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77
#976.
침습하다 (1)
“아래?”
원탁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를 가리킨다.
고전적인 의미로는 각국의 대표인 나이트들이 둘러앉는 테이블을 가리키고, 광의적으로는 그 나이트들이 소속되어 있는 조직을 가리킨다.
그리고 지금 위긴스가 말하는 원탁은 그 조직의 본단을 의미한다.
본단이라는 것은 지역이고, 지형이다. 그리고 더 명백한 의미로는…….
‘건물인데.’
바토르가 미간을 좁혔다.
“그러니까, 이 지하에 원탁이 있다는 말인가?”
“정확합니다.”
“……이 지하에?”
보이는 거라고는 공터와 돌밖에 없는데, 이 아래에 거대한 시설이 있다는 말인가?
……뭐, 좋다.
그럴 수 있다. 총회도 그렇고, 삼왕계도 그렇고…… 대부분의 무인들은 일반인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자신들의 본단을 마련한다.
평범한 이들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으니까.
굳이 건물을 지하에 마련한다는 게 조금 과해 보이기는 하지만, 딱히 문제가 될 부분은 없었다.
문제가 될 부분은 따로 있었다.
“어떻게 내려가는 건데?”
“당연히 마법입니다.”
“마법?”
“예.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곳에는 거대한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마법진을 움직이게 되면…….”
“서, 설마 공간 전이? 그런 게 정말 가능한 건가?”
“엘리베이터가 작동합니다…….”
“…….”
바토르가 가만히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보, 보지 마, 이 새끼들아! 사람이 흥분할 수도 있지.”
마염들이 가만히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할 말을 하는 사람이 하나는 있기 마련이다.
“만화를 너무 많이 보셨구만.”
“끄으응.”
방진훈의 이죽거림에 바토르가 얼굴을 붉혔다.
“마, 마법에 대해 잘 모르니까 그럴 수도 있지.”
“보통은 그렇게까지는 안 나가죠.”
“제길.”
무슨 말을 해도 수습이 안 된다는 걸 알아버린 바토르는 차라리 입을 다물어 버리는 쪽을 택했다.
“그러니까…….”
강진호가 입을 열어 상황을 수습했다.
“기관?”
“동양에서는 그런 식으로 부르는 모양이더군요. 비슷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마법으로 움직이는 기계라고 해야겠지요.”
“……신기하군.”
강진호가 흥미로운 눈으로 공터를 바라보았다.
과거 중원에도 기관진식이니 진법이니 하는 것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조악한 눈속임에 불과했다. 그게 통할 수 있던 이유는 당시를 살던 이들의 과학적 지식이 심각할 정도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중국도 나름 과학이 발전한 국가였다고?
물론이다.
하지만 지금과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현대는 지식이 모두에게 공유되는 시대다. 지식을 익히는 데 자격이 필요하지 않고, 원하면 모두가 지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시대의 지식이라는 것은 특정 계층의 지자(知者)들에게 공유되는 특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동시대의 지자들은 기하학을 논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 이름자도 쓰지 못하던 시대다.
그러니 조잡한 트릭이 통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서양의 무인계가 동양보다 확실히 앞서 있었다.
“그럼 어떻게 들어가야 하지?”
“어렵지 않습니다. 제가 시동을 걸 수 있으니까요. 저쪽 중심으로 모여주십시오.”
모두가 위긴스가 가리키는 곳으로 움직였다.
“조금 더 왼쪽. 그 돌 사이로.”
“여기?”
“예. 좋습니다.”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쪽에 모여 있는 돌무더기 쪽으로 다가갔다.
그 광경을 보며 방진훈이 조용히 속삭였다.
“중세 영화 같지 않습니까? 엄청 신기한데?”
“조금.”
강진호조차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얼굴을 붉힌 바토르가 추임새를 넣는다.
“가슴이 살짝 두근거리는데?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야.”
“탈 수 있습니까?”
“기분이 그렇다고, 기분이!”
“타보지도 못한 양반이 기분은 어떻게 알고?”
“……방진훈 이사, 이따가 나 좀 보지.”
“일없습니다.”
