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101
아이반의 말에 사나운 이빨이 뜨거운 콧김을 뿜으며 즐거워했다.
“전투! 전투로군!”
그는 용의 심장을 가지게 된 이후 그 힘에 영향을 받았는지 평소보다 투쟁심이 강해진 상태였다. 몸에서 계속해서 막대한 마력이 끓어오르고 강인해진 근육이 꿈틀거리니 당장이라도 싸우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했다. 가끔 길을 막아서던 도적들 따위는 귀찮고 시시하기만 할 뿐 그의 투쟁심을 채워주지 못했다. 그러다 마녀라는 강적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오히려 기쁜 것 같았다.
“어, 정말 마녀와 싸우러 간다고? 이렇게 갑자기?”
괴짜 드워프, 파라스는 어이가 없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돌아가는 판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녀는 정말로 위험한 적이야. 괜찮겠나?”
“용도 잡았는데 마녀를 못 잡겠소?”
“그도 그렇기는 하지만······.”
원래 전사가 아닌 파라스는 싸움을 앞두고 즐거워하는 사나운 이빨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싸우지 않아도 될 것을 굳이 싸운다는데 어쩜 저리 기뻐할 수가 있을까? 하긴, 제대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제 발로 마경으로 향할 리가 없었다. 이런 사람들이었기에 자신이 합류할 수가 있었겠지. 그런 생각을 하던 파라스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마녀라면 상당히 성가신 마법을 사용하겠어. 항마력이 중요하겠군. 내 가방을 뒤져보면 그럴 때 쓸 만한 장비가 있을 텐데······. 내가 잘 챙겨주지. 잘 다녀오게.”
그 말에 아이반이 의아한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게 뭔 소리요? 당연히 당신도 가야지.”
“어, 어? 나랑은 관련도 없지 않나!”
“마경에 갔을 때는 그냥 뒈져버릴 생각이오? 당신 실력을 좀 확인해야겠소.”
“젠장, 내가 왜······.”
파라스가 그리 투덜거리면서도 능숙하게 말을 몰았다. 아무래도 드워프는 키가 작고 팔다리가 짧아서 말을 타기가 좀 불편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한때는 난쟁이의 흔적을 찾기 위해 대륙을 돌아다니던 모험가라 그런지 제법 익숙한 모양새였다.
“마경에서 살아남고 싶으면 미리 손발을 맞춰봐야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시오.”
마녀를 쫓아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그들은 사두마차에서 말을 풀어 등자를 얹고 달리기 시작했다.
“흠! 어서 오라!”
워낙 덩치가 크고 무거운데다 신체 구조상 말에 타기가 어려운 사나운 이빨은 요정의 창고에서 자신이 챙긴 정령의 목걸이로 정령마를 소환해 타고 달렸다. 푸르스름한 털이 매력적인 정령마는 기본 속성이 바람이라 사나운 이빨의 몸을 부드럽게 받아주면서도 쏜살같이 움직였다. 요정의 창고에서 굳이 정령의 목걸이를 가져오는 것이 아이반은 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저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면 그러려니 했다. 그렇게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숲이 보이기 시작하자 델피노가 부쩍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쪽입니다. 아마 마녀가 저곳에 있을 겁니다.”
중간에 방해를 받아 정확한 위치는 알아내지 못했으나 방향만은 확실했다. 원래부터 꺼림칙한 소문이 있는 숲이라니 아마 틀림없으리라. 숲에 들어서자 이레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묘한 숲이야. 느낌이 영 이상하네.”
숲의 종족이라는 엘프에게는 숲의 분위기가 조금 더 직접적으로 와닿는 모양이다. 아직까지는 특별한 점을 찾을 수 없었으나 그게 오히려 이상했다. 왠지 숲의 기운이 자연스러움을 강요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푸드득! 아이반의 그림자에서 후긴과 무닌, 두 마리 까마귀 정령이 나타나 허공에 날아올랐다. 그렇게 한동안 까마귀 정령의 시선으로 주변을 살펴보던 아이반이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수백 년간 가꾼 본인의 영역이란 말인가.”
