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ing a world on your own with an infinite capital RAW novel - Chapter 248
8화 신세계 (2)
뚜벅거리며 단상을 향해 걸어오는 한 사람에게 모든 시선이 꽂혔다.
감히 입을 열 수 없었다.
이토록 경건할 수 있는 것인가.
고요하다.
심연에 가라앉은 돌멩이처럼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단상에 자리를 잡은 한 사람.
마이다스 킴이다. 김시혁.
황제라고 불리는 유일한 사람.
공식적인 직함은 아니지만 부정할 사람은 없었다.
오직 그만이 황제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는 존재였다.
“반갑습니다. 미르그룹의 모든 임직원 여러분, 김시혁입니다.”
이제서야 터지는 함성과 박수.
마치 황제가 입 열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장내가 끓어올랐다.
시혁이 오른손을 조금 들어 올리자, 그 함성은 순식간에 멈추고 여기저기서 침 삼키는 소리만 들렸다.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인 건 참 오랜만입니다. 여러분의 헌신에 대해 회장으로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여기까지는 덕담 수준이다.
그러나, 모두 알고 있었다. 황제가 산하의 모든 핵심 기업을 불러 모은 것에는… 분명 다른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그 말을 기다리며 숨을 참는 것이다.
“저는 우리 그룹의 기조를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소유하되 경영은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믿기 때문입니다.”
“…….”
“마음껏 도전하십시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성공은 기쁜 일이지만 실패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얻는 교훈이 우리를 더 강하게 단련시킵니다.”
“…….”
“여기에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하나의 단서가 있습니다.”
달아오르던 장내 분위기가 시혁의 ‘반드시’라는 단어에 긴장하기 시작했다. 간간이 딸꾹질하는 사람도 보였다.
“우리는… 하나라는 것. 각기 다른 분야에서 노력하고 있지만,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절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억눌렸던 숨이 겨우 입 밖으로 내뱉어지면서 다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런 의미였다면 다행이라는 뜻이었다, 폭탄 발언이 아니라.
그러나.
“이 ‘하나’라는 울타리를 부수고 나가는 세력이 있다면, 저는 좌시할 생각이 없습니다. 댐을 무너뜨리는 것은 핵폭탄이 아닙니다. 그 ‘하나’를 망각하고 구멍을 뚫는 개미입니다. 결코 용서하지 않습니다.”
후우와!
그런 뜻이었어?
이건 경고를 넘어 살 떨리는 비수다.
황제는 지금껏 말로 한 적이 없었다. 생각하면 꼭 해치웠다. 행동으로 증명해 왔다.
액슨 모빌의 헨리 제리코가 그랬고, 영국 총리가 그랬고, 알 카에다의 빈 라덴이 그랬다.
‘배신하면 죽는다.’
딸꾹딸꾹.
“오늘 여러분을 모신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이제부터 그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또 있어? 경고 말고 다른 게 있단 말이네?
점점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로 숫자에 집착해 왔습니다. 그 숫자는 돈이라는 괴물을 만들어 냈죠. 돈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돈을 신처럼 떠받듭니다. 결국 돈을 괴물로 만든 건 우리 인간입니다. 돈이 괴물처럼 인식되면 안 됩니다. 돈은 숭고한 가치여야 합니다. 땀 흘린 보상, 그게 바로 돈입니다.”
여기서 말을 끊은 시혁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단상 아래 참석자들을 둘러보았다.
개중에는 아는 이도 있고, 처음 보는 이도 있었다. 모두 자신과의 얽히고 설킨 인연으로 모인 이들이다.
새록새록 다 생각이 났다.
모두 욕망의 재물이 되었거나 야망의 거름이 된 이들이다. 시혁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각기 거대한 회사의 주인이 되었을 이들이다.
역사를 비튼 것은 자신… 시혁이다.
그렇다고 죄책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선택은 저들 스스로 한 것이다.
시혁은 항상 기회를 주었다. 그 갈림길에서 욕망에 못 이겨, 야망에 뇌수가 마비되어 시혁에게 먹힌 이들도 있었다.
반대로 시혁의 투자에 힘입어 훨씬 빠르게 치고 올라가 성공한 이들도 있었다. 비록 많은 지분을 시혁에게 공여했지만, 그건 겜블로 빼앗은 전자의 사례와 또 다른 케이스다.
정당한 거래였다. 시혁이 투자하고, 미래의 기억으로 길을 알려 주었다. 상대방도 지금의 결과에 만족할 것이다. 그럼 된 거다.
