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55
#954.
협의하다 (4)
원탁을 바꾼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위긴스, 사상에 대한 논쟁을 할 때가 아니네.”
“사상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위긴스가 가볍게 웃었다.
“마스터, 제 말을 들으시면 납득하실 겁니다.”
마스터의 눈도 의문으로 물들었다.
“마스터, 지금 마스터께서 제안하시는 것들은 원탁과 모두가 최선의 이득을 볼 수 있는 방향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네.”
“그럼 원탁이 그 방향으로 가지 못한다면 원탁은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역으로 찔러 들어온다.
마스터에게는 이 논리에 반박할 방법이 없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마스터.”
위긴스가 가만히 마스터를 보며 말한다.
“제가 이곳에서 하나 느낀 것이 있다면, 결국 평화라는 것은 힘이 있어야 이룰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최적의 효율 역시 힘을 가진 이가 동반되어야 하는 법이죠.”
“으음.”
마스터가 침음을 흘렸다.
이건 원탁의 논리에 반하는 일이다. 하지만 원탁의 논리를 벗어나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원탁은 완전한 평등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그 평등을 바탕으로 정한 결정을 시행함에 있어서는 힘을 이용하는 곳이다.
그 미묘한 모순이 지금 마스터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마스터, 회주님께서는 마스터의 안전을 보장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냉정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원탁은 마스터가 생각하시는 원탁이 아닙니다. 그리고……. 마스터가 물러나시고 나이트 르보가 원탁을 장악하게 된다면 더욱 원탁은 그 빛을 잃게 될 겁니다.”
“원탁을 무시하지 말게.”
“하지만 마스터가 하시는 말씀 역시 모순이 가득하지 않습니까?”
“……모순?”
“예.”
위긴스가 살짝 심호흡을 했다.
“마스터께서는 원탁의 시스템을 믿는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나이트 르보가 원탁의 마스터가 되는 것을 무척이나 경계하고 계시죠.”
“…….”
“원탁의 시스템이 인간을 완전히 제어할 수 있다면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마스터께서는 이미 원탁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계시잖습니까. 원탁은 그저 불완전한 시스템을 바탕으로 소속된 이들을 압박할 뿐입니다.”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건가?”
“가서 시도해 보십시오. 마스터께서 원하시는 방향대로 과연 원탁이 굴러갈지 말입니다.”
“…….”
“그리고 그 확정된 답변을 받아오실 수 있다면 회주님께서는 마스터의 제안을 받아들이실 겁니다. 회주님, 그렇지 않습니까?”
강진호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위긴스가 슬쩍 강진호의 소매를 잡아 당겼다.
“마스터, 잠시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으음.”
위긴스와 강진호가 방을 벗어나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 위긴스가 손을 휘저어 그들 주변에 실드를 쳤다. 말이 새어나가는 것을 완전히 차단한다.
“로드,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영 탐탁지 않은데.”
“이런 조건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건 대 바겐세일입니다.”
“……음.”
평소 쓰지 않는 용어까지 써가며 열변을 토하는 위긴스였지만, 강진호의 표정은 여전히 뚱했다.
“받지 않으시려는 이유가 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공격을 할 수 없다는 조건을 받을 이유가 없어.”
강진호가 고개를 내젓는다.
“행동을 제약받는다는 건 반드시 문제가 된다. 지금이야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훗날에는 문제가 될 거야.”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다만.”
위긴스가 빙그레 웃었다.
“그 부분은 해결하면 로드께서는 이 조건을 받으시겠습니까?”
“그게 해결되면 굳이 받지 않을 이유가 없지.”
마스터가 건 조건은 그 하나다.
그 외에는 모조리 퍼주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조건이 사라진다면 굳이 우리를 지원할 이유가 있나?”
“그건 제가 맡겠습니다.”
“음.”
“어렵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이건 저들의 근본적인 문제니까요.”
“문제?”
“예, 로드. 저들은 이익집단이 아닙니다. 적어도 겉으로는 평화 유지군을 흉내 내고 있죠. 이건 세금 지원 사업 같은 겁니다. 받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받으려 하죠.”
“…….”
“그 심사를 통과하는 게 어려울 뿐입니다. 그 조건은 반드시 제거하겠습니다. 그러니 이 협상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흐음.”
강진호가 위긴스를 가만히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아무래도 마스터를 상대하는 일은 그보다는 위긴스가 나을 것이다. 원탁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 테니까.
“감사합니다, 로드. 그럼 들어가시죠.”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위긴스와 함께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을 기다리던 마스터의 얼굴은 처음처럼 편해 보이지 않았다. 목숨의 위협에는 딱히 고민하지 않던 마스터였지만, 위긴스의 진단이 그를 고뇌하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위긴스는 조금 전처럼 강진호의 뒤편에 서는 게 아니라, 강진호의 옆에 와 앉았다. 이제는 적극적으로 이 협상에 개입하겠다는 뜻이었다.
“마스터.”
“말하게, 위긴스.”
“마스터께서 동아시아를 지원하시려는 이유는 그게 세계를 위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일맥상통하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지원을 받겠습니다. 하지만 이쪽에서도 조건을 걸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건?”
일방적인 지원을 해주기로 했다.
그런데 조건?
마스터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조건 말인가?”
“만약 마스터께서 원탁으로 돌아가셔서 이 협정의 승인을 받아낸다면 총회는 마스터의 제안을 수용하겠습니다.”
