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3
#92.
자대 가다 (2)
다음 날 아침.
“아저씨들, 잘 잤어요?”
“예. 잘 잤습니다.”
어제 보았던 윤태영 상병이 사람 좋은 얼굴로 강진호와 주영기를 데리고 흡연 구역으로 갔다.
“담배 한 대씩들 해요.”
“감사합니다.”
“저쪽에서는 열 시에 넘어온다고 했으니까, 조금 있으면 도착할 거예요. 짐은 다시 쌌죠?”
“예, 그렇습니다.”
“네. 오늘부터 자대 생활 시작이네요. 힘내세요.”
윤태영의 얼굴이 살짝 얄밉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강진호는 담배를 두어 모금 빨다 말고 꺼버렸다.
“야, 장초를 왜 버려?”
“끊으려고.”
“미쳤어?”
강진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뭐 좋은 거라고 이걸 자꾸 피우나 해서. 습관적으로 주면 피우기는 했는데, 이제 그냥 안 피우는 게 나을 것 같다.”
“야, 진호야.”
“응?”
“그냥 피운다 그러고 받는 담배 나 줘라.”
“……알았다.”
이런 모습을 보면 주영기도 참 똑똑할 때가 있다고 생각하는 강진호였다.
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나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윤태영 상병님.”
“응?”
“찰리에서 차량 왔다고 아저씨들 데리고 오시랍니다.”
“어, 알았어.”
윤태영이 강진호들에게 손짓을 했다.
“아저씨들, 가요.”
“예.”
윤태영을 따라가자 생활관 앞에 주차되어 있는 작은 트럭이 보였다.
선탑석에서 누군가 내리더니 강진호와 주영기를 훑어보고는 씨익 웃었다.
“애들이 덩치는 좋네. 힘 좀 쓰게 생겼구만.”
하사 계급장을 단 간부가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그들의 등을 두드렸다.
“타라. 내가 누군지는 나중에 알게 될 거고. 일단은 부대로 가자.”
“예, 알겠습니다.”
강진호와 주영기가 트럭 뒤에 타자 간부는 안전망을 건 다음 선탑석에 올랐다.
이윽고 차량이 출발하자 주영기가 강진호를 빤히 보고는 말했다.
“그러고 보면 웃기긴 하다.”
“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우리 둘이 같이 가는 거잖아.”
“그러네.”
주영기는 얼굴을 씰룩였다.
첫인상이 최악이었던 강진호와 이렇듯 중대까지 같아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도 어두운 트럭 안에서 건너편에 강진호가 있다는 것이 어쩐지 위안이 되는 기분이었다.
“진호야.”
“음.”
“내가 사고 칠 것 같으면 네가 한 번 말려라.”
“알았다.”
“꼭 그래야 된다.”
“알았다.”
주영기는 퉁명스레 대답하는 강진호의 태도가 불만이었지만, 원래 강진호의 스타일이 그렇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딱히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내가 원래 성질이 급하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상황 보고 내가 멍청한 짓을 한다 싶으면 네가 한 번은 말려야 된다. 알았지?”
“알았다.”
“진짜 알고 있는 건지…….”
주영기는 고개를 저어버렸다. 강진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뭔가 답답하다는 심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트럭이 한참을 달리고 언덕을 쿵쾅대며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안 그래도 고지대인데 또 어디로 올라가는 것인지를 궁금해할 즈음, 차량이 위병소를 통과하여 부대 안으로 들어갔다.
“으으…….”
주영기가 긴장한 얼굴로 더플백을 꽉 움켜잡았다.
‘꽤 전방까지 온 것 같은데…….’
강진호는 흥미로운 얼굴로 트럭 뒤로 보이는 전경을 바라보았다. 포병이라면 후방을 지원하는 병과인데 이리 깊은 곳까지 들어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곳에서는 또 어떤 새로운 일들이 벌어질까 궁금하다.
“내려.”
안전망이 걷히고 주영기와 강진호가 트럭에서 내렸다. 이번에도 포대장실이라 적힌 곳으로 들어가 포대장의 빤한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런 후에 문이 열리더니, 병장 계급의 훤칠한 두 청년이 안으로 들어왔다.
“하나씩 데려가.”
“저 이놈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럼 제가 저놈 데리고 갑니다.”
“그래, 그럼.”