그리고 시혁과의 개인적인 인연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핵심 조력자… 이들이야말로 친구라 할 만했다.
엘리, 공사홍, 박하송, 산드라, 윌슨, 손창의, 퍼피 홀덴… 아마조네스의 임원으로 참석한 동생 태식이까지.
추억에 잠길 시간이 아니다. 오늘의 목표가 따로 있었다.
“우리 핵심 계열사 중에 특히 돈을 다루는 금융 관련사들에게 경고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집중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판매를 즉각 중단하시길 권고합니다. 저는 미리 천명했듯이 각 회사의 경영에 개입할 생각, 1도 없습니다. 다만, 지금 여러분이 하는 행위는 돈을 괴물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건 곧 여러분을 감당하기 힘든 지옥의 유황불로 끌어들일 것입니다. 같이 빠져 죽자는 물귀신처럼 말입니다. 확신합니다.”
순간, 슬그머니 스마트폰을 꺼내 드는 부류가 있었다. 방금 지적당한 금융 관계사 회장단이었다.
황제의 예측은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모두 현실이 되었다.
그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우리는 1997년 아시아발 세계 금융위기를 겪었습니다. 덕분에 월가는 돈을 벌었지만, 반대로 아시아 국가들은 참혹한 세월을 버텨야 했습니다. 이게 돈이 괴물로 나타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좋으십니까? 무조건 돈을 벌었으니 우린 좋아해야 하는 겁니까? 제가 지적한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은 수많은 사람을 고통에 빠트릴 것입니다. 가정이 깨지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가장은 거리를 헤매게 됩니다. 즉시 이와 관련된 파생상품 판매 중단을 재차 권고합니다. 그게 돈을 괴물로 만들지 않고 건강하게 되살리는 길입니다. 그 과정 중에 상당한 손실이 발생할 것입니다. 껴안으십시오. 그 길만이… 여러분이 진정한 자본가로, 금융맨으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우리는 괴물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괴물이 아닙니다. 돈을 건강하게 벌 수 있고,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 줍시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또 말을 끊고 천천히 좌중을 둘러보는 시혁.
고요하다.
침을 삼키거나 딸꾹질을 하는 이도 없었다. 그저 시혁을 향해 눈을 빛내고 있었다.
손해를 보란다. 당당하게 손해를 떠안으라고 말한다. 그게 돈을 숭고하게 만드는 행위란다. 괴물이 아니라 건강한 인간임을 증명하란다.
그런데도 그 말을 듣는 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돈을 벌고, 수익을 내기 위해서라면 피도 눈물도 없다는 월가의 투자자, 자본가, 금융맨… 이들조차.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들이 팔고 있는 파생 상품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것인지.
지금은 이 폭탄 돌려 막기에서 수익을 따먹고 있지만.
언젠가 터지면 진짜 월가를 넘어 전 미국을 강타하고 그 파장이 전 세계로 퍼진다는 것을.
“세상에 도박 아닌 것이 있겠습니까? 증권시장도 일종의 도박판입니다. 오를지 내릴지를 판단할 뿐이죠. 도박은 항상 선택이 뒤따릅니다. 이걸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의지로 초이스하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사기는… 다릅니다. 적어도 도박은 형평성이 어느 정도 갖춰진 판때기, 그래서 선택할 자유라도 있지만,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 사기)처럼 언젠가 터질 결과치를 알면서 판매하는 건… 인간으로서 부끄러운 일입니다.”
더 입을 열 수 없게 만든다.
폰지 사기라는 말까지 나와 버렸다.
이탈리아 출신의 금융인 찰스 폰지가 최초로 저질러 고유명사가 된 이름, 폰지 사기.
실제 이윤을 낼 수 없는 아이템을 내세워 높은 수익을 미끼로 투자자를 모집한 뒤, 처음에는 고리의 이자를 지급하다가.
더 이상 밑돌을 빼서 윗돌을 막을 만큼 투자자가 모이지 않는 시점이 도래하면 몽땅 남은 돈을 들고 튀거나 파산하는 행위.
이게 전형적인 폰지 사기에 해당한다.
월가에서 작금에 벌어지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이 폰지 사기와 같다는 말이었다.
스마트폰을 터치하는 손길들이 바빠졌다.
-즉시 서브 프라임 모기지 관련 파생 상품 판매를 중단할 것.
-멈춰! 더 이상 팔지 마.
