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135
밤에는 숙련된 레인저조차 움직이길 꺼린다고 했다. 이곳을 제집 드나들 듯 돌아다니는 그들조차 밤에는 길을 잃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마경은 살아있습니다. 밤은 우리의 영역이 아닙니다.”
레인저 부대가 끊임없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정찰을 하는 사이, 가볍게 평탄화 작업을 한 후 텐트를 설치했다. 인벤토리에서 건량을 꺼내 씹으면서 가볍게 식사를 해결하던 아이반이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피부에 달라붙는 공기가 제법 싸늘했기 때문이다. 낮에는 후덥지근하더니 지금은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흘러나왔다.
어찌 된 것이 사막보다 이곳이 일교차가 더욱 큰 것 같았다.
“이러다 물이 얼어붙겠는데? 정말 신기한 곳이야.”
이레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루에 일 년의 계절이 모두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괜히 마경이 아니지. 쉴 수 있을 때 잘 쉬어두시오. 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할 곳이니까.”
아이반은 육포를 한 움큼 손에 쥐고 덥석 베어 물었다. 식욕이 없었지만 그래도 먹어야만 움직일 수가 있었다.
얼른 식사를 끝낸 아이반은 텐트 안으로 들어가 누웠다. 취침 시간으로는 조금 이르지만, 어차피 한밤 내내 잘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빌어먹을 불침번이 아니더라도 괴물 놈들이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지.’ 어쩌면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놈들을 부추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편히 잠자는 것을 보는 게 몹시 불편한 놈들이니까. 에잇, 빌어먹을 놈들. 아이반은 그렇게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눈을 감았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수면 스킬은 이번에도 훌륭히 활약하여 그를 빠르게 잠재웠다.
“···이상하군. 이해가 되지 않아.”
아침에 일어난 아이반이 그리 중얼거리자 파라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무슨 일인가?”
“간밤에 아무런 일이 없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오.”
“뭐?”
파라스가 뭔 소리냐는 듯 되물었지만 아이반은 입을 꾹 다물고 장비를 점검했다. 간밤에 편안했으니 오늘 낮은 지옥이 따로 없을 거다.
근거는 전혀 없었으나 그런 예감이 들었다. 슥, 스윽! 아이반이 비장한 각오로 도끼의 날을 갈고 있으니 일행의 분위기가 절로 심각해졌다.
자연히 각자 자신의 장비를 다시 점검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들은 일행이 갑자기 왜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지 궁금한 모양이지만 딱히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느낌이 좋지 않다고 전했다. 야영지를 정리하고 다시 탐색을 시작했다.
아이반은 그동안 어두운 용의 발톱을 만지작거리며 감각을 날카롭게 세웠다. 그렇게 한참을 가고 있을 때, 레인저 부대장이 걸음을 멈췄다.
“···남서쪽, 연락이 끊겼습니다.”
더 설명하려던 레인저 부대장은 입을 다물었다. 저 멀리서 검은 안개가 조금씩 밀려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전원 전투 준비!”
검은 안개가 옅게 퍼지고 그 속을 가르듯 투명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원한이 모이고 모여서 현실을 왜곡한다. 후덥지근한 날씨를 순식간에 싸늘하게 바꾸고 나무에 살얼음이 덮였다.
“스펙터! 원령이다!”
누군가 그리 소리치는 것과 함께 사제들이 기도를 올렸다. 성기사가 단단한 신앙심을 방패로 삼아 앞으로 나갔다. 우웅- 빛의 신 아룬의 신성력이 모여서 둥근 방어막을 만들었다. 검은 안개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원령들이 그것에 부딪혀 비명을 질렀다. 끼에에엑! 산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저주를 내리는 원한의 비명. 사제들의 방어막과 축복에 가로막혔지만, 등골이 오싹했다.
“검은 안개, 직접 들어와 보니 알겠군. 확실히 이질적이야. 우리 세계의 힘은 아닌 것 같아.”
백색 마탑의 주인 오비도의 눈이 하얀색 빛을 뿌렸다. 진실을 꿰뚫는 현자의 눈이 검은 안개를 바라보며 분석을 시작했다.
“이게 정말 마계의 입구가 열렸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차원 간섭 현상은 분명해. 쯧, 아니길 빌었는데 어쩌면 정말로 대악마가 튀어나올 수도 있겠어.”
