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41
#940.
내리밟다 (5)
“묻고 싶은 건 그게 다인가?”
“……일단은 그렇습니다.”
“그럼 결론이 나왔겠군.”
강진호가 턱을 괴고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예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지만, 여전히 더없이 자연스럽다.
“그래. 어쩔 셈이지? 나를 죽일 건가?”
묻는다.
저런 걸 대놓고 물어온다는 것부터 확실히 정상적인 반응은 아니다.
하지만 마스터도 이제는 강진호에게 조금 적응했다.
“여전히 고민 중입니다.”
강진호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이때 위긴스가 입을 열었다.
“마스터.”
마스터가 고개를 들어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제가 전에 드린 말씀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무슨 말 말인가?”
“저는 로드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그저 사실만을 말한 것뿐입니다. 로드의 말에는 그 어떤 허점도 없습니다. 하지만 마스터의 머릿속에서 그런 건 딱히 중요한 일이 아니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마스터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할 말이 궁색했다.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의 논리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논리가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원탁은 그런 것을 애초에 듣지 않습니다. 원탁이 보고 듣는 것은 그들의 논리가 옳은가가 아니라 그들이 위험한가, 그렇지 않은가 뿐입니다. 물론 그 위험조차도 원탁의 잣대로 일방적으로 잰 것에 불과하지요.”
마스터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부정할 수가 없다.
지금 그는 확실히 그런 생각을 했으니까. 강진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마스터는 그의 논리에 주목하지 않았다. 이런 사상을 가진 이가 한국에 존재한다는 것이 동아시아에 얼마나 위협이 되는가만 고려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게 뭐가 잘못되었다는 건가.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다.
모드 일을 진행할 때마다 다른 이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일일이 고려해야 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전 세계를 영역으로 수많은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원탁에 있어 그런 방식은 너무도 비효율적이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내가 틀렸다고 하고 싶은 건가?”
“마스터는 틀리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위긴스가 고개를 저었다.
“틀린 것은 원탁입니다. 원탁은 조율자를 자처합니다. 하지만 원탁은 조율하지 않습니다. 원탁은 압제합니다. 그리고 강요합니다. 심지어 대화가 아니라, 폭력으로 압제합니다.”
“물론.”
마스터가 위긴스의 말을 끊어냈다.
“어쩌면 원탁의 방식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르지.”
단호한 목소리.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세상에 완전히 옳은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원탁은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게 아니야. 결과적으로 가장 많은 이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는 것뿐일세. 세상 모두를 만족시키는 결과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좋은 말이지.”
강진호가 위긴스 대신에 대답했다.
“그럼 어떨까?”
강진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압감.
기세를 떨쳐 낸 것도 아니고, 위협을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자리에서 일어났을 뿐이다.
하지만 마스터와 그 수행원들은 그 동작 하나만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위압감을 느끼고 있었다.
무위가 강할수록 압력은 오히려 더 크게 다가왔다.
강진호를 기준으로 본다면 딱히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수행원들은 그저 전신을 짓누르는 듯한 힘을 느꼈을 뿐이지만, 마스터는 심장이 옥죄는 것 같은 압력을 느끼고 있었다.
강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강진호가 강하지 않았다면 이런 충격을 줄 수는 없겠지만, 강진호만큼 강한 자가 또 있다고 해도 지금 강진호가 주는 압박감을 동일하게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맞는 말이야.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지. 다수를 위해서라면 소수가 희생하는 것도 맞지.”
강진호의 몸에서 스멀스멀 마기가 피어났다.
“하지만 그건 자신 역시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지. 어떨까? 내가 지금 여기서 너를 죽이는 대가로 네가 원하는 대로 더 이상 충돌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하면 너는 그 목을 내어줄 수 있나?”
“…….”
“대답해.”
이현수가 마른침을 삼켰다.
강진호는 지금 화가 났다.
하지만 아직 돌이킬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만약 강진호가 정말 화가 났다면 이런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지도 못할 테니까.
‘무슨 말로 끼어들어야 하지?’
말려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어떻게 말려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제 목이라 하셨습니까?”
마스터가 억눌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
“제 목은 그리 쉽게 내어드릴 수 없습니다. 이 한 목에 걸린 목숨은 하나둘이 아닙니다.”
마기가 사라졌다.
짓누르던 압력조차도 일거에 사라진다.
버텨내던 힘이 함께 해소되지 못해 몸이 앞으로 확 쏠린다. 휘청한 마스터가 재빨리 몸을 다잡았다.
“……그래?”
강진호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재떨이에 올려둔 담배를 다시 물었다.
“그렇군. 네게는 여러 목숨이 걸려 있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네가 판단해서 죽이는 이들은 책임지는 목숨이 없다는 건가?”
“…….”
강진호의 눈에는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온화해진 것이 아니다. 장난감에 더 이상 흥미를 가지지 못하는 아이의 눈 같았다.
“시시하군. 위긴스가 떠받들어 주기에 뭐 얼마나 대단한 인간인가 싶었더니, 그냥 제멋대로 지껄이는 놈에 불과했어.”
위긴스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로드. 저 역시 원탁에 속해 있다 보니 사람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결여되었던 것 같습니다.”
“딱히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담배 연기가 천천히 뿜어져 나온다.
강진호는 맥이 빠진 눈으로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유럽의 맹주.
강진호에게 있어서는 꽤나 기대가 큰 만남이었다.
