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ing money is an art RAW novel - Chapter 36
36화. 9살, 천재의 경고 & 조언
부웅.
학교 주차장으로 여러 대의 차량이 줄지어 들어섰다.
하나같이 일반인은 쳐다보기 힘든 고급 승용차에서 사람들이 내려섰다.
“저기 오랜만에 들어가 본다. 그치?”
차량에 내려선 여성, 윤희는 홍라혜의 팔에 손을 끼고 해맑게 웃었다.
그녀의 시선이 위치한 곳에 강당이 자리했다.
“네 오빠 이후 올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한강이 덕분에 또 오는구나.”
첫째 아들 이재진의 모교.
감회가 새롭다.
“커험. 들어가지.”
가장 마지막에 내린 이건호 회장이 헛기침을 하며 모녀의 감상을 깨트렸다.
“관심도 없던 당신이 여긴 웬일이에요?”
끄덕끄덕.
옆에서 윤희도 고개를 흔들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우리 회사 광고모델이 될 아이야. 얼굴 정돈 봐야 하는 게 당연하지.”
“호오?”
홍라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걸쳐 입꼬리를 한쪽으로 올렸다.
“내가 찜한 아이예요.”
“누가 뭐래. 어서 가자고.”
이건호는 말이 더 길어질 거 같아 쓱 지나쳐 앞으로 걸어 나갔다.
“윤희야, 우리도 가자.”
“아빠는 솔직하지 못한 거 같아. 그치?”
“쉿, 아빠 삐진다.”
두 사람은 앞서 걷는 이건호를 보며 말없이 웃고 뒤를 따랐다.
“지금부터 경기 국민학교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짝짝짝.
사회자의 안내가 나오고,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Baby Elephant Walk 연주를 시작으로… 마지막 순서는 2학년 5반 유한강 군의 피아노 독주가 있겠습니다.”
연주 순서가 읊어지고 학생들이 무대 위로 입장했다.
지휘자가 자세를 잡고, 봉을 움직이자 연주가 시작됐다.
아기코끼리가 장난스레 걸으며 천진난만한 모습을 표현한 곡.
사람들은 흐뭇한 시선으로 곡을 감상했다.
“참 귀엽다.”
윤희도 기분 좋게 감상을 하였다.
“지금 몇 시야?”
“17시. 곧 그 아이 차례야.”
각 학년의 연주가 끝나고, 독주가 진행됐다. 바이올린부터 시작해 각가지 악기들의 연주를 끝으로 한강의 차례가 되었다.
스스스.
앞줄이 부산스럽다.
“저들 당신 사람이에요?”
홍라혜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조심스러우면서도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회사를 위한 일이야. 띄울 거라면 확실하게 띄워줘야지.”
앞쪽에 카메라가 빠르게 설치됐다.
학교 측과도 사전에 얘기가 되어 있는지 빠르게 이뤄졌다.
저벅저벅.
말끔한 차림, 오대오 가르마로 머리를 양옆으로 넘긴 귀공자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와, 진짜 멋지다. 아이돌 저리 가라야.”
윤희가 짧게 감탄했다.
“……”
“……”
옆에서 입을 다문 채 지켜보던 덕화와 미화는 단 한마디도 던질 수 없었다.
“편히 감상하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
재벌 집안을 왜 이리 자주 보게 되는지 모르겠다.
둘은 움츠린 자세로 고개만 가볍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아들 실수하면 안 돼…’
‘제발 무사히 지나가길…’
강당에 사람이 너무도 많다. 자신만 하더라도 압박을 느끼는데, 어린 아들은 얼마나 심한 부담을 느끼고 있을지.
두 부부는 한강을 걱정했다.
뚠!
하지만 걱정은 사치.
한강은 너무도 여유로운 얼굴로 자리에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그래, 좋구나. 예전의 기억이 손끝에 전달되는 이 기분…’
세계적인 무대에 오른 실력은 아니지만, 한때 대상을 거머쥔 곡.
쇼팽, 즉흥환상곡이 강당을 채웠다.
강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손은 천상의 하모니로 연결됐다.
“……”
“말도 안 돼.”
한강의 실력을 알지 못했던 음악 애호가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력도 없는, 그저 그림으로 얼굴을 알린 아이의 연주 실력은 전율을 일게 만들었다.
졸렸던 눈꺼풀은 위로 치켜 올라가, 다시는 내려오지 않았다.
웅성웅성.
주변이 어수선하게 변했다.
새롭게 해석된 감정.
사람들은 연주에 매료되어 푸른 숲속으로 영혼을 보내어 노닐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답답한 속을 뚫어주었다.
연주에 이끌려 자연과 동화되었다.
솨아아아아아.
한강의 손이 멈추는 순간.
바깥은 때아닌 폭우가 쏟아졌다.
“와아아!”
