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dol became a star writer by writing about himself RAW novel - Chapter 68
제68화
68화
그날 퍼펙트 올킬의 멤버들은 늑대 울음 같은 우진의 비명을 계속 들으며 시달려야 했다.
그러고 있을 시간에 쓰겠다고 말한 재훈은 우진의 날카로운 눈초리에 벌벌 떨어야 했고 그 모습을 본 동생들은 아예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원고를 날려 버린 날 이후로 찾아온 슬럼프는 꽤 오래갔다.
그래도 멤버들은 며칠 지나면 다시 우진이 글을 쓸 거라고 생각했지 설마 그 후로 글이 한 줄도 안 나오는 상황에 이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마터면 ‘역주행’을 쓴 이래 정말 이례적으로 휴재를 할 뻔했는데 연재가 펑크 날 뻔한 것을 가까스로 막은 건 민이 쓴 소설이었다.
어차피 ‘역주행’이 퍼펙트 올킬의 연예계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고 민도 퍼펙트 올킬의 멤버였으니 우진과 사고의 흐름까지 어느 정도 공유하는 수준이었다.
그날 올릴 게 없다는 걸 깨닫고, 그러면서도 글이 전혀 마음에 들게 나오지 않아서 몇 줄 쓴 것마저 지우기만 반복하던 우진이 광분에 휩싸인 채 비명을 질렀을 때 민이 자기가 쓴 걸 보여 주었다.
우진은 민이 써준 걸 올리고 마구 칭찬을 해주며 앞으로 계속 그렇게 분담을 해보자며 핑크빛 꿈을 꾸었다.
그런데 귀신같은 독자들이 문체가 변한 걸 알아차렸다.
[뭔가 이상한데?] [그러게. 묘하게 다른데? 주 작가님 혹시 보조 작가 쓰시는 건가?] [나는 주 작가님 특유의 문체가 좋았는데. 뭔가 비관적이고 시니컬하고 그 어투로 희망을 말하는 게 좋았는데.]우진은 그런 댓글이 한두 개도 아니고 무수히 달리는 것을 보고 기함했었다.
자기에게 문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는데 독자들이 그걸 구분해 낸다는 걸 알았을 때는 기분이 묘했다.
대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지칠 때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삶을 대신 살아 줬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되기도 하지 않던가.
그때의 심정이 그랬다.
민은 하루치를 더 써주었고 우진은 그사이에 억지로 슬럼프에서 빠져나왔다.
민이 써준 원고를 올린 날 댓글란의 반응이 더욱 격렬해져서 우진이 직접 쓸 수밖에 없었다.
[이상해. 이상해. 낯선 작가의 냄새가 나. 내 작가님의 냄새를 돌려줘!] [맞아. 이건 뭐랄까, 너무 고상하고 세련됐어. 문체도 섬세하고. 우리는 이런 걸 원하지 않는단 말이야! 주 작가 어디 갔어!!]…….
이거였다니.
독자들이 알아차린 게 민이 너무 잘 써서 그런 거였다니.
우진은 굉장히 빈정이 상했지만 딱 이틀 동안 얻은 휴가는 그렇게 끝이 났고 다시 자기 손으로 글을 써야 했다.
전에는 ‘역주행’의 완결을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부가 되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낯설었다.
그래서 남들이 다 긴장하면서 광고 촬영을 기다리고 있는 이 순간에 혼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채 정신없이 글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600자 정도만 더 쓰면 됐는데 그게 도무지 안 채워져서 멍하니 멤버들을 보고 있었다.
‘아, 맞다! 그런 일이 있었지!’
멍하니 이빈을 보고 있는데 이빈이 식사 준비를 하던 날, 밥통의 취사 버튼을 누르지 않아 멤버들 모두가 황당해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래. 좋아. 600자야, 제발 나와 줘!’
그렇게 신들린 듯이 그 사건을 쓰고 나자 3,000자가 넘는 비축분이 생겨났다.