-우리가 판매한 상품을 다 회수하면 손실이 얼마인지 계산해서 보고할 것. 지금 바로!
“이제 마지막 화두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먹이를 주길 바라는 아기 새처럼 입을 벌리고 시혁만 쳐다보는 이들.
가장 중요한 안건이라고 하셨다.
이게 폭탄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워밍업이었어.
“저는 여기 오기 전, 중동의 산유국 정상들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만나고 왔습니다. 이제부터, 아니 오늘부터군요. 모든 석유 거래는 달러로 하지 않습니다. 오직 가상화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으로만 합니다.”
터졌다!
이건 진짜 충격이다.
여기 참석한 세븐시스터즈도 몰랐나 보다. 입을 헤 벌리고 있는 회장단의 얼굴이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달러가 금본위제를 버리고도 세계 기축통화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 그건 석유 거래를 무조건 달러로 한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조와 미국의 밀약으로 비롯된 것이었다.
그만큼 석유 거래의 기본 화폐 변경은 놀랍고 파격적인 핵폭탄급 이슈였다.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유로는 유럽의 공용 화폐로서 역할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달러는 전 세계를 아우르는 기축통화로서의 질서가 개편되는 걸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미리 세븐시스터즈에게 상의하지 않은 건 혼란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니다.
사실은 여기 있는 모두가 연관된 사안이기 때문이었다.
달러 패권이 흔들이는 초유의 사건이다.
달러는 세븐시스터즈와 일반 회사까지 이들 자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가치가 무너진다는 말이다.
와르르-
“너무 충격받지 마십시오. 저는 앞으로 이 가상 화폐를 국제 간 무역 거래와 석유 거래 전용으로만 쓸 겁니다.”
그게 더 무섭죠!
곧 달러는 일부 지역에서나 유통되는 쪼그리 신세가 된다는 말 아닙니까?
“가상 화폐는 오로지 ‘극동 미르 신세계 투자청’에서 전담 관리합니다. 내 울타리 식구들의 자산은 모조리 가상 화폐로 교환해 드리겠습니다. 식구니까요.”
“……!”
-살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살 길이 있다더니, 황제께서는 다 계획이 있었어.
-그렇지. 하루아침에 똥종이 될 달러보다 가상 화폐!
– 겨우 한숨 돌리겠다. 석유를 살 수 있는 화폐란… 두말 필요없이 기축통화로 등극할 거니까.
-그런데 우리 자산이 모두 달러인데 이것을 가상 화폐로 교환해 주면, 결국 모든 손실은 황제가 떠안겠다는 거잖아?
-그래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하신 거였어.
-아… 먹먹해진다. 우리를 위해 저런 희생을 각오하실 줄이야.
-진짜 황제의 품속에 들어온 이후 제일 감격적이다. 위대하신 우리 황제!
-만세, 만세, 만만세!
응, 아냐.
나는 어차피 돈을 찍어 내던 사람이거든.
그리고 비트코인과 이더리움도 맘대로 생성한 것을 주는 것에 불과해. 결국 종이 쪼가리와 데이터 쪼가리를 교환해 주는 것뿐이야.
쌤쌤이라고… Same Same 몰라?
아! 미안, 쌤쌤이 아니다. 비록 하락하겠지만 달러는 그래도 어느 정도 가치가 남지. 그걸 받고 데이터를 날리는 것이니까… 흐흐흐, 많이 남는 장사네.
표정 관리가 필요하다, 지금은.
‘저 사람들 봐! 다들 감격에 벅찬 얼굴이잖아. 절대 웃으면 안 돼.’
* * *
힘든 하루였다.
시혁은 입을 이리저리 비틀어 얼굴 근육을 풀었다. 음흉한 웃음을 참기가 진짜 쉽지 않았다.
“엄마.”
“응, 딸.”
“아빠가 이상해.”
“뭐가?”
“또 무슨 일을 저지른 사람 같아.”
“…….”
“꼭 엄마 몰래 야식 라면 먹기 성공하면 저 표정으로 웃던데… 이상하네.”
“너는 그걸 어떻게 아니?”
“……!”
“좋. 게. 말. 할. 때… 털어놓는 게 좋을 거야.”
“나는… 안 먹었어.”
“어떻게 아는지 물. 었. 다.”
“그냥 구경하다가 국물만 조금 얻어 마셨… 는데.”
무한 자본을 향한 회의가 끝난 날, 102층에서는 부녀의 비명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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