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125
태초의 불꽃에서 태어난 드래곤, 사브리나가 그대와 함께하리라.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세계의 법칙을 뒤흔드는 정당한 창조자의 권능, 용언. 아이반은 자신이 쥐고 있는 피의 검 브리카에서 웅장한 용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용의 심장이 뛰는 것처럼 그 힘이 흘러들어오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아이반은 피의 검 브리카를 통해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의 힘을 빌릴 수가 있었다.
“깨어나고 싶지 않다더니, 일어나버렸으니 이제 무엇을 할 작정이오?”
– 파멸의 뿔피리가 울려 퍼질 때까지 기다리겠노라. 일찍 눈을 뜬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나, 그 또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음이다.
드래곤, 사브리나는 길게 목을 빼 들고 주변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기운을 느끼고 온 사막의 몬스터들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드래곤의 기운에 공포를 느끼고 덜덜 떨면서도 가까이 다가왔다. 조금이라도 그 기운을 받아먹고 강해지기 위해 점점 모여들었다.
드래곤은 세상의 창조자가 남긴 분신이었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주변을 파괴하고 또 흥성하게 했다.
본디 자신의 육신을 되찾으며 나약한 감정의 찌꺼기가 모두 사라졌어야 하지만, 불완전해졌기에 천 년의 변화가 남아있었다. 그녀에게 남은 대주술사의 흔적이 그녀를 떠나게 했다.
화아아- 드래곤이 날개를 펼쳤다. 위신 사샨트와 싸우느라 한쪽 날개가 잘려 나가고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으나, 어느새 멀쩡한 듯 회복되어있었다.
– 천 년 전, 그녀가 나를 위로하며 남긴 것들이 있다. 나에게는 헛된 물건이나 그대들에겐 귀하리라.
용이 자신의 보물을 남기니 그대들은 쾌히 수습하라. 모래 폭풍보다 더욱 거센 바람과 함께 사브리나가 날아올랐다. 그리고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며 날갯짓을 시작했다.
거대한 육신이 빠르게 멀어졌다. – 천 년이 흘러 그녀가 마침내 뜻을 이루는구나! 드래곤 사브리나가 어디론가 사라진 후 아이반은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서 헛웃음을 흘렸다.
매번 그랬지만 이번도 더럽게 힘들었다. 속이 다 뒤집어지고 마력이 제대로 흐르지 않는 데다 정신이 깜빡깜빡했다.
솔직히 아직까지 뻗지 않은 것은 피의 검 브리카에서 느껴지는 막대한 기운 때문이었다. 여전히 요사스러운, 그러면서도 고귀한 힘. 아이반은 브리카를 빤히 바라보다가 그것을 지팡이처럼 사용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바닥이 푹푹 파여서 썩 편하지는 않았다.
“용과 싸우고 오히려 용에게 축복을 받다니, 역사를 뒤져봐도 이런 일은 없을 거야.”
이레인이 비틀거리면서 걸어왔다. 한쪽 다리를 절뚝이고 오른쪽 팔을 붙잡고 있는 걸 보면 상태가 좋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드래곤과 싸우고 이 정도라면 멀쩡한 거나 다름없었다.
사나운 이빨 역시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원래부터 훌륭한 리자드맨의 회복력과 함께 용의 심장이 가진 힘으로 빠르게 상처가 아물고 있었다. 둘의 상태를 확인한 아이반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델피노를 바라보았다.
외상은 없어도 여기서 가장 위험한 것이 그였기 때문이다. 델피노의 안색은 파리하다 못해서 창백했다.
거의 흡혈공 아키우스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괜찮소?”
“아니요. 죽을 것 같습니다.”
한계까지 신성력을 뽑아 쓴 델피노가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앓는 소리를 냈지만 아이반은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정말 심각한 정도라면 델피노가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했을 거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죽진 않겠군.”
자리에 앉아서 한참이나 그러고 있던 일행은 해가 높이 떠오르고 사방이 완전히 밝아지자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드래곤이 남긴 보물은 확인해야지.”