흐뭇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데 마침 우진의 차례가 돌아왔고, 영 감을 못 잡는 퍼펙트 올킬 멤버들 때문에 진땀을 흘리던 사진작가 앞에서 우진은 해탈한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
사진작가는 이게 이렇게 잘할 일인가 하면서 충격을 받은 채 연신 셔터를 눌렀다.
글럼프를 탈출하고 동시에 3천 자의 비축분까지 쌓은 작가의 희열이 담긴 표정이라 사진작가로서는 그 표정의 의미를 전부 이해하는 게 어려웠겠지만 그 표정이 광고의 콘셉트와 정말 잘 맞는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퍼펙트 올킬의 다른 멤버들도 우진의 편안한 표정을 보며 그가 드디어 오늘 분량을 다 썼다는 것을 깨달았고 여유가 모두에게 전이되면서 촬영장의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아니, 뭔가요? 이렇게 잘하면서 처음에는 왜 그랬어요? 놀리려고 그런 거였어요?”
사진작가는 어느덧 그런 얘기까지 할 정도로 분위기가 한층 좋아졌다.
“정말 좋네요. 이대로 한 번 더 갈게요.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따지고 보면 우진이 지은 표정은 능숙한 전문가의 프로페셔널함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는데 결과는 누가 보더라도 만족할 만했다.
그렇게 나온 사진에는 ‘비축분을 가진 자의 여유’라는 제목이 붙어야 마땅했을 것이다.
그날 ‘역주행’의 최신 화가 업로드되자 작가가 변했다며 걱정이 많던 독자들은 드디어 안도했다.
[그래. 그렇지. 이 싼티 나는 문체가 그리웠어.] [맞아. 이 저렴한 단어 선택 좀 보라고. 이래야 주 작가지. 어휴. 갑자기 고상한 단어들이 나오니까 영 적응이 안 됐잖아?]우진은 억울했지만 그래도 독자들이 그런 부분에서 만족한다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저렴해지겠다고 어느새 다짐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의 독자들만큼 대단한 조련사도 없었다.
‘역주행’은 어느덧 800화를 훌쩍 넘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 * *
‘신화’의 마지막 장면을 두고 퍼펙트 올킬 멤버들 사이에서는 고민이 많았다.
그것은 언젠가 ‘역주행’의 엔딩 시점을 두고 고민하던 것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이빈만이 그런 상황에서 신기해하며 멤버들을 구경했다.
“이빈이 너는 왜 자꾸 웃어?”
민이 웃자 이빈이 해맑게 말했다.
“웃기잖아요, 형. 우리가 여기서 이런 얘기를 해봤자 우리가 말한 대로 결말이 나는 것도 아닐 텐데 형들이 너무 진지하게 말해서 웃겨요.”
“응?”
민이 이빈에게 되물었고 멤버들은 그제야 그 모습이 이빈에게는 웃기게 보이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진이 ‘신화’의 대본 작가라는 걸 모르니 이빈에게는 이 모습이 얼마나 희한했을까.
“응. 아아. 이빈이가 잘 모르는구나. 우리 본부장님이 P.A. 매니지먼트 대표님이시잖아. 그래서 우리가 이런 의견을 전달해 드리면 작가님들이랑 같이 얘기를 나누고 반영을 하셔.”
“네에? 정말요? 와, 대박! 세상에!! 저는 몰랐어요. 들은 것 같기는 한데 이제 이해가 됐어요. 와, 엄청 신기해요! 그러면 본부장님은 그 작가님을 아는 거예요?”
이빈이 침을 튀겨 가며 놀라는 걸 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애매하게 웃었다.
그렇지.
알지.
아주 잘 알지.
그리고 너도 알지.
퍼펙트 올킬 멤버들의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지만 이빈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 * *
마지막 촬영을 앞둔 기분을 퍼펙트 올킬의 멤버들은 처음 느끼고 있었다.
드라마를 해본 적이 처음이었으니까.
마지막 장면은 리와쳐블 멤버들이 새 앨범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러 가는 장면으로 했다.
시작과 끝이 겹치는 것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드라마의 끝.
뮤직비디오의 시작.
그것은 이곳에서의 삶이 끝나고 새로운 삶이 다시 시작될 거라는 의미인 것과 동시에 퍼펙트 올킬에게는 새로운 도전을 의미했다.
