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64
#963.
침투하다 (3)
“어디 간다구요?”
“영국이요.”
“영국?”
최연하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글로벌하시네?”
“일이 조금 생겼어요.”
강진호가 살짝 웃으면서 입술을 긁는다. 소파에 등을 기댄 그의 모습을 보며 최연하가 살짝 크게 숨을 들이켰다.
‘진짜 이상한 남자라니까.’
오래 봐왔다면 오래 봐왔다. 시간으로는 그리 긴 시간이 아니겠지만, 강진호라는 남자는 꽤나 밀도 깊게 그녀의 인생에 파고들었으니까.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속에서도 강진호에 대한 인상은 여러 번 바뀌었다.
‘처음에는 정말 순진해 보였는데…….’
처음 강진호에 대한 인상은 지금 같지 않았다. 그때는 강진호의 성격보다는 외모에 좀 더 주목했으니까. 처음 그녀가 받은 강진호에 대한 인상은 뭐랄까…….
저 잘난 외모를 조금도 활용하지 못하는 바보?
딱히 특이한 일은 아니다. 의외로 외모로 주목받는 남자 연예인들 중에서는 자신의 외모가 연예인급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산 경우가 흔하다.
강진호도 그런 경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강진호를 보면 그때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사람이 여유가 생겼네.’
소파에 등을 기대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여유가 보인다.
그리고 은은한 품격마저 보인다고 할까?
최연하가 눈가를 비볐다.
‘아니, 그냥 콩깍지가 낀 건지도 모르고.’
그럴 확률이 매우 높았다.
사람은 다른 이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 본인의 취향이나 감정이 평가에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지금 최연하의 눈에 보이는 강진호는 보정이 꽤나 들어가 있다고 봐야 한다.
“……미쳤지.”
“네?”
“아뇨, 아니에요.”
최연하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손을 내저었다.
‘나도 참 주책이야.’
강진호가 잘생겨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강진호는 객관적으로도 잘생겼으니까. 하지만 품격이라니.
최연하가 고소를 머금었다.
이제 겨우 서른도 되지 않은 남자에게 품격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리 보이는 걸 뭘 어쩌겠는가.
“얼마나 걸리는데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한 삼 일? 사 일?”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상황에 따라서 좀 더 머무를 수도 있겠지만, 길어야 일주일이겠죠.”
“일주일이라…….”
최연하의 볼이 살짝 부풀었다.
“이번주에 놀러 갈 데가 엄청 많은데.”
“…….”
“뭐, 어쩔 수 없죠. 잘난 남자 친구 둔 게 죄라면 죄니까.”
강진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렇게 웃지 말아요. 엄청 심통 부리고 싶은데 지금 참고 있는 거니까요.”
“……죄송.”
최연하가 낮게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그보다 저번에 알아봐 달라고 하신 거요.”
“아, 네.”
강진호가 자세를 고쳤다.
“코드가 지금 부도 일보 직전이라는 말이 있어요.”
“……네?”
강진호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최연하를 바라보았다.
“망해요?”
“네.”
“코드가요?”
강진호는 코드 엔터테인먼트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그래도 코드가 대한민국에서 네 손가락 안에 드는 기획사라는 건 알고 있었다.
“나름 대기업이라 들었는데?”
“대기업이야 대기업이죠. 주먹구구식이라 그렇지.”
강진호의 멍한 얼굴을 본 최연하가 피식 웃었다. 예전에는 저런 표정이 딱히 없는 남자였는데, 요즘에는 감정 표현이 무척이나 풍부해졌다.
“그리 놀라실 것 없어요. 이 바닥이 원래 그렇거든요.”
“원래 그래요?”
“네. 여기 기획사라는 곳이 일반적인 기업과는 달라요. 연예 기획사는 보통 둘 중 하나거든요. 매니저나 연예인 하던 사람이 나도 돈 벌어보겠다고 차리든가, 아니면 조직폭력배가 뒷돈 만들어보겠다고 차리든가.”
