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45
#944.
종언하다 (4)
이미 충분히 안다고 생각했다.
대면해 보았고, 확인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마스터는 자신이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차원이 다르군.’
마주하는 것만으로는 이 남자를 알 수 없다.
그 앞에 적이 되어 섰을 때, 이 사내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바로 지금의 마스터처럼 말이다.
굶주린 야수가 목 바로 앞에서 입을 벌린 채 그를 위협한다면, 아마도 이런 기분이 아닐까?
환청처럼 그르렁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피부가 따끔따끔하다.
심장이 옥죄어든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마스터를 힘겹게 만드는 것은 조금 전부터 그를 짓눌러 오는 이 두려움이었다.
‘공포를 느낀다고? 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딱히 죽음의 공포를 초월했다는 허세를 떨 생각은 없다.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것은 죽음을 대면하는 순간까지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벗어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니까.
하지만 그가 대면하고 있는 것은 죽음이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일 뿐이고, 한 명의 무인일 뿐이다. 승부를 시작하기도 전에, 그저 대치하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느낀다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했다.
이 진득함.
피에 손을 담근 것 같은 진득함이 그의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밀도 높은 액체가 주는 끈적하고 진득한 느낌. 공기가 무겁게 그를 압박하고 짓누른다.
처음 강진호를 보았을 때도 이런 기분을 느꼈다.
사람이 품을 수 없는 기운을 몸에 품고 있는 자.
인간의 몸 안에 악마를 담고 있는 자.
하지만 그때 접한 압박은 지금 마스터가 느끼는 압박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라 할 수 있다.
은연중에 흘러나온 기운에서도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압박을 느꼈다. 그러니 지금 마스터가 받는 압력이야 오죽하겠는가.
강진호가 저리 적의를 드러내고 있는데.
‘어울리지 않는 짓을 했군.’
그간 자신이 전투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실감이 된다.
강진호의 기운이 사람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과거의 마스터였다면 결코 이리 흔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공포.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공포의 근원은 강진호가 내뿜는 저 진득한 살기가 아니었다. 자신보다 강해 보이는 자와 맞상대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린 마스터의 나약한 마음이었다.
두려운 것은 패배인가, 아니면 죽음인가.
“흠…….”
마스터가 검을 들어 강진호를 겨누었다.
“당신이 강하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만만치는…….”
“그 동네에서는 주둥아리로 싸우는 모양이지?”
“…….”
마스터가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이다.
이미 서로 겨루기로 하고 이곳에 섰다. 그런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이건 그저 긴장을 풀려 하는 마스터의 시간 끌기에 불과했다.
‘도망갈 여지조차 주지 않는군.’
퇴로는 봉쇄됐다.
그렇다면?
‘나아갈 수밖에.’
마스터의 몸이 엿가락처럼 쭉 늘어났다. 가공할 속도로 달려든 마스터의 검이 대기를 찢어발기며 강진호의 머리를 갈라온다.
검에 실린 백색의 오러가 마치 형광등처럼 빛을 뿜어낸다.
강진호의 적루가 그런 마스터의 검을 막아선다.
콰아아앙!
폭음이 터졌다.
검과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아니다.
하지만 그 위력과는 별개로 강진호의 적루는 확실하게 마스터의 검을 막아냈다.
하지만 진짜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마스터의 왼손에 들린 지팡이가 맞부딪친 검 위에 덧대어진다. 힘을 실어 내려친 게 아니다. 그저 가져다 댄 것에 불과했다.
그 의아한 행동에 강진호가 막 반응하려는 찰나.
“끅!”
파지지직!
마스터의 입에서 흘러나온 짧은 주문과 함께 적루를 타고 가공할 기운이 강진호의 몸으로 밀려 들어왔다.
‘뇌기?’
고압 전류가 몸 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느낌이다.
과거, 뇌공의 고수들과 겨룰 때 느낀 그 끔찍한 통증. 천하의 강진호조차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다.
팟!
