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114
“난쟁이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오랜 세월 활동했어. 그런 자가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것은 모두 기억과 기록이 조작되었기 때문이지.”
난쟁이를 직접 마주한 자의 기억조차 제각각이라고 했다. 사건자체가 흐릿해서 떠올릴 때마다 조금씩 변형이 이루어지고 결국은 거짓이 진실을 덮어버린다고.
“그러면 대체 난쟁이는 어떻게 추적한 거요?”
아이반이 신기한 듯이 물어보자 파라스가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런 불안정성이 오히려 단서지. 기록에 흩뿌려진 단서를 하나씩 모아서 모양을 만들어가는 거라네.”
덜컹! 그때 갑자기 마차가 크게 출렁거렸다. 여러 가지 기술로 상당히 부드러운 승차감을 자랑하던 최고급 마차에서는 흔히 느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고개를 뒤로 돌려 파라스와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반이 힐끔 바닥을 보았다.
“땅이 완전히 달라졌소. 이제 메마른 땅에 거의 도착했나 보군.”
사건의 경과야 어쨌든 흡혈공 아키우스의 던전에서 서부 연합 왕국의 기사들이 떼죽음을 당했으니 쉽게 국경이 열릴 리가 없었다. 결국 일행은 눈앞에 있는 국경을 넘지 못하고 크게 우회하는 중이었다. 서부 연합 왕국은 말 그대로 몇 개의 나라가 연합해서 만들어진 곳이라 다른 국경으로는 통과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그중 하나의 루트, 서부 메마른 땅을 지나는 길이었다. 푸석푸석하고 황량한 모래사막을 통과하는 방법.
‘그러고 보면 피알라르가 나중에 이곳에서 황금 망치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될 텐데.’
아이반에게 황금 멧돼지 가죽으로 갑옷을 만들어주었던 피알라르 그뷔드뮌드손. 그는 대륙 북부, 노르드의 영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지만,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어쩌면 지금쯤 이곳에 왔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오랜만에 그를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운과 인연이 따라야만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때는 무기를 받지 못했는데, 지금은 다를까?’
아이반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차를 근처 도시로 몰았다. 사막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온통 모래뿐인 곳이라 마차가 움직이기에 적당하지 않으니 이쯤에서 새롭게 장비를 꾸려야만 했다. 드워프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고급 마차는 인벤토리에 보관할 거고, 안타깝지만 사막은 말이 버티기 어려운 환경이라 이쯤에서 팔아야만 할 것이다.
“마녀의 숲에서도 살아 돌아온 녀석들이지만 뜨거운 모래를 견딜 수는 없을 거요.”
싸늘한 기온에 익숙한 놈들이니 뜨거운 태양과 사방이 찌는 듯한 더위에는 답이 없었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마법을 걸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도 다행이었다. 혈통이 좋은 녀석들이니 이런 곳에서도 원하는 사람은 많을 테지. 그렇게 녀석들을 떠나보낸 일행은 새롭게 준비를 했다. 거친 모래 바람을 막을 외투와 입과 머리를 둘러쌀 천 조각, 쉽게 바닥에 빠지지 않는 신발이나 새로운 텐트, 침낭, 모래향 입욕제까지. 사나운 이빨이 민망한 듯 코를 긁적였다.
“다른 곳에서는 못 보던 것이라 그만······.”
모래향 입욕제는 아무리 봐도 그냥 모래를 잘게 갈아놓은 것에 불과했지만 그 정도 사치를 부리지 못할 것도 없었다. 거의 상점 하나를 거덜 내듯 물건을 구입한 뒤에 길 안내를 해줄 사람을 구하려고 주인에게 슬쩍 물으니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뭐? 지금 사막을 넘겠다고? 제정신입니까?”
오랜만에 만난 큰손에 싱글벙글 물건을 팔아먹던 가게 주인이 무심코 그리 외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혹시나 일행이 사지 않겠다고 할까 전전긍긍하며 덧붙였다.
“아니, 제 말은 그러니까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다는 말이죠.”
“시기? 무슨 뜻이오?”
“지금은 여름입니다. 사막이 가장 뜨거울 때. 메마른 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견디기 어려운 시기죠. 특히나 앞으로 한동안은 지독한 모래폭풍이 불 겁니다. 이때 사막에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어요.”
다른 몇 사람에게 물었지만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같은 시기에 사막에 들어가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는 것이다. 일행은 숙소에 모여 앉아서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메마른 땅을 잘 몰랐기에 이런 어려움이 있는지 몰랐다. 그저 사막이니 힘들겠다고 여겼지, 아예 들어가지 못할 줄이야.
“길잡이가 없으면 사막을 통과할 수가 없소. 결국 아주 크게 돌아가야만 한다는 뜻인데······.”
이미 한 번 우회해서 이곳으로 왔는데 여기서 또 돌아가려니 시간이 너무 많이 들었다. 이미 말들도 다 팔아버렸고.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신중하게 행동하는 건데······.’
일행이 모두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누군가 거칠게 문을 두드렸다. 쾅쾅쾅!
