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35
#934.
증언하다 (4)
위긴스가 얼굴을 주물렀다.
‘조금 과했나?’
감정이 격해졌다. 조금 더 좋게 풀 수도 있는 문제였다.
‘아니, 아니야.’
차라리 잘됐다.
때로는 감정적인 게 나은 일도 있다. 논리는 빈약해질지 모르지만, 그 진정성만은 제대로 전달이 될 테니까.
“마스터.”
“말해보게나.”
“조금 전, 마스터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원칙을 지키는 것이 억울한 자를 낳지 않는 방법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랬지.”
“그건 틀린 말입니다.”
“…….”
“이유는 간단합니다. 원탁의 원칙은 원탁만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원칙에 적용되는 이들은 자신이 원탁의 원칙에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하나…….”
“법과 규칙이 공정한 이유는 그 법이 모두에게 공개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지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원탁은 어떻습니까? 세계를 감시하다가 원탁의 원칙에 어긋나는 이를 찾아내면 제거합니다. 물론 알려줄 수도 있겠죠. 그자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너는 원탁의 원칙을 어겼다’라 말하고 목을 베는 것도 알려주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걸 누가 납득합니까?”
“이보게, 위긴스.”
“아니요, 마스터. 그건 틀린 겁니다.”
위긴스의 목소리가 조금 격해졌다.
“네, 틀렸습니다. 애초에 시작부터 잘못되었던 겁니다. 원탁은 수호합니다. 세계를 수호합니다.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세계의 평화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모든 것을 합니다.”
“원탁의 노고마저 부정할 셈인가?”
위긴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과정인지 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겪었으니까요. 하지만 마스터.”
위긴스가 가만히 마스터를 보며 말했다.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누군가가 원칙을 어기는지를 지켜보고 응징한다.”
단 한 문장이었다.
그 한 문장에 위긴스가 원탁을 부정한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그건 수호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걸 지배라고 합니다.”
“…….”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낡은 생각을 강요하고, 그 생각을 따르지 않고 눈에 어긋나는 이들을 힘과 무력으로 응징한다. 그걸 세상은 파시즘이라고 부릅니다.”
“위긴스!”
“말이 조금 심했습니다. 인정합니다.”
위긴스가 손을 뻗어 냉수를 잡고 쭉 들이켰다.
“하지만 어감의 차이일 뿐, 제 말이 그리 틀리지 않았다는 것은 마스터께서도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마스터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원탁을 겪어보고도 그런 말을 하는 건가?”
“겪어봤으니 하는 말입니다.”
“자네도 알 텐데. 무인이라는 이들이 얼마나 무도한지를 말일세. 원탁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을지 생각해 보지 않는 겐가?”
“…….”
마스터의 목소리가 점점 고조되었다.
“자네의 말이 맞는 측면도 있네. 원탁의 방식이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것 역시 사실이지. 하지만 그런 방식이 아니고서야 무슨 수로 무인들을 통제한단 말인가.”
“통제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으십니까?”
“그럼 그들은 자연 그대로 풀어놓자는 건가?”
“그래서는 안 될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럼 세상에 법은 왜 있는가! 사람 역시 자연 그대로 풀어놓으면 될 일이지. 인간은 악해! 자네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악하네. 인간은 힘을 가지면 그 힘으로 어떻게든 상대를 억압하려 하는 존재네. 그런 이들을 내버려 두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마스터.”
위긴스가 고개를 저었다.
“원탁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멸망했습니까?”
“…….”
“동아시아만 봐도 알 수 있잖습니까. 이곳에서 원탁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한정적입니다. 하지만 이곳이 망했습니까?”
“운이 좋았을 뿐이네.”
위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가치관이라는 것은 서로 절충하여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서로가 옳다고 믿는 것을 관철해 나가며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
그전에는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것이다.
“아무래도 좋습니다. 제가 원탁을 벗어난 이유는 그 강압적인 방식이 싫어서가 아니니까요. 더는 발전할 수 없는 그 시스템에 환멸을 느껴서입니다.”
“원탁의 시스템은 완벽하네.”
“마스터, 세상에 완벽이란 없습니다.”
“하지만 완벽에 근접한 것은 있겠지.”
위긴스가 고개를 저었다.
“마스터, 완벽한 것은 정체되었다는 뜻입니다.”
“…….”
“원탁은 완벽합니다. 하지만 원탁의 완벽은 그 안에서의 완벽일 뿐입니다. 세상에 주인의 마음에 완벽히 드는 집이야 존재할 겁니다. 시간이 지나 조금 낡으면 리모델링을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집을 넓히고 더 많은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집을 허물고 새로 지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같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스터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지금 위긴스의 말은 마스터의 정곡을 찔렀다.
원탁의 시스템은 완벽하다.
그렇기에 더 나아가지 못한다. 변하는 세상에도 완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원탁 이상의 시스템이 없다고 자부하기에 이것이 가장 낫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원탁의 시스템 자체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말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럼.”
마스터는 더는 방어를 하지 않기로 했다.
“여기에는 있단 말인가? 자네가 말한, 그 발전되고 다른 시스템이 말일세.”
“없습니다.”
위긴스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
그러자 마스터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없어?”
“네, 없습니다. 주먹구구식으로 겨우 대처해 나가고 있을 뿐입니다. 안건 하나가 올라올 때마다 다들 머리를 쥐어뜯고 있지요. 시스템으로 따지자면, 후진적이다 못해 끔찍할 정도입니다.”
“아니…….”
치솟던 짜증이 사라졌다.
그런 후에 그 짜증을 황당함이 채웠다.
그럼 대체 무슨 생각으로 원탁에 대한 비판을 신랄하게 해 댄 것인가. 제 일이나 잘할 것이지.
