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71
#970.
상륙하다 (5)
눈길이 자꾸 간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꾸만 룸미러를 쳐다보게 된다.
하필 강진호가 왼쪽 뒷좌석에 앉아서 고개를 돌리면 바로 보이는 위치에 있다는 것도 한몫하고 있었다.
‘강진호라…….’
이름은 수도 없이 들어봤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최근 가장 많이 들은 이름이 바로 강진호라는 이름이었다.
‘총회의 회주, 그리고…….’
슈퍼 루키.
아니지. 루키라는 말은 좀 이상하지.
루키라는 말은 신인에게 붙이는 말이기는 하지만, 기대주에게 붙이는 말이기도 하다. 이미 자신만의 세력을 확고히 하고 완벽한 업적을 쌓아 올린 강진호에게 루키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강진호는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겉만 봐서는 평범해 보이는군.’
물론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샘은 겉모습만으로 상대를 파악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 게다가 그저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있을 뿐인데 시선을 뗼 수가 없다. 자꾸만 힐끗거리게 된다.
가공할 존재감이다.
‘설마 직접 올 줄이야.’
샘은 마스터에 대한 모든 것을 파악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러다 보니 저 강진호가 한국에서 마스터와 겨뤄 승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일방적이라…….’
그 단어 하나가 계속 그를 거슬리게 만들었다.
마스터가 이동할 때는 당연히 그들이 뒤따른다. 수행원들과는 별도로. 마스터를 따라 한국으로 간 그의 부하가 작성한 보고서를 본 샘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패배.
그 자체는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일방적인 패배라는 말은 납득할 수 없었다.
마스터가 누구인가.
비록 나이가 들어 전성기가 지났다고는 하나, 마스터는 유럽을 대표하는 무인이었다.
너무도 강하고, 너무도 독특하기에, 그를 따라 하려던 이들이 모두 실패해 한동안 영국 무인계의 암흑기를 불러왔다는 말까지 듣는 이가 바로 마스터다.
그런데 그 마스터가 일방적으로 패배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믿지 않을 도리도 없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고를 한다고 하나, 마스터를 수행한 이는 그의 수하. 시선이 마스터에게 우호적일 수밖에 없다.
그 우호적인 시선으로 평가했음에도 일방적이라는 단어를 써야 할 정도로 압도적인 결과가 나왔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대체 얼마나 강하다는 건가.’
그 홍왕과의 전투에서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강진호의 강함은 충분히 증명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단어들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홍왕이 얼마나 강한지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스터의 강함은 그들의 피부에 와닿는 강함이었다. 그런 마스터를 일방적으로 쓰러뜨린 무인.
그가 영국에 직접 온 것이다.
‘그것도 적지에 말이야.’
파격적이다.
물론 마스터 역시 한국을 방문했다. 하지만 이건 전혀 다른 경우다. 마스터는 총회를 적대하기 위해서 한국을 방문한 게 아니었으니까.
사태가 최악으로 치밀었을 경우, 감당해야 할 부담도 차원이 다르다.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총회가 마스터를 죽일 확률을 높지 않고, 설사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마어마한 뒷감당을 해야겠지만, 유럽에서 강진호가 죽는다고 해서 원탁이 총회를 감당해야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과감하게 적국으로 잠입한다?
‘미쳤어.’
좋은 말로는 파격적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세상 그 어떤 수장이 이런 미친 짓을 벌인단 말인가.
수장은 보호받아야 한다.
체스에서 괜히 왕을 잡는 순간 경기가 끝나는 게 아니다. 수장이란 그만한 가치가 있다. 그 어느 체스 기사도 왕을 전면에 배치하는 미친 수를 두지는 않는다.
‘왕이 제멋대로 앞으로 나오는 경우겠지, 이건.’
헛웃음이 났다.
“영국의 상황은 어떤가.”
계속되는 침묵이 부담스러웠는지, 위긴스가 넌지시 물어왔다.
“상황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들은 그대로지. 마스터가 억류된 상황 아닌가. 당연히 동요가 있을 것 같은데?”
샘이 피식 웃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제 입에서는 어떤 정보도 듣지 못하실 겁니다, 미스터 위긴스. 저는 오로지 마스터의 구출에 대해 협조하는 것뿐입니다. 그 외의 어떤 일에도 협조하지 않겠습니다.”
위긴스가 살짝 한숨을 쉰 순간,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협조하지 않겠다?”
저음.
쇠를 긁는 것 같은 고음과 묵직한 저음이 섞인 목소리.
듣는 것만으로 영혼이 떨리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샘이 떨리는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룸미러를 통해 그와 강진호의 눈이 마주친다.
가라앉아 있는 검은 눈동자를 보는 순간, 샘은 심장이 멎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잘도 지껄이는군.”
강진호는 무표정하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무표정함이 그 어떤 위협보다 더 강하게 샘을 짓눌렀다.
“서로 목적이 있다는 건 분명하지.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우리가 너희를 도우러 왔다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너희는 도우러 온 이에게 그런 말을 지껄이는 모양이군?”
숨이 막혀온다.
왜?
기운을 내뿜은 것도 아니고, 그의 목을 조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조용히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가.
저자가 강진호라는 것을 샘이 알고 있기 때문에?
아니다. 그건 아니다.
저자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해도 지금 샘이 느끼는 압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확신할 수 있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하지?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지?
그런 샘을 위긴스가 구원해 주었다.
“……로드, 자꾸 필요하실 때만 영어를 알아듣지 말아주십시오.”
강진호가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미안하네. 영어를 어설프게 잘하시는 분이라.”
