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57
#956.
진출하다 (1)
문제는 심각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별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무인인 강진호에게 있어서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였다.
‘입마는 아니다.’
확실하게 점검을 해보았지만, 어디에도 입마의 요소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입마에서 탈출한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입마에 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입마라는 것은 발전과 동반하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강진호는 최근 입마에 들 정도로 급진적인 발전을 경험한 적이 없다. 점차 나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는 상정 범위 안이다.
그럼 입마는 아니라는 건데.
그럼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가.
“뭐 좋은 일 있어?”
봐라.
강은영이 날카롭게 강진호를 찔러 들어온다.
“응? 왜? 뭐?”
“아니, 뭔 로또라도 맞은 사람처럼 자꾸 실실 쪼개고 다니길래. 오빠가 돈 생겼다고 좋아할 리는 없고.”
“아무 일도 없는데.”
“그런데 왜 그렇게 웃냐고?”
“내가?”
“……이 사람이 지금 장난하나. 여기 오빠 말고 누가 또 있어?”
물론 없다.
“수상해.”
강진호의 이마에 살짝 땀이 배어났다.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무학이란 결국 몸을 움직여서 상대를 쓰러뜨리는 행위다. 그리고 그 행위를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육체를 얼마나 완벽하게 다스리고 제어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강진호는 고수였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고수.
강진호 정도 경지에 오른 무인은……. 아니, 그 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무인이어도 자신의 육체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
강진호 정도 경지가 되면 몸의 털 한 가닥도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모든 육체가 완벽하게 통제되고 그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실룩.
“어! 또! 또 봐!”
“뭐, 뭘!”
“자꾸 썩소 짓잖아! 뭐야! 무슨 일이야! 바른 대로 불어!”
“……아니라니까.”
“수상해, 수상해! 수상하다! 이 남자!”
강진호가 강은영의 시선을 살짝 피했다. 자꾸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는 이상 저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도리가 없다.
“쓸데없는 소리 한다. 너는 요즘 왜 자꾸 집에만 붙어 있냐?”
“……오빠.”
강은영의 목소리가 침울해졌다.
“응?”
갑자기 급변한 분위기에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워낙 감정이 널뛰는 강은영이라고는 하지만, 이만한 급변은 드문 일이다.
“나 소속사 옮길까?”
“왜?”
“얘들이 이제 나를 신경을 안 써주는 것 같아.”
“……응?”
“신곡 준비하는 중인데, 뭐가 잘 안 돼. 제대로 곡도 안 받아오고 저번 안무 팀이랑은 재계약도 안 됐어.”
“음?”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면 강은영의 소속사에는 강은영이 황정후 회장의 후원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으니까. 그들이 강은영을 천대할 리는 없다.
“무슨 일인데?”
“나도 잘 모르겠는데, 영 분위기가 안 좋아. 재계약 안 하는 애들도 있는 것 같고, 매니저들도 짤려 나가고……. 저번에 보니까 있던 밴도 팔았더라고. 가만 보고 있으면…….”
“접는 거 아냐?”
“그지? 딱 그런 분위기지?”
강진호가 입가로 손을 가져갔다.
‘접는다고?’
좋게 말하면 접는다. 나쁘게 말하면 망한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볼 때, 강은영의 회사가 망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전 회사가 망하고……. 아니, 강진호가 강은영의 이전 소속사를 폭파시켜 버린 뒤, 최대한 좋은 소속사를 알아봤다.
그런데 그리 잘 나가던 소속사가 갑자기 왜 망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지금 들은 내용이 사실이라면 뭔가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언제부터 그랬어?”
“한참 됐어.”
“근데 왜 말 안 했어?”
“……오빠 바쁜데, 괜히 나까지 징징대면 안 되잖아.”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강은영.”
“네.”
“세상일에는 우선순위라는 게 있다. 내가 밖에서 아무리 바쁜 척해도 가족보다 우선인 건 없어.”
“……응.”
“알았어. 내가 한 번 알아볼게.”
“미안해, 오빠.”
“근데…….”
“응?”
