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ing a world on your own with an infinite capital RAW novel - Chapter 251
1화 무한 자본의 꿈 (완결)
“마운.”
“응.”
“왜 한 번도 나를 찾지 않았나?”
“올 줄 알았어, 시혁 자네라면.”
“그게 아니라 편한 길을 두고 왜 힘들게 먼 길을 돌아왔느냐는 말일세.”
“내 마누라 때문에.”
“엥?”
“마누라가 그러더군. 당신이 아무리 성공해도 친구의 발끝조차 따라갈 수 없을 거다. 그래도 스스로 이뤄라. 자네같이 훌륭한 친구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그래야 한다.”
“……!”
“나도 같은 생각이었어. 손창의 회장이 자네의 수하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자네라면 따로 언질을 줄 사람이 아니지. 그래서 떳떳하게 받았어. 그 투자금을 종돈으로 여기까지 온 걸세.”
“이 지독한 자존심 덩어리. 옹고집!”
“씨. 곧 홍콩 증시에 상장할 예정이었어. 그런 다음 바로 뉴욕에 갈 생각이었다고.”
마주 보는 두 사람의 얼굴에 염화시중의 미소가 감돌았다.
“이제 뭘 하고 싶나?”
“글쎄, 우선은 중국에서 당할 자 없는 부자가 되어야겠지. 그리고 생각해 볼걸세.”
“마운, 피나는 노력으로 여기까지 올라왔을 거야. 그런데 말이야. 이제부터는 노력만으로 안 돼. 거기에 다른 것이 추가되지 않으면 절대 정상에 오를 수 없네.”
“그게… 뭔가?”
“믿음.”
“……?”
“사람에 대한 믿음. 자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어. 자네는 방향만 제시해. 그 일을 성사시키는 건 주위 사람들에게 맡기고, 뒤로 물러나게. 그래야 단숨에 몇 계단을 뛰어넘을 수 있다네.”
“무조건 믿으라.”
“응, 무조건.”
“우리 중국인들은 원래 사람을 잘 믿지 않아. 오죽하면 ‘중국 빤스’라는 말이 있겠나?”
“배신하는 놈도 나오겠지, 사람이니까. 그럴 때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응징해 줘. 보고 있는 다른 이들이 몸서리치고 꿈에 나오도록.
“흐음.”
“하지만 믿을 때는 다 줘야 한다. 어설프게 감시하고 통제를 강화하면 할수록 그 사람의 능력을 다 끌어낼 수 없다.”
“……!”
개안을 한다는 게 이런 것이다. 마운은 왜 시혁이 황제라고 불리는지 알았다.
당연한 말이었지만 실천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과연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중국인 최초로 포브스 표지를 장식한 자네 아닌가. 잘 해낼 것으로 믿네, 친구니까.”
“시혁.”
“응.”
“나도 궁금한 게 있어.”
“어떤 거?”
“자네가 바라보는 세상의 끝은 어디인가?”
이번에는 시혁이 대답하지 못했다.
솔직히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까.
* * *
“형님아.”
“왜?”
“처음으로 가는 휴가, 괜찮았습니까?”
“응, 십 년 묵은 숙변을 다 내린 것처럼 시원하다.”
“아버지 없으니까 심심합니다.”
“나도.”
“어디 계실까요?”
“글쎄… 아마 겨울이 닥치기 전에 부지런히 탁발 다니고 있겠지.”
“요즘 인심이 옛날 같지 않아서 걱정입니다. 보리 됫박이라도 얻으면 다행인데.”
“너 기억 안 나냐? 아버지가 작정하면 장롱 속의 비상금까지 다 털게 되어 있어.”
태식과 시혁은 킬킬 웃었다.
둘 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품속에서 꼬물거리며 큰 사이다. 태식은 그래도 7살이 넘어 보육원으로 왔지만, 시혁은 갓난쟁이 때부터다.
아버지의 신공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합장을 하면서 슬픈 표정을 지으면, 그 순간 종교를 떠나 누구나 감정이 북받칠 수밖에 없었다.
‘아! 가슴이 미어진다.’
당장 도와주지 않으면 억장 무너질 것처럼 만드는 탁발 신공이 아버지에게 있었다.
어쩌다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본 아버지. 연신내의 마귀 퇴치사로 유명한 교회 권사님도 울먹이며 쌀을 퍼 주곤 했다.
슬그머니 몸을 돌렸던 태식과 시혁. 그땐 왜 창피하게 생각했을까?
그리운 아버지.
“시혁 형님아.”
“응.”
“이제 형님은 꿈을 다 이뤘습니까?”
“꿈?”
“옛날에 그랬잖아요. 끝도 없는 돈, 헤아릴 수 없는 자산, 결국 ‘무한 자본’을 만드는 거… 그게 형님 목표라면서?”
“무한 자본이라…….”
“이만하면 세상 모든 돈이 다 형님 꺼 아닙니까?”
태식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돈을 번다는 의미는 아무 가치 없는 목표가 되어 버렸다.
