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65
#964.
침투하다 (4)
“은솔 씨요?”
“네.”
“애가 좀 멍청한 구석이 있어서 그렇지, 사람 좋고, 빠릿빠릿하고, 능력도 있어요. 친화력도 좋고.”
높은 평가다.
이건 정말 높은 평가였다. 최연하의 입에서 타인을 칭찬하는 말이 나오는 게 가뭄에 콩 나듯 드물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높은 평가였다.
“아니, 그렇다고는 해도…….”
강진호의 시선에 살짝 불안이 어렸다.
한은솔은 이제 겨우 이십 대에 불과하다. 강진호도 이십 대인데 뭐가 문제냐고 하겠지만, 강진호와는 경우가 다르다. 강진호는 순수한 이십 대는 아니니까.
“왜요? 나이 때문에?”
“좀 걸리긴 하네요.”
“그런 건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이쪽 업계가 애초에 나이와는 그렇게 상관이 없거든요. 오히려 나이가 들다 보면 감각에 문제가 생겨서 말아먹는 경우도 흔해요. 감각 좋은 이십 대에 시작할 수 있으면 제일 좋죠.”
“으음.”
“그리고 어차피 쟤가 사장은 아니잖아요. 실무만 알아서 하는 거지. 근성 있어서 처음에는 좀 실수하더라도 잘할 수 있을 거예요.”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연하가 이렇게 평가한다면, 그 말은 신뢰해야 한다. 왜냐면 최연하는 매니저계의 저승사자니까.
‘하기야.’
나이가 더 많고 경력이 더 많은 매니저들도 최연하를 버텨내지는 못했다. 한은솔이 최연하의 전담 매니저인 것만 생각해 봐도 그 능력과 근성은 인정해야 한다.
“관리야 그렇더라도 경영이란 건 경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텐데요.”
“그런 걸 맡아줄 사람도 있어요. 제 말 무시하지 마세요. 이래 봬도 업계에서 십오 년은 굴러먹은 사람이에요.”
“무시한 적은 없습니다.”
강진호가 살짝 고민하는 얼굴을 했다.
그 기색을 눈치챈 최연하가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결정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강진호 씨도 나름 바쁘고 할 일 많은 것 아니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무 좋은 기회 같아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저도 이제 계약 거의 끝나가는데 아직 재계약 안 했고, 세아 씨도 소속사 옮겨야 할 타이밍 같으니까.”
“음…….”
“우리는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어서 좋고, 강진호 씨는 우리가 어디서 고생하고 일하는 거 아닌가 걱정하지 않아도 돼서 좋고, 게다가 쏠쏠하게 돈도 벌릴 거고. 안 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 말만 들으면 확실히 그러네요.”
최근 경영에 눈을 뜨고 있는 강진호이다 보니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 알 수 있었다. 분명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만한 일이다.
문제는 하나.
‘그런데 나는 그 돈이 별로 필요가 없단 말이지.’
물론 최연하와 강은영이 벌어들이는 돈은 어마어마하다. 거기에서 떨어지는 수수료만 하더라도 웬만한 중소기업의 순이익은 넘어설 것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제일 쉽게 돈을 버는 사람 중 하나였고, 벌어들이는 돈의 규모마저 최연하나 강은영의 수입쯤은 용돈 취급할 수 있는 수준이다.
딱히 돈에 욕심을 낸 적도 없지만, 이현주가 알아서 정산해 주는 돈만으로도 재벌급이다.
“일단 이건 제가 생각을 한 번 해볼게요. 방식을 조금 달리해야 할 것 같아서.”
“방식이요?”
“네. 아무래도 제가 직접 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으니까, 이번에 회사에 부서를 만들어볼까 하구요. 그럼 관리도 더 잘될 거고.”
“회사요?”
최연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이야기 안 했구나.’
강진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 이번에 회사를 하나 만들 것 같아서…….”
“헐, 회사를 만든다구요? 뭐 하는 회산데요?”
뭐 하는 회사더라?
말문이 막힌다. 생각해 보면 총회를 법인화하면 이 회사의 정체성을 뭐라고 해야 할지 애매하다.
“부, 부동산 투자회사?”
“아하!”