그리고 강당 안에선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한강아…”
덕화는 멍때렸고.
“아들…”
미화의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이건 정말 기대 이상이야.”
“저 아이는 또 나를 놀라게 만드는구나.”
이건호는 굳은 얼굴로.
홍라혜는 만족한 얼굴로 무대에서 퇴장하는 한강을 바라봤다.
“……”
두근.
그리고 윤희는 한강이 사라진 통로를 보며 가슴에 손을 얹었다.
경기 국민학교 행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감동을 전달하며 끝을 장식했다.
***
[천재 화가 유한강(9)의 또 다른 면모가 드러나다. 쇼팽으로 현신하다.] [즉흥환상곡 Fantasie Impromptu, 사람들은 모두 유한강 군의 연주에 매료되었다.] [“어린아이가 낼 수 없는 최고의 연주였습니다. 다시 없을 천재를 보는 기회를…”] [전문가들은 쇼팽 콩쿠르에 보내도 통할 실력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한강의 연주는 세간에 알려져 천재라는 타이틀을 넘어선, 예술인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오늘 회장님이 보자고 하십니다.”
김광석이 찾아와 이건호 회장의 말을 전했다.
“저를 왜요?”
한강은 눈을 똘망똘망 떠 되물었다. 연주회를 듣고 갔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하나, 그것과 연관성을 찾지 못하겠다.
“따로 말씀하신 건 없지만, 제가 보기에 도련님이 궁금한 눈치이셨습니다.”
재벌 가문에서 그것도 총수가 혼외 자식도 아닌, 일반인 아이에게 이리도 관심을 가진 적 있던가?
‘내 운이 이제야 들어올 모양이야. 어쩌면…’
요즘 육성가에서 가장 핫한 이슈를 품고 있는 아이.
심지어 윤희의 행동도 심상치 않다.
김광석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한강을 대했다.
“알았어요. 부모님께…”
“미리 허락 구했습니다. 바로 가시면 됩니다.”
요즘 미화와 덕화는 육성이라면 끔뻑 죽었다.
절레.
일이 속전속결이다.
한강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다,
“가요.”
차량에 올랐다.
***
이태원 육성그룹 저택.
대한민국에서 거장, 이건호와 그의 일가가 지내는 곳으로 한강을 태운 차량이 들어갔다.
“한강아!”
도착한 차량으로 윤희가 후다닥 뛰어갔다.
“딸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옛 어른들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게 없어.”
자신에게 단 한 번도 보이지 않던 모습을 보자 괜한 시샘이 들었다.
훗.
그의 중얼거림을 들은 홍라혜가 작게 웃고는 걸음을 옮겼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회장님 안녕하세요.”
윤희의 손을 잡고 걸어온 한강은 허리를 곱게 숙여 인사를 하였다.
“그래, 한데 여기는 선생이고 왜 난 회장이더냐?”
나이를 먹으면 사소한 거에 속이 좁아진다 했던가?
이건호는 차별하는 호칭에 대해 심통을 부렸다.
“선생님께 많은 걸 배우고 도움을 받았어요. 또한 예술계 종사자이시고 저의 선배이십니다. 저의 선생님이 맞아요. 회장님은 한국의 거인이시고 제가 대하기에 벽이 높으니 당연히 회장님이라 부르는 게 맞다 판단했어요.”
한강의 눈은 이건호의 시선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기는 걸 넘어, 타당한 이유를 내세워 정당성을 찾았다.
‘허, 이놈 봐라?’
이건호 눈동자에 담긴 감정이 바뀌었다.
호기심은 수면 아래로 내려가고 새로운 감정이 눈동자에 스며들었다.
“그럼, 날 영원히 회장이라 부르겠다 이 말이렷다?”
“회장님께서 원하는 호칭이 있다면 말해주세요. 앞으로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단 한마디도 지지 않는다.
그런데 또 그 모습이 밉게 다가오지 않았다.
‘물건이군.’
이건호의 입에 티 나지 않는 미소가 걸쳐졌다.
“나도 앞으로 선생이라 부르거라. 부부는 일심동체 아니더냐.”
“네, 선생님.”
싱긋.
한강은 진심을 담아 웃었다.
“…아빠.”
윤희는 어이 무.
“쯧쯧. 주책이야. 한강아 가자.”
홍라혜는 한강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에잉, 쯧.”
그런 아내의 행동에 혀를 쯧 차고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호호.”
잠시 뒤, 저택 안에 웃음이 넘쳤다.
“그래서 그걸 네가 다 사서 가격을 올려 팔았다 이 말이더냐?”
“네, 함부로 가격 경쟁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재밌는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 찾다, “아이들이 지나가면서 한강이 얘기를 하던데, 떡볶이 장사 일은 어떻게 된 일이야?” 홍라혜의 갑작스러운 언급에 한강은 잠깐 말문이 막히다, 이내 그때 있었던 일을 소상히 털어냈다.