마음만 먹으면 세상을 다 살 수 있다.
마음을 더 독하게 먹으면 나라를 몇 개나 세울 수도 있다. 또 멸망시킬 수도 있다.
돈의 힘이란 그런 것이다.
시혁이 가진 권력의 핵은 돈이다. 그 돈으로 미국을 비롯한 러시아, 중국, 유럽, 한국을 아우르는 연결 고리를 만들었다. 극동 시베리아에는 자치령도 만들었다.
시혁의 울타리 안에 들어와 있는 모든 힘이 동원된다면 미국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얼마 전 마운에게 받았던 질문이 태식에게도 나온 것이다.
선뜻 대답을 못 하겠다.
‘나는 꿈을 이룬 걸까?’
‘나는 빌런일까, 아니면 영웅일까?’
‘무한 자본으로 세상을 마음껏 바꿀 수 있으면 된 게 아닐까?’
자신이 생매장을 당했던 2022년까지는 17년이라는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 당장 2년 후 닥칠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있고, 수많은 사건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다.
그리고 억지로 4년간 대통령 자리를 미루도록 종용한 조지 부시 주니어의 선거도 임박했다. 친구를 맺은 가족의 일이다. 당연히 힘을 보탤 생각이다. 시혁이 나서서 찬조 연설 몇 번만 하면 부시는 대통령이 된다.
시혁이 마음먹으면 역사를 비틀 수도 있고, 막을 수도 있으며, 맘대로 조종할 수도 있다.
모두 시혁을 향해 지구상에서 유일한 황제라고 부른다.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누가 그 위대한 이름을 거부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가슴이 텅 빈 것처럼 허망할까? 이 근원적인 숙제를 풀지 못하면…….
‘나는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 * *
“찾아!”
“그래요. 전 세계를 발칵 뒤엎더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어. 왜 갑자기 이러시는지 모르겠네.”
“혹시 우리가 뭘 잘못했나? 회장님, 유독 식구들에게 관대하잖아?”
“그럴 수도 있지. 하여튼 뭔가 서운하셨던 게 틀림없어.”
핵심 측근들이 모두 모였다.
공사홍, 박하송, 산드라, 윌슨, 퍼피… 근심이 한가득이다.
회장이 사라졌다.
달랑 편지 한 장 남기고.
“어이가 없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행을 떠났다는 거야.”
“여행? 회장님이? 그걸 믿어?”
“메모를 남기셨잖아?”
“음모야. 우리가 모르는 음모가 숨어 있어.”
“회장님을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거다. 솔직히 내가 성한 몸이었을 때도 회장님한테는 한 주먹 거리도 안 됐다.”
한쪽에서 미리내를 안고 조용히 있던 엘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냥 두세요.”
모두 이구동성으로 한마디씩 내뱉었다.
“웃!”
“엘리!”
“왜?”
“뭐 아는 거 있어?”
“걱정 안 돼?”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엘리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이번에 중국에 휴가 가신 거 다들 기억하죠?”
“…….”
“딱 이틀 있었어요. 그분이 그래요. 지금까지 자신을 위해 진정한 휴식을 줘 본 적이 없거든요.”
“…….”
“어차피 세상 어디에 있건 알려지게 되어 있어요. 도 닦으러 간 것도 아니고, 잠행을 할 것도 아닌데… 다 소문이 들려올 겁니다. 우리는 그저 편안한 여행이 되도록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시죠.”
정리되었다, 한 방에.
그렇게 시혁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김보성과 캄퐁만 데리고 떠난 여행이.
* * *
“캄퐁. 네 고향, 멋진데?”
“네, 보스. 직입니더. 히말라야를 보지 않으면 인생의 끝을 보지 못한 거라예.”
룸비니에 도착한 시혁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앞으로는 티베트, 뒤로는 인도와 국경을 맞댄 네팔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국민의 80%가 힌두교를 믿는 나라다.
부처가 탄생한 곳이다.
그럼에도 전통 불교가 맥을 추지 못하고 있는 요상한 동네. 그게 네팔이었다.
시혁은 캄퐁의 집에 짐을 풀었다. 네팔에서는 보기 힘든 초현대식 건물이었다. 그동안 캄퐁은 연봉을 모아 고향에 집을 올린 것이다. 네팔에서도 손에 꼽히는 부자가 되었다.
“가 보자!”
“네, 보스. 모시겠십니더.”
걷고 또 걸었다.
네팔의 세르파 집안에서 자랐던 캄퐁은 훌륭한 안내인이었다. 거기다 김보성도 독기 만렙의 해병 특수 수색대 부사관 출신이다.
그런 두 사람조차 헐떡였지만, 시혁은 호흡을 고르며 전전했다.
겨울의 초입에 접어든 희말라야는 세 사람의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시야를 가리는 엄청난 폭설, 눈을 뜰 수 없는 칼바람, 수염에 고드름이 맺힐 정도의 매서운 추위.
멈추지 않았다.