최연하가 감을 잡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강진호가 돈이 있으니 적당히 법인을 설립해서 건물이나 돌릴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와, 그럼 갓물주이시네.”
“…….”
“그럼 나는 복부인 되는 거예요? 나 그거 꿈이었는데.”
“…….”
망상이 끝도 없이 나오고 있다.
“부동산 투자회사라……. 그럼 그걸로 법인을 설립하고, 그 회사를 통해서 자회사를 만든다는 거죠?”
강진호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방법이네요. 정말 괜찮은 것 같아요.”
최연하의 반응이 생각 이상으로 좋다.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을 본 최연하가 가볍게 웃는다.
“사실 우리 업계 쪽에 투자하는 애들은 거의 좀 뭐랄까…… 좀 좋지 않은 계열? 그쪽이 많거든요.”
“좋지 않은 계열요?”
“네. 뭐, 조직폭력배라든가, 어둠의 사업장을 운영하시는 분들이라든가.”
푹.
최연하의 말이 비수가 되어 강진호를 찔렀다.
“뭐, 돈이 깨끗하고 더럽고가 어디 있겠냐만서도, 그런 돈이 많이 흘러 들어오는 건 사실이에요. 지금 소속사 사장이니 어쩌니 하고 얼굴 들고 다니는 양반들도 과거에는 안 좋은 일들 하다가 그런 식으로 신분이랑 돈을 세탁한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뭐랄까…… 음, 다들 좀 과격하고 질이 나쁘다고 해야 하나?”
푸욱.
비수가 조금 더 커진다.
“그, 그래요?”
“네. 최근에는 많이 나아져서 대기업 돈도 들어오고 하는데, 아직 근본이 바뀐 건 아니라서요. 그 와중에 부동산 투자회사면 정말 깨끗한 거죠. 다행이네요. 조폭보다는 낫잖아요?”
제가 그 조직폭력배 대장입니다.
강진호의 얼굴이 미묘해졌다.
계급으로 따진다면 강진호는 조폭 중에서도 대장 조폭이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조직폭력배들은 이중걸 시절부터 이미 총회의 관리를 받고 있었다.
말이야 관리지, ‘죽기 싫으면 상납금을 바쳐라’ 수준일 것이다. 조직폭력배가 일반인을 괴롭힐 때는 조금이라도 양심의 가책이 있을지 모르지만, 총회가 조직폭력배를 괴롭히는 데 있어서는 일말의 가책조차 없이 제대로 털어먹을 수 있다.
누가 누구에게 상납을 하는가로 서열을 정한다면, 총회는 대한민국의 모든 조폭의 위에 있었다. 그리고 그 총회의 회주가 바로 강진호다.
‘이렇게 생각하니 엄청 나쁜 놈 같은데.’
악당이라는 자리에 거부감을 가지는 건 아니지만, 이건 강진호가 생각하는 악당과도 조금 달랐다.
“여하튼 그 부분은 생각을 좀 해볼게요.”
“빨리 정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막상 시작하려고 하면 걸리는 게 하나둘이 아닐 테니까요.”
“네, 알겠어요.”
강진호가 살짝 어색한 얼굴로 최연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최연하는 이제 강진호의 기색만으로도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가야 된다구요?”
“…….”
“며칠 만에 봤는데?”
“…….”
“흐음, 어떻게 할까? 좀 괴롭히고 싶은데.”
강진호의 이마에서 땀이 배어 나오자 최연하가 피식 웃었다.
“얼른 가봐요.”
생각보다 깔끔하게 결론이 났다. 강진호가 살짝 놀라서 최연하를 바라보았다.
“뭘 그런 눈으로 봐요? 사람이 사업을 한다는데, 같이 놀아달라고 징징댈까 봐?”
“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징징도 때가 있다는 말씀. 여유가 있을 때 하는 징징은 징징이지만, 여유가 없을 때 하는 징징은 진상인 법이죠. 괜히 진상 떨어서 점수 깎아먹고 싶은 생각 없으니까, 가라고 할 때 얼른 가요. 올 때 선물 사 오고.”
“꼭 사 올게요.”
“다녀와요.”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최연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잠깐.”
“네?”
“그런데 그렇게 그냥 간다고?”
