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46
#945.
종언하다 (5)
콰득!
콰드드득!
우드드득!
육체가 부러지는 소리는 아니었다. 튕겨 나간 마스터의 몸과 부딪친 나무들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일시에 부러져 나가는 소리였다.
아름드리 거목이 마치 나뭇가지 부러지듯 단번에 부러져 넘어간다.
수십 그루의 나무를 부러뜨리고 나서야 마스터의 몸이 바닥에 처박혔다.
“으으…….”
마스터가 머리를 흔들며 바닥에 박힌 몸을 밀어 올렸다.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뭐에 맞은 거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제대로 보지 못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머리가 비어버렸다. 강진호가 달려드는 광경에서 끊겨진 기억이 나무에 부딪치는 충격으로 이어진다. 그사이가 완전히 비어버렸다.
너무도 거대한 충격이 기억마저 앗아가 버린 것이다.
‘실드를 치지 못했다면?’
죽었겠지.
일격에 머리가 터져 나갔을 것이다.
“퉤!”
침을 뱉자 부러진 이와 피가 뒤섞여 나왔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통증에 마스터가 몸을 떨었다.
강하다.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하다.
수많은 전투를 치렀다. 그리고 수도 없는 무인을 상대해 보았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단 일격에 마스터의 방어를 무너뜨리고 그에게 이런 심대한 타격을 준 이는 없었다.
‘이건 좀 불공평하군.’
그는 복서로 치자면 아웃복서였다. 그리고 방어에 특화된 타입이다.
물론 공격력을 갖추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상대의 공격을 흘리고 적절한 반격을 하는 쪽에 특화된 타입이었다. 아무리 강한 강펀치라고 해도 몸에 공격이 닿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피하고 흘린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공격은 가드하여 피해를 최소화한다. 그게 마스터의 전법이었다.
그런데 링에 오른 상대가 해머를 들고 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인간의 연약한 두 팔로는 해머를 막아낼 수 없다. 가드를 하면 뼈가 부러지고, 가드를 하지 않으면 몸이 부서진다.
너무도 불공평한 일이다.
지금 마스터가 오른 링이 그러했다.
강진호가 가진 공격력과 그가 가진 공격력의 차이는 너무도 극심하다.
하나도 남김없이 피해야 게임이 된다.
‘핸디가 너무 심한데.’
“쿨럭!”
목을 타고 선지피가 올라왔다. 피를 뱉어낸 마스터가 손에 들린 검과 지팡이를 다시 한 번 점검했다. 의식이 잠시 끊어졌음에도 무기를 놓지 않았다.
이게 아직은 마스터가 무인이라는 확실한 증거인 것 같아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미소가 지어졌다.
“힐.”
지팡이에서 뿜어져 나온 백색의 빛이 마스터의 몸을 파고든다.
“이 나이가 되어서 만난 적이 역대 최악이라…….”
운명의 신은 역시나 잔인하다.
마스터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튕겨 나온 길을 되돌아 걸었다.
“……죽었나요?”
“아니.”
이현수가 불안에 가득한 눈으로 벌목되어 버린 숲을 바라보았다. 불도저가 하루 종일 작업을 해도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광경을 인간이 몸뚱어리로 만들어냈다.
살아 있는 쪽이 더 이상하다.
“그 정도로 죽을 사람이 아니지.”
위긴스가 태연한 것을 보니 아직은 안심을 해도 될 것 같다.
하지만…….
‘이 전투가 끝날 때도 저 사람이 살아 있을 수 있을까?’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다.
방금 그 일격으로 확인했다. 강진호는 마스터를 봐줄 생각이 조금도 없다.
아무리 실제 나이는 강진호가 더 많을 수도 있다지만, 노인으로 보이는 마스터를 강진호가 일격에 날려 버리는 모습을 보니 입에서 절로 ‘인성’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저건 노인 학대 아닌가.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말려?”
“예. 여기서 마스터가 죽기라도 하면…….”
그럼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원탁의 마스터가 이국을 방문했다가 거기서 죽는다? 그것도 사고로 죽는 것도 아니고, 그 국가의 수장의 손에 살해당한다?
‘전쟁이지.’
같은 경우를 총회가 당했다면?
물론 강진호가 살해당하는 상황이 도무지 그려지지 않기는 하지만,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눈을 까뒤집고 그 나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쓸어버리겠다고 날뛸 인간들이 눈에 선하다.
물론 총회에서 강진호가 가지는 위상과 원탁에서 마스터가 가지는 위상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테니, 총회만큼 발악을 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총회가 날뛰는 것의 십분의 일만 설쳐 댄다고 해도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수준으로 갈 것이다.
“전쟁은 막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흐음.”
위긴스도 이곳에서 마스터가 죽었을 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할 수 있었다.
우선 이현수가 생각하는 사태까지는 가지 않을 확률이 높다.
원탁은 감정이 없는 곳이다.
수장이 살해당한다는 것은 치욕스럽고 분노할 만한 일이지만, 치욕과 분노라는 감정은 원탁에서 배제된다. 오로지 철저한 이성으로 득실 관계만을 고려할 확률이 높았다.
물론 한국의 총회는 원탁의 동맹에서 완전히 배제되겠지만, 극단적으로 전쟁이 일어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이 머나먼 타국에서 전쟁을 벌인다는 건 원탁에도 과중한 부담이고, 뇌관이 합쳐진 폭탄이나 다름없는 동아시아를 터뜨리는 도화선이 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그럼에도 피해야 할 일이지.’
완벽한 고립만은 피해야 한다.
