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133
“이분은 진짜 사제시오. 신전의 이름으로 보장하겠소.”
성기사가 강하게 나오니 기사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납득한 표정이 아니었다. 반드시 붙잡아서 실토하게 만들겠다는 얼굴이다. 그 모습을 보고 아이반은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왜 이렇게 공격적이지?’ 당장 며칠 전에 만난 기사는 어물쩍거리기는 해도 그들을 보내주었다. 아룬의 사제가 함께 있으니 괜찮다는 의미였다. 아무리 다른 종족이 크게 배척받는 곳이라고는 해도 노예 사슬까지 묶어 놓았는데 이렇게 강경하게 나오는 것은 좀 이상했다. 흑마법사라고? 따지고 보면 이렇게 노예로 부리는 자가 없지는 않을 텐데. 일행의 표정이 크게 불쾌한 것을 확인한 성기사가 죄송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최근 흑마법사의 거처가 발견되었습니다. 미약하게 악마의 흔적이남아있었지요. 그것 때문에 기사들의 신경이 크게 날카롭습니다.”
그러면서 델피노를 바라보는 눈빛이 도와주기를 바라는 듯했다. 아무래도 이런 일에는 구마사제가 가장 전문가니까. 델피노가 힐끗 아이반을 보았다. 어떻게 하냐는 물음. 아이반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전에서 이 근처는 괜찮다고 하더니, 무언가 발견된 모양이군요.”
델피노가 그리 말을 받자 성기사의 표정이 크게 밝아졌다.
“그렇습니다. 악마의 흔적이 점점 퍼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마경의 입구가 검은 안개로 뒤덮였는데, 그 또한 악마의 수작이라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마경, 검은 안개. 그 두 단어에 아이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벌써? 이렇게 빠를 리가 없는데?’
검은 안개는 악마의 힘이 크게 흥성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가장 어두운 세계에서 차원 방벽을 찢고 물질계로 넘어올 때, 그들 세계의 에너지가 주변으로 새어 나오면서 마치 검은 안개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건 악마 하나둘 소환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제대로 마계의 문을 열고 주변을 그들의 세계와 비슷하게 오염시키고 있다는 뜻이다. 이건 결코 흔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에 델피노마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신화시대의 역사를 온전히 보존한 엘프인 이레인 정도만이 혹시나 하는 눈빛이었다. 이레인이 그를 바라보자 아이반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최악의 상황이 닥친 모양이오. 일이 어렵게 되었군.”
말투는 덤덤했으나 아이반의 머릿속이 크게 복잡해졌다. 본격적으로 악마가 등장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제대로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아이반이 알고 있는 순서대로라면 첫 번째는 전장의 포효, 두 번째는 검은 세계수, 세 번째에 이르러서야 파멸의 군단이었다.
말하자면 처음은 오크를 비롯한 그린스킨의 봉기, 피의 동맹과 신뢰의 연합이 벌이는 전쟁이었고, 두 번째는 세계수의 파멸, 그걸 다 지나고 나야 본격적인 악마의 침공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아무리 정해진 스토리라인을 따라가지 않는 세계라고는 해도 너무 빨랐다.
준비가 다 되었다는 뜻일까? 그게 아니라면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걸까? ‘성황청에서 대규모 감찰을 지시했지. 그게 악마숭배자들을 초조하게 만들었나?’ 본격적으로 신전에서 여기저기 파헤치며 돌아다니니 마음이 급해진 걸까, 차라리 들키기 전에 일을 벌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일까. 아이반은 자신의 어떤 행동이 이런 결과를 낳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일은 벌어졌고, 이겨내야만 했다.‘그러고 보면 시스템이 직접 개입해서 용의 뼈와 가죽을 강화해주었지. 그게 이런 의미였군.’ 용의 뼈와 가죽, 아다만트. 워낙 귀한 재료들이라 난쟁이를 만날 때까지 아껴보려다가, 기분이 영 찝찝해서 장비를 만들었더니 금세 쓰일 때가 왔다.
‘하여간 그냥 호의를 베푸는 법이 없지.’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아이반이 델피노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아이반이 이렇게나 크게 동요를 하는 모습은 흔치 않았기에 델피노의 눈빛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하오. 일단 이들과 합류해서 정확한 정보를 얻어야겠소.”
