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43
#942.
종언하다 (2)
“크흠.”
“…….”
운전을 하는 이현수는 속이 편치 않은 모양이었다. 조금 전부터 계속 헛기침을 하고 있다.
하기야 오늘도 미세먼지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니까 기침 정도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후우…….”
위긴스는 아무래도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까부터 한숨이 끊이질 않는다.
물론 한숨을 쉬는 걸 제지할 수는 없다.
강진호가 아무리 상급자라고 할지라도 가문의 우환까지 터치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렇기에 강진호는 조금 전부터 고개를 창밖으로 고정한 채 절대 차 안으로 돌리지 않고 있었다.
“거…….”
움찔.
이현수가 입을 열자 강진호의 몸이 움찔한다.
“휴…….”
세상에는 백만 가지의 말보다 더 큰 의미를 전달하는 한 번의 한숨이 존재한다.
지금의 한숨이 딱 그랬다.
얼굴이 두껍기로는 세상 어디에도 뒤지지 않고, 간덩이가 크다 못해 이미 육체를 탈출한 게 분명한 강진호이지만, 저 한숨이 주는 무게만큼은 버텨내기 힘들었다.
“거…….”
이현수가 다시 머뭇거린다.
그러자 강진호도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그냥 차라리 말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아니, 아닙니다. 회주님은 당연한 일을 하신 겁니다.”
“…….”
입에 터진 이현수가 속사포처럼 말을 쏘아댔다.
“물론 당연한 일을 한 거죠. 정상회담이니만큼 이 회담은 회주님께 전적으로 맡겨진 게 아니겠습니까. 회주님의 판단이 가장 우선이고, 회주님께서 선택하신 대로 저희가 따라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불만이 없습니다.”
좋은 말이었다.
물론 이제 시작이겠지.
“다만!”
거 봐라.
이제는 이현수를 너무 잘 아는 강진호였다. 덕분에 앞으로 무슨 말이 나올지 대충 예상도 할 수 있었다.
살짝 띄워주다가…….
“물론 회주님의 선택이 옳으시겠지만! 그리 생각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이제 나오겠지.
“다만, 그 방식이라는 것을 제가 잘 이해할 수 없다는 게 문제 같습니다. 왜 또 싸워야 합니까? 물론 우리가 무인이고, 무인인 이상 주먹질 말고 딱히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사람 아닙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딜을 넣을 거고…….
“게다가 이런 식으로 싸워서 남는 게 뭔지를 모르겠습니다. 이기는 거요? 그거 뭐 별거겠습니까. 그런데 회주님의 이력에 원탁의 마스터를 때려잡았다는 한 줄이 추가된다고 뭐가 그리 대단한 업적이 되는 건 아니잖습니까. 회주님의 업적은 이미 차고 넘칩니다. 그런데 굳이 원탁의 마스터를 패서 관계를 경색시킬 필요가 있는가…… 그게 제 생각입니다.”
그러고는 비꼬겠지.
“물론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다만, 다음부터는! 제∼에발 다음부터는 저희 의견도 한 번씩은 물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제∼에발! 그러실 거면 저희는 왜 데리고 가셨습니까! 제가 운전수도 아니고.”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하다.
어쩜 이리 예측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단 말인가.
“후우…….”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현수와는 다르게 위긴스의 반응은 완벽하게 예상할 수가 없었다.
한숨을 푹푹 내쉰 위긴스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물론…….”
확실한 건 위긴스도 슬슬 이현수를 닮아간다는 것이다.
예전에 들은 바로는 이현수가 강진호에게 함부로 말하는 것을 무척이나 크게 야단쳤다고 하던데…….
‘뭐가 달라?’
그 스승의 그 제자가 아니라, 그 제자에 그 스승이다.
최근 들어 위긴스도 강진호에게 딜을 넣는 것에 거침이 없어지고 있다.
“회주님은 그럴 수 있습니다.”
“…….”
차라리 화를 내라.
