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103
어두운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숲을 가득 뒤덮고 있던 마녀의 마력을 뚫고 번개가 내리쳤다.
감히 자신을 모욕한 마녀를 채찍질했다. 쾅! 검붉은 방어막이 나타나 번개를 막았다.
마녀의 영역이 요동치며 신의 분노를 흘려보냈다. 과연 수백 년을 쌓아 올린 마녀의 성. 땅의 영맥을 끌어와 온갖 사악한 주술로 보호하고 있었으니 웬만한 힘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이 정도는 버틴다, 이거지?’
아이반이 입술을 비틀어 올리며 다시 한번 천둥신의 이름을 불렀다.
“토르!”
치지직! 쾅! 또다시 커다란 번개가 마녀의 방어막을 후려쳤다. 마녀의 영역이 출렁 흔들리고 사악한 마력이 격렬히 저항했다. 그러나 한 번으로 충분하지 않으면 두 번, 두 번으로 부족하면 세 번, 네 번. 그렇게 계속된 천둥신의 망치질에 마녀의 방어막이 버티지 못하고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 갈기갈기 찢어 죽여주마! 불안함을 느낀 마녀의 사역마들이 달려들었다. 최소 수백 년의 세월 동안 마녀와 함께하며 힘을 끌어올린 녀석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었다.
쉬이익! 바실리스크의 입에서 지독한 독기가 흘러나왔다. 순식간에 풀이 시들고 나무가 말라버렸다.
노랗게 죽어버린 잎이 흩날린다. 일반인이라면 한 모금만으로 숨이 끊어졌을 테고, 웬만큼 단련된 전사들도 이 독연 속에서는 세 걸음 이상 걷지 못할 터였다. 그러나 사나운 이빨은 신경 쓰지 않고 그 지독한 연기 속으로 몸을 날렸다.
드워프의 왕국, 강철 모루에서 새롭게 얻은 커다란 대검을 휘둘러 녀석의 커다란 몸을 베어냈다. 스걱! 바실리스크의 커다란 몸 한구석이 쩍 갈라지고 붉은 피를 뿜어냈다.
덩치가 큰 만큼 흘러나오는 피도 많았다. 피에도 독성이 묻어있어서 땅이 죽어갔다.
사나운 이빨이 소리쳤다.
“잘못된 주인을 섬기고 있다!”
다른 이들에게 바실리스크는 그저 커다란 마수에 불과하겠지만 사나운 이빨에게는 아니었다. 바실리스크는 뱀신 모르나를 상징하는 영물인데 그것이 마녀의 사역마로 부려지는 것을 보니 크게 불쾌한 모양이다.
스걱! 사나운 이빨을 잡아먹으려고 입을 벌렸던 바실리스크의 턱이 잘려 나갔다. 이번에는 좀 치명적이었는지 녀석이 고통에 몸을 뒤틀었다.
키에엑! 몸길이 수십 미터의 괴물이 그렇게 날뛰니 나무가 부러지고 땅이 뒤집어졌다. 숲이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
“뱀신의 곁으로 보내주겠다.”
잘게 토막을 쳐서 죽여 버리겠다는 뜻. 사나운 이빨의 녀석의 목을 노리고 재차 검을 휘두를 때 온갖 짐승을 닮은 몸을 가진 악마의 키메라가 끼어들었다. 쉬이익! 캉! 늑대의 발톱이 사나운 이빨의 검을 밀어냈다. 그리고 독수리의 날개를 움직여 하늘로 솟구쳤다.
악어의 머리를 닮은 입에서 검붉은 지옥의 화염을 토해냈다.
“용의 불꽃에 비하면 미지근하다!”
사나운 이빨의 몸에서 오만하고 폭력적인 용의 마력이 솟아올랐다. 화염 드래곤의 심장이 하찮은 악마의 불꽃을 내려 보듯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쾅! 악마의 불꽃을 몸으로 견뎌낸 사나운 이빨이 용의 마력이 담긴 주먹을 휘둘렀다. 멀찍이 하늘에 날아오른 악마의 키메라가 비틀거렸다.