“안에 계십니까!”
아이반이 슬쩍 검에 손을 얹고 문을 열자 꾀죄죄한 몰골의 남자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메마른 땅으로 들어가려고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길잡이를 하겠습니다!”
아이반은 검 위에 얹어놓았던 손을 내리고 그를 안으로 이끌었다.
“일단 이야기나 들어봅시다.”
온몸에 흙먼지가 가득한 자였다. 머리는 산발이 되어 헝클어졌고, 입술은 바짝 말라 갈라져 있었다. 며칠은 굶은 것처럼 볼이 홀쭉했지만, 눈빛은 또 깊이 반짝거렸다. 아이반이 시원한 물 한 잔을 건네자 단번에 들이켜 목을 축인 남자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은 위험한 시기입니다. 황량한 신의 분노가 몰아치니까요.”
황량한 신의 분노. 이 지역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몰아치는 강력한 모래폭풍을 그리 표현했다. 그저 강한 바람이 불고 모래로 시야가 가리는 것만이 아니라 마력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지형이 바뀌었다. 프로스트 엘프의 영역 위쪽에 있던 혹한의 땅처럼 극한의 자연환경이 만들어낸 마법 현상이라 지독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때에도 방법은 있죠.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다른 이들은 이 시기엔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소. 자살행위나 미친 짓이라고도 했지. 그런데 당신은 가능하다고 하니 의아하구려.”
“신이 분노를 굳이 몸으로 맞겠다는 자들은 흔치 않죠. 사정이 급하지 않다면 피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이런 시기에도 가야겠지요.”
그 말에 아이반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에게 물었다.
“우리의 필요는 그렇다 치고, 당신의 필요는 무엇이오?”
“돈, 시간, 내 가족의 건강.”
“건강?”
“동생이 아픕니다. 약을 구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요. 지금이 아니면 늦습니다.”
남자의 담담한 대답을 들은 아이반이 힐끔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델피노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이레인도 동그라미를 그렸다. 남자의 말은 믿을 수가 없었으나 구마사제와 엘프의 판단은 몹시 신빙성이 있었다. 남자의 말이 모두 진실이거나, 구마사제와 엘프를 속일 만큼 연기가 완벽하거나. 어느 쪽이든 보통은 아니었다.
“혼자서는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일행이 있다면 모래폭풍을 뚫고 메마른 땅을 건널 수가 있습니다. 내가 당신들을 찾아온 이유입니다.”
“사정은 알겠소. 그러나 당신의 급박한 사정이 눈을 가리고 있는 것 아니오? 당신이야 목숨을 걸어서라도 사막에 들어갈 이유가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런 위험을 감수할 만큼 급하지는 않은데.”
계속 우회하고 있으니 일정이 늘어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목숨을 걸고 사막을 통과할 이유도 없었다. 던전이야 명확한 보상이라도 있었지, 겨우 몇 주의 시간을 아끼겠다고 위험을 감수하기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아이반이 짐짓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리 말하자 남자가 침착하게 대꾸했다.
“여기 오기 전 당신들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짐꾼도 없이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샀더군요. 크고 화려한 마차를 타고 왔으나, 말들은 팔았어도 마차는 팔지 않았고. 상인도 아니면서 다섯이서 사막을 건너려고 했죠. 다른 카라반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길잡이 하나만을 원했고요.”
“···그래서?”
“아공간을 가지고 계신 것 아닙니까? 그것도 크고 화려한 마차가 통째로 들어갈 만큼 커다란 것을.”
딱히 숨기려던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서는 또 대놓고 능력을 사용하지도 않았거늘 남자는 몇 가지 상황증거만을 가지고 인벤토리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이다. 아공간이란 몹시 희귀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정도로 커다란 아공간이 있다면 대부분의 위험은 피할 수가 있습니다. 겨우 다섯 명, 저까지 여섯 명이 메마른 땅에 들어간다고 해도 그저 미친 짓은 아니겠지요.”
사막을 건너기 위해서는 몹시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한 사람이 하루에 사용하는 물과 식량만 해도 적지 않은 양이라 그 짐을 운반하는 방법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극단적으로 줄일 수가 있다면, 몇이나 되는 짐꾼과 낙타를 끌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면 이런 시기에도 사막을 통과할 수 있노라 남자는 단언했다.
“저의 필요는 이미 말했습니다. 당신의 필요는 어떠십니까? 이래도 저의 초조함이 위험을 가렸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툭, 툭. 아이반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고민했다. 몇 주를 줄였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 모래폭풍의 위험과 인벤토리의 존재, 일행의 능력. 이것저것을 재어보던 아이반이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준비하는 데 얼마나 걸리겠소?”
남자가 씨익 웃으며 되물었다.
“내일 아침에 출발하면 되겠습니까?”
다음 날 아침, 일행은 짐도 없이 몹시 단출한 모습으로 도시를 나섰다. 성문 경비를 맡은 병사들이 정말 그렇게 출발하느냐 몇 번이나 되물었지만,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고 메마른 땅으로 향했다.
