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85
#984.
억누르다 (4)
‘저게 대체 뭐냐?’
나이트 르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강진호의 전신이 타오르는 듯한 검은 마기로 뒤덮이는 모습이 그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오러?’
강진호의 몸을 뒤덮고 있는 검은 기운은 분명 오러처럼 보였다. 하지만 오러로 전신을 뒤덮는다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인가?
……불가능하지는 않다.
나이트 르보도 마음만 먹으면 전신을 오러로 두를 수 있었다. 때로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 그런 식으로 오러를 운용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순간적으로 오러를 방출하는 개념이다.
저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오러를 전신에 두르고 유지하는 것은 나이트 르보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것도 저렇게 폭발적인 기운을…….
‘동양과 서양의 차이인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무리 동양의 무학과 서양의 무학이 그 개념이 다르다고는 하나, 기운의 총량이 다른 것은 아니다. 지금 강진호가 내뿜고 있는 무시무시한 기운은 ‘다름’의 영역에서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감히 흉내조차 시도해 보지 못할 압도적인 힘.
그 힘 앞에 나이트 르보조차 섬뜩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하지?’
강진호가 어떤 존재인지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이 원탁 내에서 강진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나이트 르보일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 강진호의 제거를 획책했고, 그 과정에서 슈발리에들을 잃었다. 강진호가 얼마나 강한지 모를 수가 없다.
하지만 저건…….
나이트 르보가 주먹을 움켜잡았다.
‘뭘 겁먹고 있는 거냐!’
나이트 르보가 이를 악물었다.
적이 나보다 강하다?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애초에 그는 원탁 내에서도 최강자가 아니었다. 마스터는 물론이거니와, 나이트들 중에서도 무력적으로 그보다 강한 이는 몇이나 있다.
적의 무력이 강하다고 해서 새삼스레 놀랄 일은 아니다.
그 ‘강하다’의 격이 지금까지 그가 상대한 적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게 문제였지만.
“……농담이 아니군요.”
나이트 로드리게스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멋대로 길을 열어버린 가터 기사단이 저열한 짓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현명한 판단을 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만으로 저자의 앞을 막아섰다가는 전멸을 면치 못했을 테니까요.”
“정상참작이 필요하겠군.”
나이트 르보가 쓴웃음을 지었다.
애초에 가터 기사단이나 나이트 채드윅이 저들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저들의 전력이 강대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쪽의 전력을 파악하고 있는 위긴스가 무리한 시도를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영국의 방어진과 원탁의 나이트들을 주살할 수 있는 전력 정도는 갖췄을 것이라 생각했다. 시간과 상황에 쫓겨 완벽한 전력을 갖추지는 못했더라도 시도해 볼 정도의 전력이야 당연히 준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만한 전력이라면 가터 기사단이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채드윅에게 저들을 막으라고 한 이유는, 영국의 전력이 저들을 막다가 갈려 나간다고 하더라도 나이트 르보는 딱히 손해 볼 게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 영국은 그런 존재였다.
아무리 나이트 채드윅이 전격적으로 그에게 협조한다고 해도 진심으로 믿고 아군으로 대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우습게도 가터 기사단은 저놈들에게 찰싹 붙어서 전력을 보존했다. 그러고는 지금 위긴스의 뒤에서 눈치나 보고 있다.
‘빌어먹을 놈들.’
새삼 울화가 치민다.
나이트 로드리게스가 그런 나이트 르보를 환기시켜 주었다.
“확실히 대단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나이트 위긴…… 아니, 위긴스가 뒤로 물러나는 걸 보니, 지금 혼자서 우리를 상대하겠다는 생각 같은데……. 제정신인지가 궁금하군요.”
“동감이오.”
나이트 로드리게스의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이곳에는 지금 십여 명이 넘는 나이트들이 있다. 아무리 나이트라는 자리가 무력으로 뽑히는 자리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각국에서 무력으로 인정받은 자가 아니라면 감히 오를 수 없는 자리다.
각국을 대표하는 무인들이 열이나 모여 있는데, 그들을 혼자 상대하겠다?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니다.
“홍왕과 동수를 이뤘다고 하더니,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모양입니다.”
“그러게 말이오.”
나이트 르보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입꼬리가 도통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왜?’
상황만 본다면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다. 이곳에는 열 명이 넘는 나이트가 있다.
홍왕?
설사 홍왕이 직접 온다고 하더라도 나이트 열 명이면 그의 뼈를 발라 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홍왕도 아니고, 강진호가 그들을 상대한다?
우스운 일이다.
우스운 일인데…….
‘나는 왜 웃지 못하는가.’
그저 웃지 못하는 게 다가 아니었다.
손끝이 떨린다.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애써 웃음을 지으려고 하지만, 바들바들 떨리는 턱을 진정시키는 것만으로도 진력이 모두 소모되는 느낌이었다.
‘침착해라.’
당연하다.
긴장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늑대 열 마리가 사자를 둘러싼다면, 사자 정도는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사자를 상대하는 늑대가 긴장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가 긴장하는 것과 승패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니 이건 불안한 징조가 아니었다.
절대로.
나이트 르보를 중심으로 나이트들이 집결했다. 그러고는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나이트 히베이루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그렸다.
“마치 악마 같군요.”
“이거, 악마를 잡는 성기사라도 된 느낌입니다.”
“교황청에 제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살짝 농을 던지고는 있지만, 그들의 얼굴은 결코 밝지 못했다.
느껴진다.