“그럼 왜 여길 선택한 건가?”
“여기에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능성?”
“예. 강력한 지도자. 모든 것을 제 의지대로 행할 수 있는 전지적인 지도자가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굳이 플라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게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마스터는 잘 아실 겁니다.”
“…….”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하나입니다. 로드, 강진호를 믿었기 때문이지요. 저는 그 사람에게서 미래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활력을 보았죠. 세상을 집어삼킬 수 있는 불꽃을 보았습니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나 역시 더 나아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위긴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의 로드는 그 이상입니다. 그는 강하되 휘두르지 않고, 오만하되 자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강압적이되 민주적이고, 지독하지만 부드럽죠.”
위긴스가 쿡쿡 웃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총회가 어떤 곳인지, 한국이 어떤 곳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결국 그 사람을 설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지요. 직접 보지 않는다면, 직접 겪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사람이 로드이니까요.”
‘로드라…….’
그 단어가 마스터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었다.
단순한 직위로서의 마스터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로드라는 단어가 위긴스의 강진호에 대한 공경심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었다.
“결국은 내가 강진호를 만나봐야 한다는 거로군.”
“그렇습니다.”
“……그럼 아까 그건 뭐였는가?”
위긴스가 고소를 머금었다.
“정말 설명드리기 어렵지만, 우연과 우연이 겹친 겁니다. 로드께서 마중 나가야 할 사람이 하필 마스터와 함께 입국한 것뿐입니다.”
“……거참.”
마스터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리고 그 우연을 필연으로 만든 것은 바로 접니다.”
“음?”
“먼저 한 번 보신 게 다행 아닙니까?”
마스터가 살짝 눈을 찌푸렸다.
그리고 지금 가면을 썼다는 사실을 다행이라 여겼다. 강진호에 대한 그의 반응을 위긴스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 물론 위긴스 정도 되는 이라면 지금 마스터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눈으로 보는 것과 상상하는 것은 다르니까.
“확실히…… 부정할 수 없군.”
“어떠셨습니까?”
“내 감상을 묻는 건가?”
“예.”
“감상이라…….”
마스터의 고개가 살짝 위로 올라갔다. 마치 무언가를 떠올리는 것 같다.
“전위예술을 본 것 같았지.”
독특한 표현이었다.
“아니면 그림을 봤다고 해야 하나. 무척이나 파괴적인 화풍으로 그려진 그림 같았지.”
마스터가 고개를 내저었다.
“예술이라는 것이 가치가 있는 이유는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지. 그 남자도 똑같더군. 그 남자에게서 받은 느낌을 조악한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너무도 어렵군. 굳이 한 단어로 축약해야 한다면 하나밖에 남지 않겠지.”
“하나라 하시면?”
“위험하다.”
“……적절하군요.”
정말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했다. 위긴스가 생각하는 강진호에게 딱 들어맞는다. 수많은 표현이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먼 것들을 하나하나 지우다 보면 결국 그 하나가 남을 것이다.
“위험한 남자더군. 여러 가지 의미로.”
“부정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자네도 알고 있겠지?”
“예?”
“자네와 총회가, 그리고 그 강진호라는 자가 지금 세상을 얼마나 뒤흔들고 있는지 말일세.”
“…….”
“내가 이곳에 와 자네와 이리 대화할 수 있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말해 자네들이 그만큼 위험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야. 자네가 그저 원탁의 배신자로 남았더라면 나는 이곳에 올 수 없었을 걸세. 하지만 이제 자네는 그저 제거하면 끝인 배신자가 아닐세. 어쩌면 동아시아에서 시작될지도 모르는 거대한 전쟁의 뇌관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어. 그러니 묵은 감정을 내려놓고 대화할 수 있는 거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위긴스가 씁쓸하게 웃었다.
“먼저 하나 묻겠네.”
“예, 마스터.”
“내가 지금껏 참아주는 이유를 자네는 알고 있겠지?”
“네. 알고 있습니다.”
원탁의 방식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알고 있다.
부드러운 대화가 오고 간다. 하지만 그 부드러운 대화 끝에 온건한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면, 저들은 기계처럼 총회를 무너뜨리려 들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든.
대화는 부드럽게, 하지만 처리는 확실하게.
그게 원탁의 방식이었다.
“그 강진호라는 자를 본 인상으로는 결코 대화가 통해 보이지 않더군. 자네는 내가 그자와 대화함으로써 다른 무언가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나?”
“물론입니다, 마스터.”
위긴스가 빙그레 웃었다.
“마스터, 저도 마스터에 비할 수는 없지만, 수많은 이들을 겪어왔습니다.”
“그렇지.”
“하지만 로드는 지금까지 제가 겪은 그 어떤 이들과도 다른 사람입니다. 마스터 역시 알게 되실 겁니다. 그분을 만나보면 말이죠. 세상에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걸 말입니다.”
“흐음?”
“그리고…….”
위긴스가 살짝 머뭇거렸다.
이 말을 굳이 해야 할까?
입술을 질끈 깨문 위긴스가 입을 열었다. 이건 총회에 대한 충성이 아니다. 원탁에 대한 의리였다.
“그분을 평가하려 하지 마십시오. 평가받는 건 그분이 아니라 마스터와 원탁입니다.”
“…….”
“그 사실을 잊으신다면 결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실 겁니다.”
마스터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몸을 돌렸다.
“일정이 정해지면 통보하게.”
“예, 마스터.”
“……자네, 너무 많이 변했구만.”
위긴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카페에서 빠져나가는 마스터를 보며 위긴스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좋게 끝내지는 못할 것 같군.’
그렇다 해도 이 만남을 무산할 수는 없었다.
이미 기호지세다.
그 어떤 결과가 나올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