피우웅- 그 틈을 노리고 이레인의 화살이 쏘아졌다. 악마의 키메라가 허공에서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었지만, 엘프의 화살은 녀석의 날개를 끊어버렸다.
떨어지는 녀석을 마무리하려는 순간, 악신의 권능을 가진 올빼미가 막아섰다. 우웅- 녀석의 시커먼 눈동자가 빛을 빨아들였다.
공간이 일렁거리며 사악하고 역겨운 악신의 권속들이 몸을 내밀었다. 축축하고 더러운 촉수, 피부가 벗겨진 손아귀, 이리저리 뒤틀린 짐승의 발톱. 지독한 악몽에서나 등장할 법한 정돈되지 않은 생김새였다.
어린아이가 대충 찰흙을 주물러서 집어던진 듯 비틀리고 일그러진 괴물들이 덤벼들었다.
“으익! 이 역겨운 놈들은 대체 뭐야!”
파라스가 연신 도끼를 휘두르며 촉수를 찍어냈다. 처음에는 호쾌하게 녀석들을 베어내던 파라스가 점점 뒷걸음질을 쳤다. 계속해서 재생하는 악신의 권속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아무래도 마녀의 저주에서 회복된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꽤 힘에 부친 모양이었다.
“추방당한 자들이 어디서 더러운 몸을 들이미는 것이냐!”
델피노가 크게 소리치며 신성력을 내뿜었다. 그가 요정의 창고에서 얻은 오래된 성자의 지팡이가 하늘에 떠올랐다.
빛의 신 아룬의 힘이 옛 성자의 지팡이를 타고 내려와 녀석들을 비추었다. 캬아아악! 빛의 신 아룬의 신성력이 몸을 불태우자 악신의 권속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델피노를 노려보며 진한 저주를 토해냈다.
쉬이익- 절망과 공포를 물리적으로 빚어낸 듯한 저주가 몸을 일으켰다. 녀석은 델피노가 뿜어내는 신성력에 몸이 타들어 가면서도 끊임없이 몸을 부풀렸다.
마녀가 그동안 모아온 원혼과 악의가 실체를 가진 저주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화아아- 델피노의 몸에 새겨진 성흔이 빛을 뿜었다.
그와 동시에 델피노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는 한껏 열린 영혼의 눈을 통해 원혼과 악의를 똑바로 마주하고 있었다.
그들이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는지를 깨닫고 분노와 슬픔을 함께 느꼈다.
“찬란하신 빛의 주여, 이 세상은 아직도 이렇게나 어둡습니다.”
구마사제로서 그는 세상의 가장 어두운 곳을 돌아다녔다. 사람의 악의가 얼마나 지독한지 알았고, 욕망이 얼마나 음습한지 알았다.
절망의 끝에는 절망이 있었고, 희망이란 헛된 이름이라는 것 역시 느꼈다. 자신이 얼마나 더 움직여야 세상이 밝아질 수 있을까? 깊은 어둠과 절망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자들을 어찌 구원할 수 있을까? 빛의 신 아룬은 델피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지켜보며 힘을 더해줄 뿐이었다. 델피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고행의 끝에 단 한 사람만이라도 빛을 찾게 하소서.”
우웅- 델피노의 등 뒤에서 거대한 빛의 고리가 나타났다. 악신의 권능을 가진 올빼미가 이계에서 악신의 권속을 소환했듯, 델피노 역시 위대한 천상의 문을 열어 빛의 신 아룬의 권속을 불러왔다.
온몸이 빛으로 이루어진 천사 하나가 나타나자 악신의 권속들이 깊은 적의를 내뿜었다. 실체를 가진 저주가 더욱 거세게 움직였다. 그러나 빛의 천사가 손을 휘두를 때마다 저주의 크기가 줄어들었다.
