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61
#960.
진출하다 (5)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나이트 르보의 목소리에 헛웃음이 어린다. 하지만 대놓고 마스터를 경멸할 수 없는 이유는 마스터의 얼굴이 더없이 진지했기 때문이다.
“위긴스가 온다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네.”
“마스터.”
나이트 르보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당신이 위긴스를 과대평가하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지요. 이미 원탁은 내 손안에 들어왔습니다. 당신의 직무가 정지된 덕분에 나는 원탁의 병권마저 손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위긴스가 뭘 할 수 있다는 겁니까? 모르는 새 암살자 수업이라도 받은 모양이군요.”
마스터가 고개를 저었다.
쉴 새 없이 날아오는 비꼼에도 그는 흥분하지 않았다.
“위긴스는 자네를 상대할 수 없겠지.”
“잘 아시는군요.”
“하지만 총회는 자네를 상대할 수 있네.”
“…….”
“내가 경계하는 것은 위긴스가 아니야. 그 위긴스와 함께 올지도 모르는 강진호이지. 그는 인간이 아니야.”
나이트 르보가 미간을 좁혔다.
반박할 말은 수십 가지가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반박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마스터의 말이 옳다면!”
나이트 르보의 눈이 불타올랐다.
“왜 그 말을 제게 해주는 겁니까? 위긴스가 나를 죽이고 원탁을 찬탈한다면, 당신에게는 좋은 결과가 아닙니까? 일말의 의심도, 대비도 하지 못하고 죽는 쪽이 나을 텐데요?”
“그래서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마스터가 끌끌 대며 웃었다.
“자네들은 내게 있어서 다 자식 같다고.”
“…….”
“그리고 설사 내가 자네에게 일말의 정이 없었더라도, 심지어는 증오해 마지않는다고 해도 나의 선택은 달라지지 않았을 걸세. 자네가 원탁을 이어가게 된다면 그건 방향은 다를지 몰라도 원탁이라 부를 수 있는 조직이 되겠지만, 위긴스에게 넘어가는 순간부터는 더 이상 원탁이라 할 수 없을 테니까.”
나이트 르보가 복잡한 심사가 담긴 눈으로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이해할 수가 없다.
그는 도무지 이 사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좋은 시간 되시길.”
이해할 수 없으면 배제해 버리면 된다. 나이트 르보가 몸을 돌려 밖으로 빠져나갔다.
홀로 어두운 뇌옥 안에 남겨진 마스터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꼴좋게 됐구만.”
나이트 르보의 어떤 말에도 그는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총기가 떨어졌어.’
그는 더 이상 과거의 마스터가 아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을 위긴스는 알고 있었다. 상황이 이리 흘러갈 것이라는 것도 모두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런 조건을 내세웠겠지.
나이트 르보조차 그를 뛰어넘었다.
나이트 르보가 자신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리 은밀하게 뒷공작을 성공시켜 자신을 정치적으로 말살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불만을 표하거나 무력으로 전복을 시도할 거라 짐작했을 뿐이다.
하지만 나이트 르보도, 위긴스도 모두 그의 예상을 벗어났다.
나이트 르보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의 모든 것을 무너뜨려 버렸고, 위긴스는 그도 짐작할 수 없던 그의 미래를 예측했다. 그러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사지로 돌려보냈지.’
“끌끌끌끌.”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를 진정으로 감탄하게 한 것은 위긴스의 독심이었다.
일이 조금만 꼬였다거나, 마스터가 반항을 시도했다면 지금쯤 마스터는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닐 것이다. 어설프게 후환을 남기느니 완벽하게 제거해 버리는 쪽이 이득이니까.
하지만 위긴스는 마스터가 탄핵을 받을 거라는 사실을 짐작하면서도 태연하게 그를 배웅했다.
“아주 훌륭하게 성장했구만.”
비꼬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나이트 르보와 위긴스.
그들은 이제 마스터 이상으로 성장했다. 그러니 마스터는 이제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이 뇌옥에서 조용히 죽어가는 것도 그리 나쁜 결말은 아닐 것이다. 그가 해야 할 역할은 이제 끝났으니까.
위긴스의 성장을 기뻐하는 것도, 원탁을 걱정하는 것도 더 이상 그의 역할은 아니었다. 그는 이제 방관자다. 그저 지켜볼 뿐이다. 다음 세대의 싸움을.
“……끝까지 기분 더럽게 하는군.”
지하 감옥에서 나온 나이트 르보는 간수에게 제대로 된 감시를 명했다. 간수는 제 자리에 있는 CCTV를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마스터 선출이 끝나기 전까지 구설수를 만들고 싶지 않은 나이트 르보는 입을 꾹 다물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상황은?”
“마스터의 가옥은 점거했습니다. 그의 친위대도 무장해제를 완료했습니다.”
“영국은?”
“나이트 채드윅은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움직일 수 없겠지.”
나이트 채드윅은 위긴스의 뒤를 이어 영국의 나이트가 된 이다. 마스터가 영국 출신인 만큼 반발이 있다면 그에게서 나올 것이다.
“철저하게 감시해라. 이틀, 이틀이면 된다. 이틀이 지나고 내가 마스터의 자리에 오르고 난 뒤라면, 그도 어쩔 수 없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
“예?”
“경계를 늘려.”
“경계를 말씀이십니까?”
“그래. 본국에서 경계 병력을 충원해라. 그리고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서 한국에서 유럽으로 넘어오는 이들을 감시해.”
“나, 나이트,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 많은 이들을 다 감시한다는 건…….”
