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99
#998.
격렬하다 (3)
“……미쳤네.”
“동감입니다.”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방진훈과 뱅상은 전투를 멈춘 채 멍하니 중앙에서 벌어지는 격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이끌던 이들도 어느새 복도에서 빠져나와 한쪽으로 도열해 있다.
심지어는 그들이 막아선 기사단들도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고는 중앙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다른 곳에서 벌어지던 전투도 어느새 끝나 있었다.
바토르와 장민도 손을 멈추고 안으로 다시 들어와 멍한 얼굴로 중앙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책임하다고?
그런 게 아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들의 전투는 대세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걸.
서로가 서로를 제압한다고 해도 저 괴물들을 막아낼 도리가 없다.
중앙에서 벌어지는 전투의 결과가 이 전쟁의 결과가 될 것이다. 그러니 쓸데없이 미리 힘을 빼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무인인 이상 이 말도 안 되는 전투를 놓칠 수가 없었다.
총회는 총회대로 강진호가 보여주는 신위에 말을 잃었고, 원탁은 되살아난 전설들의 힘 앞에 경의를 표하는 중이었다.
“사람이 저럴 수가 있나?”
“……자괴감이 드는군요.”
뱅상이 입술을 씹었다.
조금 전까지 그는 자신들이 가진 힘에 도취되었다. 총회에서 보낸 인고의 시간은 분명 그들을 강하게 만들어주었고, 과거라면 상대하기 버거웠을 이들을 압도적으로 제압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그 자신감을 모조리 앗아갔다.
비교가 안 된다.
절망적인 차이, 압도적인 차이였다.
평생을 수련하고 또 수련한다고 해도 과연 저 발자국조차 쫓을 수 있을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강진호와 비교한 것이 아니다.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강진호가 아니라 엘더 나이트 쪽이었다. 애초에 그는 강진호와 자신을 비교하는 걸 포기했다. 총회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은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강진호를 다른 차원의 존재라 규정해 두었으니까.
강진호가 아닌, 강진호를 마주하고 있는 열한 명의 엘더 나이트조차 그에게는 하늘 위의 존재들이었다.
‘가능하단 말인가?’
같은 무학을 익히고 같은 수련을 하는데, 어찌 저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단 말인가.
다른 이들도 다 충격이지만, 특히나 트리스탄이 보여준 검격은 뱅상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화인을 남겼다.
같은 검이다.
그리고 같은 흐름을 가진 무학이다.
그런데 결과가 이리도 다를 수 있단 말인가.
세월이라든가, 경험으로 변명할 수 있는 차이가 아니었다. 트리스탄의 검격은 그가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따라잡을 수 없는 압도적인 격차를 보여주고 있었다.
“……빌어먹을, 조금은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방진훈이 앓는 소리를 냈다. 그가 트리스탄을 보며 하는 생각을 방진훈은 강진호를 보며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충격이겠지.’
그가 엘더 나이트를 보며 느끼는 격차보다, 방진훈이 강진호를 보며 느끼는 격차가 더 클 테니까.
그리고…….
‘저들도 같은 걸 느끼는 모양이로군.’
거리를 두고 서 있는 원탁의 기사들도 할 말을 잃은 모양이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서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상황임에도 중앙의 전투가 멈춘 순간, 홀은 차가운 정적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지금, 강진호는 홀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원탁과 총회.
세계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최소 한 지역의 패자, 크게는 세계의 강자라 자부할 수 있는 두 세력의 정예가 모여 있지만, 중앙에서 전투를 벌이는 저들은 다른 모든 이들을 구경꾼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너무 굉장해서 말도 안 나오는군.’
뱅상이 눈을 가늘게 떴다.
봐야 한다.
저 전투가 끝난 후에 상황이 어떻게 흐를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반드시 저 광경을 봐야 한다. 일생에 있어서 다시는 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격전일지도 모르니까.
모두가 동일한 마음으로 중앙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엘더 나이트.”
위긴스가 신음하듯 말했다.
“무시무시하군요.”
“나도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다.”
마스터 역시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예상을 뛰어넘는군. 아무리 실전된 무학이 많다지만, 나름의 진보를 이루어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어.”
“마스터의 잘못이 아니십니다.”
“잘못의 문제가 아니야. 자괴감의 문제지. 나보다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네. 나는 엘더 나이트의 시험에 들 자격조차 얻지 못한 인간이니까. 하지만…… 저건 상상을 뛰어넘는군.”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저건 상상 이상이다.
과거의 나이트들이 지금의 그들보다 강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마법의 실전과 현대라는 환경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다.
국가적, 지역적인 모든 지원을 받으며 무학을 익힐 수 있는 과거의 환경과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무학을 익혀야 하는 지금의 환경을 동일시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엘더 나이트들은 그저 강하다. 그저 강할 뿐이다. 저들은 현대에 태어났어도 강할 것이다.
‘결국은 사람의 문제지.’
같은 무학을 같은 시간 동안 익히더라도 누가 익히는가에 따라 그 결과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저들이 익힌 무학이 특별한 게 아니다.
같은 무학을 익히고도 감히 따라갈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의 압도적인 성취.
원탁의 길고 긴 역사에서도 특별하다고 인정받은 재능들을 모으고 모은 결과가 바로 엘더 나이트다.
“그런데 그런 엘더 나이트들이…….”
“사람이 아니군.”
마스터가 고개를 내저었다.
“나와 상대할 때 봐준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면 거의 농락 수준이로군. 마음만 먹었다면 눈 깜짝할 새에 저승으로 갔겠어.”
“…….”