지독한 저주에 붙들려있던 원혼들이 고리를 끊어내고 승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신의 품에 안기지도 못한 채 영원히 마녀의 정원을 떠돌았을 원혼들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순수한 영혼이 되어 떠났다. 마침내 악신의 연결을 끊어버리고 버림받은 자들을 모두 구원한 빛의 천사가 사라지자 델피노가 지친 표정으로 숨을 헐떡였다.
혼자서 빛의 천사를 소환한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델피노가 지쳐서 사방을 내리쬐던 신성력이 흐려지자 잔뜩 움츠려서 부상을 치료하고 있던 바실리스크가 덤벼들었다. 사아악! 거대한 바실리스크가 눈을 굴릴 때마다 석화의 마안이 힘을 발휘했다.
날아가던 새가 돌이 되어 바닥에 떨어지고, 흔들리던 풀들이 그대로 굳어서 부서졌다. 온몸에 용의 마력을 뿜어내던 사나운 이빨이 녀석을 마주 보고 눈을 빛냈다.
쩌저적! 뱀신 모르나에게 하사받은 석화의 마안이 바실리스크를 향했다. 똑같은 석화의 마안, 그러나 용의 심장을 얻어 한층 강력해진 사나운 이빨의 마안이 오히려 바실리스크를 점점 굳게 만들었다.
“돌이 되어라!”
사나운 이빨의 외침과 함께 바실리스크가 완전히 굳어버렸다. 정말 돌이 되어버린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서 움직이지 못했다.
피우웅- 쾅! 이레인의 화살이 바실리스크를 꿰뚫고 폭발했다. 거대한 뱀이 돌가루를 흘리며 무너져 내렸다.
그 사이 악마의 키메라를 처치한 아이반이 창을 회수했다. 악신의 권능을 가진 올빼미는 이미 반으로 갈라져서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아주 빌어먹을 숲이었소. 빨리 돌아가서 맥주나 한잔 마시고 잠들고 싶군.”
낮부터 어둠이 계속되어서 시간 감각이 흐려지기는 했지만 잠도 자지 않고 거의 이틀을 꼬박 숲을 돌아다니며 싸우고 있었다. 이제 슬슬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일행은 이리저리 쓰러지고 무너진 숲을 헤치고 안으로 향했다. 멀지 않은 곳에 마녀가 머무는 오두막이 보였다.
“수백 년간 숲을 거처로 삼았다기에 무슨 성이라도 하나 지었을 줄 알았더니 겨우 오두막인가, 생각보다 검소한 모양이야.”
아이반이 비웃음을 흘리며 가까이 다가가자 결계가 그를 막아섰다. 그러나 천둥신의 분노를 막아내던 때만큼의 힘은 없어서 검을 몇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쉽게 부수고 넘어갈 수가 있었다. 오두막 안에서 쉬익쉬익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일행은 서로를 힐끔 보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마녀가 잔뜩 지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하찮고 역겨운 신의 장난감들아!”
마녀는 제법 아름다운 미녀의 외형을 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급격하게 늙어가고 있었다. 아니, 수백 년 이상 살아왔으니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았다. 그녀에게 힘을 전해주던 제물들이 악신과의 연결을 끊고 모두 승천해버리자 더는 젊음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깨져버린 생명의 그릇을 억지로 붙잡고 다른 이들의 목숨을 취해 이어나갔다. 예정된 파멸인 셈이었다.
“악마조차 가지고 놀던 마녀의 최후로는 초라하군.”
아이반의 말에 마녀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런 꼴이 되······.”
스걱! 어느새 마녀의 머리가 잘려서 바닥을 뒹굴었다. 아이반은 적에게 여유를 주지 않았다. 죽일 수 있다면 단번에 죽이려고 노력했다. 괜히 신경 쓰이게 유언이나 들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움직였음에도 미처 마녀의 한마디를 막지 못했다. 마녀는 잘려 나가 바닥을 뒹구는 머리로도 입을 멈추지 않았다.