스하하아아아 비명도 아니고 바람 소리도 아닌 기묘한 소음과 함께 원혼들이 하나로 뭉쳤다. 끔찍한 저주로 땅을 오염시키는 실체를 가진 악령이 되어 주먹을 휘둘렀다. 쿵!성기사들이 방패를 들어 올려 악령의 주먹을 막아냈다. 사제의 신성력이 녀석의 몸을 불태워 정화하고 남부 기사단의 기사들이 몇 개의 덩어리로 잘라냈다. 그 사이 사방에서 괴물들이 나타났다. 지옥 들개, 궁수 말벌, 강철 가슴 곰, 핏빛 늑대. 결코 함께 행동하지 않는 놈들이었으나, 검은 안개가 녀석들을 자극했기 때문인지, 악령이 놈들의 정신을 홀렸기 때문인지 눈이 시뻘겋게 변해서 달려들었다. 컹! 커어엉! 이빨을 들이미는 지옥 들개의 머리를 어두운 용의 발톱으로 꿰뚫은 아이반은 그대로 창을 길게 만들어 강철 가슴 곰에게 휘둘렀다. 가슴이 마치 강철로 된 갑옷을 입은 듯 딱딱한 외골격으로 덮여있어서 웬만한 창칼에도 멀쩡한 놈이었지만, 아다만트와 용의 뼈로 만들어진 아이반의 창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가슴을 덮은 외골격이 쩍 갈라진 강철 가슴 곰이 피를 토했다. 폐가 갈라져 핏물이 들어찬 것이다. 녀석은 그렇게 숨을 쉬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거대한 앞발을 휘둘렀다. 앞에서 방어를 맡고 있던 남부 기사단의 기사 하나가 몸을 휘청거릴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물론 두 번째는 없었다. 갈라진 가슴 틈으로 다시 창을 찔러 넣은 아이반이 녀석의 심장을 터트렸기 때문이다. 피우웅- 이레인은 훌쩍 뛰어올라 나무를 타고 움직이며 화살을 쏘았다. 은밀하게 움직이며 기사와 사제의 다리를 물어뜯으려던 핏빛 늑대가 그녀의 화살에 하나씩 쓰러졌다. 그렇게 네 번쯤 나무를 옮겨 타던 이레인이 시위를 당기다 말고 허리를 꺾었다. 악령이 그녀가 올라탄 나무에 빙의해 타락한 나무 정령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악령이 빙의한다고 해도 평범한 나무가 단번에 타락한 나무 정령이 될 수는 없는데, 역시 마경은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 태연하게 벌어졌다. 스걱! 자신에게 날아오는 날카로운 가지를 피한 이레인이 손을 휘두르자 바람의 칼날이 타락한 나무 정령을 스치고 지나갔다. 때늦은 가지치기로 모두 잘라버렸다.
“어둠을 밝히는 빛이여!”
전투 사제단이 모여서 빛을 부르짖으니 일순간 주변이 정화되었다. 타락한 나무 정령이 평범한 나무로 되돌아오고 성기사의 방패를 후려치던 악령이 그대로 소멸한다. 검은 안개마저 훌쩍 뒤로 물러났다가 그대로 흩어졌다. 잠시 창을 들어 올린 채 주변을 살피던 아이반이 자세를 풀었다. 한창 덤벼들던 괴물이 모두 쓰러지고 소강상태가 되었다. 조심스럽게 움직여서 연락이 끊긴 레인저가 있던 곳으로 향했다. 그는 수풀과 바위에 교묘하게 몸을 가린 채 앉아있었는데, 비릿한 피 냄새가 아니었다면 단번에 찾기는 어려웠을 거다. 로브를 푹 눌러 쓴 레인저의 가슴에는 단검이 박혀있었고, 오른손은 피로 흥건했다. 스스로 심장을 찔러서 죽은 모양이었다.
“악령에게 몸을 빼앗겼군. 그래서 이렇게 되었나?”
어느 기사가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레인저 부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악령에게 몸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겁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성기사와 사제들이 있었으니 조금만 버틴다면 악령을 쫓아낼 수가 있었다. 그런데도 레인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은 그 조금을 버틸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레인저 부대장은 바닥에서 반쯤 비워진 성수를 발견했다. 성수를 사용해서도 악령의 빙의를 막을 수 없었다는 의미였다.
“마경이 원래 이런 곳인가?”
남부 기사단장 브라움의 물음에 레인저 부대장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곳은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는 곳입니다. 마법이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신의 축복도 온전하지 못한 곳이죠. 하지만, 지금은 평소보다 그게 더욱 심한 것 같군요. 어쩌면 검은 안개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델피노가 아주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습니다. 검은 안개가 진해졌을 때 그분의 시선이 멀어진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마계의 에너지가 신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이대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신성력이 크게 약해진다는 뜻이다. 적은 강대한데 아군은 점점 약해진다. 그렇다면 이대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일까? 차라리 후퇴해서 방어 준비를 단단히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백색 마탑의 주인, 오비도가 단호하게 부인했다.
