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19
#918.
계획하다 (3)
“다시.”
마스터가 고개를 들었다.
그에게 주어지는 업무량은 결코 만만치 않다. 평범한 사람이 일하는 방식으로는 주어지는 업무를 모두 처리할 수 없다. 그렇기에 마스터는 서류를 결제하는 동시에 보고를 받는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지 못한다면, 그는 업무량에 치여 최소한의 수련 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영활하게 돌아가던 그의 머리와 손이 동시에 멈췄다.
“다시 보고하게.”
“예.”
보고를 하던 이가 깊이 고개를 숙인다.
“한국을 침공하던 일본의 원정대가 전멸했습니다.”
“……전멸이라고 했나?”
“예.”
“계속해 보게.”
다시 움직이려던 마스터의 손이 두어 번 움찔거리더니, 결국은 펜을 놓아버렸다.
이 일은 도저히 다른 일과 동시에 처리할 수가 없다.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듣고 해석해야 하는 일이다.
“정확하게 파악된 것은 아니지만, 일본에서 한국으로 쳐들어가던 원정대의 수는 일천 이상이라 예상됩니다. 일본에 있는 정보원들이 파악한 수입니다. 물론 정보원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을 감안한다면, 그 수는 훨씬 많아질 수도 있습니다.”
“일천 이상이라…….”
일천.
일본 무인 일천.
‘말도 안 되는 전력이로군.’
그만한 힘을 외부로 돌릴 수 있는 단체는 세계를 다 뒤져도 오직 네 곳밖에 없다.
중국, 미국, 일본, 그리고 원탁.
원탁이 여러 국가의 협의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단독 국가로 그만한 전력을 동원할 수 있는 곳은 세 곳뿐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막혔다고?”
“막힌 수준이 아니라, 전멸입니다.”
“한국이…….”
마스터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지금 그를 괴롭히는 것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일본에 그만한 원정대를 꾸리고 공격에 들어가는 것을 지금 이 순간까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
세계를 조율한다는 원탁의 이상에 완전히 반하는 일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동아시아는 원탁의 입지가 가장 미치지 못하는 곳이니만큼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그 말도 안 되는 전력을 한국이 완벽하게 막아냈다는 것이다. 어떤 방법을 썼든 간에 그 사실은 단 한 가지를 의미한다.
이제 한국의 수준이 일본과 대등한 수준으로 올라왔다는 것.
마지막으로…….
‘그럼 이제 동아시아의 권력 관계는 어떻게 변하는 거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온다.
동아시아는 무인계에 있어서는 세계의 화약고나 마찬가지인 곳이다.
전 세계의 무인계를 지탱하는 네 개의 축.
그중 두 곳이 동아시에에 몰려 있다.
한국이 완충지대 역할을 해주지 않았다면, 벌써 전쟁이 일어났어도 몇 번은 일어났을 것이다. 동아시아가 지금까지 무사할 수 있던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중국의 내전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한국이라는 중립지대나 마찬가지인 공동(空洞)이 중국과 일본의 사이에 있었다는 것.
굳이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외부 세계든 무인계든 도무지 해석이 되지 않는 북한이라는 국가가 중간을 틀어막고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완충지대로 일본이 쳐들어갔다. 그리고 그 완충지대가 그 일본을 박살 내버렸다.
그럼 이제 동아시아는 어떻게 되는 건가.
마스터가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그의 머리로도 그 뒤의 상황은 도무지 예측이 가지 않는다. 쉽사리 예측하기에 동아시아의 상황은 변수가 너무 많다.
“한국의 피해는?”
“그게…….”
보고가 바로 돌아오지 않는다.
마스터는 불안함을 느꼈다. 사람인지라 매번 칼 같은 보고를 할 수는 없겠지만, 저 흐려지는 말꼬리는 다른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제대로 말을 해보게.”
“정보를 입수하지 못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해가 가지 않아 재조사를 시켰습니다.”
“재조사?”
“예.”
마스터의 미간이 좁아진다.
“들어온 정보부터.”
“하나…….”
“나는 시간이 그리 많은 사람이 아니네. 들어온 정보부터 이야기해 보게.”
“예. 그럼…… 일차적으로 조사된 정보에 따르면, 한국의 피해는 전무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전무?”
“……예. 저도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재조사를 시켰습니다.”
“들고 있는 그건 보고서인가?”
“그렇습니다.”
“이리 내보게.”
마스터가 보고서를 받아 들고 읽기 시작했다. 재빠르게 보고서를 넘긴 마스터가 헛웃음을 흘렸다.
“보고대로라면 전투는 해상에서 이뤄졌고…….”
“예.”
“애초에 한국에서 전투를 위해 출동한 인원은 그 수가 많지 않군. 그리고 대부분이 그대로 복귀를 했다?”
“예, 그렇습니다.”
“……어뢰라도 써서 배를 날려 버린 건가?”
“군사적 충돌의 흔적은 없었습니다.”
“그렇겠지. 그랬다가는 난리가 났을 테니까. 미국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았겠지.”
아무리 무인계가 외부의 세계와 단절된 삶을 살고 있다고는 하나, 외부의 군사적 관계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무인계의 충돌에 화기가 쓰였다면, 그들을 감시하는 미국이 이렇게 손을 놓고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확전을 생각한 게 아니라면, 절대 그런 방식은 아니었겠지. 그렇다면 뭔가. 정말 한국이 아무런 피해 없이 일천이 넘는 일본의 원정대를 일방적으로 찍어 눌렀다는 건가?’
