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124
델피노의 신성력을 밀어내고 이 땅의 신이라 주장하는 존재가 자신의 신전을 바로 세웠다. 분명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죽었으나, 수많은 백성에게 신으로 모셔진 사샨트의 왕은 한 조각 신성을 품고 있었다.
제대로 된 신이라기엔 한참이나 부족하고, 이제는 숭배하는 이마저 없었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그는 신이나 다름없는 위엄을 가지고 있었다. 사샨트 왕은 사막의 거짓된 신이 되어 소리쳤다.
– 이 땅의 신이 돌아왔으니 다른 헛된 신앙은 필요치 않노라! 사샨트 왕국의 역대 왕들이 계속 공유해서 완성한 이름. 위신(僞神) 사샨트의 선언에 이곳을 지켜보고 있던 신들의 시선이 멀어졌다. 위신 사샨트를 제외한 신들의 힘이 급격하게 약해진 것이다.
비록 이 땅이 신앙의 핵심이었던 장소라고는 하나 거짓된 신이 다른 신들의 존재를 밀어냈으니 실로 놀라운 위업이었다.
“저 트롤러 새끼.”
드래곤의 가슴을 베기 직전 힘이 사그라져서 튕겨 나온 아이반이 핏물 섞인 침을 내뱉었다. 아스가르드 신의 가호가 무척이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그에게 위신 사샨트의 성지 선포는 아주 치명적이었다.
‘아스가르드 신들의 시선을 멀리 밀어내다니, 그게 가능할 리가 없는데······.’ 호불호야 어쨌든 아이반만큼 강하게 신의 관심을 받는 존재는 극히 드물었다. 오래전에 사라진 위신 주제에 그들의 눈을 가리는 것이 말이나 된단 소린가. 그러나 아이반은 주변을 둘러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 사막을 가득 채울 듯 무수히 많던 모래병사가 하나씩 흩어져서 사라지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위신 사샨트는 자신에게 속해있는 영혼을 대가로 지불하고 있었다.
수만 명의 영혼을 제물로 삼았으니 신들의 눈을 가리고 거짓된 신을 자처할 정도는 되겠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는 자들을 소모하고 있으니 결국 약해지겠지만 지금 당장 힘을 끌어올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살아있는 용의 심장을 빼앗아 새롭게 부활하겠다는 거지.
“망할, 온갖 외력을 다 치우고 본인의 힘만 남기다니. 정말 한 번에 모든 것을 다 불태우는······.”
온갖 외력을 다 지운다고? 모든 힘을? 아이반은 고개를 휙 돌려서 드래곤을 보았다. 용의 육신이 아니라, 용의 영혼을. 대주술사의 몸에 갇혀있던 용의 영혼이 쓴웃음을 지으며 안대를 풀었다.
“내가 이리 깨어나는구나.”
대주술사의 육신이 손끝부터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용의 영혼을 붙잡아두고 있던 봉인이 마침내 풀리고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간다.
갑갑한 감옥에서 벗어나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으니 기쁠 만도 하건만 용의 영혼은 그저 회한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의 상황이 그리 달갑지 않은 모습이다.
천 년간 대주술사의 몸에 갇혀있으면서 그녀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용의 영혼이었으나, 이제 본신으로 되돌아가면 그 나약한 감정은 사라질 터였다. 홀로 오롯한 용에게 인간의 감정이 파고들 틈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변질하였던 정신이 원래대로 되돌아간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천 년간 이어진 변화가 사라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제 나는 본래의 육신으로 돌아가노라. 그러나 천 년의 세월은 나에게도 결코 짧지 않았으니, 영혼과 육신이 하나가 되는 것이 순탄치 않도다.”
“본론만 말씀하시오!”
아이반이 자신의 발목을 붙잡는 모래 손아귀를 털어내면서 소리치자 용의 영혼이 말했다.
“한 시간만 버텨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그리고 대주술사의 육신이 완전히 흩어졌다. 봉인되어있던 용의 영혼이 풀려나고 막대한 존재감이 사방으로 번졌다.
수많은 영혼을 제물로 바쳐서 정말로 신이 된 듯 전능한 기분을 즐기던 위신 사샨트가 움찔 놀라서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성지 선포를 통해 이곳의 변화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기에 그 놀라움은 더 컸으리라.