방진훈과 바토르가 투닥대는 와중에 위긴스가 캐스팅을 시작했다.
그의 손이 새하얗게 빛나며 허공에 기이한 문양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폼은 나네.”
“인정.”
허공에 만들어진 형이상학적 문양들이 빛을 발한다. 그러고는 돌무더기들 사이로 스며들었다. 동시에 평범해 보이던 돌무더기들이 갑자기 밝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오?”
“오오!”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잔뜩 긴장해야 할 광경이건만, 극장에라도 온 것 같은 모양새다.
“이것들이, 긴장 안 하지?”
바토르가 소리치자 마염이들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지가 제일 흥분해 놓고는.
스으으으으으.
기이한 소음과 함께 뿜어져 나오던 빛들이 점차 사그러들었다.
“…….”
조용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한참을 기다리던 바토르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더 기다려야 하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위긴스가 몸을 홱 돌렸다. 그러고는 어색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응?”
“아무래도 원탁에서 시동어를 바꾼 모양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데?”
“어, 그게 설명을 드리자면…… 좀 복잡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제가 집을 떠난 사이에 집 주인이 열쇠를 바꿔 버린 것 같은데…….”
바토르가 눈을 크게 떴다.
“그걸 생각 안 했다고?”
“당연히 생각했지요.”
“그런데?”
“……이 열쇠가 좀 복잡해서…… 제거하고 새로 설치하는 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못 건드렸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걸 했네요.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허허 웃는 위긴스를 보는 바토르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그래서? 못 들어간다고?”
“바토르 님.”
“뭐.”
“문이라는 건 하나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사실 문이라는 개념도 우스운 개념이지요. 사람이 들어갈 수만 있으면 다 문이라고 할 수 있으니 굳이 집착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뭔 말인데?”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지요.”
“지랄하고 자빠졌다.”
대놓고 욕을 퍼먹었지만, 위긴스는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붉어진 얼굴을 소매로 슬쩍 감췄을 뿐이다. 이건 정말 그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들어갈 건데? 여길 부수면 되는 것 아냐?”
“어렵습니다. 이건 원탁으로 향하는 문입니다. 공격으로 파괴될 만큼 대충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못 부순다고?”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
“멍청하긴.”
바토르가 혀를 찼다.
“사람이 들어갈 수만 있으면 다 문이라고 한 건 너 아닌가. 굳이 문을 부술 필요가 없지. 이 아래에 원탁이 있다는 뜻 아닌가.”
“……그렇지요.”
바토르가 옆쪽을 가리켰다.
“여길 막아놨다고 해도 대충 건물이 있을 만한 곳을 파고들어 가면 될 것 아니냐. 건물이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바토르 님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상식적인 생각이라 감탄스럽군요. 하지만 아무래도 머리를 쓰는 측면에 있어서는 바토르 님보다 마법사들이 더 뛰어나겠지요.”
“주둥아리를 두들겨서 쭉 펴주기 전에 배배 꼬지 말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좋을 거다.”
“불가능합니다. 그런 가능성을 대비해서 원탁으로 통하는 곳에는 공간 왜곡장이 펼쳐져 있습니다. 파고들어 간다면 아마 숲 외곽으로 뚫고 나오게 될 겁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가능하니 마법이지요.”
“그럼 그 공간 전이…….”
“그건 안 됩니다.”
위긴스가 단호하게 말하자 바토르가 시무룩해졌다.
“이건 되는데 그건 왜 안 되는지 이해를 못하겠군.”
“흐르는 물줄기를 트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흐르는 물줄기를 끓어서 다른 곳에서 나오게 만드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요. 아무리 마법이라고 한들 세상의 법칙을 왜곡할 수는 있지만, 바꾸지는 못하는 법입니다.”
그게 그거 아닌가?
따지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전문가와 싸우는 건 망신을 자처하는 일이니까.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
“……공간 왜곡장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그럼 뭐가 문제야?”
“제 능력을 모두 동원해도 지금부터 열두 시간 정도가 걸립니다.”
“…….”
그 말을 들은 방진훈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적당히 가서 밥 먹고 와도 될 것 같네요. 식사하러 가실?”