상황이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그가 알고 있는 한국의 전력과 일본의 전력 사이에 괴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한국이 발전하여 일본을 따라잡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기간이 너무 짧다.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있다는 것은 그가 고려하지 못하는 변수가 생겼다는 뜻이다.
변수.
마스터의 뇌리에 강진호의 이름이 떠올랐다.
‘강진호로군.’
변수라는 말에 그보다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십 년간 고착되어 있던 동아시아의 상황을 순식간에 화약고로 만들어 버린 자.
한국이라는 불모지를 전 세계가 주목하는 미지의 대지로 만들어 버린 자.
그의 영향력은 동아시아를 넘어 원탁까지 뻗쳤다. 그 강진호 덕분에 마스터의 계획도 완전히 일그러지지 않았던가.
“피해를 입었든 입지 않았든, 한국이 일본에 완전한 대승을 거두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군. 그렇지 않나?”
“그건 확실합니다.”
“그래, 그렇군.”
마스터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위긴스.’
상황이 이리 되자 위긴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탁의 나이트라는 지고하고도 신성한 지위를 헌신짝처럼 내버리고는 동아시아의 소국으로 투신한 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른 바로 그자 말이다.
위긴스를 생각하자 마스터는 도무지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자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말이 자꾸 나오는 이상, 그를 배제할 수가 없었다.
‘위긴스는 이 모든 것을 예상했던 것인가?’
강진호가, 한국이 결국 일본도 능가하고 중국과 맞서 동아시아의 패권을 가져올 것이라 미리 예측했다는 말인가?
그렇기에 원탁의 나이트, 더 나아가 마스터의 자리까지 내버리고 한국에 투신했다는 말인가?
“영국의 나이트는 정해졌는가?”
“이제 곧 선출이 끝날 것입니다.”
“……그렇군.”
새로운 나이트가 정해지면 위긴스라는 이름은 원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원탁이 완전해지면?
위긴스는 절대 징죄를 피할 수 없다.
지금까지 위긴스가 원탁의 추적을 피할 수 있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가 나이트의 자리를 버렸기 때문이다. 역사상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은 법칙의 붕괴를 일으켰다.
나이트를 징죄하기 위해서는 원탁의 회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만한 사안에 대한 원탁의 회의는 반드시 모든 나이트가 참석해야 한다.
그런데 영국의 나이트가 없다.
단 한 번도 나이트가 직위를 유지한 채 원탁을 배신한 역사가 없기에 원탁은 위긴스의 행동에 대응하지 못했다. 모든 나이트가 참석해야 한다는 법칙을 지키기 위해서 위긴스가 필요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끝이다.
새로운 나이트가 선출되면 원탁은 회의를 이어갈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위긴스에 대한 처우가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결코 좋은 방향으로 끝나지는 않겠지.’
나이트의 자리를 쓰레기처럼 버린 위긴스의 행동은 다른 나이트들에게 깊은 굴욕감을 남겼다. 차라리 그가 나이트의 자리를 버리고 일본이나 중국의 고위직으로 가버렸다면 이해라도 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라니.
소국의 작은 자리보다 나이트라는 신성한 자리가 못하다는 말인가.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제아무리 냉철해지려 해도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이상, 나이트들은 결코 위긴스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위긴스는 지금도 한국에 있는가?”
“예. 이번 전투에도 동행했다고 합니다.”
“그렇군.”
마스터가 천천히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얼굴로 가져갔다.
탁.
손에 닿은 가면이 딱딱하다.
최근 들어 마스터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가면이 갑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생 없던 일이건만…….
“다음 회의는 언제로 예정되어 있지?”
“다음 달 초입니다.”
‘보름 정도 남은 건가.’
일정을 계산한 마스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나가보게.”
“예. 추가 정보가 오는 대로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그러도록.”
보고자가 물러나자 마스터가 가면을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가만히 가면을 얼굴에서 떼어냈다.
“후우.”
세월이 잔뜩 묻어난 노인의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위긴스.”
한때 그 이름은 마스터에게 희망의 의미였다.
그는 위긴스가 정말 원탁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 줄 인재라 믿었다. 그를 이어 마스터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면 최상의 결과가 될 것이고, 그러지 못한다고 해도 나이트로서 원탁의 발전을 이끌어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 이름은 희망이 되지 못한다.
영광스러운 나이트의 이름을 버리고 총회로 투신해 버린 그는 원탁이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할 적이 되어버렸다. 아직은 아닐지라도 다음 회의가 끝나는 순간, 피할 수 없는 결과가 된다.
그러니…….
‘만나봐야겠어.’
마스터의 눈이 빛났다.
대체 왜 위긴스가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그가 한국에서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의 눈으로 보고, 그의 귀로 확인해야 한다.
모든 것이 결정돼 그의 손으로 위긴스를 죽여야 하는 날이 오기 전에 말이다.
“확인해야 한다.”
그 똑똑하던 인재가 왜 그런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는지, 그리고 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말이다.
그리고…….
‘강진호.’
진정으로 그가 확인해야 하는 것은 위긴스가 아니었다.
바로 강진호다.
위긴스가 원탁을 버리고 총회를 선택했다면, 그 이유는 강진호일 수밖에 없다. 대체 그자가 어떤 자이기에 위긴스가 평생을 바쳐 온 원탁을 그리 쉽게 버릴 수 있었는지, 그의 두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인터폰을 누른 마스터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지금입니까?]“삼 일 뒤.”
[알겠습니다.]인터폰에서 손을 뗀 마스터가 가만히 의자에 등을 기댔다.
‘강진호, 그리고 위긴스.’
본다, 그리고 확인한다.
그들이 그리는 세상이 대체 무엇인지 말이다.
그 결과에 따라…….
‘지워야 할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그들의 이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