– 우우우우! 짐승의 울음소리를 닮은 외침과 함께 드래곤에서 짙은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온몸을 짜릿짜릿하게 만드는 용의 기운, 저절로 몸이 위축되는 강한 위압감. 그저 크고 강한 적에서 절대적인 존재로 변하고 있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이게 드래곤, 세상의 창조자가 남긴 그들의 분신. 우웅- 드래곤의 외침에 마력이 공명하고 세계가 흔들렸다. 천상에서 이곳을 지켜보던 신들의 시선마저도 밀어내던 위신 사샨트의 영역이 무너질 듯이 요동쳤다.
아이반은 허탈하게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한 시간은 너무 긴데.”
화아아- 용의 불꽃이 쏟아졌다. 온 세상이 일그러져 보이는 압도적인 열기가 사막을 뜨겁게 달구었다.
아이반과 델피노, 이레인과 사나운 이빨은 한 곳에 뭉쳐서 각자의 기운을 내뿜어 방어막을 펼쳤다. 그들을 노린 공격이 아님에도 지글지글 익어가는 열기가 밀려왔다.
온갖 내성을 다 올리고, 용의 피까지 뒤집어쓴 아이반의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다. 화염 드래곤의 심장을 가진 사나운 이빨은 멀쩡한 듯했지만, 이레인은 정령들로 용의 불꽃을 밀어내는 것이 다소 버거워 보였다.
델피노는 아예 온몸에 화상을 입었다가 신성력으로 회복되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고통스러운 신음 하나 흘리지 않는 것이 대단하기만 했다. 휘이잉- 쏟아지던 용의 불길이 잠잠해지자 아이반과 이레인이 손을 휘저었다.
바람이 열기를 밀어내고 사방에 가득한 독기를 차단했다. – 하찮은 도마뱀 주제에에에에! 상반신의 절반이 검게 타버린 위신 사샨트가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 주변에는 모래가 열기에 녹아서 액체가 되어 흐르고 있었다. 모래벽을 쌓아 막았으나 용의 불길은 그것조차 뚫어낸 모양이다.
용의 숨결은 단순히 뜨거운 불꽃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용이 가진 가장 순수하고 파괴적인 형태의 권능이었다. 그저 불길을 막는다는 생각으로는 온전히 막지 못하고, 권능을 억누를 방법이 필요했다.
저렇게 강한 힘을 가지고도 그대로 당한 것을 보니 위신 사샨트는 미처 용을 상대하는 방법까지는 알지 못했던 모양이다. ‘하긴, 뛰어난 전사도 아니고 태어날 때부터 신으로 숭배를 받던 왕이 잘 싸울 리가 없지.’ 힘이 강한 것과 전투에 능한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하물며 용이 다른 존재에게 살해당한 것은 신화시대 이후에는 손가락에 꼽힐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드래곤을 상대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을 리도 없었다.
스스슥- 위신 사샨트의 영역이 무너진다. 용의 숨결을 맞고 영역을 유지할 힘이 부족해진 모양이다.
아직 모래 병사의 영혼은 많았으나, 영역을 유지하면서 싸울 정도로 여유롭지는 않았다. 지금도 눈에 보일 만큼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 너의 심장이 나의 생명이 될 것이다! 파앗! 모래가 녹아서 만들어진 유리를 부수고 다시 모래 기둥이 솟아올랐다. 모래 기둥은 마치 촉수처럼 움직이더니 드래곤을 붙잡고 바닥으로 끌고 들어갔다.
드래곤의 마법이 모래 기둥을 얼리고, 부수고, 불태웠지만 용의 숨결을 내뱉고 생긴 작은 틈 때문에 결국 바닥에 처박혔다. 쿵! 드래곤이 쓰러지자 완전히 파묻으려는 것처럼 소용돌이치는 모래 수렁이 끝없이 아래로 잡아당겼다.
커다란 드래곤의 육신이 모래에 잔뜩 뒤덮이려는 순간,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짙은 모래폭풍. 시야를 가리고 지형을 바꾸는 사막의 재해. 휘이잉- 땅속에 파묻히려던 드래곤이 어느새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모래 폭풍이 그 움직임을 따라 한층 격하게 변했다. – 감히 누굴 내려다보는 것이냐! 위신 사샨트가 다시 모래 기둥을 날렸으나 폭풍을 뚫지 못하고 밀려났다.
위신 사샨트의 지배력이 드래곤의 지배력만 못하다는 뜻이었다. 모래 병사의 영혼을 제물로 바치고 있는 위신 사샨트는 점점 약해지고, 영혼을 되찾아 부활한 드래곤은 점점 강해졌다.
