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ing money is an art RAW novel - Chapter 156
156화. 23살, 암호화폐
2007년 9월 28일 화요일 나뭇잎이 바람에 펄럭이며 떨어지는 오후 시간.
따르르르릉.
한리버 청담동 사옥으로 전화벨소리가 강렬하게 울렸다.
“비서실 김소영 과.장.입니다.”
얼마 전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한 김소영은 기분 좋은 얼굴로 수화기를 들어 귀에 가져가 직함에 강조를 주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름만 대면 모두 ‘우아’ 탄성을 자아내게 했던 기업도 이제는 거리낌 없이 소화를 했다.
김소영은 전화를 대기 중으로 두고 여유로운 걸음으로 회장실로 이동했다.
“회장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에드워드 길리건 부회장 전화입니다.”
“……방금 누구라고 했나요?”
결재하느라 정신없던 한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어내며 되물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에드워드 길리건 부회장 전화입니다.”
“이거 참. 대단한 분이 전화를 다 하셨네. 돌리세요.”
이름을 들은 한강은 상당히 놀란 눈으로 변했다.
“그 사람이 직접 전화라니. 허허. 놀랄 노 자네.”
에드워드 길리건, 현 아메리칸 그룹의 최고 경영자 후계로 거론되고 있는 엄청난 인물이었다.
인턴으로 시작해 부회장까지 올라 회장의 자리를 내다보고 있는 최고의 실력자가 그였다.
따르르르릉.
생각하는 사이 전화기 벨소리가 들려왔다.
“유한강입니다.”
능숙한 영어가 원어민 발음으로 입에서 술술 나왔다.
—처음 전화를 드립니다. 에드워드 길리건입니다.
인자하면서 힘이 꽉 찬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전달이 되었다.
“무슨 일로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괜찮냐는 그런 사소한 말은 하지 않았다.
—최근 한리버에서 저희 은행 지분을 늘리고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어떤 의도로 매수하고 있으신지 여쭙고자 연락을 드렸습니다.
‘이런……’
들려온 말에 살짝 당황했다. 설마하니 전화를 할지 몰랐다.
‘아무래도 인수하는 모습처럼 보이고 있겠지.’
그도 그럴 것이 한리버 하면 신생기업이지만 세계적으로 돈이 많은 기업으로 통한다.
모든 사업이 정상궤도에 오르면서 알짜회사로 거듭나면서 생각 이상으로 거대한 시장을 만들어 버렸다.
“별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귀사에 투자 매력을 느껴 주식을 늘리고 있을 뿐입니다.”
하락세를 보이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상승장을 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렇게 오를 수 없는데… 아무래도 SC가 나서고 있는 듯해.’
그래야 지금의 주식장이 이해가 되었다.
위기감을 느낀 건지도 모르겠다.
—투자라… 우리 회사의 어떤 부분에 투자 매력을 느꼈는지 모를 일이군요. 제 입으로 이런 말을 드리기 뭣하지만, 그리 좋은 사정이 아니란 건 알고 있을 텐데 말입니다.
에디워드 길리건은 의심을 버리지 못했다. 의심은 대화를 할수록 짙게 깔렸다.
‘뭐, 당연한 건가? 나라도 의심하고도 남지.’
구제금융신청을 했지만, 미국 연방준제도이사회(FED)와 미 재무부는 구제금융 불가 입장을 밝혔다.
국민들 세금으로 경영부실로 무너진 기업 부도를 막아주는 건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는 일이라며 확실하게 선을 긋고 있다.
그의 생각을 충분히 납득하며 생각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하였다.
“절대 아닙니다. 지금이야 아맥스(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줄임말)가 어렵지만, 충분히 다시 일어설 수 있으리라 봅니다.”
—믿을 수 없군요.
“이게 진실입니다. 대신 추후 긴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면 한리버 입장에서도 좋겠다 싶습니다.”
한리버 카드를 아맥스를 통해 유통한다면 나쁘지 않은 투자라 봤다.
—……그게 주목적이시군요.
“겸사겸사라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한 건 아맥스를 인수할 의사는 없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혹, 뉴욕에 들를 일이 있다면 아맥스를 찾아 주셨음 합니다.
“그러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스탠다드에서 곧 나서겠군.”
아마 저들은 한리버에 전화를 하기 전에 스탠다드 차타드(SC)에 연락을 했을 거다.
‘한리버와 경쟁을 시켜 인수가를 높이려 했을지 모르지.’
일이 어떻게 흐르건, 한리버 입장에서 나쁠 건 없었다.
[스탠다드 차타드 은행,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인수 의사 밝히다.] [예상 인수가는 8억~9억 달러로 결정될 걸로 보인다.]얼마 뒤, 예상한 일이 기사로 되어 세상에 밝혀졌다.
“역시는 역시인가?”
역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예정대로 스탠다드 차타드 은행은 아맥스를 인수하기 위해 나섰다.
70센트대 초중반을 유지하던 주가는 70센트 후반에 머물러 평균단가 6센트 정도의 이익이 났다.
“차곡차곡 쌓아 보자고. 내년엔 결국 FED에서 나설 테니까.”
역사는 바뀌지 않고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렇다는 건 구제금융 또한 역사대로 흘러감을 의미했다.
“위험하게 내가 그 역사를 흔들 필요는 없지. 자칫 구제금융을 받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만족스러운 결과에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똑똑.
“들어와요.”
시선을 옮겨 앞으로 가져갔다.
“회장님, 알아보라고 하시던 인물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김동진의 손에 종이 더미가 한아름 들려있었다.
“다 찾으셨나요?”
비트코인 개발자로 알려진 사토시 나카모토에 대해 조사를 맡긴 적이 있었다.