강진호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좋게좋게 풀 수 있는 문제를 조금 극단적으로 몰아간 것 같아서 민망해하던 차였는데, 저렇게 나와 버리면 강진호가 뭐가 되는가.
“회주님이야 답답하니 ‘일단 붙어 싸우자’라고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는 고려해야겠지요.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 건…… 마스터가 그걸 받았다는 겁니다.”
강진호는 무척 억울했다.
‘사실관계가 조금 꼬인 것 같은데…….’
붙어 싸우자고 도발을 한 쪽은 강진호가 아니라 마스터다. 분명 조금 전에 벌어진 일이고, 이들도 분명 그 상황을 봤을 텐데, 그 짧은 시간 만에 어떻게 전후 관계가 바뀐단 말인가.
이래서 사람은 이미지가 중요한 것이다.
이현수조차도 조금의 의문도 표하지 않고 있었다. 이들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강진호가 시비를 걸어 싸움을 만든 것이 확정되어 있다.
물론 먼저 시비를 건 건 맞지만…….
“마스터는 그런 도발에 응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리 나왔다는 것은 다른 노림수가 있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로드, 경계하셔야 합니다.”
“경계라…….”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내가 대책 없이 막 저지르는 사람이 된 것 같은데…….”
“아닙니까?”
“아닙니까?”
“…….”
강진호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그러고는 조금 서글픈 눈으로 뒤를 돌아봤다.
‘저 사람은 엄청 존중받겠지.’
수행원들이 마스터를 대신해서 화를 내는 모습이 기억난다. 마스터의 권위는 무척이나 존중받고 있었다. 그에 반면 자신은 지금…….
“조금은 신중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얻을 게 없다니까요. 이기면 이기는 대로 문제고, 지면 지는 대로 문젭니다. 수장이라는 자리는 하나하나의 행동에 막대한 리스크가 동반되는 법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강진호가 창문을 내렸다.
갑갑하다.
공기가 무척이나 갑갑하다. 시원한 바람이라도 좀 맞아야…….
“미세먼지! 미세먼지 들어옵니다!”
“……미안.”
강진호가 다시 창을 올렸다.
“어휴, 저 중국 놈들 때문에 창도 편히 못 내리네. 차이커창 새끼한테 욕이라도 퍼부어야지.”
산업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분야에 종사하는 차이커창이 들었으면 거품을 물 일이지만, 다행히 차이커창의 청력은 한국까지 닿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무를 수 없을까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이현수의 말에 위긴스가 인상을 썼다.
아무리 충동적으로 만들어진 일이라지만, 수장과 수장의 입에서 나와 결정된 사안이다. 물리자고 나서는 쪽이 얼마나 많은 굴욕을 감수해야 하는가는 너무도 빤한 일이다.
기호지세.
그 말이 딱 맞았다. 이제는 이 호랑이의 등에서 내릴 수가 없다. 저쪽에서 내려준다면 감사하겠지만, 원칙과 체면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곳이 원탁이다. 그럴 일은 절대 없다.
“일본하고도 사이가 안 좋고, 중국이랑은 원수지간인데…… 그나마 남은 곳이 원탁 하난데……. 원탁의 마스터를 패버리면…… 이거, 막장으로 가는 것 아닙니까?”
“…….”
위긴스가 대답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흘러버릴 줄이야.’
충돌이야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충돌이 커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마스터는 무슨 생각이신 거지?’
강진호가 어떻게 나오든 마스터는 절대 그 도발에 넘어갈 사람이 아니다. 강진호와 마스터의 대화는 애초에 그렇게 흐르지 않았던가.
강진호가 과격하게 말을 하고 도발을 했지만, 마스터는 흔들리지 않고 강진호의 말을 받아넘겼다.
