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ing a world on your own with an infinite capital RAW novel - Chapter 247
7화 신세계 (1)
뉴욕에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국제회의가 열린다.
우선 UN 본부가 있고, 명실상부한 세계의 중심이 뉴욕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문제는 워싱턴에게 한발 양보하지만, 경제와 문화는 뉴욕이 한 끗발 앞선다.
그 뉴욕을 대표하는 곳은, 당연히 맨해튼.
인류 최초의 현대적 대도시이자 자치구다.
주소에 ‘New York, NY’라고 표기되면 무조건 맨해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시내’라 부르는 것과 비슷한 어감이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뉴욕 중의 뉴욕, 맨해튼.
그 맨해튼을 상징하는 건물이 있으니… 엠파이어 스테이트 미르 빌딩이다.
영화 킹콩이 등장한 빌딩, 미국 마천루의 역사 등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미르 그룹의 본사다.
뉴욕의 명물 옐로우 캡 택시 기사들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라고 하지 않는다. 미르 그룹 본사요? 이렇게 묻는다.
뉴욕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여기서 또 국뽕 한 사발을 들이켜고 만다.
대단하지 않은가.
해외에 나가면 한국 기업의 로고만 보여도 가슴이 울렁거리는데…….
미국의 중심 뉴욕, 뉴욕의 중심 맨해튼, 맨해튼의 상징적인 건물 꼭대기에 ‘MIR GROUP’ 영문명과 ‘미르 그룹’ 한글 간판이 박혀 있다니.
이건 미국을 점령한 것과 같은 꼴이다.
그런 미르 그룹의 대회의실이 꽉 차 있었다.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시혁이나 최고 수뇌부들의 성향이 워낙 담백해서인지 미르 그룹은 계열사 전체 회의가 거의 열리지 않았었다. 기껏해야 각 분야별 임원 회의가 열리는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 천 명까지 입장 가능한 대회의실에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었다.
더 놀라운 광경은 참석한 이들 모두 세계적으로 엄청난 글로벌 기업들의 회장, 대표, 재무이사급 최고 경영진.
“회장님 입장하기 전에 장내 정리를 좀 하겠습니다. 호명하면 일어나 참석 여부를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를 맡은 퍼피 홀덴의 음성이 마이크에서 흘러나오자, 웅성거리던 장내 소음이 뚝 그쳤다.
“먼저 에너지 계열부터 호명하겠습니다. 엑슨 모빌의 아담 헤일로 대표 및 일행 여러분.”
헨리 제리코가 시혁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처참하게 망가져 강제 은퇴를 당한 뒤 시혁에게 낙점을 받은 현 대표와 경영진은 벌떡 일어나 좌중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놀란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엑슨 모빌은 세계 톱이다. 왕좌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초거대 공룡기업.
산하의 자회사만 해도 수백 개가 넘는다. 그런 기업이 회장도 없다. 황제가 아직 임명을 하지 않은 탓이다.
“죄송하지만 너무 많아서 일일이 이름을 호명하지 않겠습니다. 회사명만 부르는 것을 이해 바랍니다.”
“…….”
“다음, 쉐브론.”
쉐브론의 마샬 회장은 일행들과 같이 일어나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자신이 살아 있는 한 경영권을 보장한다는 황제의 약속은 여전히 지켜지고 있었다. 몸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코노코 필립스.”
마크 리버 회장 역시 다섯 명의 일행을 재촉해 인사했다. 만족스러운 미소가 역력했다. 황제에게 대항했다가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엑슨모빌의 전 회장 헨리가 문득 떠오르자 부르르 떨렸다.
“영국의 로열 더치 쉘.”
월리엄 쉘던 회장과 몇 명이 일어나 참석을 알렸다. ‘미국에 엑슨모빌이 있다면 영국에는 로열 더치 쉘이 있다’라고 할 정도의 덩치를 가진 기업.
특이하게 네덜란드 국영기업과 영국 민간 기업의 합작 형태로 운영되던 것을 시혁이 네덜란드 지분을 다 사들이고 완전히 독립시켜, 영국 법인장을 회장으로 임명한 곳이다.
“역시 영국의 BP.”
리처드 레드포드 회장은 노환에 시달리고 있었다. 휠체어가 아니면 스스로 거동이 힘들 지경이었다. 그래도 오늘 수행원의 부축을 받아 참석했다.
자신이 사망하는 순간 경영권도 떠난다. 막대한 연봉과 전용기, 비서, 차량과 집까지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없어진다. 어떡해서든 살아 있다는 것을 황제에게 보여 줘야 한다.
조금 더 큰 박수가 나왔다. 어느 정도 세븐시스터즈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아름아름 알려졌다. 왜 저 노구의 회장이 부들부들 떨면서 참석했는지 다 짐작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토탈 에너지.”
