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ing money is an art RAW novel - Chapter 45
45화. 13살, 슬기로운 외환위기 생활 (1)
저벅저벅.
“… 준비됐어?”
“……”
아들의 미션을 들고 명품관 앞에 섰다.
덕화는 아내의 말에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10만 원 쓰는 것도 부들부들 떨었는데…”
반면 미화의 얼굴엔 어느새 부담감이 지워지고 기대감이 잔뜩 서렸다.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시고, 이거 괜찮네요.”
처음으로 향한 곳은 유명 명품 브랜드 옷가게로 들어가 이것저것 골라 바구니에 담았다.
“1020만 원입니다.”
그런데도 천만 원밖에 쓰지 못했다.
“… 1억이 정말 큰돈이야. 그치?”
이것저것 뭔가 많이 산 거 같은데, 아직도 9천이나 남아있었다.
“허허.”
덕화는 난생처음 1천만 원을 사용한 부분에 현자 타임을 가졌다.
자신이 이리도 겁이 많고, 돈을 사용하지 못할 줄은 몰랐다.
뒤로 향한 곳은 가방 시계 액세서리 등등 지금껏 가보지 않은 곳을 돌아다니며 쇼핑을 하였다.
사용한 돈은 3500만 원.
“한강 아빠. 우리 더 살 거 있나?”
돈을 더 쓰기가 겁나기 시작했다.
워낙 많이 사서 백화점 직원까지 따라붙어 대신 짐을 들어주기까지 하였다.
“한강 엄마. 나 좀 생각해 봤는데, 우리가 꼭 이렇게 소비만을 해볼 게 아니라 이참에 부동산을 매입하는 게 어때? 돈을 단순히 사용하기보다 좀 더 슬기롭게 사용해 자산을 불리는 방법이 더 좋을 거 같아. 그래야 나중에 우리가 죽더라도 자식들에게 남겨 줄 거라도 있지 않을까? 한강이야 그렇다 쳐도 지혜한테라도.”
“사실 나도 그 생각이었어. 한 번은 원 없이 사고 싶다 생각해 본 적이 었는데… 그렇게 하자.”
3500만 원, 정말 처음으로 신명 나게 써봤다.
더는 돈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 이제 매달 돈이 들어오면 부동산을 사 모으자.”
덕화는 외환위기로 쏟아지는 지금 부동산을 매입하기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덕화의 생각을 미화는 큰 고민 없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둘은 알까?
지금의 선택이 나중에 어떤 결과로 찾아오게 될지?
***
[경성 자동차 미상환액 2억700만 달러(원화 약 1863억 원) 부도 불가피…]얼마 후, 경성 자동차는 부도를 공식화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정부는 기업 살리기에 나선다며 발표를 하였고, 얼마 후…
[육성그룹, 경성 자동차 전격 인수 결정. 정부 중재하에 경성 자동차 육성의 품으로…]경성 자동차는 자금이 넉넉한 육성의 품으로 들어갔다.
뒷소문으로 육성과 정부 간 딜이 들어갔다는 소문이 무성하게 퍼졌지만, 투자자와 관련 종사자들은 육성의 품으로 들어간 걸 크게 반겼다.
[육성그룹 경성 자동차 1차 협력사 점검 및 감사, 관련 규정에 적법하지 못한 기업을 내치고 새로운 기업을 협력사로 받아들여 경성 자동차의 경쟁력을 높이겠다 발표하다.]1997년 9월, 육성그룹은 대대적인 기업 감사에 들어갔다.
약간의 비리와 연루된 기업을 과감히 내치는 한편, 신규 기업을 받아들이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육성이 여기에 투자를 한다고요?!”
아연제조를 인수하고 공장 내부공사에 들어가는 시점, 육성그룹에서 사람이 찾아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네, 회장님께서 아연제조를 경성 자동차 1차 협력사로 지목하셨습니다.”
이건호 회장의 오른팔이자 육성그룹의 실세 중 한 사람.