해발 4,900m의 베이스 캠프를 떠난 지 꼬박 하루. 해발 5,800m 아이젠 포인트에서 만년 설산의 경계와 만났다. 여기서부터는 신들의 영역이다. 드디어 눈앞에 장엄한 히말라야 봉우리가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저 산을 바라볼 것이냐? 목숨을 걸고 정상을 밟을 것이냐?
자칫하면 죽는다. 지금껏 이룬 모든 것들, 사랑하는 아내와 미리내도 다시 볼 수 없다. 또 환생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시혁은 망설임 없이 몸을 일으켰다.
어떤 산악인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직 멈추고 싶지 않다.’
* * *
“이번엔 어디라고?”
“네, 부회장님. 고비사막 횡단하고, 산티아고 순례길 찍고, 실크로드 주파… 그리고 얼마 전 히말라야를 완등하신 후 다시 떠날 채비를 챙기고 있습니다.”
“답답하군. 그래서 다음은 어디란 말인가?”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작심했구나.”
“네, 금방 끝날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어디로 갈지 도착하기 전에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단 말이네?”
“예, 김보성 실장님, 캄퐁 팀장 모두 전화를 꺼 놓고 받지 않습니다.”
“허허허, 두 사람이 죽을 지경이겠다.”
“저… 그게.”
“뭐?”
“멀리서 망원렌즈로 잡았는데요. 거지 꼴인데 얼굴 표정이 너무 좋아 보였습니다. 사진 보시겠습니까?”
“…됐다. 그렇게라도 얻은 게 있으면 된 거지.”
“엘리 사모님께 보고드릴까요?”
“아서라. 내가 믿음이 부족해서, 조바심이 나서…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 거다.”
“…….”
“엘리뿐만 아니라 미리내 발끝에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믿는 거다. 그냥 믿는 거… 그거다.”
“…….”
“며칠 전 아빠 보고 싶지 않냐고 물었더니, 아빠는 공부하러 갔다고. 만점 받고 나면 돌아와 미리내를 안아 줄 거라고. 그래서 미리내는 기다린다고 하더군.”
“놀랍군요, 황제의 딸답습니다.”
“내가 헛살았어. 어린 미리내보다 못 해. 허허허.”
“…….”
“모든 감시 자원 다 철수시켜. 혹시라도 회장의 청정을 어지럽힐까 두렵다. 그냥 우리도… 기다린다.”
* * *
시혁의 여행은 꼬박 2년이 걸렸다.
시혁은 험지만 골라서 몸을 혹사시켰다.
조금씩 헝클어졌던 머리가 맑아지고 있었다. 자신은 꿈을 이룬 것이 아니었다. 무한 자본을 가졌다고 꿈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아버지.”
“오냐. 많이 변했구나. 편해 보인다.”
“네, 겨우 제가 나갈 방향을 알게 되었습니다.”
“뭘 찾았더냐?”
“아무것도요. 많이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실상 하나도 끝내지 못했네요.”
“그럼 됐다. 내려가거라.”
“예, 아버지. 이번 겨울 추위가 꽤 매섭습니다. 동안거 무탈하게 정진하시고 봄에는 미리내 보러 오세요. 다들 아버지를 기다립니다.”
“그래, 아들아. 창에 뚫린 옆구리를 만져 봐야 믿는 중생들에게 너는 비로자나불의 현신이다. 부처든 야훼든 결국 사랑이 처음과 끝이니… 세상에 보여 주거라.”
시혁은 스님의 등을 향해 깊숙한 절을 올렸다. 스님은 여전히 돌아보지 않으셨다.
* * *
“지금?”
“진짜?”
“왔다고?”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무릎이 다 닳은 청바지에 배낭을 둘러멘 세 사람이 나타났다. 모두 덥수룩한 수염에 덮혀 있었다. 하지만 로비의 모든 사람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당당한 걸음걸이, 검게 탔지만 빛나는 얼굴, 경호 요원들도 범접치 못하는 기세. 흡사 후광이 비치는 것만 같았다.
저런 사람은 세상에 딱 한 분뿐이다.
황제께서 귀환하셨다!
마침 오늘은 미리내의 아홉살 생일, 이를 축하하기 위해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시혁이 102층으로 들어서자 로비에서 전해진 소식을 듣고 기다리던 공사홍과 엘리, 혜림, 태식, 산드라, 윌슨, 퍼피, 조지 부시 대통령까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미리내가 도도도 뛰어와 폴짝 안겨 왔다. 시혁도 훌쩍 커 버린 딸을 깊이 안아 주었다.
“아빠, 밥은?”
“배고파. 케이크 아직 안 잘랐네?”
“이제 공부 끝난 거야?”
“응, 만점 받았어.”
“그럴 줄 알았어. 사랑해, 아빠.”
시혁은 미리내를 안은 그대로 가족들을 향해 빙긋 웃어 주었다. 가지런한 치아가 너무 상큼했다.
“나는 아직 배고파, 멈추고 싶지 않아.”
(완결)
^공^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