루이 자그레브 회장도 비슷했다. 리차드 레드포드보다 조금 건강하지만 벌써 80대 중반이다. 언제 안녕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
“이탈리아의 에니.”
지오바니 조제페는 세븐시스터즈 회장 중 가장 젊은 축에 속한다. 앞으로 이십 년은 더 회장 자리를 유지할 자신이 있었다.
빙긋 웃으며 손까지 흔들어 주는 쇼맨십을 연출했다. 참석자들도 웃음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응원하는 박수가 나왔다.
“여기까지 세븐시스터즈에 속하는 에너지 계열 회사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미안하지만 산하 핵심 에너지 자회사들은 따로 호명하지 않겠습니다. 다 같이 일어서서 참석을 확인해 주십시오.”
퍼피의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일어서는 사람들로 장내가 소란스러웠다. 대충 잡아도 삼백 명은 넘는다. 자회사라고 해도 자본금이나 매출 규모가 웬만한 재벌 그룹 뺨따귀를 갈길 수 있는 회사들이다.
“다음으로 금융 계열사들 호명하겠습니다. 리먼 브라더스.”
이 이름이 호명될 줄이야.
미국 4대 투자은행의 수위를 놓치지 않았던 리먼 브라더스. 이 은행 덕분에 미국은 골로 갈 뻔했었다. 지금 2005년이 아니라 2년 후인 2007년에.
아이러니한 것은 리먼 브라스더를 확실히 사망하게 만든 것이 한국의 국책은행이었다는 사실.
당시 그로기 상태였던 리먼 브라더스는 자신을 제값에 팔아 치우려고 3개 금융사와 밀당 중이었다.
그중 한국의 국책은행이 가장 적극적이었고, 리먼은 간도 쓸개도 빼놓고 매달렸다. 그만큼 외부 수혈이 없으면 버티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국 국책은행도 호구는 아니었다. 1주당 가격이 30달러에서 18달러까지 내려앉은 리먼의 주식을 6달러에 사겠다고 배짱을 튕겼다. 그것도 알짜배기 사업군만 인수하는 조건을 제시하면서.
그래도 팔아 보려고 리먼이 콜을 부르려는 찰나.
국책은행은 냉정하게 자신들이 제시한 6달러 딜을 다른 경쟁 금융사에 공개해 버렸다. 국내 사정이 리먼을 인수하기에 녹록치 않다는 판단을 하고…….
못 먹는 밥에 재를 뿌린 것이다.
바로 반응이 왔다.
‘어라? 긴가민가했는데, 진짜 리먼이 6달러 가치도 없는 은행이었어? 우리도 포기!’
이 한 방에 리먼은 머나먼 골짜기로 가 버렸다. 하마터면 미국 전체가 리먼을 따라서 같이 끌려갈 판이었다. 이게 전 세계를 강타했던 2007년 금융위기의 시작이었다.
본질은 ‘서브 프라임 모기지’라고 하지만, 리먼에게 산소호흡기를 떼 버린 트리거(방아쇠)는 한국 국책은행이었던 셈이다.
그 운명의 회사, 리먼 브라더스의 경영진이 일어나 정중하게 허리를 접었다. 아직까지 월가의 맏형이라는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JP 모건.”
리먼 브라더스가 호명될 때부터 술렁이던 회의실이 경악에 빠졌다.
이건… 진짜 많이 놀랐다.
리먼 브라더스가 월가의 맏형 노릇을 하려고 아무리 뻐겨도 절대 맞상대가 되지 않는 규격 외의 상대.
명실공히 미국 최대 규모의 은행이 JP 모건이다. 감히 비벼 볼 엄두도 낼 수 없는 이름. 미국을 지탱하는 가장 큰 돈줄이 JP 모건이니까.
그런 JP 모건의 회장과 일행조차 의자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여기서 조금 양해를 구했으면 합니다.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나머지 금융 계열사는 한꺼번에 호명하겠습니다. 골드만 삭스, 모건 스탠리, 웰스 파고, 뱅크 오브 아메리카, 참석 확인 부탁드립니다.”
모두 시혁에게 겜블을 걸었다가 노예로 전락한 월가의, 미국을 대표하는, 전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은행 이름들이 호명되었다.
미처 모르고 참석했던 타 업종 계열사 경영진은 멘붕에 빠지고 말았다.
‘너희들도?’
‘너희가 거기서 왜 나와!’
‘말도 안 돼.’
‘저 회사 중 하나만 있어도 무한정 자금을 땡길 수 있겠구나.’
“다음은 인터넷 관련 계열사, 전자 계열사, IT 계열사 순서입니다. 한꺼번에 호명하겠습니다.”
“…….”
“엔바디아, 컬컴, 아마조네스, 삼송전자, TSMD, 고골, 번거롭지만 일어서 주세요.”
에너지 산업과 금융에 이어 미래의 먹거리를 책임진 첨단 기업 회장단이 모조리 거명되었다.