김종식 비서실장이 직접 얼굴을 비쳐 이건호 회장의 뜻을 전했다.
“… 아.”
순간적으로 부담감이 위로 올라왔다.
[아빠 모든 건 해보지 않아서예요. 물론, 자신의 그릇을 알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선을 지키는 것도 좋지만, 남자가 해보기도 전에 자신의 한계를 미리부터 긋는 건 잘못된 거 같아요.]그때 아들의 목소리가 환청이 되어 귓가를 스쳐 갔다.
꽈악, 두 주먹에 들어가는 힘.
그렇게 몇 번이고 자신을 때렸는데, 또 부담감에 겁을 먹었다.
‘이건 기회야. 기회를 발로 차는 짓은 하지 말자. 내가 못하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돼.’
그리고 꾸준한 노력과 공부를 토해 스스로를 발전시키면 되는 일.
위축되던 몸이 풀리며 여유를 찾아갔다.
“우리 가족에게 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화는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목소리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를 썼다.
‘확실히 전과 달라진 모습,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겠어.’
김종식은 변화된 덕화의 모습은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빛을 눈에 담았다.
“금형 제작 프레스를 늘리고 용접과 전착도장 시설을 갖추라 이르셨습니다. 1차 투자금과 2차 투자금이 나눠서 투입될 겁니다. 경영적인 부분은 당분간 육성에서 도움을 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표님께선 경성 자동차로 출근해 3개월간 교육을 받길 원하셨습니다. 원치 않으시면 안 받으셔도 되십니다.”
이건호는 덕화를 위한 많은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하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자신이 원해야 하는 것.
그렇기에 원하지 않으면 교육에 있어서 자율권을 보장했다.
“아닙니다. 제게 이런 큰 기회에 교육까지. 당연히 해야죠.”
부족한 만큼 채울 게 많다.
덕화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라 봤다.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에 도전이란 명함을 들고 앞으로 나서기로 하였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그리고 건투를 바라겠습니다.”
일개 직원에서 대표가 된 덕화를 대우해주었다.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넌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과거 누군가에게 들었던 한마디.
아마도 당시 선생님에게 들었던 거 같다.
동시에 하루가 멀다 하고 멍에 시달렸던 엉덩이와 함께.
‘이번만큼은 무조건 잘하겠어. 반드시…’
덕화는 각오를 다졌다.
***
[경성 자동차가 오늘 기점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얼마 전 육성으로 인수된 경성 자동차 상호가 육성 자동차로 상호를 변경한다.] [육성은 경성 자동차 모든 차종에 대해 30~4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할 예정이며 모든 차종을 단종키로 하였다.]육성은 과감하게 모든 차종을 단종하고 경성의 역사를 완전히 지우고 새로 시작하기로 하였다.
╔육성 자동차 디자인 공모전
육성에 어울리는 자동차 디자인에 도전하세요.
1. 기간: ~ 당첨 시까지
2. 공모주제: 중형차급 외부/내부 디자인
3. 시상 내역: 상금 1억/1계급 승진
출품한 디자인은 일체 반환하지 않음.╝
며칠 뒤, 육성그룹 전 게시판에 해당 게시물이 부착됐다.
“와 1억에 승진이래.”
“우리 나가볼까?”
“아서라. 우리 같은 관리직이 디자인과 뭔 상관이야.”
“쩝, 이럴 줄 알았음 디자인팀에나 지원할 걸 그랬나.”
디자인과 아무 상관없는 관리직과 현장직은 입맛만 다시고 디자인 부서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아주 머리 쓰셨네요.”
육성 자동차 소식이 신문에 실려 세간에 알려졌다.
여기에는 한강도 포함됐다.
“1억이라, 경쟁심이 장난 아니겠네.”
지금 육성에서는 미래 자동차 컨셉카 개발 중.
그런 와중에 양산에 들어갈 신규 차종에 대한 개발을 위한 공모전을 벌였다.
“그보다 이거 피터 그분께 죄송하게 됐네.”