“···었구나. 실로 원통한 일이다.”
생명을 잃은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점점 흐려진다. 그러나 마녀는 그런 눈동자를 기어이 굴려서 일행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죽음은 과정일 뿐이다. 나의 죽음이 너희들에게 어떤 결과로 다가올지 두려워하며 기다려······.”
파각! 아이반이 창을 집어던져 마녀의 머리를 꿰뚫었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마력이 흩어지고 마녀의 영혼이 떠났다. 오랜 계약에 따라 마녀의 영혼을 회수하러 온 악신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이반은 피하지 않고 맞서 노려보았다.
“말 많은 자들 치고 제대로 된 녀석이 없었다. 나의 목을 노리려면 마음껏 노려라.”
가깝게는 그린 스킨의 오크들부터 멀게는 대악마와 옛 바다의 신까지. 아이반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자들은 무척이나 많았다. 거기에 마녀나 악신의 이름이 하나 추가된다고 해서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번호표나 끊고 기다리라지.
“나는 죽지 않는다.”
그래, 반드시.
숲을 감싸고 있던 결계가 흩어진다. 마녀의 죽음과 함께 수백 년간 쌓아 올린 영역이 파괴되고, 이계로 변했던 숲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낮고 높은 새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소리. 참으로 평화로웠다. 악마를 개처럼 부리고 사람들의 영혼을 모욕하던 곳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아이반이 바람이 실려 오는 풀 냄새를 맡고 있을 때 델피노는 마녀의 거처를 꼼꼼히 살폈다. 그리고 마녀의 거처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비극의 흔적을 발견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이군요.”
자그마한 동굴 안에 수백 년간 마녀가 제물로 사용한 사람들의 유골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몇 개의 탑을 쌓고도 부족한지 여기저기 뼈가 널려있었는데, 수천 명은 족히 될 것 같았다.
“수백 년의 세월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많은데? 그동안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고?”
이레인이 미간을 찡그리며 중얼거리자 델피노가 씁쓸하게 대답했다.
“그동안 영주 가문이 적극적으로 도왔으면 가능한 일입니다. 일 년에 몇 명쯤 사형수를 빼돌리거나 빈민, 외지인, 화전민 등을 몰래 납치해서 제물로 넘겨주었겠지요.”
안 그래도 죽음이 흔한 세상이었다. 마을의 울타리 밖으로 넘어가는 순간 목숨을 장담하기 힘든 곳. 한 번에 수십 명, 수백 명이 사라졌다면 몰라도 장기간에 걸쳐서 하나씩 처리했다면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겠지. 델피노가 복잡한 눈으로 뼈 무더기를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너무 늦었군요.”
그들의 육신과 생명은 마녀의 힘과 젊음을 유지하는 데 사용되었고, 원한 가득한 영혼은 악마와 악신의 먹잇감이 되었다. 델피노가 소환한 빛의 천사가 저주에 얽매인 원혼들을 승천시켰으나, 그보다 많은 수가 이미 찢기고 불태워져 사라졌을 것이다.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그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영혼조차 잃어버리는 일은 없었을 텐데. 델피노는 조금 더 일찍 그들을 돕지 못한 것을 자책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나, 그런 말로 자신을 속일 수 있는 남자였다면 구마사제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화르륵! 아이반이 마력을 일으켜 불을 붙였다. 오래된 유골들이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마녀가 제단으로 사용하던 조그마한 동굴이 화장터로 변했다. 수백 년간 계속된 비극의 흔적이 타들어 가는 데 몇 시간이나 걸렸다.
그동안 델피노는 그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 성호를 그리고 빛의 신 아룬에게 기도를 올렸다. 이들이 생전 어떤 신을 모셨는지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