총회가 원탁마저 적대 세력으로 돌려 버리게 된다면, 이 세상에 총회의 손을 들어줄 곳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외교적 고립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이들은 잘 모른다.
오직 세계를 관조해 온 위긴스만이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 상황만은 피해야 한다. 피해야 하는데…….
“그런데 무슨 수로 말리지?”
“…….”
이현수와 위긴스가 조금은 떨떠름한 시선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강진호는 꽤나 여유로워 보인다.
적루와 청루를 늘어트린 채 마스터를 기다리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적의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강진호를 봐온 두 사람은 저 모습이 강진호가 제대로 흥이 났을 때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끼어드셔서…….”
“끼어들어?”
“그래도…….”
“나를 죽이고 싶으면 차라리 내 차에 독을 타라. 그게 곱게 죽겠네.”
“…….”
이현수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전투에 취해 있는 강진호에게 접근하는 것은 아무리 위긴스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었다. 목숨을 담보로 하지 않는다면 감히 시도도 해볼 수 없다.
“로드께서도 그리 생각이 없으신 분은 아니시지.”
“네?”
“…….”
위긴스는 말없이 앞을 바라보았다.
그냥 대책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 두 사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로 만들어진 숲길에서 마스터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멀쩡한 것 같은데요?”
“마검사는 그저 공격만 강한 게 아니지. 보통은 마법사의 화려함에 시선을 빼앗기기 마련이지만, 마법사의 방어력 역시 무시할 게 아니거든.”
“저는 제대로 된 마법사는 이번에 처음 보는데요?”
“…….”
위긴스는 제대로 된 마법사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뭔가 울컥하긴 한데, 또 틀린 말은 아니라 입을 열지 못하는 위긴스였다.
“그럼 상대가 된다는 뜻인가요?”
“상대야 되겠지.”
위긴스는 조금 전부터 이 대화에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마스터가 이리 무시당할 분이 아니신데.’
원탁을 대표하는 무인이다.
지금이야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하지만, 과거의 마스터는 원탁의 휘광을 등에 업은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존재가 원탁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는 쪽이 올바르다.
그만한 무인이다.
하지만 조금 전부터 이현수는 일방적으로 마스터를 걱정하고 있었다.
자신의 상관과 적이 맞부딪치는데 적을 걱정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군.’
안 그러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마스터 쪽에서 전투를 바라보게 된다. 살짝 응원하는 마음마저 생겨나고 있었다.
원탁에 대한 죄책감과 마스터에 대한 정이 남아서?
아니다.
스포츠를 볼 때 일방적으로 당하는 쪽에게 눈이 가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절대적인 전력 차로 찍어 누르는 것을 선호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기를 바라는 이들도 있다.
그것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이 전투에 있어서만큼은 마스터의 분전을 기도하게 된다.
이건 순전히 강진호가 너무 무식하게 강한 탓이었다.
‘잣대가 생기니 새삼 깨닫게 되는군.’
강진호는 강하다.
그것도 너무 과도하게 강했다.
한국이라는 땅에서 강진호의 존재는 이레귤러와 같다. 한국 무인계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이제는 그 전력이 타국에서 무시할 수 없는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단기간에 이리 무위를 끌어 올린 국가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강진호가 강해지는 속도가 총회가 강해지는 속도보다 더 빠르다는 점이다.
그들도 강해졌다.
바토르는 마공을 받아들여 과거보다 몇 배는 강해졌다. 그리고 위긴스 역시 새로운 경지에 눈을 뜨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강진호와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졌나?
아니.
바토르와 강진호의 차이는 처음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벌어졌다.
비상식적인 속도로 강해지고 있는 바토르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 바토르의 발전 속도를 느려 보이게 만들고 있다. 스스로 치고 나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주변인들이 멈춰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스터 역시 그 희생양이었다.
지금의 위긴스와 마스터가 붙는다면?
위긴스는 절대로 마스터를 이길 수 없다. 비슷한 무학을 가진 그들이니만큼 타 무학이 맞부딪칠 때 생기는 변수조차 만들어지지 않는다.
백 번을 붙어서 두어 번의 승리를 노릴 수 있는 정도의 차이.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운 차이였다.
하지만 그런 마스터가 강진호를 상대하면?
‘백 번에 한 번이 가능할까?’
위긴스와 마스터의 차이보다 마스터와 강진호의 차이가 더 크다. 그리고 아마 지금쯤이면 마스터도 그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위긴스가 주목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럼 마스터는 어찌 나올 것인가.
자신의 능력으로 이길 수 없는 절대의 대적을 저 노회한 무인은 어찌 상대할 것인가.
터덜터덜 걸어 나온 마스터가 가만히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말라붙은 핏줄기가 둘 중 누가 승기를 잡고 있는지를 너무도 극명하게 보여준다.
“간만에 맛보는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스터는 이 정도의 상처는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였다. 그리고 강진호는 그 태도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무인이면 그래야 한다.
심지어 오장육부가 모두 타들어 가더라도 적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사과하지.”
강진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서양의 무인이라 해서 조금은 얕본 감이 있었다. 하지만 내 착각이었군.”
마스터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못 말리겠군.’
저 담백한 칭찬이 진심에서 나왔다는 것을 느낀 순간, 그의 가슴을 채운 감정은 어이없게도 기쁨이었다.
생사의 대적에게 인정받았다는 것.
그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이에게 인정받았다는 것.
그 사실이 마스터를 조금은 격동하게 만들었다.
“칭찬은 감사하지만…….”
그 마음을 숨기며 마스터가 검을 들어 올렸다.
“저는 아직 보여 드린 게 없습니다.”
강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지금부터 보여주면 되겠군.”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돌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