위긴스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있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더라도 마스터를 위로할 수는 없다. 그리고 딱히 위로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강진호의 신위에 충격을 먹은 것은 마스터만이 아니니까.
‘심장이 조여드는 느낌이군.’
위긴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강진호가 날뛰는 모습은 본 것은 냉정하게 말했을 때, 한 번뿐이다. 강진호가 바토르를 때려잡는 모습이 그가 본 유일한 강진호의 활약이었다.
그 외에는 강진호가 딱히 전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는 경우였거나…….
‘이미 끝난 뒤였지.’
홍왕과 강진호가 싸웠을 때, 그는 그 싸움을 직접 보지 못했다. 이미 강진호가 체력이 떨어져 쓰러져 있는 것을 구해왔을 뿐이다.
홍왕을 잠시 맞상대해 본 것만으로도 강진호가 얼마나 강한지, 얼마나 엄청난 격전을 치렀는지를 이해할 수 있지만, 이해하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다.
눈으로 직접 본 강진호의 전력은 뭐라고 할까…….
‘의미가 있을까?’
저 사람에게.
세력이라든가, 부하라든가…… 그런 게 의미가 있을까?
지금까지 위긴스는 강진호가 총회를 이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속내에는 총회를 강하게 만들어 자신의 방패막이로 사용하겠다는 의도도 조금은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 강진호의 모습을 보고 나니, 그런 생각에 근본적으로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저만한 힘을 가진 개인에게 과연 세력이라는 게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짐이진 않을까?
위긴스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뭘 태평하게 생각하고 있는 거냐, 그 ‘거추장스러운 짐’에는 위긴스 자신 역시 포함이 되는데.
‘강해져야 한다.’
강진호가 있으니 무학에 대한 열정은 조금 놓아도 된다고 생각한 위긴스였다. 하지만 지금 강진호의 모습은 그의 열정에 다시 한 번 불을 지피고 있었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구나.”
“아…….”
위긴스가 심호흡을 했다. 마스터를 앞에 두고 보일 모습은 아니다.
“죄송합니다.”
“나도 비슷한 심정이니, 너야 더하겠지. 너는 아직 젊으니까.”
“마스터도 젊으십니다.”
“하기야 저자들에 비한다면 젊겠지.”
마스터가 묘한 눈으로 엘더 나이트들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하나는 알겠구나.”
“어떤 것을…….”
“저 엘더 나이트들이 총회의 무학과 시스템으로 도달할 수 있는 정점이라면…….”
마스터가 살짝 뜸을 들이고는 말을 이었다.
“너희의 회주에 비해 너무도 초라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군.”
“그렇습니다.”
이건 당연한 말이었다. 엘더 나이트들은 강하다. 하지만 그들은 열하나가 모여서야 겨우 강진호와 대등하게 싸우고 있다. 개인으로 봤을 때는 비교의 가치도 없다.
“하지만 결과는 다를 수도 있겠군.”
“예?”
“최강의 개인이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지. 사자도 하이에나 떼를 만나면 결국은 살해당하는 법이지. 이곳은 야생이다. 개체가 강하다고 강한 것은 아니다. 무리가 강한 쪽이 이기는 법이지.”
위긴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말은 사실이었다.
강진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지금 저곳에서 엘더 나이트를 이기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강자인 채로 패배하게 될 테니까.
“엘더 나이트들이 이길 거라고 보십니까?”
“모르겠군. 솔직히 말하자면, 나 같은 하수가 감히 평가할 수 있는 전투가 아니잖은가.”
“…….”
“다만 한 가지.”
“예?”
마스터가 가라앉은 눈으로 말했다.
“만약 자네의 회주가 저 싸움에서마저 승리한다면, 원탁은 바뀌어야겠지.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는 거니까. 미리 말하지만, 만약 자네의 회주가 이긴다면 나는…….”
마스터가 씹어뱉듯 말했다.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원탁을 뒤집어엎을 생각이네. 물론 그 개혁의 중심은 총회가 되겠지.”
위긴스의 시선이 강진호에게로 향했다.
‘이겨야 합니다, 회주님.’
그그그그극.
청루와 적루가 바닥을 긁으며 거슬리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천천히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강진호를 바라보는 엘더 나이트들의 눈빛이 험악해졌다.
태연하게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강진호의 모습은 수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으드득.
이 갈리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린다.
인정한다.
강진호는 강하다.
그들이 홀로 강진호를 상대한다면, 저항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목을 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일대일로 정정당당하게 겨루는 결투가 아니었다. 서로가 가진 전력을 있는 대로 퍼부어 승부를 가려야 하는 전쟁이다.
엘더 나이트 전체의 힘이 이곳에 있다.
그들이 모두 모인다면 한 나라를 무너뜨리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그만한 힘을 앞에 두고도 강진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여유롭게 그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이만한 굴욕이 또 어디 있겠는가.
“흥분하지 마라.”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은 더없이 강하다. 우리 모두의 목숨을 걸어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정도다. 흥분한다면 패배는 너무도 빤한 일이지.”
“으으음.”
가웨인의 목소리에 엘더 나이트들이 냉정을 되찾았다.
이 흥분은 분노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두려움에서 나온다. 저리 여유를 보이며 다가오는 이가 강진호만 한 강자가 아니라면, 그들이 내보이는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비웃음이었을 테니까.
상대가 너무도 강하기에 오히려 분노가 생기기도 하는 법이다.
“브루노어!”
“여기 있다.”
“여기서 갈린다. 알고 있겠지?”
“물론!”
브루노어의 손이 방패를 부러질 듯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핏발이 선 눈으로 강진호를 노려보았다.
“가자!”
“우오오오오오!”
브루노어가 전력을 다해 앞으로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