자유롭게 아무렇게나 날아다녀야 할 새들이 모두 나무에 앉아서 감시하듯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새들이 마녀의 사역마라는 뜻이었다.
“그냥 숲이 아니라 정원이었군. 생각보다 훨씬 까다롭겠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숲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저 빽빽하게 자라난 나무가 태양을 가리기 때문인 줄 알았으나 묘하게 흐르고 있는 마력이 어느새 결계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아직 점심 무렵이었으나 숲은 어느새 저녁처럼 어둑해졌다. 올빼미가 눈을 뜨고 그들을 노려보았다. 스슥! 무언가 바닥을 기어가는 낮은 소리가 들렸다. 아이반의 귀가 움찔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도끼가 날아갔다. 쉬이익! 뱀의 머리가 잘려서 툭 떨어졌다. 떨어진 머리가 꿈틀거리며 아이반을 바라보았다. 마치 녀석이 웃는 것처럼 입을 벌렸다. 아주 낮고 매캐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나의 숲은 손님을 환영하지 않는다. 검은 연기가 흘러나와 온 사방을 가렸다. 주변에 있던 동료들의 기척이 흐릿해졌다.
공간이 비틀린다. 마녀가 수백 년간 가꿔온 은밀한 숲의 결계가 동료들을 이리저리 갈라놓으려 했다. 탁! 아이반은 손을 뻗어 파라스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가 마녀의 마법에 홀려 떠나가지 않도록 막고 자신에게 끌어왔다. 순식간에 밤으로 변한 숲에 놀란 파라스가 침을 꿀꺽 삼키면서 중얼거렸다.
“시작부터 제법 거친 모험이로군.”
그는 자신이 직접 망치로 두드려 만든 도끼와 갑옷을 입고 주변을 노려보았다. 오랜만에 경험하는 격렬한 모험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최근 수십 년간 공방에 틀어박힌 채 쇠만 만져서 그런지 영 예전 같지가 않아.”
“쇠만 만지긴, 호구 잡아서 돈이나 만졌겠지.”
과도하게 긴장하고 있는 파라스의 등을 툭툭 두드리면서 아이반이 앞으로 나아갔다.
“일행과 떨어져 버렸는데 괜찮겠나?”
“멀리 떨어지지 않았소. 그냥 그렇게 보이는 거지.”
공간이 비틀리기는 했지만, 아예 다른 곳으로 날려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적당히 거리를 벌리고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환영이 덮여있을 뿐.
“다들 무사하오. 거창하기만 하고 실속은 전혀 없어.”
아이반의 오른쪽 눈이 황금색으로 변했다. 그의 눈이 눈을 가리는 환영과 이리저리 얽힌 공간을 꿰뚫고 주변을 바라보았다.
파라스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사실 겨우 스무 걸음도 되지 않는 거리에 나머지 일행들이 모여 있었다. ‘용의 피를 뒤집어쓰고 나니 마법에 저항하는 것이 확실히 편해지긴 했군.’ 용의 피는 유형화된 용의 마력이나 다름없었다.
웬만한 극독과 비슷할 정도로 지독하기는 했지만, 피를 뒤집어쓰고도 살아남는다면 미약하게나마 용의 힘을 얻을 수가 있었다. 예를 들면 마력친화력이 높아진다거나, 뼈가 튼튼해지고 피부가 질겨진다거나, 근력이 강해지거나 오감이 예민해진다거나. 아이반 역시 용과 싸워서 피를 듬뿍 뒤집어쓴 뒤로 미묘하게나마 신체능력이 상승하고 항마력이 강해진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피의 검 브리카를 매개로 아이반이 잠시 빌려 썼던 용살검 그람의 주인, 영웅 시구르드는 악룡 파프니르를 죽이고 그 피를 뒤집어쓴 이후 불사신이 되었다는데 아이반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아이반이 죽인 화염 드래곤들은 던전의 힘으로 부활한 녀석들이라 약발이 떨어지는 걸까? 하긴, 잘 생각해보면 용을 때려잡았는데 그 피를 잠깐 뒤집어썼다가 창칼이 통하지 않는 불사신이 된다는 것도 좀 웃긴 일이긴 했다.