“어떤 이들이 입국하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유럽을 대상으로 감시가 불가하다면, 영국에 집중해. 이 빌어먹을 섬나라를 배 타고 들어오지는 않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무리한 일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무리해야 할 때다.
나이트 르보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마스터가 노망이 들었을 확률이 높겠지만…….’
위긴스는 멍청하지 않다.
애송이라고 그를 폄하하기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이트 르보와 비교했을 때다. 보통 사람의 기준으로 보자면 위긴스는 천재라는 말도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런 똑똑한 이가 원탁의 영역인 유럽으로 쳐들어오는 병신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위긴스가 한국에 머물러 있는다면 나이트 르보는 원탁의 힘과 권한을 이용하여 그를 천천히 말려 죽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영국으로 온다면 직접 그의 목을 따주면 된다. 어느 쪽이든 위긴스의 운명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조금 빠르고 늦음이 있을 뿐.
“설마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겠지.”
“예?”
“아니, 아니다.”
나이트 르보가 고개를 저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많다.
* * *
“영국으로 갑니다.”
“…….”
다들 뚱한 눈으로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위긴스는 그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부드러운 웃음으로 받아쳤다.
“절호의 기회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개입할 수 없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영국으로 가야 합니다.”
“……위긴스.”
바토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식이 좀 필요해 보이는데? 요즘 좀 바빴지?”
“저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보통은 다 그렇게 말하더군.”
“정말 정상입니다.”
“음, 보통은 그렇게 받아치지.”
위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오해는 피하고 싶습니다. 저는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으로 말하는 겁니다. 지금이 개입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입니다. 시간을 더 늦추게 되면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이현수가 위긴스의 말을 받았다.
“현재 원탁 내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마스터가 탄핵되고 구금되었다는 겁니까?”
“그렇지.”
“그러니 거기에 개입해서 마스터를 복권시켜야 한다?”
“마스터를 복권시키는가의 문제는 별개지. 중요한 것은 지금의 강경파가 권력을 잡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거다. 문제를 명확히 인식하더군.”
“……아니, 스승님.”
이현수가 슬쩍 고개를 돌려 모두를 바라보았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 모두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위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하지.’
통역을 들은 방진훈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니, 우리가 무슨 지구방위대도 아니고, 지구 반대편 영국에서 권력 싸움이 났는데, 왜 우리가 가서 그걸 해결합니까?”
“필요한 일이네.”
“세상에 필요한 일이 어디 하나둘입니까? 아프리카에 학교 짓는 일도 당장 필요하고 급해요.”
“……정말 필요한 일이라니까.”
“거참, 이 양반 이해를 못하겠네.”
방진훈이 눈을 찌푸린다.
“솔직하게 말해보슈. 고향에 문제가 생기니까 개입하고 싶은 거 아닙니까?”
“방 이사, 말을 좀 삼가줬으면 좋겠는데.”
“그게 뭐 부끄러운 일도 아니잖습니까. 그런다고 이사님 출신이 미국이 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면 다 똑같은 거지.”
위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시선을 강진호에게 고정했다. 어차피 다른 이들을 설득해 봐야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강진호의 의사다.
“로드, 개입해야 합니다.”
“이유는?”
“투자 대비 효율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가 아니라면 저도 원탁에 개입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개입에 있어서 최적의 시기입니다. 마스터가 새로 선출되지 않았기에 움직일 수 있는 병력에 한계가 있고, 대처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지금이라면 소수로 저들을 상대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단 오 일만 지체된다면 저들은 난공불락이 됩니다.”
“이유가 맞지 않아.”
강진호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제대로 된 이유를 말해보지. 우리가 저들에게 개입해서 원탁을 정상화해야 하는 이유는?”
“그게 저희에게 이득이…….”
“위긴스.”
강진호가 다시 위긴스의 말을 끊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천천히 흘러나오는 담배 연기 말고는 방 안의 무엇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 동안 그렇게 위긴스를 바라보던 강진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유는?”
“……로드.”
위긴스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원탁의 힘은 강대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개입할 수 있다면, 저 원탁을 우리 손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세력을 좌지우지한다라……. 딱히 매력적이지 않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도움은 필요 없어.”
강진호가 피식 웃으며 위긴스를 바라본다.
“가진 것을 수습하고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지금 여기서 뭘 도와달라고 해야 하지? 빵이라도 받아 올까?”
“…….”
위긴스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쓸데없는 것 접자고. 있는 그대로 말해보지. 그들과 손을 잡아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이 사태에 개입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지. 너는 분명 알고 있었을 거야. 그런데도 상황을 여기까지 몰아간 이유가 뭐지?”
위긴스가 잠시 침묵했다.
고개를 숙이고 생각을 정리한 위긴스가 고개를 다시 들고 강진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강경파 놈들을 모조리 숙청하고 원탁을 정화하고 싶습니다. 원탁에게도 긍정적인 일이 될 것이고, 총회는 이 기회를 틈타 원탁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강진호가 빙글빙글 웃으며 위긴스를 보았다.
“그 처단하고 싶은 강경파가 누군데?”
“자꾸 이렇게 몰아가시면…….”
“누구?”
“…….”
위긴스가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나이트 르보, 그 재수없는 놈의 얼굴에 칼을 박아주고 싶습니다.”
“다들 들었어?”
바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뭐, 그런 거라면 도와줘야지.”
“크으, 우리 위긴스 이사님. 남자답네.”
“……거, 이득이니 뭐니 하는 말보다는 이해가 쉽습니다.”
위긴스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그런 후, 강진호가 상황을 정리했다.
“영국으로 간다. 준비해.”
세계를 뒤흔들 커다란 변화는 보통 무척이나 사소한 감정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지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