역사와 같으면 다른 노선을 걷는 지금, 한강은 두 가지 모델을 준비했다.
하나는 로체 이노베이션, 하나는 K5.
K5 전 모델인 로체 이노베이션. K5가 출시되면서 뒤로 밀린 차종.
“이 차가 꽤 아쉬웠지. 진짜 이 당시만 하더라도 잘 뽑힌 디자인이었는데.”
‘에코 드라이빙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며 꽤나 떠들썩했었다.
디자인도 역대급으로 뽑혀 사흘 만에 계약된 차량만 3천 대.
대박 조짐을 보였다.
‘매월 5천 대’가 팔릴 거라며 기대를 모았던 로체 이노베이션.
소나타를 앞지를 거라며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그렇게 해서 포르테가 이 디자인을 따르고 나름 괜찮은 성적을 거뒀지. 그걸 내가 베껴와 그리게 될 줄은.”
처음엔 새로운 디자인을 그려 육성에 던져주려 하였다.
하지만, 당시 한국 정서와 지금 생각한 게 맞아떨어질까? 고민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왕 하는 거 쉬운 길을 택하자. 그게 최고다.”
염치없는 행동이지만, 확실한 길로 밀어붙이기로 하였다.
“끝. K5는 나중에 주자. 인기가 시들해질 타이밍에 주면 추가 보상도 받고 괜찮을 거야. 그리고…”
K5 디자인은 철에 넣고, 로체 이노베이션만 빼놓았다.
“SM7… 으흐흐.”
한강은 한쪽에 치워둔 종이를 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부릉!
1997년 9월 둘째 주 주말.
“안녕하세요.”
“왔어요.”
육성저택에 방문했다.
“네, 이건호 선생님 계시나요?”
움찔, 익숙하지 않은 호칭에 수행원들은 몸을 떨며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안에서 기다리세요.”
철컥,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 왔어. 어서 앉아라.”
이건호가 반겨준다.
한강은 당당한 걸음으로 이건호와 가장 가까운 자리로 앉았다.
“허허.”
그런 행동이 무척 마음에 드는 눈치다.
“그래, 내가 준 숙제… 우리가 계약한 디자인이 다 뽑혔다고? 빠르구나.”
있던 걸 변경하는 건 쉽다. 하나, 없는 걸 새로이 그려내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창조의 영역.
그걸 한강은 너무도 빠르게 이뤄냈다.
“몇 가지 생각해 본 걸 그려본 거예요. 이거예요.”
커다란 견출지에 [육성E]라 적힌 파일철을 앞으로 내밀었다.
‘지금 입장에서 에코 기능은 무리, 하지만 디자인과 로고만 제대로 박힌다면 충분한 성적을 낼만 해.’
한강은 이번 프로젝트 성공확률을 100% 예측했다.
경성 자동차가 인기 없던 이유 중 하나. 아주 단순하지만 ‘로고’에도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좋은 차, 좋은 디자인을 그려놔도 로고는 자동차의 퀄을 떨어트려 놓았다.
이런 문제는 2020년 2040년이 가도 고쳐지지 않았다.
‘그놈의 K 로고 고집이 문제라면 문제지.’
“그리고 이건 로고를 그려봤어요.”
또 다른 파일철을 내밀었다.
“이건 서비스?”
“네. 이것까지 돈 받고 할 수 있나요? 제가 받은 게 얼마인데.”
“허허, 돈 귀신이 붙어 양심을 들고 다니지 않고 있는 줄 알았다니, 오늘은 양심을 들고 왔나 보구나?”
“…하하.”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말에 심장이 아린다.
“일단 자동차 디자인이 매우 획기적이구나. 허허. 상당히 고급져 보여.”
이건호의 눈은 어지러이 움직이며 파일철에 들어있는 자동차 디자인에 흠뻑 빠져들었다.
“놀라워.”
연신 감탄하기에 바빴다.
“육성의 강함을 육성E에 담았어요.”
말이 붙이면 그만.
일단 로체는 호랑이의 코와 입을 모티브로 삼았다.
