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39
#938.
내리밟다 (3)
살짝 당황이 감돌았다.
‘이게 무슨 소리지?’
통역을 한 이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들리는 대로 통역을 하기는 했다만…….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습득하고 회담장에 나오는 게 예의 아닌가?’
예의를 지적하고 있는 쪽이 예의가 없다.
회담장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크흠.”
마스터 역시 살짝 헛기침을 했다. 평소의 마스터에게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제대로 당황한 게 분명했다.
“확실히 모르는 쪽에서 본다면 예의가 없어 보일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이건 원탁의 관례 같은 것이니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정중하다.
통역이 살짝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래서 마스터가 위대한 것이다.
새파란 젊은 놈이 대놓고 도발을 하는데도 예의를 잃지 않는다. 원탁이라는 위대한 조직을 이끌어 나가는 이는 이러한 품위가 있어야 한다.
반면에 저놈은 뭔가.
‘어떻게 저런 놈이 수장으로 앉아 있을 수가 있지?’
무뢰배가 따로 없다.
저 삐딱한 자세부터 표정 하나까지……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통역!”
“아!”
통역이 재빠르게 마스터의 말을 전했다.
그 말을 들은 강진호가 피식 웃는다.
“뭐라 지껄이는지는 모르겠지만…….”
“…….”
뭐라고?
지껄여?
이걸 전해야 하나?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원탁을 수행하여 통역을 하는 일이 쉬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오늘은 난이도가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강진호가 통역을 슬쩍 보고는 이현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네가 해야 할 것 같은데.”
“……있는 그대로 전하면 되겠습니까?”
“물론.”
단호한 강진호의 말에 이현수조차 아연해했다.
‘기호지세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강진호의 말에 딴지를 걸고 수위를 낮추자고 제안을 한다?
그건 강진호와 총회의 체면을 동시에 깎아먹는 일이다. 이 자리에서만큼은 그들이 회주의 말을 무조건 따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갈 데까지 가보자.’
이현수가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네. 그러면…….”
이현수가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조금 오버해서 슬랭까지 섞어가며 말을 전했다.
“그쪽의 관례에 우리가 맞춰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나는 굳이 얼굴을 가린 쪽과 대화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깔끔하게 의견이 전달된다.
여기저기에서 노기 섞인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런 개 같은!’
강진호를 죽일 듯 바라보는 눈빛들이 느껴진다.
‘멍청한 놈들.’
이현수는 그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나마 비웃었다.
원탁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저 수행원이라는 것들은 딱히 대단한 실력을 갖추지 못한 게 틀림없었다. 저들이 강진호의 힘을 알아챌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만이라도 있었다면 감히 강진호를 노려보는 짓거리는 하지 못할 것이다.
“흐음.”
마스터의 입에서 살짝 콧소리가 새어 나왔다.
조금이라도 눈치가 있는 이라면 그 소리에 불편함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위긴스가 흥미로운 눈으로 마스터와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군.’
파워 게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이렇게 기세 싸움이 벌어질 줄이야.
더 재미있는 것은, 강진호는 지금 파워 게임을 벌일 생각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위긴스가 아는 강진호는 쓸데없는 꼬투리를 잡아서 분위기를 끌고 온다는 생각을 할 사람이 아니다.
그냥 마음에 안 들어서 지적한 것뿐이지만, 저들에게는 그리 받아들여지지 않겠지.
“동양의 예의에 어긋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마스터가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딱히 불편함이 어린 말투는 아니지만, 지금 마스터가 어떤 기분일지는 이곳에 있는 모두가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제 쪽에서 양보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군요. 부디 이해해 주시기를.”
마스터는 그 말을 하면서 위긴스 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어이쿠.’
그 눈빛에 담긴 의미를 파악한 위긴스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로드, 원탁에 소속된 이들에게 가면이라는 것은 단순히 정체를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가면을 벗으라 말하는 것은 우리에게 서로 숨기는 것이 없게 알몸으로 회담을 진행하자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강진호가 조금 삐딱한 눈으로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 부분은 이해해 주시는 것이 회담을 위해 좋을 것 같다고 제안드리는 겁니다.”
위긴스의 말을 들은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말했다.
“싫다면?”
“…….”
고개는 왜 끄덕였나!
“착각하는 모양인데…….”
“…….”
“내가 이 자리에 나와준 것만으로도 그쪽에서는 감사해야 할 일이지.”
마스터가 입을 닫았다.
“미리 조율하고 온 것도 아니고, 다짜고짜 한국으로 쳐들어와 ‘내가 왔으니 당연히 네가 나와야지’라는 식으로 일을 진행해 놓고, 뭐? 이쪽의 관습이니 네가 맞춰라?”
강진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잘도 지껄이는군.”
말이 조금 더 과격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전과 같은 반발의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고조되는 말과 함께 강진호의 기운도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진득하고 음습한.
그와 함께 숨을 틀어막는 짙은 기운을 느낀 이들은 감히 입을 열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무슨 기운이…….’
‘사, 사람인가?’
마스터만이 느끼고 있던 기운을 이제는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달라진 그들의 반응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가늘게 뜬 눈으로 마스터를 노려보았을 뿐이다.
“위긴스에게 감사하는 게 좋을 거야. 그가 중재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네 목이 떨어졌을 테니까.”
“…….”
마스터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이 말이었군.’
위긴스가 말했다.