바닥을 박찬 강진호가 뒤로 물러선다. 선기를 잡은 마스터가 너무도 쉽게 거리를 벌려주었다.
하지만 이건 마스터가 원하던 바였다.
지팡이가 다시 휘둘러진다.
허공에 십여 개의 빛의 화살이 만들어진다 싶더니, 말 그대로 빛과 같은 속도로 강진호를 향해 내리꽂힌다.
강진호의 눈이 살짝 커졌다.
검기가 아니다. 장공도 아니다.
저건 말 그대로 기운의 덩어리였다.
그 기운의 덩어리들이 광속으로 강진호의 육체를 향해 파고들었다.
까가가강!
적루와 청루가 날아드는 빛덩어리들을 쳐낸다.
그 형상이야 빛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기운. 기운을 품고 있는 것이라면 쳐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 순간이었다.
“타올라라!”
강진호의 주변이 순식간에 거대한 화마로 뒤덮인다.
거대한 화염이 타들어 가는 소리는 펌프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와 비슷했다.
맹렬한 화염이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며 땅을 녹여내고 있었다.
“저…….”
이현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게 대체…….”
위긴스 역시 긴장한 얼굴로 이현수의 말을 받았다.
“마검사의 전투 방식은 일반적인 무인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법이지.”
마검사는 두 가지 무학을 동시에 사용한다.
그에 따른 효용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점은 단언하건대 거리였다.
모든 무인은 자신만의 거리를 가진다.
비슷한 수준의 검을 쓰는 이와 창을 쓰는 이가 맞부딪치면 승부는 거리에서 결정 난다.
창이 우위를 점하는 거리를 피해 검이 파고들 수 있다면 검을 쓰는 이가 승리하고, 그 거리를 내주지 않는다면 창을 쓰는 이가 일방적으로 검을 도륙할 수 있다.
모든 병기는 최적의 힘을 낼 수 있는 거리가 존재하는 법이다.
하지만 마검사는 그 거리에서 자유롭다.
가까이 붙는다면 검을 주로 사용하며 마법을 응용한다. 거리가 벌어진다면 마법을 통해 일방적인 포격을 가할 수 있다.
전쟁으로 친다면, 기병 단일 병종으로 이루어진 군대가 창병과 궁병, 보병과 기병이 조합되어 있는 부대를 상대하는 것과 동일했다.
전투사에서 어느 쪽이 더 효율이 높은 부대였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단일 병종은 반드시 그 한계를 드러내는 법이니까.
‘일인군단이라는 건가?’
마검사는 홀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
어떤 마법과 어떤 검을 익혔는가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모든 것을 익혔다고 가정한다면, 근거리와 원거리를 모두 커버하고 지원과 치료마저 해낸다.
이건 동양의 무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상대하기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닌데?’
근거리와 원거리를 모두 커버하고, 지원에 회복까지 해낸다. 게다가 마법의 타입에 따라 강과 유를 동시에 겸비할 수 있다.
“……그거 무결점이라는 소리 아닙니까?”
“그렇지.”
위긴스가 조소를 머금었다.
“검과 마법을 동시에 쓰는 게 단순히 폼이 나서 그 많은 이들이 마검사가 되려 했던 게 아닐세. 그만큼 완성된 마검사는 무시무시한 존재지.”
이현수는 단번에 납득했다.
만약 이현수가 마검사와 맞붙는다면 어떻게 될까?
‘답이 안 나온다.’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공략 방법을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승부라는 것은 결국 나의 강점으로 적의 약점을 공략하는 것이다. 자신의 거리를 확보해 상대의 공격을 흘려내고, 나의 공격을 적중시키는 것이 전투다.
하지만 마검사는 약점이 없다.
모든 거리에서 자신의 힘을 내보일 수 있고, 어떤 공격에도 대비가 가능하다.
완전무결이라는 말이 이토록 잘 어울릴 수가 없다.
“그럼 어떻게 공략해야 합니까?”
“딱히 없어.”
“예?”
위긴스가 어깨를 으쓱한다.