장난스레 말하긴 하지만, 꽤나 난감한 상황이었다.
“열두 시간이라니.”
이 모든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은밀성이 아니라 신속성이다. 저들이 대처할 시간을 주지 않고 몰아붙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열두 시간?
그 열두 시간 동안 원탁이 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각지에 요청한 지원이 충분히 도달할 시간이다. 문이 열릴 쯤에는 바글바글할 정도의 병력을 숲을 포위할 게 빤했다.
“……죄송합니다, 로드.”
위긴스의 얼굴은 뭐라 말할 수 없는 당황이 떠올라 있었다.
장난스러운 게 아니다. 위긴스는 지금 정말 당황하고 있었다. 완벽한 방어 마법진이 펼쳐져 있는 마법 회로를 열고, 그 안에 새로운 시동어를 밀어 넣는다는 것은 마스터가 직접 나서도 열흘은 꼬박 걸릴 작업이었다.
일이란 것은 필요성과 여유가 합쳐져야 추진된다. 마스터에게는 필요성이 부족했고, 여유는 더 부족했다.
위긴스가 영국으로 쳐들어와 원탁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는 그 말도 안 될 정도로 희박한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서 최고위 마법사의 열흘을 투자한다? 이건 손익의 개념으로 봤을 때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그런데 누군가 그 멍청한 짓을 했다.
그러니 당황할 수밖에.
“다른 방법은?”
“……지금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흠.”
강진호가 슬쩍 아래를 바라보았다.
“이 아래에 뭐가 있지?”
“입구가 있습니다.”
“왜 들어가지 못한다는 거지?”
“방어 마법이 강력합니다. 웬만한 힘으로는 뚫을 수 없습니다.”
“너도 불가능한가?”
“이 마법진은 제가 만든 게 아닙니다. 과거 세상을 오시하던 슈프림 메이지들의 유산입니다. 저는 감히 이 마법진을 해체할 수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 주변에 펼쳐진 공간 왜곡장을 열고 건물로 침투할 길을 여는 정도입니다.”
“간단하군.”
강진호가 허공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아공간에서 적루를 꺼낸 강진호가 천천히 검신을 검집에서 뽑아냈다.
“그러니까, 여길 부수면 된다는 거지?”
“로드! 자, 잠시만!”
한 가지 사실은 명백하게 드러났다.
마법에 대한 이해도는 위긴스가 높을지 모르지만, 강진호에 대한 이해도는 다른 이들이 명백히 높은 모양이었다. 강진호가 적루를 뽑아 든 순간, 강진호 주변에 몰려 있던 이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멀리 떨어졌다.
“여, 여길 부수면 주변이 박살…….”
바토르가 소리치는 위긴스를 잡아 옆구리에 꼈다.
“말릴 사람을 말려라, 이 멍청아.”
“아, 안 되는데!”
그 순간, 강진호가 허공으로 뛰어오르는 모습이 위긴스의 두 눈에 생생하게 들어왔다.
허공으로 5m는 떠오른 강진호의 전신이 붉고 검은 마기로 뒤덮인다. 불타오르는 듯한 마기는 적루에 모여들어 거대하기 짝이 없는 마기의 검을 만들어냈다.
그 검이 그대로 휘둘러지며 바닥에 내리꽂힌다.
그러더니…….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탄이라도 떨어진 것 같은 폭발이 숲을 뒤흔들었다. 세상이 순간 대낮처럼 밝아지고 폭풍이 몰아친다.
“히이이이이익!”
그 거대한 후폭풍에 총회의 무인들이 바닥을 굴렀다.
나무가 뽑히고, 바위가 허공을 난다. 그야말로 대폭발이었다.
눈을 멀게 만들 것 같은 섬광이 사라지고, 폭풍이 잦아들고 나자 공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진이라도 난 듯 쩌억 갈라진 대지 아래로 길이 뚫려 있었다.
“…….”
바닥에 내려선 강진호가 턱짓으로 갈라진 땅을 가리켰다.
“빨리 끝내지. 경찰이 오기 전에.”
경찰이 아니고 군대가 오겠지!
이 답도 없는 양반아!
위긴스의 속이 썩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