아무리 피곤해도 놓칠 수가 없었다. 이 고생을 했는데 챙길 것은 챙겨야지. 조금 전까지 푸르죽죽하게 죽을 듯이 피곤한 안색이던 델피노가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소리쳤다.
“용의 둥지를 터는 일입니다. 어서 가시죠!”
그렇게 마을로 도망가라고 소리쳤건만, 쉽게 떠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거리를 벌리고 저 멀리 싸움이 계속되는 것을 지켜보던 파라스와 피알라르, 아딜은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가 날개를 털며 사라진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돌아왔다.
용의 기운이 잔뜩 번져서 이 근처는 몬스터가 날뛰는 중이었다. 그것을 헤치고 돌아왔으니 온몸에 괴물들의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떠날 때 배낭 하나 들고 갔으니 이렇게 되돌아왔다가 아이반이 당했으면 식량과 물이 부족해 마을까지 가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도 돌아온 것이 놀라웠다. 혹시 죽었다면 같이 죽겠다는 뜻일까? 이들과 그 정도로 인연이 깊었나 싶어서 얼떨떨할 정도였다. 파라스는 일행이 멀쩡한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릴 듯 끌어안고 외쳤다.
“살았네! 살았어!”
목소리에 물기가 가득한 것을 보니 정말로 울기라도 하는 모양이다. 그런 격한 환대가 아이반은 어색하기만 했다.
“그러면 죽으러 가는 줄 알았소?”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지! 하지만 자네들은 아니었군. 정말 대단하이.”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것에 크게 죄책감을 느낀 모양이다. 그러나 아이반은 그런 그가 오히려 이상했다. 대장장이에게 무슨 기대를 하겠나? 이미 그는 충분히 잘 싸우고 있었다.
용과 싸우지 못했다고 실망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던 파라스의 눈길이 아이반의 허리춤으로 향했다. 그가 허리에 대충 달고 있는 검이 영 낯설게 느껴진 것이다.
인벤토리를 활용해 다양한 무기를 사용하는 아이반이었지만 검만은 브리카라는 걸출한 녀석이 있었다. 그래서 다른 검은 잘 사용하지 않았기에 의아한 모양이다. 혹시 브리카가 부러져서 임시로 쓰는 녀석인가 싶어서 바라보던 파라스의 눈이 점점 경악으로 물들었다. 물론 피알라르는 일찌감치 알아보고 입을 떡 벌리는 중이었다.
“아니, 이건···!”
“기연이 있었소. 용의 축복을 받았지.”
아이반이 피의 검 브리카를 뽑아 들자 파라스와 피알라르가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신기로 각성한 브리카는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지극히 실전적이야. 하지만 투박하지 않고 유려하군. 깃들어있는 힘도 그렇고.”
“난쟁이가 남긴 보물은 몇이나 보았지만 이처럼 대단한 것은 처음이오.”
몇 번이나 감탄하던 피알라르의 표정이 흐려졌다. 과연 자신이 이것보다 더 대단한 물건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본인의 실력에 무척이나 자부심이 넘치는 피알라르였으나, 우연과 실력, 기적이 합쳐져 만들어진 이 검 앞에서도 당당할 수는 없었다. 수백 년간 불의 신 쿤다라의 신성력으로 정화하고 흡혈공 아키우스가 평생을 들여 모아둔 피 웅덩이의 힘에 지난 천 년간은 아무도 모습을 본 적이 없다던 드래곤의 기운이 합쳐진 물건이었다.
난쟁이가 직접 쇠를 두드려 만들고, 기나긴 역사를 거쳐 용의 피로 담금질해 완성한 검이니 피알라르가 아무리 실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뚝딱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허, 이제 내 무기가 필요하지도 않겠소.”
피알라르가 씁쓸하게 말하자 아이반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예전부터 당신에게 무기를 받기를 기대하고 있었소.”
“흐, 그리 위로할 것 없소. 그 검이 있고 또 당신에게는 창도 있으니······.”
“길을 잃은 대전사의 창은 부러졌소. 지나치게 험하게 쓰다가 결국 산산조각이 나버렸지.”