“그게 정말 네 머리에서 나온 거라고?”
이건호가 물었다.
“네, 잘못됐나요?”
그걸 또 아무렇지 않게 되받아친다.
“…이놈.”
정말 물건이었다. 십수 년 일하면서, 아니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강과 같은 아이는 처음이었다.
‘정말 물건이다.’
경영수업조차 배우지 않은 국민학생.
예술뿐 아니라 경영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
‘게다가 나를 보고도 할 말을 다 하는 아이라… 부모가 부럽구먼.’
첫째 아들과 너무도 비교되는 모습에 씁쓸함이 입가에 감돌았다.
“선생님, 그런데 저를 부른 부분에 대해 아직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셨어요.”
계속 본론을 미룬 탓에 잡다한 이야기로 시간을 축냈다.
이대로 시간이 더 지나면, 늦은 저녁에 집에 도착하게 된다.
후딱 이유를 듣고 집으로 가봐야 하였다.
“언제 묻나 했다.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해준다면 너에게 아주 좋은 선물을 주마.”
이건호는 한강을 똑바로 쳐다봤다.
“음, 좋아요.”
깊게 고민할 문제는 아니라 봤다.
국민학교 학생에게 물어봐야, 난이도가 얼마나 되겠나?
가볍게 생각했다.
“내 아내에게 그랬다지. 앞으로 건설, 통신사업이 크게 빛을 볼 거라고. 그럼 이건 어떻게 보는지 알고 싶구나. 나는 내년에 자동차사를 차릴 거란다. 이 부분에 대해 너의 생각을 듣고 싶구나.”
이건호 회장의 얼굴에 어떤 기대감이 자리했다.
“……”
반면, 한강은 어이없는 시선을 적나라하게 보냈다.
지금 이게 국민학교 2학년생에게 묻는 질문이냐고.
“부담은 가질 필요 없다. 그저 네 솔직한 생각을 들어보고자 함이니.”
“……”
한강은 어떻게 말할지 심히 고민이 되었다.
머릿속에는 이미 답이 나와 있었지만, 그걸 꺼내기가 망설여졌다.
‘국민학생이 이런 걸 말해도 되는 거야? 아니지. 진짜 이쪽 분야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천재가 있을 수 있잖아. 그래, 에라잇 모르겠다. 그 선물이 뭔지나 들어보자.’
약 1분간의 생각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일단 저지르고 이득을 취하기로.
“자동차 산업은 끝없이 발전하리라 봐요. 당장만 보더라도 작년에 보이던 기술보다 오늘의 기술이 훨씬 뛰어나죠. 하지만, 당장 육성이 자동차 사업을 하기에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다 생각해요. 미래, 대진, 경성 자동차, 쌍마 자동차 등이 국내에서 사업을 하고 있지만, 거기서 성과를 보이는 곳은 미래와 대진이에요. 하지만, 결국 대진은 밀리고 미래가 차지하게 될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육성이 진입하면 필패를 면치 못하리라 봐요.”
긴 문장이 완성됐다.
한강은 그걸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밖으로 끄집어냈다.
“…우리가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 보지 않느냐?”
“음, 육성에 여윳돈이 얼마나 되나요? 사라져도 괜찮다 정도로? 10조 정도 있다면 막지 않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몇 년 후로 미루는 게 낫다 봐요. 신문을 보니 올해 조선소에 작년의 두 배인 6천억 원을 투자하겠다 하셨어요. 거기만 하더라도 엄청난 자금이 투입되는데, 과한 건 좋지 않다 봐요.”
“과하다?”
“네. 욕심이에요. 지금의 육성은 자동차를 정상적으로 운영하지 못할 거라 봐요.”
“어떻게 그리 확신하지?”
이건호는 저도 모르게 한강의 말에 빠져들었다.
겨우 아홉 살 아이의 말이나, 이상하게 무시할 수 없었다.
“현재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은 오랜 시간 자동차를 메인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곳이에요. 그런 곳을 단시간에 잡으려 한다는 건 무리고, 장기전이 될 건데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경쟁을 한다는 건 기업을 망치는 꼴이에요.”
“그럼 네가 생각하는 날이 언제로 보느냐?”
“음… 적어도 3년 뒤 1997년 말. 그때가 육성에 있어 가장 적기라 봐요. 그리고 이건 제 생각인데, 앞으로 달러를 잡는 기업이 큰 기회를 얻을 걸로 보여요. 자동차 사업 대신, 해외 비중을 높여 달러를 벌어오는 게 좋을 거예요.”
한강의 눈동자로 강한 빛이 어렸다. 확신에 가까운 고집이 눈동자에 담겼다.
이건호는 그런 한강의 모습에 마른침을 삼켰다.
그건 자리해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