포대장은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강진호와 주영기는 자신들을 잡아끄는 병장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문밖에서 서로 시선을 교환한 강진호와 주영기가 반대 방향으로 갈라지는 병장들을 따라 나섰다. 포대까지는 함께지만, 분대와 생활관은 갈라지는 모양이었다.
“신병 왔다.”
앞의 병장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생활관이 소란스러워졌다.
“신병이다!”
“태호, 막내 탈출하겠네! 오래도 걸렸다. 좋겠네?”
“좋지 말입니다.”
태호라고 불린 일병이 싱글벙글 웃으며 강진호에게 다가오더니 강진호의 더플백을 받아 들었다.
“일단 태호가 정리 좀 해줘라. 혁수가 좀 도와주고.”
“예, 알겠습니다.”
“넌 이름이 진호라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진호는 나랑 상담 좀 하자.”
“예, 알겠습니다.”
병장이 구석에서 판을 꺼내 오더니,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강진호는 그 앞에 앉아 병장을 바라보았다.
“나는 최성민이다. 그런데 딱히 신경 쓸 건 없어. 난 곧 사라질 사람이고, 네 뒤에 보이는 뺀질뺀질한 놈이 네 분대장이니까. 나는 오늘만 너 관리해 주는 거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진호를 지켜보고 있던 다른 병장이 강진호의 어깨에 팔을 두르더니 부드럽게 말했다.
“막내야.”
“이병, 강진호!”
“내가 네 분대장이야. 네 눈앞에 보이는 사람은 그냥 아저씨야, 아저씨. 신경 쓰지 마.”
강진호는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때는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간단한 사항들만 물어볼 테니까 긴장하지 마.”
“예, 알겠습니다.”
“오늘이 토요일이라서 애들이 다 놀고 있거든. 평일에 오는 것보다는 적응하기 좋을 거야.”
“막내야, 이거 끝나면 형이랑 게임하러 가자. 여기 플스도 있다.”
“아, 저리 좀 가!”
“그놈의 아저씨. 이제 집에 갈 때 다 됐으면서 엄청 까칠하네, 진짜! 쉰내 나니까 얼른 집에나 가세요.”
“나도 가고 싶다! 나도!”
최성민이 얼쩡거리는 애들을 쫓아내고는 강진호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여자 친구는 있어?”
“없습니다.”
“평소 하던 게임 같은 건?”
“부모님은 다들 살아 계시고?”
“예, 그렇습니다.”
굳이 이런 건 왜 묻는 건가 싶은 이야기까지 시시콜콜 다 하고나자 최성민이 책을 덮었다.
“그래, 수고했다. 오늘부터 너는 찰리 포대 3분대 소속이다. 선임들 말 잘 듣고.”
“예.”
“태호야.”
“일병, 성태호.”
“얘 좀 씻기고 환복시켜라. 그러고 나서는 숙지할 거 좀 가르쳐 주고.”
“예, 알겠습니다.”
“대기 기간 동안 잘 가르쳐야 니가 고생을 덜 한다는 거 알고 있지?”
“예, 그렇습니다.”
전혁수가 성태호의 머리를 꽉 움켜잡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분대장님, 얘가 뭘 알아야 쟤를 가르칠 것 아닙니까?”
“태호 정도면 됐지.”
“태호가 참 말을 잘 듣고 열심히 하는 건 알겠는데, 애가 제대로 하는 건 없지 않습니까.”
전혁수는 그렇게 말하며 태호의 뒤통수를 손가락으로 꾹꾹 밀었다.
“그럼 네가 가르칠래?”
“에이, 분대장님. 저도 이제 곧 상병인데, 신병 잡고 가르칠 시기는 지났지 말입니다.”
“그럼 입 닫고 있든가, 인마.”
“예, 알겠습니다.”
전혁수가 양손을 들고는 뒤로 물러났다.
성태호는 뒷머리를 긁적이고는 강진호의 어깨를 잡았다.
“진호라고 했지?”
“이병, 강진호.”
“씻으러 가자. 세면도구랑 활동복 챙겨라.”
“예, 알겠습니다.”
샤워장으로 가 몸을 씻고 활동복으로 환복한 강진호를 데리고 성태호가 생활관 밖 휴게실로 나갔다.
“담배 피우냐?”
“…….”
안 피운다고 하려던 강진호는 주영기의 말을 떠올리고는 생각을 바꿨다.
“피웁니다.”
“자.”