아이반이 창의 조각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보여주자 피알라르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안타까워하는 것 같기도 했고, 즐거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 새로운 창이 필요하겠군.”
옆에서 내가 만든 창도 있지 않으냐 투덜거리던 파라스가 이내 입을 다물고 힐끗 피알라르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난쟁이에게 배워서 지금껏 전해진 솜씨를 직접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쉽게 볼 수 있는 구경거리가 아니었다.
“그러면 이왕 할 것 좀 제대로 하는 것이 어떤가?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은빛 용광로가 있다네. 어차피 그곳에서 아다만티움을 제련하려고 하지 않았나? 하는 김에 제대로 된 작품 하나 만들어보세.”
난쟁이를 만나면 부탁하려고 재료를 쌓아두고 있었는데, 아끼다가는 만나지도 못하고 죽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반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뭐든지 아끼는 성향이 있었는데, 잘 생각해보면 지금껏 그렇게 해서 재미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에게 무기를 만들어줄 수가 있겠소?”
아이반이 묻자 피알라르가 흐릿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드디어 내 망치가 부끄럽지 않을 주인을 만났구려.”
일행은 다시 검은 바위 마을로 돌아갔다. 드래곤의 기운이 한바탕 사막을 뒤흔들었기 때문인지 무척이나 몬스터가 많았지만, 용과 싸우던 그들에게는 큰 위험이 아니었다.
메마른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당황스러운 일이겠지만 어찌 보면 터질 것이 터진 셈이다. 그래도 드래곤을 봉인하고 있던 영맥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더는 영혼의 그릇이 깨진 채 태어나는 아이들이 없을 테니 이 정도는 감당할만한 재앙이리라. 드래곤이 이곳에 그대로 머무른다면 몬스터 천국이 되어버렸겠지만, 깨어나자마자 금방 떠났으니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했다.
게다가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가 떠났으니 계속 말라가던 땅이 앞으로는 달라질지도 모른다. 적지 않은 세월이 걸리겠지만 희망이 있다는 것이 어딘가.
깨어있기만 해도 막대한 마력을 소모하는 드래곤이 자신과 잘 맞는 토지를 포기하고 떠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원래라면 사막이 뒤집어지든 사람들이 죽어 나가든 신경도 쓰지 않을 텐데, 브리카와 연결되어 힘이 나뉘면서 완전성을 잃어버린 대신 가지게 된 자비심 덕분이다.
어쨌든 수확이 적지는 않았다. 피의 검 브리카가 진화하여 신기가 되었다는 것은 물론이고, 사브리나가 필요 없다며 의뢰 대가로 남긴 보물 역시 적은 양이 아니었다.
원래 사브리나의 둥지가 아니었으니 용의 보물이라 하기도 좀 그렇지만, 대주술사가 남긴 보물이 수준 낮을 리가 없었다. 위신 사샨트가 남긴 옛 왕국의 보물도 귀한 것들이었고. 동생 카림을 위해 따라나섰던 아딜의 표정 역시 밝았다.
드래곤이 남긴 보물 중에 도움이 되는 녀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용의 피를 희석해서 주술처리를 한 후, 엘릭서와 함께 마시면 깨져버린 영혼의 그릇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쟁이 할멈의 말을 듣고 그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일행에게 절을 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소리쳤다.
“큰 도움이 되지도 않았는데 이리 은혜를 베푸니 그저 감격할 따름입니다. 이놈의 목숨은 여러분의 것이니 부디 마소처럼 부리십시오.”
그러나 불필요하게 인원이 많아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일행은 그에게 당초 계약한 것처럼 메마른 땅을 건널 수 있게 길잡이만을 부탁했을 뿐이다.
“그러면 저는 이곳에서 힘을 기르고 있겠습니다. 언제든지 필요하면 달려가겠습니다.”
아이반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리려 했으나 아딜의 눈빛에는 강한 의지가 가득했다. 그래서 그냥 그러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용이 깨어나 동쪽으로 향하는 것을 많은 이가 보았소. 결국 그리되었구려.”
점쟁이 할멈은 어딘가 아득한 눈빛으로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천 년간 이어진 의무에서 벗어난 기분이 어떤지 아이반은 알지 못했다.