덕분에 차량의 이미지는 세련됨과 강인함을 고루 갖춘 디자인으로 탄생했다.
“이 정도면 지금 미래에서 생산하는 그렌저 그 이상이야. 내부도 상당히 품격이 느껴져 매우 좋구나.”
“선생님께서 마음에 들어 하셔서 다행이에요.”
타인의 디자인을 가져와 자신의 걸로 만들어 보였지만, 그럼에도 칭찬은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이걸 보게 되니, 로고가 무척 기대돼.”
파일을 눈에서 떨어트리고 [로고]파일철을 열었다.
[星] 별성. [★★★] [★★★] 별 여섯 개. [Y U K S U N G] 육성.등을 보였다.
“음… 일단 한문은 아닌 거 같다. 자칫 중국 자동차로 오해를 받을 수 있어.”
“좋은 뜻이라 혹시나 싶어 넣어 봤어요.”
발상의 전환을 해보지만, 로고는 역시 쉽지 않았다.
“그나마 별 여섯 개와 영문이 눈에 들어오는데, 넌 뭐가 낫다 보느냐?”
이건호의 시선이 옆으로 옮겨졌다.
“많은 로고를 보았지만, 역시 영문으로 깔끔하게 표기하는 게 더 좋다 느껴져요. 그릴은 차의 얼굴이에요. 그릴을 가리지 말고 훤히 내보이고 로고를 보닛 위에 이렇게 표기하는 게 훨씬 깔끔해 보이고 육성의 자동차임을 전 세계 사람에게 확실히 인지를 시켜주기에 제격이라 봐요.”
“그것도 그렇군. 제법 생각을 많이 해왔어.”
무척 기특한 아이였다.
이러니 예뻐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저 파일은 무어냐?”
그때 시야로 들어오는 [육성 프리미엄] 파일철.
아까부터 궁금해 입이 근질거렸다.
“일반 디자인과 프리미엄 디자인을 만들었어요. 육성E는 일반이고 이건 준대형급 이상으로 개발 시 넣었으면 하는 모델이에요.”
육성의 본래 자동차 모델.
그걸 프리미엄으로 만들어 이건호 앞에 공개했다.
육성E보다 더욱 세련되고 듬직한 멋과 귀족의 품격을 보여주는 차.
커다란 두 눈이 시선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멋지구나. 아주 멋져. 정말로 너는 몇 번이고 나를 감탄하게 만들어, 매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아이야.”
이건호는 두 디자인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미래 자동차보다 고급지고 훨씬 세련된 멋이 느껴지는 디자인에 사로잡혀 헤어나오질 못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은 육성가에 태어나 반도체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것이 아닌, 너를 만난 게 아닌 게 싶다.”
육성에 태어나 재벌의 막내아들이 된 것도 반도체를 성공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운 것도 대단한 운이라 생각했지만, 이건호는 한강을 만난 걸 최고로 쳤다.
“최고의 찬사 감사해요. 저 또한 선생님을 알게 된 걸, 인생 최고의 행운으로 보고 있어요.”
한강의 어여쁜 말에 이건호는 더한 애정을 보였다.
“다른 이들의 디자인을 보고 최종 결정을 내릴까 하는데, 어떠냐?”
“당연하죠. 다른 사람의 디자인이 더 좋다면 그걸 채택하는 게 맞다 봐요.”
“그래, 알았다.”
“혹여, 채택이 된다면 네게 섭섭하지 않은 보상이 갈 게야.”
“감사합니다.”
“그래그래. 윤희가 위에서 기다리겠구나. 어서 올라가 보거라.”
이건호는 한강이 챙겨온 두 파일을 챙겼다.
한강은 고개를 작게 숙이는 걸로 인사를 하고 방을 나와 윤희의 방으로 향했다.
“한강아!”
방문이 열리는 순간, 윤희가 환한 미소를 입가에 품고 달려와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
예전과 다른 높이를 느끼며 안긴 자세 그대로 말했다.
“이제 내가 더 크네요. 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