아이반이 남몰래 그리 속삭이자 델피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성기사에게 다가갔다.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성기사라고 모두가 악마와 싸워본 것은 아니었다. 비록 더 밝은 빛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자 하였으나 부담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강력한 신성력을 가지고 있는 구마사제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니 성기사들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이렇게나 많은 흔적이 발견되었으면 지역 신전에서 감당하기는 어렵겠군요.”
“그렇습니다. 성황청에서 지원이 오기는 했지만 요즘 대륙이 워낙 혼란스러워서 손이 부족하기만 합니다.”
피의 동맹과의 전쟁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그 외에도 여기저기서 던전이 나타나고 옛 신이 깨어나려 하거나 거인이 날뛰는 등 아무튼 개판인 상황이니 악마의 흔적이 나타났음에도 제대로 병력을 집중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일행은 이들과 합류하여 악마의 흔적을 확인하러 갔다. 마침 가려는 방향에 있다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쪽입니다. 이곳에서 사악한 의식이 치러진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사람이 자주 다니지 않는 길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오두막이었다. 사냥꾼들이 오가며 잠시 들러서 쉬는 곳이라 했는데, 이곳에서 아주 끔찍한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사지가 찢기고 피로 사악한 문양을 그렸습니다. 어두운 마력이 남아있는 걸로 봐서 분명 악마에게 제물을 바친 것이 틀림없습니다.”
시신은 수습되어 사라졌으나 처참한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검붉은 핏자국이 자그마한 오두막 여기저기에 잔뜩 칠해져 있었던 것이다. 아이반도 몇 번 본적이 있는 악마의 문양이었다.
“악마를 소환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 같군요. 딱히 힘을 내려받기 위한 것도 아니고······. 악마가 피에 굶주렸던 걸까요?”
날카로운 눈으로 여기저기를 살피던 델피노가 힐끗 주변을 바라보았다. 본격적으로 알아보려면 마법진을 역산해서 해석해야 하는데, 그건 아무래도 악마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라 썩 신성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악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구마사제에게는 예외적으로 악마의 술법을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을 주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남들 다 보는 곳에서 대놓고 사용할 수는 없었다. 델피노의 눈짓을 확인한 성기사들이 험험 헛기침을 내뱉으며 기사와 병사들을 밖으로 이끌었다.
“아니, 현장을 지켜야지 내가 왜 비킨다는 말이오?”
“아이, 참. 사제님이 기도를 올리는데 다른 사람이 있으면 방해가 되지 않겠소? 그리고 악마의 기운을 추적하는 일이라 다른 사람이 옆에 있으면 괜히 저주를 받을 수도 있소.”
“악마의 기운을 추적한다? 그게 가능한 일이오?”
“이분은 그런 일을 전문으로 하시는 분이오. 이건 사실 함부로 말할 것은 아닌데······. 혹시 봉성의 목걸이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없소?”
변방의 기사라 평생 구마사제와 이단심문관을 만날 일이 없다고 해도 어찌 봉성의 목걸이에 대해 모르겠나. 그건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비밀인데. 봉성의 목걸이를 공유하는 이단심문관의 명성이 워낙 화려하니 기사들마저 움찔했다.
“그러면 혹시···?”
“더는 말해줄 수 없소.”
성기사들이 단호하게 말하자 기사와 병사들이 일행과 슬쩍 거리를 벌렸다. 미모가 뛰어난 여자 용병이나 드워프는 둘째치고, 음침하고 꼬장꼬장해 보이는 마법사와 쇠사슬로 묶인 리자드맨이라니.이내 기사와 병사들 사이에서는 구마사제가 사악한 마법사와 그 사역마를 굴복시켜서 끌고 다니고 있다는 헛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자기들끼리는 조용히 떠들어댄다고 했으나, 워낙 귀가 좋은 일행에게는 아주 선명하게 들렸다. 사나운 이빨이 씨익 웃으면서 낮게 중얼거렸다.
“지금 설정보다 저쪽이 더 그럴듯한 것 같다.”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모르고 그저 험상궂은 얼굴로 바라보니 병사들이 움찔 놀라서 창을 들어 올렸다가 아이반의 날카로운 눈빛을 보고 다시 내려놓았다. 사악한 마법사고 나발이고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끼이익- 낡은 오두막의 문이 열리고, 델피노가 잔뜩 굳은 얼굴로 밖으로 나왔다. 그의 얼굴이 크게 어두운 것을 본 성기사가 덩달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어찌 되었습니까?”