“네 문제 중 하나지. 세상 모든 것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 때로는 답이 없는 문제도 있는 법이지.”
“…….”
“그리고 답이 없는 문제라고 해서 꼭 해결할 수 없는 건 아니야. 꼬인 매듭을 푸는 방법이 없다면, 잘라 버리면 그만이거든.”
이현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잘라 버린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위긴스가 미묘한 시선으로 화염을 바라보았다.
“내가 어떤 방법을 고안해 내든 그건 로드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지. 저분은 원래 답을 찾는 분이 아니거든.”
파아앗!
그 순간, 불타오르던 화염덩어리가 반으로 갈라졌다.
지독한 화염.
그 기세가 너무도 거칠어 닿는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것 같은 화염 속에서도 강진호는 태연한 신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화염을 갈라 버린 그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온다.
털끝 하나, 옷자락 하나 상하지 않은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재미있는 짓을 하는군.”
그 광경을 보며 마스터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먹힐 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만…….’
이런 공격으로 강진호를 잡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그을린 흔적이라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일반적인 화염이 아니다.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건물이라도 불과 십여 초면 원래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녹여 버릴 고열의 화염이다.
그런데 얼굴빛조차 달아오르지 않다니.
“마법이라는 건가?”
강진호가 적루를 살짝 내밀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위긴스를 통해 조금 경험해 볼 걸 그랬군. 확실히 내가 알던 것과는 달라.”
강진호는 위긴스와 검을 나누어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이런 마법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위긴스가 마법을 쓰는 광경은 여러 번 보았지만, 위긴스의 마법은 대부분 지원 계열이었다.
이런 공격적인 마법의 활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진즉에 위긴스와 검을 나누어보았을 것이다.
“뭐, 상관없겠지. 이제 알아가면 되니까.”
강진호가 청루와 적루를 늘어뜨린 채 천천히 마스터를 향해 걸어갔다.
아무것도 아닌 발걸음이다.
하지만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이어지자 마스터의 몸이 움찔거리며 서서히 굽어지기 시작했다.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보보마다 마기를 담아 상대를 위압한다.
그 어마어마한 압력에 마스터의 몸이 버텨내지 못하고 뒤틀린다.
‘이건 대체 무슨!’
입을 열 수가 없다. 입을 열면 목구멍을 통해 내장이 튀어나올 것 같다. 거대한 거인이 그의 육체를 움켜잡고 쥐어짜는 것 같았다.
“흐아아아압!”
마스터가 거대한 기합성을 내뿜으며 몸을 쭈욱 폈다. 심장이 마나를 펌프질해 전신으로 내보낸다.
치켜올려진 지팡이의 끝에서 선명한 백색의 뇌전이 피어났다. 십여 줄기의 뇌전이 눈 깜짝할 새 강진호를 향해 날아간다.
하지만 강진호는 되레 그 뇌전을 향해 달려들었다.
앞으로 쭉 뻗은 적루가 뇌전을 모조리 받아낸다. 갈 곳을 잃은 뇌전이 미친 듯이 적루를 타고 돌며 방전을 일으켰다.
“흡!”
가벼운 기합과 함께 적루를 떨쳐 낸다. 날아든 뇌전을 모조리 뒤틀어 버린 강진호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마스터를 향해 돌진했다.
마스터의 검과 지팡이가 가슴 앞에 모인다.
그러고는 강진호를 향해 쭉 뻗어졌다.
“익스플로전!”
폭발.
폭염이 아닌 폭발이다.
수면 위에 돌을 던진 것 같은 파문이 공기 중에 일어난다. 파문과 함께 충격파가 강진호의 몸을 그대로 덮쳤다.
달려들던 강진호의 몸이 뒤로 살짝 밀려난다.
하지만 그뿐.
밀려난 것은 반동을 주기 위해서였다는 듯 강진호의 몸이 벼락같이 마스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휘둘러진 적루가 마스터의 검과 맞부딪친다.
그러더니…….
콰아아아아아아앙!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마스터의 몸이 쏘아진 포탄처럼 튕겨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