압박이 사라진 것을 느낀 샘이 손을 들어 이마에 흘러내린 땀을 훔쳤다.
“아, 아닙니다. 저분의 말씀이 틀린 건 아니니까요.”
말은 맞는 말이다.
어쨌거나 샘은 위긴스들에게 도움을 구해야 하는 처지다.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옳을 리 없다.
‘입장을 확실히 해야 해.’
정말로 원탁을 적대하고 마스터를 구출할 것인지, 아니면 원탁의 원칙에 따라 마스터를 포기할 것인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중간은 없다.
지금처럼 애매하게 마스터는 구출하겠지만 배신자들과는 손을 잡지 않는다는 포지션으로는 일을 망칠 게 분명하다.
“……신임 나이트의 지배력이 아직은 강하지 않습니다.”
“채드윅이라고 했나?”
“예.”
“채드윅, 채드윅이라……. 그가 나이트가 되었군.”
위긴스는 살짝 감회가 깊은 얼굴이었다. 정상적으로 위긴스가 나이트 직을 수행했다면 채드윅은 결코 나이트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위긴스가 임기를 마칠 시점에는 그의 나이가 너무 많아질 테니까.
위긴스가 나이트의 직을 버렸기에 그가 나이트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우호적인가?”
“아직 정확하게 성향을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친원탁파라 하기도, 친마스터파라 하기도 애매합니다.”
“그렇겠지. 아직 초기니까.”
“확실한 것은 친르보파는 아닙니다.”
“그것도 그렇겠지.”
위긴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대충 돌아가는 판이 보인다.
“원탁을 확고히 정리하기 전까지는 그도 잠재적인 위협이 된다는 뜻이군.”
“예. 마스터가 억류되는 상황에 그도 원탁에 있었습니다. 찬성표를 던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 모든 상황을 보고도 움직이지 않고 묵인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원탁에 동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위긴스가 턱을 매만졌다.
‘적지라는 느낌이 이렇게 확연히 들 줄이야.’
간만에 찾은 고향이건만, 이곳은 이미 그의 고향이 아니었다. 이곳은 나이트 르보와 원탁이 지배하는 곳이다.
그 어디에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미스터 위긴스.”
“음?”
“여기서부터는 차량으로 이동할 수 없습니다.”
위긴스가 밖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숲의 초입이다.
원탁으로 직선으로 향하는 길은 감시가 철저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샘은 숲을 빙 둘러 왔다. 이곳이 감시가 미치지 않는 마지노선이다.
“본 적 있는 곳이로군.”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러지.”
위긴스가 고개를 돌렸다.
“로드, 지금부터는 걸어서 이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강진호는 두말없이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눈에 보이는 것은 어둠이 내린 숲뿐이었다. 아마도 총회에 속하지 않은 이들이 총회를 찾으려 하면 이런 기분일 것이다. 이런 깊은 숲속에 과연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강진호가 내린 승용차 뒤로 밴과 트레일러들이 정렬했다. 그러고는 우르르 모두가 내리기 시작했다.
꽤나 다수가 움직이고 있음에도 소리는 나지 않았다. 조용하고 은밀하게 모두가 어둠에 녹아든다.
“거리는?”
“여기서부터는 대략 10㎞ 정도입니다. 은밀하게 이동할 시에는 한 시간 이내에 도달합니다.”
강진호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저기군.”
뭐가 보이는 걸까?
의문이 들었지만 위긴스는 딱히 묻지 않았다. 강진호가 하는 일을 상식으로 판단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 끝에 정말 원탁이 존재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은밀하게 이동한다고?”
“예, 로드.”
“무리다.”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예?”
“쫙 깔렸다. 이 인원으로 들키지 않고 잠입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위긴스의 눈이 살짝 떨렸다.
쫙 깔렸다고?
‘대비를 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강진호가 이렇게 말한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으으음.”
시작부터 뭔가가 틀어진 느낌이었다.
이현수에 지시를 따라 도열하는 이들을 보며 위긴스가 미간을 좁혔다.
“이쪽을 알고 있는 겁니까?”
“아니. 경계가 강화된 것 같군.”
“……그렇군요.”
어떻게 해야 하지?
그 순간,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위긴스.”
“예, 로드.”
“결정해라.”
“…….”
강진호가 씹어뱉듯 말했다.
“죽이고 열 건지, 아니면 돌아갈 건지.”
위긴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위긴스도, 강진호도 알고 있다, 이곳까지 온 이상 돌아간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대의를 위해서는 흘리는 피를 감수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죠.”
“좋군.”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러더니 몸을 돌려 도열한 이들을 바라보았다.
“바토르.”
“말하라, 주인.”
“선두에 선다.”
“알았다!”
바토르가 저벅저벅 걸어 앞으로 나섰다.
“장민은 좌측, 방진훈은 우측.”
“명을 받듭니다! 마존이시여!”
“알겠습니다.”
“후방은 누가 맡습니까?”
위긴스의 물음에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후방은 필요없다. 살려두지 않을 테니까.”
그 대답에 섬뜩함을 느끼며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속으로 목적지까지 간다. 걸리는 건 모두 죽여라.”
“충!”
“샘이라고 했나?”
그 압도적인 기백에 샘이 멋도 모르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낙오하지 마라. 죽을 각오로 따라붙어.”
“……예.”
“그럼 간다.”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앞쪽으로 걸어갔다.
“새벽이 밝기 전까지 끝낸다, 바토르.”
“충!”
바토르가 두 눈을 붉게 물들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자 마치 검은 물결처럼 마인들과 총회의 무인들이 그런 바토르의 뒤를 따랐다.
원탁에는 악몽으로 기억될 밤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