강진호의 시선이 살짝 아래로 내려간다. 티셔츠 아래로 불룩하게 뭔가가 튀어나와 있다.
아이돌이라고 하기에는 미묘한 똥배.
“진짜 천대하는 것 맞냐? 천대받을 짓을 하는 건 아니고?”
“이거 금방 빼거든! 이거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사라지거든?”
“그 말만 몇 달은 들은 것 같은데.”
“닥쳐!”
“……간다.”
강진호가 고개를 내젓고는 집을 나섰다. 밖으로 나가는 내내 등 뒤에서 저주를 퍼붓는 강은영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숨을 내쉰 강진호가 붕붕이에 올랐다. 차를 몰고 나가면서 최연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그렇게 안 부르기로 했잖습니까.”
[반응이 재밌어서요.]보통 저런 말을 대놓고 하나?
가만 보면 최연하는 강진호가 저지른 죄악의 집약체 같았다. 그가 저지른 모든 악업이 최연하라는 모습으로 나타나 강진호를 괴롭히는 것 같다.
[무슨 일이에요. 데이트 하려고? 나 아직 안 씻었는데?]“출근 중입니다.”
[에이, 아쉽다. 그런데 왜요? 천하의 강진 호씨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런 아침부터 전화를 하지는 않았을 거고, 아무리 이전 같은 어정쩡한 관계는 벗어나기로 했다지만, 사람이 그리 급격하게 휙휙 바뀔 것 같지는 않은데요?]“……물어볼 게 있어서.”
[거봐, 내 그럴 줄 알았다. 앓느니 죽지.]최연하의 목소리가 살짝 싸늘해졌다. 그 미묘한 목소리의 변화를 느낀 강진호가 허리를 곧추세웠다.
이럴 때는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니면 출근하는 내내 잔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다른 게 아니라. 은영이 회사가 좀 이상하다는데.”
[세아 씨?]“예.”
[세아 씨. 소속사면 코드잖아요.]그런 이름이었던가? 익숙한 걸 보면 맞는 모양이다.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아요.”
[흐음. 코드, 코드…….]뭔가 생각하는 듯하던 최연하가 이내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내가 한국 뜨기 전에 코드 쪽 소문이 좀 안 좋게 돌았거든요?]“소문?”
[네. 소문이요. 그런데 이 바닥이 워낙 뜬소문이 많잖아요. 반은 사실이고 반은 거짓인데, 사실이나 거짓이나 좀 극적인 면이 많아서 액면 그대로는 못 믿어요. 다른 소속사들도 안 좋은 소문이야 한둘씩은 다 가지고 있는 거라.]“아아.”
[아직 복귀한 지 얼마 안 돼서, 지금 상태가 어떤지는 모르겠네요. 세아 씨는 뭐래요?]강진호가 강은영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최연하가 한숨을 내쉰다.
[밴을 팔았다구요?]“그렇다는 것 같습니다.”
[그럼 자금이 안 도는 것 같은데, 소속사에 망조가 들었다는 가장 큰 신호 중에 하나가 차나 건물 정리하는 거예요. 그건 배우나 연예인 돌리려면 필수적으로 필요한 건데, 기둥뿌리 뽑아먹는다는 뜻이니까요.]“으음.”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한 모양이다.
“알아볼 수 있겠어요?”
[뭐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내가 제대로 조사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나만 믿지 말고 다른 방향으로도 한 번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조 실장님, 거기 이사로 있지 않았어요?]예전에는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강은영이 자리가 잡히면서 조규민도 재경으로 복귀했다.
“워낙 맡고 있는 게 많은 분이라.”
[조 실장님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향으로 한 번 알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도 확인해 볼게요.]“네. 부탁합니다.”
강진호가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이었다.
“네?”
[그게 다냐구요.]강진호가 움찔한다.
뭘 해야 하지? 뭘 놓쳤지?
“다, 다른 할 말이라도?”
[흐으으응.]건너편에서 콧소리가 흘러나온다.
요즘 강진호는 저 콧소리만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는 버릇이 생겼다.