“…….”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았다. 강은영의 첫 기획사도 문제가 꽤나 있지 않았던가.
“그러다 보니 돈을 벌어도 계약서를 잘못 써서 투자자한테 다 빨리거나, 어설프게 다른 곳에 투자해 보겠다고 설치다가 회사 말아먹는 경우가 매우 흔하죠.”
같은 업계에 대한 평가라기에는 과도하게 냉정한 말이었다.
“그럼 옮겨야 하나요?”
“글쎄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 바닥의 정보라는 건 항상 진실이고, 또 항상 거짓이거든요.”
“모호하다는 거네요.”
“네. 생각보다 상황이 괜찮을 수도 있죠. 그런데 제가 이해가 안 가는 건, 왜 세아 씨가 그 소속사에 있냐는 거죠.”
“……네?”
강진호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왜 거기에 넣으신 거예요?”
“괜찮은 곳이라고 해서요. 그리고 규모도 있다고 하고.”
“말은 맞죠.”
좋은 뉘앙스는 아니었다.
최연하가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런데 그건 신인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에요. 그 큰 기획사에 스타들이 있는 경우 보셨어요?”
“…….”
“심지어 그 소속사에서 데뷔를 한 연예인이라고 하더라도 재계약을 할 시점이 되면 중소 규모 소속사로 옮기기 마련이에요. 기본적으로 정산 비율의 문제라든가, 활동 지원의 문제가 있거든요. 세아 씨처럼 솔로로 활동하는 가수에게 그리 좋은 소속사는 아니란 거죠.”
“음…….”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보통 인지도가 있는 연예인들이 어떤 소속사를 택하는지, 그리고 신인들이 어떻게 데뷔를 하는지를 강진호가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소속사를 옮기는 것도 한 방법이에요. 10년 전속 계약 같은 걸로 묶여 있지만 않다면…… 뭐, 설사 묶여 있다고 해도 풀 수 있어요. 강진호 씨가 변호사비를 아낄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방법은요?”
“개입을 해서라도 소속사를 정상으로 만드는 거죠.”
“개입?”
“쉽게 말하면 인수예요.”
강진호가 턱을 긁었다.
‘인수라…….’
그리 구미가 당기지는 않는 제안이다. 지금도 강진호는 할 일이 많았다. 그런데 딱히 관심도 없는 분야에 일을 늘리고 싶지는 않다.
설사 인수를 하게 되더라도 경영은 다른 이에게 맡겨야 할 텐데, 그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건 피하고 싶네요.”
“저도 추천드리지 않아요. 솔직히 이런 회사들은 외부인의 시선으로 보면 납득이 어려운 방식으로 굴러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그 꼬여 있는 방식을 풀려들다 보면 또 문제가 발생하죠.”
최연하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래서 제가 다른 방법을 하나 제안드리려고 하는데.”
“네.”
“강진호 씨, 소속사 하나 차려볼 생각 없어요?”
“예?”
강진호의 눈이 살짝 커졌다.
“소속사요?”
“네. 엔터테인먼트.”
“……아니, 뜬금없이 소속사는 왜?”
“제가 이번 일을 조사하면서 가만히 생각을 해봤는데요, 아무리 봐도 그게 최선의 방법인 것 같아요.”
예상하지 못한 공격에 강진호가 침음을 흘렸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방식이다.
“이유는요?”
“강진호 씨가 코드를 조사하고 상황을 파악하려 하는 이유는 세아 씨가 걱정 없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것만 해결할 수 있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았다.
강은영이 벌어들이는 수입이 연예인들 중에서도 꽤 높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강진호에게 있어서는 푼돈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돈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강은영이 마음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런데 그런 환경 안 나와요.”
“……네?”
“강진호 씨는 이 업계에 대해 잘 모르시니까 그런 생각을 하실 수 있는 거예요. 한류니, 몇 차 산업이니 포장이야 잘되지만, 이 업계는 사실 사람 갈아 먹는 업계거든요.”
“잘 이해가…….”
