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10
” 어째서?”
억울한 듯이 소리치는 그녀에게 아이반은 한껏 비웃음을 날려주었다.
“나는 내 목을 노린 자를 결코 살려두지 않소.”
거기까지 말한 아이반은 약간의 위트센스유머를 담아 덧붙였다.
“선배.”
스벤이 배신자라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은 과연 배신자가 하나뿐인지, 아니면 더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기 때문.
그리고 아이반은 방금 전 율리아 역시 배신자라는 것을 확신할 수가 있었다.
“아무리 독이라고는 해도 다른 사람들이 너무 쉽게 쓰러졌어. 그건 미리 밑 작업을 해뒀기 때문이지. 예를 들면 음식에 무언가를 탄다거나.”
단독으로는 별 효과가 없지만 다른 것과 만나면 독성을 강하게 만들거나 내성을 약화시키는 종류의 것은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보나마나 그중 하나겠지.
낭패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던 율리아가 날카로운 눈으로 물었다.
” 크게 이상하지는 않았을 텐데, 언제 깨달았지?”
“나는 사람을 믿지 않소. 어제 저녁에 당신이 굳이 나서서 요리를 하겠다는 것부터 의심스러웠지. 증거가 없었는데 이제는 생겼군.”
그 말에 율리아는 움찔 놀라더니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정신을 잃고 있으리라 여겼던 에민이 파리한 안색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건 !”
“나는 죽을 자를 위해 설명하지 않소.”
슈우욱 쾅! 빠르게 다가간 아이반이 검을 휘둘렀다.
“컥!”
공격을 흘리기 위해 검면에 손등을 갖다 대던 율리아의 표정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강철로 된 건틀릿이 그대로 찌그러지며 손등이 으스러진 것이다. 그녀가 예상했던 것을 훨씬 뛰어넘는, 말도 안 되는 힘이었다.
치직 치지직! 바닥에서 푸른 번개가 튀어 오르려다 막힌다. 그녀가 사용하는 천둥걸음은 아이반에 의해 완벽하게 파악되어 막혔다. 큰 기술을 사용할 틈조차 없었다. 완벽하게 기량으로 압도당하고 있었다.
“아, 안 !”
스걱! 아이반의 검이 그녀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 남다른 미모를 자랑하던 그녀의 얼굴이 하늘로 떠오르고 이내 바닥을 굴렀다. 흙먼지, 피와 뇌수.
여러 사람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미모 역시 그렇게 더럽혀지니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저 앞으로 썩어갈 뼈와 살덩어리에 불과했다.
그것을 바라보는 아이반이 입맛이 씁쓸했다.
“미인 선배를 환영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는데.”
스스로의 육신을 단련하는 것에만 집중해도 모자란 무투가가 물욕에 눈이 가려져 동료를 배신하다니. 신실해야할 수도자가 타락하여 악마를 불러내지를 않나, 길을 알려줘야 할 길잡이가 동료들의 눈을 가리고, 무투가의 육신에 근육 대신 욕심이 새겨지다니.
하여간 기분 나쁜 던전이었다.
“허, 고용한 네 명의 용병 중에 둘이나 배신자였다니.”
에민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평생 마탑에서 곱게 자라다가 진짜 길바닥 인생을 마주하니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아이반에게 물었다.
“혹시 나도 죽일 겁니까?”
“내가 왜? 배신자들은 저 둘이었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잖습니까? 둘이 셋, 넷이라는 보장이 없으니.”
두려움이 섞인 에민의 질문에 아이반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마탑의 추적은 귀찮지. 당신이 먼저 나를 죽이려 했다고 한들 목을 따기 전에 한 번쯤은 고민했을 거요. 그러지도 않았는데 내가 당신을 죽일 이유는 없지.”
“그래요? 흐흐, 그거 다행이로군요.”
그 허탈한 웃음소리에 아이반은 한 마디 더 덧붙였다.
“나는 아무나 죽이는 개백정이 아니오.”
그렇게 내뱉은 아이반은 순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벌써 오늘 베어버린 사람이 몇 명인가, 그동안 죽여 버린 사람이 또 몇 명인가.
그러고도 나는 과연 당당한가, 정말로 사람 잡는 백정은 아니었나.
아이반이 그동안 경험한 용병들은 대부분 양아치에 사기꾼, 강도이자 강간마, 살인자이자 쓰레기였다. 그렇다면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
” 씨부럴, 기분 참 엿 같군.”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님에도 마치 죄인이 된 것만 같은 불쾌한 느낌.
하여간 사람 대가리를 자르고 나서 기분이 상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띠링! [연계 퀘스트: 동쪽 숲의 비밀 – 1(완료)] [최근 안도렐 동쪽 숲이 이상해졌다. 그 비밀을 파헤쳐보자.] [보상: 대량의 경험치, 스킬 포인트 +1, 3골드 31실버] 띠링! [연계 퀘스트: 동쪽 숲의 비밀 – 2(완료)] [오래된 유적에서 사기가 흘러나온다. 그 원인을 제거하자.] [보상: 대량의 경험치, 랜덤박스(매직), 노르드 신들의 만족.] 메시지가 떠오르고 몇 개쯤 되는 퀘스트가 떠올랐다가 완료되기를 반복했다.
메인 스토리와 연결이 되어있는 퀘스트답게 보상이 빵빵했다.
스킬 포인트와 랜덤박스라니.
이제야 제대로 된 퀘스트 보상을 받는 느낌이었다. 우웅- 아이반의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채워진다.
