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13
“사부님!”
“어이쿠, 귀청 떨어지겠네. 조용히 해! 이 녀석아!”
에민의 외침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지른 늙은 마법사는 뻐끔뻐끔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아이반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기묘하군, 기묘한 사내야.”
한동안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가 입을 열었다.
“요릭이라고 한다. 저 둔한 녀석의 사부되는 놈이지. 넌 뭐냐?”
늙은 마법사의 태도는 일견 무례해보일 수 있었지만 아이반은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원래 마법사들은 괴팍한 사람들이 많았다. 먼저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소개를 했다면 그들 중에서는 상당히 예의가 갖춰진 편이라고 봐야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아이반이 그동안 경험한 마법사들을 기준으로 한 이야기였다. 아무리 뻣뻣하고 괴팍한 마법사들이라고 해도 왕이나 대귀족 앞에서도 그러지는 못하겠지.
씨부럴 놈들.
“아이반 에시르손. 모험가요.”
“딱히 이름이 궁금한 것은 아니고. 어디서 왔나?”
“북부 출신이오.”
그 말에 요릭의 표정이 팍 굳어졌다.
“씨부럴, 젊은 놈이 말마다 끝마디 잘라먹는 것 좀 보게. 북부? 북쪽이면 다 너희 집이야? 세상이 동서남북밖에 없는데 북쪽이라고 하면 내가 알아들을 수가 없 .”
숨 쉬듯이 꼰대어를 발사하던 요릭이 문득 입을 다물고 아이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괜히 군 시절에 연등실에서 자신을 갈구던 선임이 떠올라 움츠러들 뻔한 아이반은 아무렇지 않은 듯 그 눈빛을 마주했다.
“왜 그러시오?”
“북부, 에시르손. 혹시 노르드 출신인가?”
“그렇소.”
” 그렇군.”
갑자기 요릭의 표정이 침착해지고 눈빛이 깊어지자 옆에서 조마조마하게 바라보고만 있던 에민의 표정이 한층 더 불안해졌다. 혹시 사부가 또 뭔 지랄을 할지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그걸 보면서 쯧, 하고 혀를 찬 요릭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안으로 들어오게. 제자 녀석이 십수 년 만에 처음으로 집에 친구를 데려왔는데 그래도 밥은 먹여서 보내야지.”
내가 에민과 친구였나? 아이반은 에민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뒤통수를 치지 않은 동료라면 친구라고 불러도 안 될 것은 없었다.
“이렇게 친구 집에서 밥을 얻어먹는군.”
그 말에 에민이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죄송합니다. 저희 사부님 성격이 좀 강하셔서 .”
“괜찮소. 마법사 중에서 저 정도면 양호한 편이지.”
요릭은 입은 거칠어도 사람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적어도 자기 제자를 아낀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아마 제자를 밖에 내보내고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타이밍을 딱 맞춰서 이렇게 만날 리가 없었다. 제자를 값싸게 부려먹을 수 있는 노예나 실험도구쯤으로 바라보는 사이코패스들도 많은데 이 정도면 아주 인격적인 셈이지.
” 도대체 그동안 어떤 마법사들을 만나셨기에?”
에민이 질린 듯한 얼굴로 물었지만 아이반은 못 들은 척 발걸음을 옮겼다.
“이쪽으로 가면 되오?”
마탑에서 먹는 첫 식사는 무척이나 훌륭했다.
다른 영지로 치면 영주성에서 대접받는 셈이니 요리사의 실력이야 의심할 바가 없었다. 소고기는 부드러웠고, 국물은 깊었다. 양식 코스가 아니라 동양식 정찬에 가까운 식사였기에 만족도가 더욱 높았다. 어우야, 살치살 살살 녹는다. 그렇게 아이반이 음식을 즐기고 있는 사이, 에민이 마탑을 떠나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알게 된 요릭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뭐, 뭐? 던전?”
“네. 호수 근처에 있는 오래된 유적 밑에 실제로 숨겨진 공간이 있더라고요. 그게 던전화가 되어서 .”
쨍그랑! 어지간히 놀랐는지 숟가락을 떨어뜨리며 앞자락에 소스가 튀어서 엉망이 되었지만 요릭은 신경도 쓰지 않고 되물었다.
“진짜로 그곳에 미발견된 유적이 있었다고?”
“네. 수백 년 전에 그곳에서 수도자들이 몰래 악마소환의식 같은 걸 했나보더라고요.”
“그래? 그러면 혹시 악마도 튀어나왔더냐?”
“마지막에 기다리고 있던 녀석이 악마였죠. 해골을 뒤집어쓰고 뼈로 된 낫을 휘두르던 놈인데 정확한 정체는 잘 모르겠 .”
그쯤에서 아이반이 끼어들었다.
“썩어가는 손아귀. 녀석의 이름은 썩어가는 손아귀요.”
그러나 에민과 요릭 모두 입을 딱 벌렸다. 썩어가는 손아귀라면 대악마까지는 아니더라도 꽤나 인지도가 있는 네임드 악마였기 때문이다.
오래된 역사서와 악마성전에도 이름을 올린 녀석이라고 하니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그러고 보니 묘사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 저희는 그런 녀석을 이긴 겁니까?”
“본체가 아니었으니까. 불완전한 소환이었고, 그 마저도 던전의 마력에 의해 겨우 구현화가 된 상태였소. 제대로 소환이 이루어졌다면 대재앙이 되었겠지.”