아이반은 힐끔 눈을 굴려 떨어진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용의 피를 뒤집어쓰다 못 해서 아예 심장을 교체해버린 사나운 이빨은 아예 마녀의 환영이 통하지 않는 모양이고, 엘프인 이레인 역시 본질을 꿰뚫는 눈이 있어서 속지 않았다.
델피노는 성흔에서 흘러나오는 신성력으로 마녀의 수작에 대응했고.
“거기는 괜찮소?”
아이반이 동료들에게 물었으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이 뭐라고 입을 뻐끔거리기는 했지만, 말소리는 전달되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뜬 아이반이 조그마한 돌멩이를 주워서 동료들을 향해 슬쩍 집어 던졌다. 휙! 아이반이 집어던진 돌멩이가 동료들의 몸을 통과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나운 이빨이 입을 다물고 자신의 몸을 훑어보았다. “평범한 환영은 아니었군. 그저 서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위상을 나눠버렸소. 같은 공간에 있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세계인 셈이지.”하긴, 적어도 수백 년간 힘을 기른 마녀였다.
그리 어설플 리가 없지. 전방, 조심, 전진. 아이반이 수신호로 뜻을 전달하자 동료들이 알았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묘하게 배치된 나무와 위상을 나눌 정도로 강력한 결계, 감각을 흐리는 어둠이 합쳐지자 계속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게 되었기 때문이다.
레인저의 능력을 발휘해 길을 찾았지만 결국 또 처음 그 자리였다. 공간을 잘라서 교묘하게 이어 붙였기에 단순히 걷는 것만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었다.
“사람 괴롭히는 방법을 잘 알아. 심리의 허점을 찔러서 잘 가지고 노는데.”
아이반이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검을 뽑았다. 그리고 방향을 정해 딱 그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을 가로막는 나무가 있으면 나무를 베어버렸고, 바위가 있으면 바위를 부숴버렸다. 그렇게 방향을 비틀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니 새로운 곳으로 넘어갈 수가 있었다.
조금 전까지 보이던 무성한 나무들이 갑자기 말라 죽어버린 것인지 앙상하고 황량한 곳이 나타났다. 피부에 달라붙는 공기조차 차갑고 건조했다.
싸늘한 죽음의 향기가 가득했다. 다른 위상에서 따라 움직이고 있던 델피노가 크게 긴장하는 표정이 보였다.
아이반 역시 경계심을 높이며 좌우를 살폈다. 푸르르, 히이잉! 갑자기 말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지금껏 조용하던 녀석들이 앞으로 가려 하지 않고 계속 뒷걸음질을 쳤다. 강철 모루에서 내어준 말들은 상당히 혈통이 좋은 전투용 말이었다.
눈앞에서 창칼이 휘둘러지고 살이 찢겨도 명령받은 대로 움직이도록 훈련받은 놈들인데 아무리 이끌어도 앞으로 가지 않고 버티고 섰다. 이쪽 세계에서 상당히 혈통이 좋은 말이라는 것은 마수나 영물, 환수의 피가 섞였다는 뜻이었다.
웬만한 위협에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놈들이 이러고 있으니 그저 당황스럽기만 했다.
“어, 이놈들이 왜 이러지? 이곳에 뭐라도 있는 건가?”
파라스의 물음에 아이반이 낮게 대답했다.
“숲의 일부를 이계와 이어놓았소. 그저 문지기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위험한 녀석이 있는 것 같은데······.”