“쉽게 말씀드리면, 세아 씨 같은 경우는 한 번 행사를 돌면 천만 원대는 쉽게 나오죠. 그럼 하루에 행사를 몇 번이나 돌릴 것 같아요?”
“……다섯 번?”
“아뇨. 할 수 있는 한이요. 자는 시간이 몇 시간인지, 건강 상태는 어떤지, 그런 거 고려 안 해요. 새벽에 찾는 사람이 없는 시간 빼고는 항상 이동하고 행사하는 거죠.”
강진호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강은영이 한창 활동할 때는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숙소에서 자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간을 모두 길 위에서 보내고 있었다면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연습실 가는 것 말고는 따로 하는 게 없어 보이던데요.”
“당연하죠. 활동 기간이 아니니까요. 보통은 활동할 때 사람 과로로 쓰러지게 굴리고, 활동 끝나면 방치하는 것에 반복이에요. 좀 더 경쟁력 있는 후배가 치고 올라오면 케어도 제대로 안 되죠.”
최연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니 강진호 씨가 바라는 편안하고 건강한 활동은 어느 소속사에서도 이룰 수가 없어요.”
“으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게 어떤 상황인지 파악했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하지만 업계인인 최연하가 저렇게 말한다면 사실일 것이다. 최연하가 그에게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도 없으니까.
“그래서 소속사를?”
“네.”
최연하가 앞에 놓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쭉 들이켜고는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이죠. 없으면 만든다. 그게 정석 아닌가요?”
“그렇긴 하죠.”
“다른 사람들이라면 엄두도 안 나겠지만…… 강진호 씨는 돈이 있잖아요.”
강진호가 볼을 긁었다.
사실이기는 하지만, 이런 부분을 지적받는다는 건 조금 어색한 일이긴 하다.
“그런데 솔직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라서 좀 어벙벙합니다.”
“쉽게 생각해 보세요.”
최연하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단순히 강진호 씨가 돈이 있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니에요. 강진호 씨가 돈이 없었더라도 마찬가지예요. 이건 땡빚을 내서라도 해야 하는 일이에요.”
“예?”
“기획사를 차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넘쳐 나요. 그런데 돈이 있어도 못 차려요. 이유가 뭘 것 같아요?”
“글쎄요?”
“사람이 없어서 그래요. 기획사는 자금과 인력, 그리고 연예인으로 돌아가죠. 다른 건 충원할 수 있는데, 연예인은 충원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바닥부터 신인을 키우는 방식으로 맨땅에 헤딩을 하거나, 업계 관계자가 친분이 있는 연예인들을 끌어모아 만들게 되죠. 그런데…… 강진호 씨는 있잖아요, 연예인이.”
“연예인요?”
“예. 세아 씨하고…….”
최연하의 손가락이 자신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나.”
“…….”
“배우 하나, 가수 하나. 그런데 그 배우와 가수가 업계 톱급. 이건 다른 사람들이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들 일이죠. 하자고만 하면 대출이고 사채고 다 끌어당겨서 시작할 사람 넘쳐 날걸요?”
“아, 아니, 잠깐만요.”
강진호가 손을 내저었다.
“그럼 최연하 씨도 같이하는 겁니까?”
“내 남자 친구가 기획사 하는데 내가 왜 다른 데다 돈 벌어다 줘야 하는데요?”
“…….”
완벽한 논리다.
“그렇게 어안이 벙벙하다는 얼굴 하지 말고 눈에 힘 꽉 줘봐요!”
“…….”
뭔가 사기당하는 기분이었다. 사기를 칠 사람이 아닌데 사기당하는 기분이라 더 이상하다.
“그런데…….”
“네.”
“만약에 이걸 하게 되면 제가 아는 게 없는데…… 경영은 누가 하나요?”
“뭔 그런 걱정을 하세요? 저기 있잖아요.”
“네?”
“저기요.”
최연하가 턱짓으로 밖을 가리켰다.
최연하의 밴 옆에서 전화 통화를 하고 있던 한은솔의 모습이 강진호의 눈에 들어온다.
아…….
있네.
저기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