그는 여전히 서양의 무인들에게 익숙하지 못하다.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이미 위긴스를 통해 확인하지 않았는가.
단순한 무위뿐만이 아니다.
위긴스는 그들이 갖추지 못한 합리성과 범용성을 갖추고 있었다. 무인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거대하다.
그런 위긴스가 모시던 자.
위긴스 같은 나이트를 수도 없이 거느린 자.
그런 이와의 만남이다. 어찌 기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마스터는 그런 강진호의 기대를 배반했다.
그의 눈앞에 있는 이는 과거 그가 수도 없이 상대했던 이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정파인.
거대 문파를 거느리고, 자신만이 정의라 부르짖는 자들.
뭐 딱히 그들이 잘못되었다고 할 생각은 없다. 수도 없이 사람을 죽여 대는 마교인들에 비하면 그들이 정의이고, 그들이 올바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한 가지.
‘따분해.’
상대하기에 그리 재미있는 이들은 아니었다.
이미 사고가 결정되어 있고, 타협의 여지를 보이지 않는다.
정의라는 말은 참 무서운 말이다.
정의는 타협하지 않는다. 완벽한 정의란 것은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법이니까. 수도 없이 상대해 보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의견을 튼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굳이 대화를 할 필요가 없다. 결국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할 뿐이니까. 교과서처럼 정해져 있는 답변을 들을 거라면 굳이 뭐 하러 대화를 하겠는가.
“위긴스.”
“예, 마스터.”
“회담은 맡기지.”
“예?”
“전권을 주지. 편한 대로.”
“아…….”
위긴스조차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저 자리에서 일어날 뿐이었다.
이 회담은 의미가 없다.
저런 자들은 결정하지 않는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시간을 끌며 좀 더 살피기를 원한다. 그렇게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가 뻔한 말을 반복할 것이다.
그 지루하고 지난한 과정에 동참할 생각은 없었다.
“굳이 내가 필요하지 않은 자리 같군. 그럼.”
강진호가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위긴스와 이현수가 황당함이 가득 담긴 얼굴로 그런 강진호의 등을 돌아본다.
그 순간이었다.
“멈추십시오.”
마스터의 노기 어린 목소리가 강진호의 발목을 잡았다.
“지금 이 행동이 원탁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처음으로 내보이는 마스터의 노기였다.
강진호가 그를 무시했을 때도 웃음으로 받아들였던 마스터다. 그런 이가 지금 분노를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는 고개만 뒤로 돌렸다.
“그렇다면?”
“……그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용납하지 않으면?”
“원탁은 무례를 참지 않습니다.”
강진호가 헛웃음을 흘렸다.
“제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도 모르는 건가?”
모순이다.
중재를 하는 이는 권위를 내세워서는 안 된다. 그 방법이 폭력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지금 마스터는 스스로 세계의 평화를 중재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면서도 원탁의 권위를 지키려 하고 있다.
그건 중재가 아니다.
“마스터라고 했나?”
마스터 역시 눈을 돌리지 않고 강진호를 노려보았다.
“나는 이미 참을 만큼 참았다.”
“…….”
“나를 알고 싶다고 했지?”
강진호가 이를 드러냈다.
“그럼 어쭙잖은 짓거리하지 말고 덤벼. 무인이 주둥아리로 서로를 알아본다는 소리는 생전 들어본 적 없으니까. 그 목에 내 검이 틀어박히면 내가 어떤 놈인지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을 테니까.”
극명한 도발.
날이 올라 피비린내가 느껴질 정도로 명백한 도발이었다.
그리고 그 도발을 받은 노회한 무인이 움직인다.
“확실히.”
마스터가 손을 들어 가면을 살짝 밀어 올렸다.
“대화를 통해서는 당신과 아무것도 풀 수 없다는 것은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러니 이쪽에서도 확인해 보도록 하죠.”
그극.
마스터의 손톱이 가면을 긁는다.
섬뜩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신이 과연 그런 오만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말입니다.”
강진호가 몸을 돌렸다.
그의 입가에 하얀 미소가 피어났다.
“이제야 말귀를 좀 알아먹는군.”
“처음부터 이랬어야 하는 건데, 시간 낭비를 했군요.”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이현수가 얼이 빠진 얼굴로 위긴스에게 속삭였다.
“이렇게 될 줄 아셨습니까?”
“……로드는 이렇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그럼 저 마스터는요?”
“마스터는…….”
위긴스가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아는 마스터는 이런 과격한 방법을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무력으로 맞붙는 상황은 절대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흘러버릴 줄이야.
“확실한 건 하나 알겠군.”
“예?”
“그동안 일련의 과정을 돌아보면, 로드가 사람 성질 긁는 재능 하나는 끝내주는 것 같지 않나?”
“…….”
이 무슨 태평한 소리인가.
지금 한국 무인계의 수장과 원탁의 마스터가 격돌하게 생겼는데.
“어쨌든 우리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지 않나. 눈 호강이나 한다고 생각하지.”
“……진짜 대책이 없으시네요.”
“그럼 자네가 말려보던가.”
말려?
누구를? 강진호를?
슬쩍 강진호를 돌아본 이현수가 허허 웃고 말았다.
강진호의 얼굴이 비릿한 미소로 완전히 물들어 있었다. 저 강진호는 누가와도 못 말린다.
“……적당한 장소를 수배할 때까지만이라도 말려주세요. 여기서는 안 됩니다.”
결국 이현수도 손을 놔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