설명을 들은 요릭이 표정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겠지. 그래도 썩어가는 손아귀 같은 네임드 악마를 처리한 것은 큰 업적이야. 고생했구나.”
그렇게 칭찬을 하던 요릭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미발견된 유적, 그것도 던전화가 된 곳을 털었으니 챙겨온 유물이 적지 않으리라 여긴 것이다.
“어디에 있냐? 어디에 있어!”
몸이 달아오른 듯 요릭이 재촉을 하자 에민이 큼지막한 주머니를 꺼냈고, 아이반이 그 두 배쯤 되는 주머니를 내밀었다.
허공이 쩍 하고 갈라지며 주머니를 토해내는 모습에 요릭의 시선이 잠깐 머물렀다.
“아공간? 아티팩트는 아닌 것 같고 고유능력인가? 그건 또 신기한 아, 에시르손이라고 했던가?”
다른 사람이라면 이것만으로도 깜짝 놀랐겠지만 요릭은 스스로 아공간을 창조할 수가 있는 수준 높은 마법사였다. 청색 마탑의 장로의 눈에는 흔해빠진 아공간보다 낡은 주머니 속에 있을 유물들이 더욱 궁금했다.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어서 내 연구실로 가자!”
서둘러 식사를 마무리하고 요릭의 연구실로 향했다. 마법사의 공방은 본인의 마법이 가장 강력하게 발현될 수가 있도록 최적의 세팅을 끝내놓은 곳이었다.
그런 곳으로 들어간다니 약간 불안하기도 했지만 아이반은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다.
유물을 제대로 감정하려면 본인의 공방에서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요릭의 말이 옳았기 때문이다.
유물만 맡기는 것은 더욱 불안한 일이었다.
“오호, 악에 물든 로자리오라! 이건 또 재미가 있군. 오백 년 전의 아룬경전도 가치가 있고.”
가볍게 훑어보는 것만 해도 거의 네 시간.
시간관계상 아이반의 몫으로 떨어진 유물들만 먼저 살펴봤음에도 그 정도가 걸렸다. 문외한에게는 몹시 지루한 일이었지만 저것들이 다 돈이라는 것을 떠올리니 아이반 역시 괴롭지만은 않았다.
“이걸 모두 팔 생각인가?”
“그렇소. 여기 이 반지만 빼고.”
“으잉? 그게 여기에 있는 것 중에 가장 가치가 있는 놈인데 .”
“그러니까 챙기는 거요. 쉽게 구할 수가 없으니까.”
마력 순환을 약간 빠르게 하고 회복 속도를 상승시키는 반지.
게임 속의 기준으로 따지면 겨우 레어급이 되려나 싶은 아이템이지만 사실 이 정도면 상당히 귀하고 가치가 있는 물건이었다. 게임 속에서 전설급, 신화급 이런 말도 안 되는 놈들만 들고 다녀서 그렇지 현실적으로는 레어급만 해도 보기가 쉽지 않았다. 말 그대로 희귀한 수준이니까.
“크흠, 그건 좀 많이 탐나는데 .”
유물로서의 역사적인 가치는 물론이고 성능마저 훌륭했다.
마력 순환을 빠르게 만들고 회복 속도를 상승시킨다는 것은 마법사에게는 더없이 좋은 옵션이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끙끙거리면서 고민하던 요릭이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면 그건 다른 물건과 교환하는 것이 어떤가? 우리 마탑에서 보유하고 있는 것 중에 그대와 딱 어울리는 것이 있어. 노르드의 전사, 그것도 에시르손이라면 그런 반지보다 훨씬 가치가 있을 거야.”
님 선제시. 자신이 거래상 우위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반이 한결 여유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어떤 물건인지 보고 판단하겠소.”
물론 아이반의 여유로운 표정이 깨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아이반은 애써 경악을 감추며 속으로 외쳤다. ‘이게 이런 곳에 있다고?’ 게임이 오래되어 뉴비는 줄어들고 라면 먹으면서도 월드보스를 잡을 수 있는 고인물들의 비중이 높아지면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있었다. 이미 격차가 하늘과 땅까지 벌어진 상황에서 신규 유저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신규 캐릭터 경험치 이벤트나 아예 높은 레벨을 쥐어주는 점핑 캐릭터. 그때 레벨에 맞춰서 일일이 장비를 갈아 치우는 것은 몹시 귀찮은 일이었다.
레벨업 속도가 너무 빨라서 기껏 장비를 바꿔봐야 얼마 쓰지도 못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야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유용한 것이 바로 성장형 무기였다. 캐릭터의 레벨에 따라서 같이 진화하는 아이템. 동급의 다른 아이템들과 비교하면 성능이 많이 떨어져서 고레벨이 되면 외면 받지만 초중반 빠르게 레벨을 올릴 때는 장비값을 아낄 수 있는 도구.
게임 속에서는 잡템 취급을 받았지만 좋은 장비를 쉽게 구할 수가 없는 지금은 그 어느 것보다 아이반에게 필요한 물건이었다.
” 이것이 무엇이오?”
아이반은 최대한 동요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물었다. 솔직히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이걸 레어급 반지와 교환한다고?’ 아무리 성장형 무기가 같은 등급의 다른 장비들에 비해 성능이 부족해도 겨우 레어급 반지와 교환할 수준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