“솔직히 나는 그리 단출하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데 말이오. 이 녀석들 때문인가?”
아이반이 녀석들을 빤히 바라보자 녀석들도 아이반을 바라보았다. 느릿한 움직임으로 그를 살피다가 꼬리를 살짝 털었다. 모래가 사방으로 튀자 안내인을 맡은 남자, 아딜이 껄껄 웃었다.
“당신이 마음에 드나 보군요.”
용을 닮은 얼굴과 도마뱀을 닮은 몸통. 네 개의 다리가 바닥에 바짝 붙어있었으나 체고가 마냥 낮지는 않았다. 거기에 안장을 얹어놓았으니 모습이 영 낯설었다. 이쪽 지역에서 탑승 수단으로 즐겨 이용한다는 사막 용마였다. 웬만한 낙타보다 더 낫다고 했다.
“모래바람에 저항하는 것도 강하고, 모래언덕을 타고 넘기도 훨씬 편하죠. 보기보다 순한 녀석들이니 처음 타도 다루기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시간이 문제지 돈이 없지는 않았다. 값이 싸지는 않았지만, 혈통 좋은 말들의 값에 비하면 그리 비싼 녀석들도 아니었다. 다른 일행들이 각자 자신의 몫으로 배정된 녀석들 위에 올라탔다. 미리 조련되어 있는 녀석들이라 불편함이 없었다.
“으음, 느낌이 묘하군.”
아주 솔직히 말을 하자면 사나운 이빨의 등에 올라탄 것 같기도 했다. 용마와 리자드맨을 비교하는 것은 몹시 모욕적인 일이기에 실제로 말을 내뱉었다간 누구 하나 죽어 나갈지도 모르지만. 사나운 이빨은 용마가 아니라 요정의 창고에서 챙긴 정령 소환의 목걸이로 정령마를 불러와 타고 있었다. 푸른 털이 물결치듯 흔들리는 정령마는 바람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반쯤 허공에 떠서 달릴 수가 있었다. 사막의 모래 위에서도 문제없으리라. 푸석푸석하고 쩍쩍 갈라진 황야를 건너 저 멀리 황금색으로 빛나는 모래의 바다로 향했다. 용마의 걸음이 생각보다 재빨라서 순식간에 도시에서 멀어졌다. 휘이잉- 슬슬 도시의 모습이 가물가물해질 때가 되자 바람이 거칠었다. 사막에서 날려 온 모래바람에 눈을 바로 뜰 수가 없을 정도였다. 길잡이 아딜이 목에 두른 천 조각을 눈 밑까지 끌어올리며 소리쳤다.
“사막에서 한눈을 팔면 순식간에 길을 잃습니다! 일행과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그 후로 한동안 말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람은 계속 불어왔지만 시원한 느낌은 전혀 없고, 오히려 뜨거운 바람과 온몸에 까슬까슬 달라붙는 모래 알갱이가 불쾌하기만 했다. 여름 사막의 온도는 무척이나 높아서 폐에 들어오는 공기마저 텁텁했다. 찌다 못 해서 굽는 것과 같은 더위였다. 길잡이 아딜은 조그마한 그늘이 보일 때마다 휴식을 선언했다. 일행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는 단호했다.
“사막에서는 무엇도 자신하지 마십시오. 쉴 수 있을 때 쉬지 않는다면 영원히 쉬지 못합니다.”
사막은 시야를 막는 것이 거의 없어서 모래바람만 아니라면 무척이나 먼 곳까지 보였다. 어딘가를 목표로 삼아서 걸어도 쉽게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혹한의 땅과는 다른 의미로 지독한 곳이군.”
아이반이 물을 마시며 중얼거리자 델피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도 가도 모래밖에 없으니 우리가 어느 정도 움직였는지 감이 잡히지도 않는군요. 그때와 참으로 비슷합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사나운 이빨이 크게 콧김을 내뿜으며 말했다.
“그래도 추운 것보다는 더운 것이 낫다!”
원래 더위보다 추위에 약한 것이 리자드맨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화염 드래곤의 심장까지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에게 이 정도 더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컨디션이 더 좋은 것 같기도 했다.
“이런 수준이라면 그리 힘들지도 않구먼.”
뜨거운 용광로 앞에서 달궈진 쇠를 두드리는 것이 일상인 드워프 파라스 역시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그렇다고 표정이 좋지는 않았다. 그의 거칠고 풍성한 머리카락과 수염 사이에 모래 알갱이가 다닥다닥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더운 것은 괜찮은데 모래바람이 문제로군. 영 찝찝해.”
툭, 툭! 그가 자신의 수염을 털 때마다 흙먼지와 모래가 떨어졌다. 몇 번 그렇게 털어내다 답이 없다는 것을 느꼈는지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막은 내 취향이 아닌 것 같아.”
“취향을 따지기엔 아직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은 것 같은데.”
“그 말이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구먼. 시원한 맥주 한 잔이라면 기분이 풀릴 것 같은데, 어떤가?”
“개수작하지 마시오. 이제 점심때가 갓 지났소. 술은 저녁이나 되어야 마실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