마스터가 평가하는 게 아니라, 마스터가 평가받는다고.
그 말의 의미가 이 뜻이었다.
마스터는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이 해야 할 가장 온당한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냈다.
마스터의 고개가 숙여진다.
강진호가 살짝 이채를 띠고 그런 마스터의 행동을 지켜봤다.
두 번째로 숙여지는 고개. 하지만 이건 이전의 행위와는 그 의미가 달랐다. 전의 의미가 단순한 예의의 표현이었다면, 이건 사죄의 의미다.
한 단체의 수장이 다른 단체의 수장에게 사죄의 의미로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결코 쉽게 나올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위긴스조차 입을 벌릴 정도였다.
‘마스터가…….’
고개를 숙인다.
자신의 지위에, 원탁의 마스터라는 직위에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자신이 고개를 숙인다는 것이 원탁의 사죄를 의미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이가 지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 점을 고려하지 못한 점은 사과드립니다.”
마스터가 숙여 보인 고개를 들고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쪽에서도 워낙 급박하게 이루어진 일이라 그 모든 상황을 일일이 챙길 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흠.”
“저는 이곳에 대화를 하러 왔습니다. 대화의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화조차 해보지 못하는 건 최악 중의 최악이 아니겠습니까?”
“대화라…….”
강진호는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마스터의 반대쪽에 마련되어 있는 자리로 걸어갔을 뿐이다. 의자를 뺀 강진호가 그 자리에 앉았다.
“어떤 대화를 원하지? 격식이라도 차려볼까?”
마스터가 빙그레 웃었다.
“편안한 대화가 좋겠지요. 이건 공식적인 자리이지만, 또한 비공식적인 자리이기도 하니까요.”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과격하게 나간다고 해서 그 말의 의미를 이해 못할 정도는 아니다. 원탁의 이름을 빌리기는 하겠지만, 격식을 차려 온 것이 아니니 상황이 불리하다면 언제든 그의 개인적인 일탈로 사태를 무마하겠다는 뜻이다.
노회한 너구리.
강진호는 마스터에게서 그런 인상을 받았다.
저 가면 속에 숨겨진 얼굴은 이미 강진호를 수도 없이 떠보고 있다.
“편안한 대화?”
“예. 그렇습니다.”
“나쁘지 않지.”
강진호가 품 안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러고는 태연하게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이현수가 씨익 웃고는 강진호에게 쪼르르 다가와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
연기를 뿜어낸 강진호가 가볍게 웃었다.
“그쪽도 담배 피우면 한 대 하지?”
“…….”
마스터가 할 말을 잃고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금연 구역인가?”
“아니요.”
이현수가 한쪽에 비치된 재떨이를 강진호의 앞으로 가져왔다.
“그럴 줄 알고 흡연 가능한 회의실로 잡았습니다.”
“괜찮군.”
강진호가 마스터를 보며 말했다.
“담배 안 피우나?”
마스터는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정신이 하나도 없군.’
인정해야 한다.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 그들이 준비한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강진호는 이곳에 들어온 지 단 삼 분 만에 그들의 모든 준비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주도권을 가져가 버렸다.
‘심지어 계산한 행동들도 아니야.’
천성적인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주변을 압도하고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든다.
이건 왕의 자질이다.
그것도 패왕의 자질.
마스터는 자신을 내려놓았다. 이런 이들과 힘겨루기를 하려 들면 사태가 최악으로 흐른다는 것은 이미 경험상 알고 있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런 타입들과는 이미 몇 번 부딪쳐 봤다.
‘아니, 아니지.’
마스터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것 역시 강진호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발로였다.
비슷한 타입?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강진호는 온전하다.
세상 어디에서도 이와 같은 자는 볼 수 없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새로운 이와 대면한다는 마음으로 상대해야 한다.
“담배는 사양하겠습니다.”
마스터가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것도 느와르 같군.’
중앙에 앉아 있는 강진호의 좌우로 위긴스와 이현수가 선다. 다리를 꼰 채 담배를 피우는 사람과 그런 이를 호위하듯 서 있는 이들.
예전에 보던 영화에서 많이 보던 구도다.
그리고 저런 구도로 나오는 이들은 대부분이 구제불능의 악당이었다.
“먼저 이렇게 나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자세다.
원탁이라는 지고한 단체의 수장인 마스터의 입에서 나오기에는 부적절해 보일 정도로 저자세인 발언이었다.
“시간이 많은 모양이군.”
하지만 안타깝게도 강진호는 상대의 예의에 따라 자신도 예의를 차려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강진호의 인식에 지금 마스터는 딱 중간에 서 있다.
적과 아군.
그 경계.
지금부터 마스터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무게추가 쏠릴 것이다.
“한국에 나를 만나러 왔다고 하더군.”
“……그렇습니다.”
대화의 주도권마저 넘어간다.
“말해봐.”
“……무슨?”
“나를 만나러 왔다는 건 할 말이 있다는 거겠지. 그 할 말이 뭔지 해봐. 들어줄 테니까.”
앞도 뒤도 없다.
모든 것을 잘라 버리고 찔러 들어오는 화법에 마스터가 입을 살짝 다물었다.
조금의 침묵이 흐르고 마스터가 입을 열었다.
“당신을 죽여야 할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강 대 강으로 부딪치는 화법에 회의장에 칼날 같은 정적이 감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