아직 전투가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진득한 혈향이 풍기는 것 같다.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은 한기와, 음습한 끈적함이 기분 나쁘기 짝이 없게 다가온다.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저 모습은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를 자극한다.
모습 때문인지, 그게 아니면 강진호가 내뿜는 저 기이한 기분 때문인지 조금 전부터 심장이 조여오는 느낌이었다.
“설사 정말 악마라고 할지라도 저 혼자서 우리 모두를 상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야 당연한 말이지요.”
나이트 르보는 묘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원래 이들이 이렇게 말이 많았던가?’
나이트는 과중한 업무량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모든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습관이 들어 있다. 전투 역시 마찬가지다.
최대한 빠르고 간결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원탁의 방식이었다. 적을 앞에 놔두고 이렇게 서로 대화를 나누는 건 전에 없던 일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설마 여기에 있는 모두가 겁을 집어먹기라도 했다는 건가?
한 사람에게?
‘그럴 리가 없어.’
말이 안 된다.
긴장하고 신중할 수는 있다. 하지만 모두가 겁을 먹어서 나서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들은 나이트.
유럽의 자존심이나 마찬가지인 이들이었다. 그런…….
그 순간, 검은 마기로 둘러싸인 강진호의 입가가 일렁였다.
마치 쇠를 긁는 것 같은 거친 탁음이 소름 돋게 귀를 파고든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지.”
모두의 시선이 강진호에게로 집중되었다.
“물러날 이들은 물러나라. 그곳에 남아 있다는 건 싸우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
물러나라?
물러나라고?
이번에는 나이트 르보도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제대로 지어지지 않던 웃음이 이번에는 만들어진다.
물러나라?
그리고 그 헛웃음은 금세 분노로 바뀌었다.
사람을 무시해도 유분수다.
혼자서 열을 상대하는 놈이 상대에게 물러나라?
대체 오만함이 얼마나 넘치면 이런 말을 해 댄단 말인가.
“건방진 놈…….”
나이트 르보가 이를 갈았다.
머릿속에 분노가 차오르자 심장을 옥죄던 공포도 조금은 가시는 느낌이었다.
나이트 르보가 검을 뽑아 강진호를 가리켰다. 그의 검에서 새하얀 오러가 뿜어져 나왔다.
“동양의 소국에서 왕처럼 굴더니, 제 주제를 모르는구나. 감히 원탁을 적대시한 대가가 무엇인지 내가 오늘 너에게 똑똑히 가르쳐 주겠다.”
강진호의 입가를 뒤덮고 있던 마기가 일렁인다.
마기의 움직임만으로 그의 표정을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나이트 르보는 알 수 있었다. 저건 분명 웃음이다. 그것도 명백하게 비웃음에 가깝다.
“셋을 세지.”
마기가 좀 더 격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고조되는 분위기처럼.
“셋…….”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귀를 때린다.
누군가가 긴장을 이기지 못한 모양이다.
왜 긴장을 하는가.
상대는 겨우 한 명인데.
“둘…….”
그 순간, 나이트 르보는 느꼈다.
누군가가 대열에서 이탈한다.
‘물러선다고?’
열 명이서 한 명을 상대하는데, 그게 두려워서 도망가는 이가 있다고?
누구냐?
대체 누가 이런 후안무치한 짓을 한단 말인가. 나이트는 명예와 긍지가 있어야 하는 직위다. 대체 누가 명예를 이리 헌신짝처럼 버린단 말인가.
하지만 확인할 도리가 없다.
지금은 고개를 돌릴 수가 없다. 모든 신경을 강진호에게 집중해야 한다.
“하나…….”
‘온다!’
그 순간, 강진호가 마기로 불타오르는 검을 내리그었다.
파아아아아앙!
공기를 찢어내는 파공음과 함께 시커멓게 타오르는 마기의 검강(劍剛)이 나이트 르보를 향해 날아든다.
“으아아아앗!”
나이트 르보가 날아드는 검강을 오러가 잔뜩 실린 검으로 후려쳤다.
절대 경시하지 않는다. 상대는 명백하게 자신보다 강하다. 그러니 이 일격을 최선을 다해 막아내고 반격을 노린다!
전력을 다한 그의 검이 시커먼 마기와 맞부딪쳤다.
그와 동시에…….
콰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기의 폭발이 일어나며 나이트 르보의 몸이 장난감처럼 튕겨졌다.
그대로 두었다면 벽까지 튕겨져 나갔겠지만, 뒤쪽에 대기하고 있던 나이트 로드리게스가 튕겨 나가는 나이트 르보의 몸을 몸으로 받아냈다.
그그그그극!
나이트 로드리게스의 발이 바닥에 끌리며 긴 홈을 만들어낸다. 한참이나 밀려나고서야 겨우 멈춘 나이트 로드리게스가 기겁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본다.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나이트 르보의 입에서 시뻘건 피가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끄, 끄으윽!”
내장이 모두 터져 나간 느낌이다.
시야가 흐려지며 세상이 검게 변한다.
일격, 단 일격이었다.
그 일격만으로 타오르던 전의가 섬뜩한 공포로 전환된다.
“쿨럭!”
피를 뿜어낸 나이트 르보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대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머리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후…….”
그때, 강진호가 낮게 숨을 내뿜었다.
“그런 눈으로 볼 거 없어.”
저벅저벅.
강진호가 천천히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검은 마기 사이로 보이는 핏빛 안광이 차갑게 일렁이고, 솟구쳐 오르는 마기가 마치 날개처럼 그의 등에서 피어난다.
“이제 시작이니까.”
나이트들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