며칠간 검은 바위 마을에서 머물며 몸을 회복하던 일행은 적당히 체력이 돌아오자마자 다시 여정을 시작했다. 파멸의 뿔피리를 기다린다는 드래곤 사브리나의 말이 무척이나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이레인은 그것을 세계수가 불타는 일이라 여겼고, 델피노는 성전에서 이야기하는 종말이라 보았다.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나 보군.’파멸의 뿔피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풋이 이해한 아이반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째깍째깍 어디선가 초시계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메마른 땅을 건너 사막을 빠져나온 일행은 다시 드워프가 만든 최고급 마차를 타고 움직였다. 예전의 혈통 좋은 말들과 달리 새로 구한 말들은 힘도 부족하고 움직임도 거칠었으나, 사막을 걸어서 넘어온 그들에게는 그저 더는 걷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뻤을 뿐이다.
찌는 듯한 더위도, 온몸을 뒤흔드는 바람도 없었다. 입안이 텁텁하지도 않았고, 옷을 파고드는 모래도 없었다.
가도 가도 똑같은 풍경이었던 사막과 달리, 지금은 풀과 나무가 시야에 가득했다. 딱히 별다른 것이 없음에도 괜히 마음이 느긋해졌다.
이게 바로 힐링인 셈이다. 원래라면 난쟁이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흡혈공 카시우스가 남긴 기록을 눈이 빠지라 뒤적거렸을 거다. 그러나 피의 검 브리카가 진화하면서 난쟁이의 모습을 확인한 아이반은 반드시 그와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까각까각 마부석에 앉아 소일거리 삼아 나무를 깎던 아이반이 문득 뒤를 바라보았다. 피알라르가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소?”
“뭘 그리 만들고 있는지 궁금해서 말이오.”
“뭐, 별거 아니오. 그저 손이 심심해서.”
사실 얼마 전에 보았던 드래곤 사브리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깎고 있었다. 아이반은 예술적인 능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감각은 예민했기에 얼추 비슷하게 만들어지고 있었······.
“혹 샌드웜을 형상화한 것이오? 무척이나 감각적인 조형이군.”
“···그렇소. 사막의 괴수라면 역시 샌드웜이지.”
단검과 나무 조각을 대충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아이반은 짐짓 날카로운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길이 점점 좁아지고 숲이 짙어지는데, 이런 곳에 은빛 용광로가 있는 것이 확실하오?”
드워프 왕국이라면 온갖 상인이 오가기 마련이다. 그러면 자연히 길이 닦이는데 이곳은 무슨 밀림으로 찾아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곳이 정문으로 가는 길이 확실하오?”
아이반이 의심스럽게 물어보자 파라스가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은빛 용광로는 다른 곳보다 다소 폐쇄적인 곳이라 어쩔 수 없네. 보통은 손님을 받지 않거든.”
“그러면 우리가 간다고 문을 열어준다는 보장도 없군. 대체 왜 이곳에 오자고 한 것이오?”
“그것도 손님에 따라 다르지. 나만 믿게.”
파라스가 묘한 자신감을 보이자 아이반은 더욱 불안해졌지만, 알았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설령 못 들어간다고 해도 가던 길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니 감당할 만했다.
이제 슬슬 마차가 움직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길이 좁아졌다. 그 상태로 조금 더 들어가니 무슨 고대 유적처럼 보이는 아치형 기둥이 나타났다.
넝쿨로 뒤덮이고 흙더미에 묻혀 방치된 것이 적어도 수백 년 이상은 내버려진 곳 같기도 했다. 폐허나 다름없었다.
이런 곳이 드워프의 세 왕국 중 하나라니, 참으로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레인은 다소 감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은빛 용광로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놀랍네. 정말이지 드워프답지 않은 곳이야.”
진실을 꿰뚫어 본다는 엘프의 눈으로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고 은밀한 결계가 있었다. 아주 희미한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녀 역시 모르고 지나쳤으리라.
“하여간 평범한 곳이 없군.”
아이반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 너머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보이지는 않았으나 전사의 본능이 그것을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