강진호가 우물쭈물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카페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강진호를 보며 최연하가 웃음을 터뜨렸다.
“가요, 가!”
최연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강진호의 등을 두드렸다.
“대신에 바쁜 일 다 하고 나면 나하고 놀아줘야 돼요. 나도 새 촬영 들어가니까 나중 되면 시간 안 날 수도 있거든요.”
“명심하죠.”
“네. 그럼 다녀오세요.”
강진호가 손을 흔들며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지켜보고 있던 최연하의 얼굴이 일변했다.
강진호가 나간 것을 본 한은솔이 안으로 들어왔다.
“생각보다 일찍 끝나…….”
한은솔이 합, 입을 다물었다. 최연하의 얼굴에 불만이 어려 있다. 이럴 때는 입 한 번 떼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아니면 불벼락이 떨어질 수도 있다.
“은솔아.”
“예, 누님!”
“박복한 년은 서방복도 없다더니, 이제 겨우 중국에서 돌아왔더니 저 사람은 바빠 죽는다. 이제는 영국 간단다.”
“영국요? 영국은 왜요?”
“몰라. 영국 건물이라도 알아보러 가는가 보지.”
볼이 부풀어 오른다. 이건 위험신호였다.
한은솔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을 찾아내려 애썼다.
“좀 너무하시네요.”
“……응?”
“중국에서 고생하다 들어왔다는 거 아실 텐데, 일이 있어도 조금 미룰 수 있을 텐데.”
“야.”
“……네?”
“남자가 일을 미루면 안 되지.”
“…….”
“가정적인 것도 좋지만, 사람이 자기 일에 확신을 가지고 열정이 있어야지! 그걸 왜 까?”
어쩌라고?
한은솔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까도 내가 깐다. 너는 까지 마.”
“넵. 명심하겠습니다.”
한은솔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이런 걸 직접 말로 한다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발전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거슬리는 말을 하는 순간, 쿠션이 날아오고 난리가 났을 테니까.
“그런데 너.”
“예?”
“나 말고 다른 애들 맡으면 잘할 수 있어?”
“……누나.”
“응.”
한은솔이 어깨를 쫙 폈다.
“저는 못 맡을 연예인이 없습니다. 극하드 모드로 지금까지 버텼는데, 다른 연예인이면 이지 모드죠, 이지 모드.”
“……뒈질라고.”
한은솔이 찔끔하여 몸을 움츠렸다.
“그럼 너 소속사 하나 굴리라고 하면 잘할 수 있어? 그럼 밑에 매니저 애들도 관리해야 하는데?”
“누나, 독립하시게요?”
“독립은 아니고, 여하튼.”
한은솔이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은 애들 몇몇 있어요. 제가 이야기하면 합류할 거예요.”
“흐음.”
최연하가 눈을 빛냈다.
‘이건 꼬셔야겠어.’
아무래도 강진호가 사장이 되어주는 쪽이 좋다. 활동하기가 편하면 좋고, 편하지 않더라도 합법적으로 징징댈 수 있는 루트가 하나 더 생기는 거니까.
“이러다가 과부 신세 되겠다. 업무라도 같이 엮이면 더 낫겠지.”
“누나! 단어 선택 좀 신경 쓰세요! 다른 사람들 들으면 어쩌려고!”
“들으라고 해. 내가 나서서 기사 낼 판인데.”
“…….”
한은솔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최연하가 예전에 비하면 굉장히 사람이 된 건 사실이다만, 여전히 남아 있는 객기가 이상한 쪽으로 작용할 때가 더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관리는 차라리 예전이 더 편했다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한두 달 내에 회사 하나 차릴 것 같으니까, 너 직원 할 애들 한 번 알아봐.”
단호한 최연하의 말에 한은솔이 눈을 크게 떴다.
“하, 한두 달 내요?”
“쇠뿔도 단김에 빼야지. 어물쩍거리다가는 흐지부지되는 법이니까.”
“그럼 누나가 사장님이에요?”
“아니. 나 사모님.”
“……네?”
“아니지. 복부인?”
뭐라는 거야, 이 여자?
날이 가면 갈수록 도무지 최연하라는 여자를 더 이해할 수 없게 되는 한은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