우진은 그런 여러 가지 의미를 복합적으로 담아 대본을 썼고 현장의 많은 사람들도 그 의미를 어느 정도 파악한 듯했다.
노을이 지는 시간을 기다려 촬영이 재개되었다.
하늘이 아름다운 주홍빛 옷을 갈아입을 때를 기다려 퍼펙트 올킬이 커다란 나무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장면을 카메라가 덤덤히 잡았다.
멀어져 가는 퍼펙트 올킬 멤버들의 모습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듯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모든 게 전부 판타지였다는 것 같은 허망한 결론은 아니었고 늘 곁에 있던 이들이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나 버린 것 같은 감정이 느껴졌다.
슬픈 건 아니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로 편곡된 OST가 깊은 여운을 남기게 될 터였다.
“컷!”
감독이 외치자 곳곳에서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길고 긴 대장정이었다.
그 시간 동안 무탈하게 함께 달려와 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사람들은 가까이에 있던 이들과 얼싸안았다.
퍼펙트 올킬도 벅찬 감격을 주체하지 못한 채 서로를 끌어안았다.
“으아아아아아!! 끝났다. 드디어 끝났어!!”
재훈이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소리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할 말은 그 정도가 가장 적당할 것 같기도 했다.
다 끝났다는 후련함.
다른 생각까지 들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듯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기저기서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네 오는 사람들에게 퍼펙트 올킬도 인사해 주었다.
“앞으로도 종종 연락하고 계속 만나면 좋겠어요. 좋은 드라마나 영화 들어가면 불러 줘요.”
그런 말로 부탁을 해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이 계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자주 보게 되자 이제 그들의 화법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앞으로 잘되실 거예요. 계속 좋은 연기 기대하겠습니다, 선배님.”
퍼펙트 올킬은 약속을 해주지는 않는 선에서 자기들이 해줄 수 있는 좋은 말을 해주었다.
스태프들은 퍼펙트 올킬을 놓아주지 않을 기세였다.
“드디어 끝이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드라마가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두고 끝이 났어. 오늘은 어디 도망갈 생각 하지 말고 우리랑 끝까지 같이 갈 거지?”
조명 감독이 일찌감치 재훈을 붙잡아 두고 말했고 다른 멤버들도 여기저기서 붙잡혀 있었다.
우진은 그런 모습들을 보며 혼자서 웃었다.
드라마를 시작할 때 남의 집에 온 것처럼 주눅 들고 눈치를 봤다면 지금의 퍼펙트 올킬은 모두가 함께 있고 싶어 하고 한마디라도 더 같이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퍼펙트 올킬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현장의 분위기가 달라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인정하고 있었다.
‘신화’를 시작하면서 얻고 싶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얻은 셈이었다.
“수고했다, 우진아.”
언제 다가왔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조용한 소리로 강 대표가 말했다.
“대표님, 언제 오셨어요?”
“좀 전에.”
“마지막 장면 보셨어요?”
“응. 정말 좋더라. 솔직히 상상 이상이었어. 편집하고 나면 더 근사하겠지. 시청자들에게도, 퍼펙트 올킬에게도 좋은 메시지가 될 것 같아.”
우진은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강 대표는 그런 우진의 팔을 톡톡 두드려 주고 사람들을 향해 나아갔다.
퍼펙트 올킬 덕에 퀸스 워크는 요즘 주가가 한창 상승했고 배우들은 특히나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그날은 그동안 수고했던 제작진과 배우진의 노고를 치하하는 자리로 마련될 터였다.
방송사와 제작사 그 어느 곳보다 ‘신화’를 통해 쏠쏠한 이익을 챙긴 곳이 퀸스 워크였으니 퀸스 워크가 ‘신화’의 종방연을 챙긴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화제를 몰고 다니며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하던 드라마의 마지막 현장에는 그 생생한 순간을 담으려는 기자단도 와 있었다.
그들 중에는 대본 리딩 때 본 사람들도 있어서 퍼펙트 올킬의 멤버들은 다정다감하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