위긴스는 당연히 그런 대화가 끝까지 이어질 거라 생각했다. 설사 마스터가 강진호를 제거하겠다는 결론을 내린다고 해도, 수행원만 끌고 적지에 들어온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니까. 일단은 몸 성히 한국을 빠져나가는 것이 먼저 아닌가.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수십 가지의 시나리오를 고려했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는 위긴스의 머릿속에 없었다. 완전히 새로운 시나리오다.
이 지켜보는 이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시나리오를 만들어낸 강진호와 마스터의 창의성에 박수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기야…….’
위긴스가 가볍게 웃고 말았다.
어디 강진호가 얽힌 일이 제대로 굴러가는 경우가 있던가. 항상 그 의외성을 고려하지만, 언제나 그 이상을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강진호다.
지금은 그 의외성이 정말 의외의 방향으로 튀어버렸다는 문제일 뿐.
“그럼 좀 봐주고 체면이라도 살려주면?”
“허.”
위긴스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원탁의 마스터다. 그 자리가 포커 쳐서 딸 수 있는 자리로 보이느냐? 마스터는 서양을 대표하는 무인 중 하나다.”
최강은 아니다.
하지만 최고.
가진바 무력으로 최강을 논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면이 있다. 원탁에는 마스터보다 강한 이들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 상징성을 고려했을 때는 원탁을 대표하는 무인으로 부족함이 없다.
그런 이를 상대로 뭐? 봐줘?
정신 나간 소리다.
“그럼 회주님이 질 확률도 있습니까?”
“…….”
그건 또 말이 다른데.
‘질 확률이 있나?’
위긴스는 마스터를 존경한다.
그건 강진호에게 가지는 존경심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강진호가 마스터에게 패하는 모습은 상상이 가질 않는다.
그가 처음 한국에 왔을 시점이었다면, 마스터에게도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 냉정하게 봤을 때, 그때의 강진호보다는 마스터가 우세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림이 안 나오는데.’
우세한 부분을 찾을 수가 없다.
무위?
그건 굳이 이야기 할 필요가 없다.
연륜과 경륜? 전투 경험?
그건 일방적으로 마스터가 처 발린다. 강진호는 전장에서 살아온 짐승이다. 전투에 대한 감각과 경험만큼은 천하의 누구도 따를 수가 없다.
전투가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 이상은 도무지 마스터가 이기는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
‘그렇다면 마스터는 왜 이 전투를 받아들인 걸까?’
그가 파악하는 것을 마스터가 모를 리는 없다.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도착했습니다.”
조금 전부터 차가 숲길을 달린다 싶더니, 이내 멈춰 섰다.
강진호와 위긴스가 차에서 내렸다.
너른 평지.
정비되지 않은 풀밭이었다.
“회의 사유지 중 하나입니다. 외부인의 접근이 없는 곳이니 적당할 겁니다.”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뒤따라온 마스터의 차가 도착하여 멈춰 선다. 그러더니 마스터가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리는 그의 얼굴은 더없이 굳어 있었다.
‘정말 모르겠군.’
위긴스는 마스터의 저런 표정을 본 적이 없다. 그에게는 언제나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마스터의 입매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준으로 굳어 있다.
그 역시 이 전투에 막대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다.
‘어쩌면 나는 오늘 마스터의 새로운 면을 볼지도 모른다.’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어쨌든.”
이현수와 위긴스가 강진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일단 싸우면 되겠지.”
“회주님, 절대로…….”
“그만.”
강진호가 이현수의 말을 잘랐다.
그 단호한 목소리에 이현수가 바로 입을 닫았다.
지금의 강진호는 말이 먹히는 강진호가 아니다. 이미 전장에 선 강진호였다.
“다녀오지.”
앞으로 나서는 강진호를 보며 이현수가 차마 하지 못한 말을 뇌까렸다.
“절대 죽이면 안 되는데…….”
이 전투에서 누구 하나가 죽는 일이 벌어지면 정말 세상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가버릴 것이다.
하지만 이현수는 안다.
일단 전투에 들어간 강진호는 말릴 수가 없다는 것을.
이현수의 불안한 눈이 강진호의 등을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