처음 보는 곳이었지만 이곳의 공기가 낯설지 않았다. 사방에 흐르는 마력이 어딘가 익숙했다. 사악하고, 잔인하고, 폭력적인 기운. 아이반은 저 멀리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악마의 땅이라고?”
물론 진짜 마계는 아니겠지. 그러나 그와 몹시 흡사한 곳이었다. 사방에서 악마의 기운이 느껴졌다.
“말은 이곳에 놓고 가야겠소. 녀석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곳이군.”
아이반이 복잡한 표정으로 말을 쓰다듬었다. 이대로 두고 간다면 과연 녀석들이 무사할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녀석들을 놓아주고 아이반은 악마의 땅으로 들어갔다. 사방에 흐르는 악마의 기운이 피부를 따끔따끔하게 찔렀다.
“이제부터 긴장 늦추지 마시오. 놈들이 몰려와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이곳은 마녀의 영역, 숨어서 움직이는 것은 이미 불가능했다. 악마의 땅에 들어오는 순간 이곳에 있는 녀석들이 모두 그를 알아차렸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저 방향성 없이 거칠기만 하던 공기가 그를 적대하고 있었다. 짐승 같은 살기가 쏟아졌다.
“일단 하나 붙잡아 확인하지.”
무언가 자신의 시야에 걸리자마자 아이반은 대뜸 도끼를 집어 던졌다.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쇳덩이가 녀석의 어깨에 박혔다. 키에에엑! 놈이 기괴한 비명을 지르면서 달려들었다. 상어의 이빨과 늑대의 발톱, 뱀의 꼬리를 가지고 있는 녀석이었다.
“타올라라!”
화르륵! 아이반의 외침에 따라 불덩이가 피어올라 녀석에게 달라붙었다. 그러나 녀석은 온몸이 지글지글 타오르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반을 찢어 죽이겠다며 발톱을 휘둘렀다. 캉! 아이반의 검과 녀석의 발톱이 부딪쳤는데 무슨 검끼리 부딪친 듯한 금속성이 울려 퍼졌다. 평범한 짐승의 발톱이 아니란 뜻이었다.
“어림없다!”
파라스가 도끼를 휘둘러 녀석의 등을 내리찍었다. 등이 길게 찢기고 피를 뿌렸다. 아이반은 녀석들 발로 차서 뒤로 밀어내고 손을 내뻗었다.
“펭그(Fengr:사로잡는 자)!”
바닥을 뚫고 나무가 솟아나 녀석을 붙잡았다. 괴물이 몸을 비틀며 빠져나오려고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근육이 찢어지고 피를 뿌리면서도 계속 날뛰는 것이 그저 질릴 뿐이다. 완전히 녀석을 제압한 아이반이 가까이 다가가 눈을 크게 뜨고 이곳저곳을 살폈다.
녀석은 소악마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소악마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놈 같았다.
“끔찍한 몰골이군. 여러 녀석을 찢은 다음 아무렇게나 하나로 뭉쳐놓은 것만 같아.”
원래 악마 놈들은 외형이 이상하고 끔찍한 것들이 많았지만 이 녀석은 그중에서도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명백히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모양이었다.
“키메라? 악마를 재료로 키메라를 만들었단 말인가?”
“그렇소. 아무래도 마녀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족속인가 보군.”
악마도 지독한 놈들인데 악마를 실험체로 쓰다니, 성황청이 왜 그렇게 마녀라면 질색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다른 위상의 일행들 역시 악마 키메라를 살펴보고 크게 질린 표정이었다.
으드득! 살펴볼 것을 다 살펴본 아이반이 주먹을 쥐자 악마 키메라를 붙잡고 있던 나무가 조여들며 녀석을 완전히 뭉개버렸다. 찍 하고 시커먼 피가 흘러나오다가 그대로 나무에 흡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