“악마숭배자는 이미 멀리 떠난 듯합니다. 남쪽으로 갔더군요.”
“남쪽이라면 왔던 길을 되돌아간 걸까요?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의미인 건지······.”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아직은 정보가 부족합니다.”
그리고 델피노는 조심스럽게 아이반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좌표를 고정하기 위한 의식이었습니다. 이런 것이 방대한 영역에서 이루어졌다면, 이유는 하나뿐이죠.”
혹시나 하였는데 역시나. 아이반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답답한 마음을 나타내듯 무척이나 길었다.
“아주 커다란 규모의 문을 열기 위한 것이오. 악마 하나를 소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예 마계의 일부를 불러오기 위한 것이겠지.”
“마계를 불러온다니, 그건 대체······.”
악마숭배자들은 그동안 지속해서 차원 방벽을 약하게 만들었다. 그 수준이 만족할 만큼에 이르러 마침내 일을 벌인 것이다.”악마가 그냥 넘어오면 세계의 저항이 너무 심하오. 그걸 완화하려면 마계화부터 시작해야지.”
당연한 말이지만 그저 그런 악마를 소환하려고 그런 짓을 하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대악마는 불러내겠다는 뜻이지.
“검은 안개가 보였다면 여유가 많지 않소. 벌써 차원의 틈을 만들었다는 뜻이니.”
마리난 제국과 성황청에서도 이번 일을 심각하게 여기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적어도 원시 거인이 깨어났을 때 정도의 대비는 해야만 했다.
“그러면 일단 이 정보를 알리고 바로 마경으로 달려야겠습니다. 검은 안개가 그곳에서 시작되었다니.”
델피노는 그대로 성기사를 불러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편지를 쓰고 봉성의 목걸이로 밀랍을 눌러 봉인했다. 봉성의 목걸이는 구마사제와 이단심문관만 쓰는 것이므로, 그 자체로 위급을 나타내는 표시가 되었다.
“최대한 빠르게 전하겠습니다!”
성기사 하나가 말을 달려 그대로 가까운 신전을 향해 떠났다. 아이반과 일행은 몇몇 성기사들의 말을 빌려 타고 마경에 가장 가까운 도시를 향해 출발했다.
말이 지치려고 하면 신성력을 불어넣어 체력을 회복시켰다. 그럼에도 혀를 빼물고 쓰러지려 할 때쯤, 일행은 마경에 가장 가까운 도시 코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 달은 족히 걸릴 거리를 절반으로 단축했으니 몹시 피곤했지만, 일행은 단단한 걸음으로 코넬의 성문 앞에 섰다. 마경은 몬스터가 버글버글하여 몹시 위험한 곳이었기에, 코넬의 성벽은 무척이나 높고, 튼튼해 보였다.
“정지! 뭐 하는 자들이냐!”
드워프와 리자드맨, 늙은 마법사와 미녀 용병, 거기에 사제라니. 참으로 전형적이면서도 몹시 낯선 파티였다. 코넬의 경비병은 크게 경계하면서 그들을 멈춰 세웠다. 이미 이곳까지 오며 몇 번이나 경험한 일이었다. 델피노가 익숙하게 나섰다.
“아룬 신전의 사제 델피노입니다. 악마의 준동과 관련해 급한 용무로 움직이는 중이니 길을 열어주십시오.”
“아, 악마의 준동?”
사제가 몹시 심각한 표정으로 그리 말하자 병사들이 몹시 당황한 듯 보였다. 안 그래도 악마와 관련된 소문이 최근에 많았기 때문이다.
“그, 뒤에 저 괴물은 무엇입니까?”
그 말에 사나운 이빨이 병사를 빤히 바라보았다. 딱히 위협적인 기세를 내뿜지 않았음에도 겁을 먹은 병사 하나가 무심코 창을 내질렀다. 탁! 사나운 이빨이 그 창을 붙잡아 부러뜨리자 주변 분위기가 급격하게 험악해졌다.
“잠깐! 책임자가 누구입니까? 지금 누구한테 창을 들이미는 겁니까!”
