못 알아먹는 이현수를 향해 한숨을 내쉰 위긴스가 입을 열었다.
“지금쯤 굉장히 들떠 있겠지. 굉장한 업적을 세웠으니까.”
“그렇겠죠.”
“그 열기를 좋은 방향으로 돌려야 한다. 지금보다 열심히 수행에 힘쓸 수 있는 기간은 그리 흔치 않을 테니까. 적당히 당근을 먹여가며 수련에 힘쓰게 만들어라.”
“……이해했습니다.”
주먹을 움켜쥐는 이현수를 보며 위긴스가 빙그레 웃었다.
승리란 그런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패자가 충격을 받아 노력한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승리다. 승리한 자들은 승리의 기쁨을 알기에, 그리고 패배할 시 그들이 잃어야 할 것을 알기에 더욱 노력하기 마련이다.
이 한 번의 승리로 그들이 얻은 것은 자신감과 가능성이다.
그리고 잃은 것은…….
‘이제 슬슬 움직이겠지.’
총회가 이를 드러낸 이상, 저들도 더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마스터.’
위김스가 굳은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원탁을 적으로 만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이제 곧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