지금껏 그 차이는 아주 미세한 정도였으나,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다. 쉬이익- 아이반이 창을 날렸으나 드래곤의 마력 장벽과 모래 폭풍을 뚫고 치명상을 입힐 수는 없었다.
드래곤은 그의 공격을 신경 쓰지도 않고 그대로 낙하해 위신 사샨트의 몸을 찢어발겼다. 스걱! 위신 사샨트가 그냥 당하지는 않았다.
거대한 모래 칼날을 만들어내 드래곤의 날개를 베어내고 목에 상처를 입혔다. 드래곤의 핏물을 받아 마신 위신 사샨트가 몸을 회복하며 껄껄 웃었다.
– 이것이 용의 피! 나는 너를 삼키고 부활하겠···! 쾅! 쾅! 쾅! 드래곤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위신 사샨트를 짓누르고 이빨로 몸을 뜯어냈다. 용의 권능이 위신 사샨트의 영혼을 고정하고 그것을 꿰뚫었다.
위신 사샨트. 거짓된 신성을 파헤치고 그 안에 있는 연약한 인간의 영혼을 노려보았다. – 나, 나는 사샨트! 살아있는 신이로다! 오래전 사라진 망국의 왕이 그리 외쳤으나 드래곤에게는 닿지 않았다.
그저 다시 한번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 뿐이다. – 크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이 들렸다.
수많은 모래 병사들이 몸을 던져 그를 구하려 했으나, 이미 너무나 많은 영혼이 제물로 바쳐져 사라졌다. 하다못해 조금이라도 이른 시간이었다면 몰랐으나, 사샨트 왕국이 사라진 것이 벌써 이천 년이나 되었다.
그 많은 영혼을 바쳤음에도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힘이 사그라들었다.
“멍청한 녀석이!”
자신에게 저만한 힘이 있었다면 이미 옛날 옛적에 드래곤을 때려눕혔을 거다. 그런데 오히려 개껌처럼 씹히고 있는 모습을 보니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한심함이야 어쨌든 이대로 위신 사샨트가 사라지면 드래곤을 온전히 자신들의 힘으로 막아야만 했다.
아이반은 다급히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스스로 움직여 거인을 베는 검도, 용살검 그람도 이미 써버렸다.
당장은 다시 불러올 수가 없는 상태. 그러나 피의 검 브리카는 입을 쩍 벌리고 용의 힘을 게걸스럽게 집어삼켰다. 덜덜덜덜- 아직 피 웅덩이의 힘도 완벽히 흡수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거기서 다시 용의 힘을 집어삼키려 하니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밖으로 넘쳐흘렀다. 폭력적이고 오만한 용의 기운은 굽히지 않았고, 피의 검 브리카를 쥐고 있는 아이반의 팔이 경련하듯 떨렸다.
한 번 걸러서 순수한 기운으로 만들어야 할 피의 검 브리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용의 기운이 그대로 아이반의 몸을 헤집어놓고 있었다. 온몸의 마력 회로가 다 뒤집어지는 것만 같았다.
울컥! 내장이 상하고 마력이 역류한다. 아이반이 붉은 선혈을 토하고,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여기서 다른 기운이 들어와 봐야 폭주만 더할 뿐이라 델피노는 치료도 하지 못하고 그를 바라만 봐야 했다. 피우웅! 이레인의 화살이 연속해서 박히고, 그녀의 정령이 드래곤을 후려쳤다.
위신 사샨트의 영혼을 그대로 씹어서 끊어놓은 드래곤이 그녀를 바라보며 허공에 날아올랐다. 흐으읍- 드래곤이 숨을 들이켜자 대기에 퍼져있던 마력이 한곳으로 모인다.
유형화된 마력이 빛을 뿜고 다시 한번 온도가 후끈 달아올랐다. 입에 불꽃을 머금은 드래곤이 살기로 눈을 번뜩이며 용의 숨결을 토해내려 했다.
사나운 이빨이 가장 앞에 서서 마력을 내뿜었다. 이레인이 정령들로 결계를 만들고 델피노의 신성력이 그것을 뒤덮었다.
이번에 용의 숨결이 몰아치면 과연 버틸 수가 있을까?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힘들 것이란 사실을 모두가 직감했다.
우웅- 이레인이 고대 요정의 신기, 팔라시온의 활을 뽑아 들었다. 힘껏 시위를 당기고 닫아놓았던 정신을 서서히 열었다.