저들은 미래다.
지금도 공룡 수준이지만, 날이 갈수록 저 회사들이 여기 모두를 추월할 것이다. 모인 이들 중 그 정도 안목이 없는 이는 없었다.
“아버지, 심장이 멎을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다. 무섭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우리 삼송보다 못한 기업이 없습니다.”
“아득하구나.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김시혁 회장과 적대했던 흑역사를 지우고 싶다.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다.”
“아버지…….”
“우리 민족 5천 년 역사다. 누가 저렇게 세계를 장악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냐? 누가 저만큼 경제 영토를 늘린 이가 있었더냐? 위대한 인물이다.”
“저도 부끄럽습니다.”
“대학교 때 일 말이냐?”
“네. 우물 속 개구리처럼 뚫린 천정 구멍을 통해 세상을 봤죠. 삼송의 후계자라는 자만심에 가득 차서요.”
“그래, 애비가 보기에도 그 당시 너는 한심했다.”
“네, 우물 밖 하늘이 얼마나 큰지 몰랐어요. 3류 깡패를 동원해 김시혁을 공격했던 흑역사… 지금 떠올려도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이건호와 이자룡은 참석한 회사와 이름이 공개될수록 질리고 말았다.
삼송에 근무하는 임직원치고 SKY 출신 아닌 이 없고, 치열한 입사 경쟁을 거치지 않은 이 없다. 다 나름 수재라고 자부한다. 삼송 직원이라면 일등 배필감에 등극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1등 간다는 삼송의 이건호와 이자룡은 말석에 앉아 있었다. 여기 운집한 어떤 회사도 삼송에 밀리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특별한 회사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중국에서 국민 SNS ‘웨이쳇’으로 단숨에 1위를 차지한 ‘댄센트사’의 마화통 회장. 그리고 국민 포털 ‘바이도’로 2위에 등극한 리엔 황 회장.”
하다하다 이젠 중국의 1위와 2위 그룹까지 나왔다. 놀라기도 지친다.
“또 안타깝게 침몰하고 말았지만 예전 일본국 1위의 투자자로 명성을 날렸던 ‘소프트 파워’의 손창의 회장. 참고로 현재 극동 미르 신세계 투자청장을 맡고 있습니다.”
머리가 시원하게 벗겨진 남자가 일어나 구십 도로 허리를 꺾었다. 지난 세월 몇천 배씩 이익을 남긴 국제적으로 유명한 벤처 투자자다.
열도가 침몰한 이후 황제의 배려로 극동 투자청장을 맡아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 소개해 드릴 두 분은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했습니다. 우리 미르 그룹과는 영원한 혈맹이기도 하죠. 유럽 중앙은행의 산드라 총재와 FRB의 엘런 그린스펀 의장 일행입니다.”
늘씬한 산드라와 황금색 안대를 낀 윌슨이 일어났고, 두툼한 뿔테 안경을 낀 그린스펀 의장과 7명의 FRB 총재들이 모두 일어섰지만… 박수를 치는 사람이 없었다.
이들이야말로 앞선 어떤 사람과도 다른… 한마디로 천외천의 존재들이다.
전 세계 달러와 유로를 찍어 내는 기축통화의 제왕들이 옵서버 형식을 빌어 참석한 것이다.
돈을 버는 쪽과 돈을 찍는 쪽… 엑슨 모빌이 큰 기업이고, 고골과 아마조네스가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비교가 불가하다.
왜 이들이 이 자리에 참석했는지, 옵서버라고 소개를 했지만 다 알고 있었다.
저들도 황제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 외에도 세계 각지에서 와 주신 여러 기업가, 투자자, 관계자 여러분. 일일이 호명하지 못한 점 양해 바랍니다. 이분을 소개하지 않으면 섭섭할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미뤘습니다. 극동 미르 신세계 캔디 박 행정청장입니다.”
그룹의 일원이라기보다 한 나라의 수반급, 어쩌면 조만간 4대 강국에 등극할 것이 확실한 극동의 지배자 박하송이 소개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여기 참석한 이들은 하나같이 극동에 투자했거나 공장을 가지고 있는 처지다. 박하송과는 여러 가지 일로 얼굴을 맞댄 사이다. 산드라와 엘런 그린스펀이 소개될 때와 다른 함성이 터질 만했다.
“자, 대충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오늘 미르 그룹 전체 회의를 주관하실 우리의 총수, 마이다스 킴 회장님을 모시겠습니다. 모두 일어서 경의를 표해 주시기 바랍니다.”
퍼피 홀덴이 마치 UFC 장내 아나운서처럼 두 손으로 입구를 가리키자 회의장의 모든 이들이 몸을 일으켰다, 한 명도 빠짐없이.
그리고 시혁이 문을 열고 나왔다.
드디어 황제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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