이게 무슨 파블로프의 개도 아니고.
[아니에요. 그럼 오늘 열심히 일해요! 나도 빨리 알아볼 테니까.]“네. 그럼.”
강진호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다.
최연하는 모른다.
최연하 역시 강진호가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강진호가 얼마나 평범하지 않은지는 감을 잡지 못했다. 이건 일반인은 알 수 없는 개념이니까.
그래서 전화를 끊을 때, 혼자 중얼거린 ‘개조하는데 한참 걸리겠네’라는 말을 강진호가 모두 들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뭘 개조한다는 거지?’
불길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강진호는 애써 머릿속에 떠도는 말을 지우며 액셀을 밟았다. 창문을 내리자 시원한 바람이 붕붕이 안으로 치고 들어왔다.
“좋은 아침.”
강진호가 손을 들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큽, 좋은 아침요.”
“어머! 회주님! 축하드려요!”
“…….”
반응이 뭔가 이상하다.
그를 보는 이들의 눈이 기묘한 호선을 그리고 있다. 뭔가 반대쪽으로 휘었다면 적대적인 느낌이겠지만, 저 호선의 방향은 부드러움의 표시다.
그런데…….
‘뭐지? 이 껄끄러움은?’
웃음을 주고받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인간은 그렇게 감정으로 서로 교류하지 않는가.
그런데 저 웃음이 강진호의 속을 살살 건드리고 있었다.
저 웃음은 단순히 호의의 표시라기보다는…….
“회주님! 어서 오십시오!”
“좋은 아침입니다!”
“음, 좋은 아침.”
조금 예민했나?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 거리고 앞으로 걸었다. 하지만 슬쩍 고개를 돌린 순간 그의 눈에 구석에서 소근대는 이들의 모습이 들어온다.
“…….”
이건 확정이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강진호가 최단 거리로 회주실로 향했다. 만약 누군가 무슨 짓을 했다면 지금쯤 회주실이…….
최상층으로 올라온 강진호의 몸이 멈췄다. 그의 눈에 반쯤 열린 회주실의 문이 보인다.
그가 없는데 회주실의 문이 열려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지금 저 안에 누군가 있다는 건데.
기감을 높이자 여러 사람의 기색이 잡힌다.
“…….”
강진호가 조금 불안한 눈으로 회주실을 향해 걸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이현수와 방진훈, 바토르 등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아닌가?’
그가 생각하는 일은 아닌 모양이다. 기다리고 있던 이들의 모습이 너무 진지하다. 그리고 만약 일이 벌어졌다면 그 원인이 되어야 할 위긴스는 보이지도 않는다.
‘아닌 모양이네.’
“아침부터 죄송합니다. 급한 안건이 있어서.”
“아니, 괜찮아.”
강진호가 이현수에게 손을 내저어주고는 상석으로 가 앉았다.
“그래. 무슨 일이지?”
“예. 오늘 아침 회의 안건은……. 총회 내에 새로운 지위의 신설에 대한 안건입니다.”
“……응?”
“아무래도 총회가 완벽하게 현대적인 곳은 아니다보니, 저희가 사모님을 어찌 불러야 할지.”
“……누구?”
“사모님입니다.”
“사……. 사 뭐?”
강진호가 움찔해서 몸을 바짝 세웠다.
이게 뭔 소리야.
“네? 위긴스 이사님께서, 사모님이 생겼으니 적당한 지위와 경호를 준비하라고…….”
“크흡!”
결국 바토르가 배를 잡고 몸을 웅크렸다.
방진훈도 입을 가리고 고개를 돌렸다.
“……위긴스.”
“예?”
“위긴스 어디 있어?”
“인천공항에 배웅 나가셨습니다. 마스터를 보내야 하는 게 예의라고.”
으득.
이가 절로 갈렸다.
인천으로 쫓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위긴스를 잡아 족쳐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마아아아존이시여어어어어어어어어!”
저 창문 밖에서 거대한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물론 그 고함 소리의 주인은 장민이었다. 고함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 강진호가 양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죽인다, 위긴스.
반드시 죽일 거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