이대로 세계수와 연결하여 그 힘을 얻는다면···! 그때 드래곤이 갑자기 몸을 비틀었다. 입에 머금은 불꽃을 하늘 위로 내뱉었다.
용의 숨결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 것이다. 이레인은 팔라시온의 활을 집어넣고 바람의 정령을 불러 일행을 감싸 안았다.
이내 하늘을 꿰뚫은 뜨거운 열기가 바닥까지 밀려왔다. 화아아아- 온 사방이 붉게 물들었다.
살이 익는 듯한 열기는 여전하고, 숨 쉴 공기마저 불태운 답답함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들을 향한 공격이 아니었기에 견딜만했다.
“용의 영혼이 육신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됩니다!”
을 지키기 위해 다른 일행들이 피를 토하며 막아섰다. 쾅! 땅이 흔들리고 날카로운 바람이 불었다.
누군가의 피가 흩날리고 뼈가 부러졌다가 회복되기를 반복했다. 그 난리 속에서도 아이반은 꼼짝하지 않았다.
아이반은 어딘가 멀고 먼 환상을 보고 있었다. 들리지 않아야 할 소리가 들렸다.
깡! 깡! 깡! 달궈진 쇠를 두드리는 소리, 누군가 망치를 휘두르는 소리. 아이반의 시선을 느낀 그가 흠칫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뒤돌아 눈을 마주쳤다. ‘여자? 어른? 아이? 노인?’ 바라보고 있음에도 아이반은 그가 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렇기에 그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난쟁이. 세계수 이그드라실이 불타고 이 낯선 세계로 건너온 위대한 장인. 그가 무어라 이야기를 하는 듯했으나, 흐릿한 환상이 멀어지며 더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아이반은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왔다. 이글거리는 열기, 짜릿한 살기, 그를 내려다보는 위대한 존재감. 아이반이 재빨리 일어나 싸울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오히려 드래곤이 살기를 흩어버리고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지금껏 두 눈에 가득하던 분노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용의 영혼이 자리 잡을 때까진 시간이 남았음에도 드래곤의 모습은 무척이나 차분해 보였다.
“···혹시 정신을 차린 것이오?”
– 그러하다, 아스가르드의 전사. 그 말에 긴장이 탁 풀린 아이반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마지막까지 풀어지지 않으려 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이러는 것을 보면 지치기는 지친 모양이다.
하긴, 몸 상태가 극도로 좋지 않기는 했다. 언뜻 주위를 둘러보니 사나운 이빨과 델피노, 이레인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서 있었다.
무척이나 지쳐보였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어찌어찌 버티긴 버텼군. 젠장, 한 시간이라니.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소.”
– 운이 좋았다. 그 검이 아니었으면 이보다 빨리 깨어나지는 못했으리라.
“검?”
아이반은 고개를 돌려 피의 검 브리카를 보았다. 이전보다 더욱 단순한 외형의, 그러면서도 느껴지는 기운은 더욱 깊은 검. 드래곤은 자신과 연결된 마력의 끈을 바라보며 덤덤히 말했다. – 새로운 신기가 탄생하였구나
뜨겁게 달아오르다 못 해서 아예 녹아내리던 땅이 천천히 식었다. 모래는 유리가 되어 희미하게 떠오르는 태양의 빛에 반짝거렸다.
드넓게 펼쳐진 모래 바다 역시 다른 세계의 것만 같은 풍경이었으나, 유리가 가득한 기묘한 풍경은 더욱더 이질적이었다. 파사삭! 드래곤이 움직일 때마다 바닥에 가득한 유리가 깨졌다.
조금 전까지 서로 죽일 듯이 싸웠던 드래곤이 가까이 다가와 내려다보고 있으니 아이반 마저도 움찔할 정도였다. – 나와 그 검이 연결되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드래곤은 자신의 힘이 검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하여 완전해야 할 자신이 불완전해졌음을, 홀로 오롯해야 할 것이 틈이 생겼음을 알았다.
아직 대주술사에게 영향을 받은 인간의 감정이 남아있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태어날 때부터 완성되어있는 드래곤에게 존재하지 않을 나약한 감정의 파편, 유약한 모습. 완전함을 잃어버렸으니 용으로서는 크게 치욕스러운 일이었으나, 드래곤은 분노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 또한 예정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이 또한 운명이니 그대에게 나의 가호를 내리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