한강의 눈에 기대감이 잔뜩 실렸다.
“회장님께서 적어주신 인물들을 토대로 조사는 어느 정도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찾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회원 수를 보유한 한리버의 정보 능력은 꽤 뛰어난 축에 속했다.
『할 피니 PGP회사를 설립하여 필 짐머만과 공동 암호개발 진행 중……』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교 졸업,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김동진이 건넨 종이에는 원하는 인물들의 기록이 쫙 나열되어 있었다.
“고생했어요.”
“밑에 사람들이 고생했지요. 전 그저 회장님의 지시를 그들에게 내렸을 뿐입니다.”
김동진은 모든 공을 아래 직원에게 돌렸다.
“후후,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반색하며 한강의 말을 덥석 받았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무슨 일로 찾으시는 건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어느 정도 마무리될 시점, 궁금한 부분들에 대해 물었다.
“실장님은 예술이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네? 예술이요?!”
되묻는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어본 말과 전혀 무관한 주제였다.
“네. 예술이요.”
“그야…… 회장님께서 취미로 즐겨 하시는 미술과 음악 부분들이 예술이지 않겠습니까?”
콧잔등을 긁으며 머릿속에 떠다니는 단어들을 끄집어내었다.
“그거 외에 다른 건 없나요?”
“다른 거라 하시면…… 솔직히 무엇을 원하시는지 이해를 잘 못 하겠습니다.”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한강이 묻는 질문의 의도를 모르니, 답이 나오지 않았다.
“화폐를 찍어 내는 것도 예술의 일부이고, 돈을 잘 쓰는 것도 예술의 하나라 봅니다. 우리가 생활하는 거 자체가 예술의 한 축이죠.”
“……?!”
갈수록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화폐를 좀 더 예술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아는 자가 있다면 어떨 거 같아요?”
“음……”
수수께끼 같은 말에 미간을 좁혔다.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꼭 돈이 눈에 보이는 실물일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우리 한리버 가상화폐를 떠올려 보세요.”
“……??”
“그걸 한 차원 더 업그레이드되는 걸 만들어 볼까 합니다.”
“회장님, 도무지 무슨 말씀인지 이해를 하기 힘듭니다. 누가 눈에 보이지 않는 화폐를……”
“쿠키도 안 보이지만, 하잖아요.”
“그건 저희가 제공하는 화폐이지 않습니까? 목적도 확실하고.”
동진은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제가 하려는 건, 그것과 비슷하면서 근본적으로 달라요. 잘만 하면 기축으로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투자가치가 있는 가상화폐가 될 거예요.”
“음……”
“더 자세한 건 저도 설명하긴 어렵지만. 이 개념을 완성할 수 있는 인재를 찾고 있다 보시면 됩니다.”
“그럼, 알아본 사람들이 그 화폐 개발에 필요한 인력이란 말씀인가요?”
“네, 맞아요. 당장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개발이 되고 나면 실장님도 알게 될 거예요.”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지금은 자리하지 않은 개념이었다.
“휴… 회장님과 함께 있으면 제가 공부한 모든 게 의미 없어집니다.”
참아왔던 자괴감이 밀려왔다.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학력과 이력을 지녔지만, 한강의 벽은 너무도 높았다.
“하하, 저랑 너무 비교하지 마세요. 실장님은 정말 훌륭하게 잘하고 계시니까요.”
그의 기분을 알기에 한강은 웃음으로 위로했다.
자신의 생각과 같은 높이로 맞춘다는 건 무리가 따름을 아주 잘 알았다.
“기대해도 좋을 거예요. 그것만 잘 풀리면 한리버는 상당한 자금을 쌓게 될 거니까요.”
***
미국 캘리포니아주 한 곳에 설립된 작은 회사.
두 남성이 자리에 앉아 모니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손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띠리리릭. 띠리리릭.
팩스기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따다다닥. 따다다닥.
하지만 팩스 소리는 두 사람이 두들기는 키보드 소리에 묻혀 버렸다.
방 안에는 오로지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리만이 시끄럽게 울렸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시간이 흘러도 둘은 자리를 뜨지 않고, 오로지 모니터와 하나 된 모습을 보였다.
“휴…… 조금만 더 하면 될 것도 같은데. 이거 잘 풀리지 않네.”
네 시간 정도 지나는 시간, 그제야 좌측에 자리를 잡은 남자가 기지개를 켜며 의자를 뒤를 젖혔다.
“그러게요. 될 거 같으면서 안 되는 게…… 이거 속 터져서……”
조금 거리를 두고 앉은 남자도 그제야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어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더 한다고 풀리지도 않고. 머리를 좀 식혀야 다음으로 나갈 거 같네요.”
남자의 이름은 할 피니. 호주 국적을 지니고 있는 암호학자이다.
그는 이번 프로젝트에 사활을 건 인물로 현 회사의 대표이기도 하였다.
“그러게요. 저도 백기 들었습니다. 더는 못하겠어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게 휴식이 필요로 해요.”
떨어져 앉아 있는 인물은 할 피니와 함께 공동개발에 나선 짐 머만이었다.
둘은 지친 얼굴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 여기 팩스 왔는데요?”
짐을 챙기던 짐 머만이 팩스기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게 얼마 만이래.”
멋으로 들고 있던 팩스기가 작동한 건 몇 달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할 피니가 다가가 팩스기가 뱉어낸 종이를 들었다.
“응…!?”
할 피니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커다란 눈은 한 지점에 머물렀다.
『안녕하세요. 저는 (주)한리버 그룹 회장 유한강입니다……』
절대 모를 수 없는 이름이 종이에 검게 찍혀 있었다.
“……암호화폐에 관심이 많습니다. 당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시간을 내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의 눈은 찬찬히 아래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