델피노가 그리 소리치자 병사들이 움찔했으나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어느새 나타난 기사가 검을 뽑아서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괴물은 들어오지 못한다! 우리 병사를 위협했으니 목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위협은 개뿔, 감당할 수 있겠나? 위급한 일이라 하지 않나!”
아이반이 나무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고 사납게 소리치자 기사가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수상한 자들이니 심문을 통해 확인하겠다.”
근처에 있던 병사들이 창을 들고 둘러싸고, 성벽 위에서는 사수가 활시위를 당기고 노려보았다. 사나운 이빨이 흘깃 아이반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뜻이다. ‘다 때려눕혀?’ 짜증이 치솟은 아이반이 속으로 그리 중얼거렸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곧 있으면 악마가 덤벼들 텐데 쓸데없이 아군끼리 피를 봐서야 쓰겠나. “어쩔 수 없군. 그냥 물러나······.”그때 델피노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지팡이를 땅에 박았다. 오래된 성자의 지팡이에 생명의 구슬을 결합해 새롭게 만든 지팡이, 생명의 한 조각. 그로부터 막대한 신성력이 흘러나와 허공에 커다란 원을 그렸다.
빛의 고리가 완성되자 그 문을 열고 빛의 천사가 나타났다. 천상에서 빛의 신 아룬을 모시는 그의 권속. 빛의 천사가 빛나는 검을 들고 하늘에서 고고히 내려다보자 기사와 병사들의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신성한 빛의 천사에게 무기를 겨누려고 하니 무척이나 불경하게 느껴진 것이다. 빛의 천사를 불러 주변을 장악한 델피노가 천천히 말했다.
“문을 여세요. 그대들이 악마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면.”
코넬의 성문이 활짝 열렸다. 앞을 막아서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마경을 코앞에 두고 있는 요새 도시 코넬이 크게 술렁거렸다. 성문에서 일어난 일이 순식간에 퍼졌기 때문이다. 하늘이 열리고 빛이 내려오던 환상적인 광경, 천상의 문을 넘어 빛의 천사가 나타나던 신성한 순간. 그 모습을 보고 어찌 이야기하지 않겠나. 일행의 발걸음보다 빠르게 소문이 번졌다. 비록 기기묘묘한 일이 무수히 많이 일어나는 세상이었지만, 실제로 천사를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리 쉽게 소환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고위 성직자들이 아주 길고 긴 의식을 치르거나 교단의 최정예 전투 사제단이 힘을 모아 기도했을 때나 부를 수가 있었다. 단독으로, 그 자리에서 바로 천사를 소환할 수 있는 사람은 성황청 전부를 통틀어도 몇 되지 않았다.
“성자다! 성자께서 오셨다!”
그런 소문이 퍼졌다. 처음 누구의 입에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몹시 그럴듯하게 들린 듯 쉽게 번졌다. 몇 사람의 입을 건너가며 조금씩 살이 붙고 나니 원래 그랬었던 것처럼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신의 선택을 받은 성자께서 이 땅을 구원하러 오셨다! 악마의 준동을 경고하고 그들을 물리치자고 외치셨다!”
그 이야기는 일행의 귀에도 들렸다. 귀빈을 맞이하는 하인들조차 그들이 지나가고 나면 그리 쑥덕거렸기 때문이다. 파라스가 껄껄 웃으면서 델피노를 바라보았다.
“얼추 비슷한 이야기로군, 성자님.”
그리 놀리는 말에 델피노가 손을 내저었다. 성자라니, 그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말이었다.
“그러지 마십시오. 아룬께서 크게 화를 내실 겁니다. 제가 어찌 감히 성자를 자칭할 수가 있겠습니까?”
성자는 신이 선택하고 성황청이 인정한 위대한 존재에게만 붙는 칭호였다. 자신을 그리 부른다는 말에 델피노는 화들짝 놀랐다. 그건 차라리 아이반에게 어울리는 말이었다. 노르드 신의 피를 이은 영웅이며, 그들에게 크게 사랑받아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마음껏 신의 힘을 빌려 사용하지 않는가. 물론 아이반에게 그리 말하면 진저리치며 싫어할 것이 분명하기에 델피노는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성자라, 아주 틀린 말도 아니잖아?”
곰방대에 불을 붙이면서 이레인이 델피노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