성태호가 빙그레 웃으면서 담배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강진호는 담배를 받아 들고는 입에 물었다. 성태호가 강진호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고는 자신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신병교육대 힘들었지?”
“아닙니다.”
“나는 엄청 힘들었는데. 그런데 자대에 오니까 거기서 배운 게 별로 쓸모가 없더라고.”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하나하나 배워 나가다 보면 금방 잘할 수 있을 거야. 너는 생긴 것만 봐도 벌써 A급 삘이 난다.”
“감사합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전혁수가 밖으로 나오며 욕설을 내뱉었다.
“아, 씨발.”
성태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A급은 씨발. 생긴 것만 봐도 어리바리 타게 생겼구만. 야, 성태호.”
“일병, 성태호!”
“넌 이 새끼야, 조원구 병장님이 애 데리고 겜방 간다는 이야기 못 들었냐?”
“들었습니다.”
“근데 니가 뭐라고 애 데리고 나와서 담배 물려주고 있냐? 너 뭐 돼?”
“아닙니다.”
“애새끼가 제대로 하는 게 없으면 눈치라도 있어야 할 것 아냐. 너 생활관에서 조원구 병장님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 안 해봤냐?”
“죄송합니다.”
“아, 씨발. 그 ‘죄송합니다’ 소리 듣는 것도 지겨우니까 알아서 좀 하라고.”
“죄송합니다.”
“이 새끼가 지금 나 놀리나!”
전혁수가 담뱃갑을 구기더니 성태호에게 집어 던졌다.
성태호는 차마 피하지 못하고 날아드는 담배곽을 그대로 얻어맞았다.
“죄송하다 소리 하지 말라고 했지, 이 새끼야.”
“……예.”
“예? 예? 씨발, 예?”
전혁수가 성큼성큼 다가와 성태호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툭툭, 건드리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하, 씨바. 여기가 군대라서 다행인 줄 알아라, 이 새끼야. 사회에서 니가 나를 만났으면 지금쯤 맞아 죽었다.”
성태호는 아무 말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강진호?”
“이병 강진호.”
전혁수가 강진호에게 다가오더니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새끼, 똘똘하게 생겼네. 쫄지 말고 담배 다 피우고, 얘랑 같이 생활관으로 와. 알았지?”
“예, 알겠습니다!”
“목소리 좋은 것 봐라.”
전현수는 낄낄거리며 몇 번이나 강진호의 머리를 더 쓰다듬더니 인상을 바꿔 성태호를 노려보고는 몸을 돌려 생활관 안으로 들어갔다.
“휴…….”
전혁수가 사라지자 성태호가 깊은 한숨을 쉬더니 어색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미안하다.”
“아닙니다.”
“전혁수 일병님도 좋으신 분인데, 가끔 화를 내시는 경향이 있거든. 근데 너만 잘하면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나는 그게 잘 안 되더라고.”
“…….”
“에고, 내가 별소리를 다 하네.”
성태호는 담배를 비벼 끄고는 강진호를 눈으로 재촉했다. 강진호 역시 담배를 끄고 성태호를 따라서 생활관으로 들어갔다.
‘편하지는 않겠군.’
순간적으로 파악한 생활관 내부 공기는 그리 평온하다고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나름의 긴장감이 팽팽했다.
자대에 가야 진짜 군 생활이 시작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생활관 안으로 들어가자 조원구가 후다닥 뛰어오더니, 강진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씨익 웃었다.
“담배 피웠어?”
“예, 피웠습니다.”
“태호가 주디?”
“네. 성태호 일병이 피우게 해줬습니다.”
“그래, 잘했다. 그럼 이제 형이랑 게임하러 가야지.”
“그래도 되는 겁니까?”
“마, 형이 한다는데 누가 뭐라고 해?”
조원구가 강진호를 잡아끌면서 문밖으로 나가자 등 뒤에서 좋지 않은 시선들이 꽂히는 게 느껴졌다.
‘흐음…….’
처신만 잘하면 된다는 군대지만, 그 처신이라는 것이 꼭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실감 났다.
“뺀질거리게 생겼네.”
전혁수는 강진호가 조원구를 따라 나가는 것을 보며 혀를 찼다.
“하여튼 신병 새끼들은 왜 하나같이 멍청한지 모르겠네. 시작부터 한 번 박살이 나봐야 정신을 차리지. 너는 월요일부터 뒈진 거야.”
하지만 전혁수는 몰랐다.
그가 받은 신병이 어떤 인간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