바닥난 체력이 다시 차오르고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조금 더 깊어진 마력, 조금 더 질겨진 근육, 조금 더 예민해진 감각.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대량의 경험치들이 모여서 단번에 레벨이 두어 개쯤 올라간 듯 했다.
‘사람 참 간사하군.
방금 전까지 그렇게 우울해 있다가 레벨이 올랐다고 또 금세 기분이 좋아지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망할 세상에 너무나 익숙해졌다. 그게 아무렇지 않다는 것이 조금 두렵기도 했다.
” 어디 놓친 보물이 없는지 둘러보시오. 랄프가 깨어나면 바로 빠져나가야겠소.”
“알겠습니다.”
아이반은 목이 부러져서 죽어버린 스벤의 시체를 흘깃 바라보았다.
“길잡이가 사라졌으니 조금 더 서둘러야겠어.”
그래도 사람이 줄어서 내 몫이 늘었군. 어느새 아이반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돌아왔군.”
성벽을 지키던 병사가 힐끔 아이반을 바라보다 눈을 돌렸다. 온갖 오물에 더럽혀지고 안색도 썩 좋지 않은 사람이 셋. 다섯이 같이 나가서 셋만 돌아왔으나 병사들은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누군가 목숨을 잃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하물며 위험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요즘 숲속을 살피러 들어갔다면 더욱.
병사들은 다만 실력 좋은 용병이 둘이나 목숨을 잃을 정도로 숲속이 위험해졌다는 사실에 표정을 굳혔을 뿐이다. 그것이 부디 자신들을 불행에 빠뜨리지 않도록 기도하면서. 설마 저 숲속에서 던전을 발견했을 거라고는, 용병 길드에서 신뢰할 만큼 등급이 높은 용병이 둘이나 일행을 배신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모든 사건들에 대해 용병길드에 보고를 마쳤을 때 빌리의 표정이 무척이나 오묘하게 변했다.
“스벤과 율리아가 배신을 하고 파티원들을 모두 죽이려고 했다고?”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되묻는 빌리에게 에민이 벌컥 화를 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다는 겁니까!”
정식으로 마탑에 건의해서 항의를 하겠다고 에민이 소리를 질러대자 빌리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진정시켰다.
“아니, 아니. 그런 뜻이 아니오. 그저 당황스러워서. 스벤은 그렇다 쳐도 율리아까지 배신을 했다는 건 좀 충격적이군. 그것도 둘이 손을 잡았다고? 둘 사이에 그럴만한 친분이 있었나?”
그 말에 랄프가 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둘은 같은 의뢰를 맡은 적이 꽤 많았소. 성격이 극과 극이라 잘 어울리지는 못했는데, 어쩌면 그건 내 생각뿐이었을지도 모르겠어. 하긴, 묘하게 의뢰가 많이 겹친다고 했지. 우연만은 아니었군.”
스벤과 꽤 깊은 친분을 나눴다고 생각하던 랄프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자신은 도대체 뭘 보고, 뭘 보지 못했나. 별별 사건을 다 경험해본 베테랑 용병에게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마음의 상처가 생긴 모양이다.
“젠장, 사람 속은 알 수가 없다더니. 하여간 이 짓을 하다보면 더러운 꼴을 너무 많이 본단 말이야. 이러니 누굴 믿을 수가 있나.”
빌리는 낮게 욕설을 내뱉고는 고민에 잠겼다. 이번 일은 용병길드로서도 꽤나 큰 손실이었다. 쓸 만한 용병 둘을 잃었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 쓸 만한 용병이 배신을 때리고 청색 마탑의 마법사를 죽이려고 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던전 발견이야 어쨌든 원래 의뢰 목적은 동쪽 숲의 이상 현상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공적인 임무.
마탑이 그런 임무를 수행하려고 공식적으로 용병길드에 협조를 구해서 믿을만한 용병을 소개받았는데, 그 용병이 의뢰주인 마탑의 마법사를 죽이려고 했다? 사실 이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망할 놈들.
뒈지려면 곱게 뒈지지 길드에 똥물을 뿌려?’ 이미 죽어버린 놈들을 떠올리며 빌리는 이를 으드득 갈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 녀석들의 시체라도 찢어버리고 싶었다.
” 일단 유적지 쪽으로 조사단을 보내겠소. 그게 절차니까. 그리고 모든 것이 사실로 판명이 된다면 길드 차원에서 마탑에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보상이 있을 거요. 랄프와 아이반, 당신들에게도 적절한 보상을 해야겠지.”
깊은 한숨을 내쉰 빌리가 고개를 숙였다.
“이거 미안하게 되었소. 사람을 잘못 본 내 잘못이오.”
그렇게 말하는 빌리의 표정은 진심으로 숙연해보였다. 물론 완전히 미안함이나 책임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번 일로 용병길드 지부장 비슷한 것에서 결국 지부장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한 단계 떨어지게 될 테니 그것이 속이 쓰렸다. 그걸로 아이반이 할 일은 모두 끝이었다.
뒤처리야 용병길드 놈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러라고 의뢰 수수료를 그만큼이나 떼어 주고 있는 게 아닌가.
보통은 미적미적 움직이다 그대로 덮어버리겠지만 청색 마탑이 엮인 이상 그럴 리가 없었다. 번개같이 처리하겠지.
잘못은 어차피 죽은 놈이 다 떠안을 테고.
‘이참에 골치 아픈 일들을 모두 그 놈들 탓으로 돌려 처리해버릴지도 모르겠군.’ 아이반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머리를 휘휘 내저었다.
지난 며칠 동안 머리는 충분히 많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