“으음.”
“하지만 만약 승인을 얻어내지 못할 시에는…….”
위긴스가 미소를 지었다.
“타국을 침공한다는 조건을 제외해 주십시오.”
마스터가 멍하니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원탁에서 승인이 나지 않았다는 것은 모든 게 끝이라는 말이네. 그런데 거기에서 그 조건 하나를 뺀다고 뭐가 달라지는가?”
“그러니 마스터께서는 받지 않으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도대체…….”
마스터가 입가를 주물렀다.
과거의 위긴스는 그의 손바닥 안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 능력은 인정하지만 그의 모든 선택과 행위가 마스터가 생각하는 범주를 넘어서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위긴스는 분명 마스터의 생각 이상의 뭔가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게 옳은 방향이든 그저 객기에 불과하든 예전의 위긴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내가 그걸 받아들인다면 뭐가 달라지는 건가?”
“마스터께서 그 조건을 제외하고도 총회를 지원하기 위한 최선을 다해 주신다는 약속 하나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게 저희의 조건입니다.”
“……거 참.”
마스터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받아들이지.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자네의 생각을 알 수가 없구만.”
“마스터.”
위긴스가 미소를 지었다.
“저는 모두에게 좋은 최선의 방향으로 나아가려 할 뿐입니다.”
“원탁에도 좋은 방향이라는 건가?”
“확신합니다.”
마스터가 피식 웃었다.
“한국에서 불과 몇 달을 있었을 뿐이건만, 사기꾼이 다 되었구만. 팔을 잃더니 너무 커 버렸어.”
“저는 여전히 원탁에 있던 그 위긴스입니다. 다만…….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게 된 것뿐입니다.”
“뭔가 당한 것 같군.”
마스터가 고개를 휘휘 젓더니 강진호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회주님, 제안하신 조건은 모두 수용하겠습니다. 그러니 회주님께서도 말씀을 지켜주십시오.”
“음.”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일단 결정이 되었다면 나는 말을 번복하지 않아.”
“그럼 이걸로…….”
“기다려.”
강진호가 마스터의 말을 끊었다.
“그 전에 하나 확실하게 해두지. 너는 거래라는 것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고 했다. 그렇지?”
“예. 그랬습니다.”
“하지만 나는 너를 신뢰하지 않아.”
강진호가 차가운 눈으로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너뿐만이 아니야. 나는 아무도 신뢰하지 않아. 내가 하는 거래는 신뢰 따위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 내 원칙은 하나야. 거래를 어기는 자에게는 그만한 대가를.”
“…….”
“네가 이 거래를 어겼을 시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보는 게 좋을 거야. 네가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테니까.”
마스터의 얼굴이 살짝 질렸다.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수많은 이들을 상대해 본 마스터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남자는 이런 일에 꽤나 능숙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거래는 여기까지다.”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는 길이 즐겁길 바라지.”
그 말을 남긴 강진호가 위긴스와 눈빛을 교환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문을 열고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마스터와 위긴스가 가만히 지켜보았다.
“……정말.”
강진호의 기운이 멀어지자 마스터가 깊은 한숨을 내쉰다.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군.”
“그래서 항상 골치가 아픕니다.”
마스터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강진호가 나간 문을 응시했다.
‘그저 강하기만 한 게 아니다.’
저자에게서는 조직을 이끌어 본 이의 냄새가 난다. 일반적으로 저런 압도적인 힘을 가진 무인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향취다. 그리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사건의 핵심을 꿰뚫어보는 눈도 있었다.
“네가 왜 한국을 택했는지 알겠구나.”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지만 알고 있겠지?”
“……무슨 말씀이신지.”
마스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극단으로 흐르는 자는 언젠가는 진정한 극단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지금까지는 저 성격과 배짱이 먹혀서 총회가 급성장할 수 있었겠지만…….”
마스터가 슬쩍 위긴스를 돌아보며 말한다.
“그 대가로 적을 수도 없이 만들기 마련이지. 스스로 만들어낸 힘이 스스로 만들어낸 적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총회는 순식간에 붕괴한다.”
위긴스가 볼을 긁었다.
이건 맞는 말이었다.
위긴스가 이곳에 없었다면 원탁과의 협상은 결렬되었을 것이고, 그럼 총회는 사방에 적을 둔 채 고립되었을 것이다. 그건 최악의 결과다.
“그러지 않기 위해 제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네 의견이 통하는 사람이더냐?”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리 통하지는 않습니다만…….”
위긴스가 뚱한 표정으로 마스터와 시선을 맞춘다.
“마스터보다는 잘 통합니다.”
“음? 내가? 나만큼 열린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보통 꼰대들은 다 그렇게 말을 하죠.”
“…….”
위긴스가 피식 웃었다.
“그런 위험은 항상 고려하고 있습니다. 고립은 절대 좋은 건 아니니까요.”
“네 부담이 과할 텐데?”
“아니요. 마스터, 사실 부담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째서?”
위긴스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정확하게는 문을 열고 나가버린 강진호의 흔적으로 향한다.
“아무리 많은 적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저분이 질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저분의 적이 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
그 굳고 단단한 믿음을 느낀 마스터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부럽군.’
이 짧은 시간 만에 위긴스를 완전하게 사로잡아 버린 남자다.
‘조금은 믿어도 될지 모르겠군.’
마스터도 한동안 강진호가 나간 곳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