“검은 안개가 생기는 것은 이계의 에너지가 우리 세상의 법칙과 충돌하기 때문이야. 그게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은 이계의 문이 완전히 열리지 않았다는 뜻이지. 이때가 아니면 완전히 소환된 악마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그건 지금보다 더 어려울 거야.”
마경은 악마들에게도 친절한 땅이 아니었다. 그저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하기 쉬워서 이곳을 선택했을 뿐, 그들의 힘이 완벽하게 발휘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아군이 약해진 만큼 적군도 불편한 곳이었다. 적어도 마계의 문이 완전히 열려서 마계화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돌아갈 때 돌아가더라도 적어도 확인은 해야만 해. 정말로 놈들이 대악마를 소환할 수 있는지.”
신화시대 이후로 대악마는 물질계에 거의 등장한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분신이나 화신이 날뛰었을까. 대악마가 정말로 온전히 소환된다면, 남부 제국 마리난은 그 충격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아주 약간의 시간이라도 벌어야만 했다.
“젠장, 말년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
오비도는 그리 툴툴거리면서 바닥에 지팡이를 박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마경의 불안정한 마력 흐름을 단숨에 제압하고, 이리저리 꼬여있는 공간을 넘어 저 먼 곳을 바라보았다. 대륙 남부에 있는 수많은 마법사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백색 마탑의 주인 오비도는 응당 그럴 능력이 있었다. 우웅-오비도의 두 눈이 하얀색으로 빛나고 그의 머리 위로 마력으로 만들어진 눈 하나가 떠올랐다. 스스슥!
“윽!”
마경을 샅샅이 살펴보던 오비도가 문득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보았다. 검고 붉은 제단 위에 사악한 자가 서 있었다. 뼈밖에 없는 멍청한 녀석이 제법 마력을 쌓았더군.”
뼈로 된 마법사, 리치.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이반이 델피노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아이반을 보고 있었다. 서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아차렸다.
“우리는 서부 연합 왕국에서 리치를 보았소. 쿤다라 교단의 사제이자 성황청의 이단심문관, 피의 성자 알베르홈의 후손이었던 피에르 로렝을 납치하고 그를 제물로 삼으려 했지.”
대륙 각지에서 의식을 치러 차원 방벽을 약하게 만들었다. 성물인 붉은 잔을 탈취해서 그것을 제물로 삼아 악마의 힘을 퍼트렸고.
“북부에서 원시 거인이 깨어난 것도 녀석이 수작을 부렸기 때문이오. 거인의 군세를 막기 위해 엘프와 수인, 물의 신 뤼안 교단의 성전기사단과 전투사제단, 그린 스킨의 정예 부대가 움직였소.”
그 결과 요정의 숲은 문을 걸어 잠그고 차원 방벽이 크게 흔들렸다. 결론적으로 그동안 자신들을 방해하던 엘프를 크게 위축시킨 셈이다. “녀석이 섬기는 악마는 썩어가는 손아귀요. 대악마 죽음의 인도자의 가장 가까운 부하.”
그 말을 들은 오비도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대악마 중에서도 죽음의 인도자는 아주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싸우면 싸울수록 적이 늘어난다. 하나로 시작해 수천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고, 그것이 다시 수만, 수십만이 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조금 전까지 같이 싸우던 동료가 적이 되어 공격하는 경험은 누구라도 하고 싶지 않을 거다.
“반드시 마계의 문을 닫아야 할 이유가 늘었군.”
그 사이 레인저 부대장은 죽은 레인저의 품을 뒤져서 그의 장비를 챙겼다. 그리고 익숙한 듯이 다른 레인저와 나눠 가졌다. 이곳에서 죽음은 일상이었다. 누구라도 죽을 수가 있었다. 그 죽음이 조금이라도 동료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레인저들은 모두 같은 무기를 사용했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감촉. 레인저 부대장은 죽은 레인저의 단검을 허리춤에 찔러 넣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부하를 바라보았다.
“언데드가 적이라면 이대로 둘 수는 없겠군요.”
레인저 부대장은 죽은 레인저의 시체를 잘게 토막 내고 불을 붙였다. 다른 이들이 불편한 듯 눈을 가늘게 떴으나 레인저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이것조차 그들은 각오한 일이었다. 마경을 돌아다닌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이곳에 있는 레인저는 모두가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었다. 이 빌어먹을 마경을 적어도 십 년은 돌아다닌 전문가 중의 전문가. 가족보다 서로를 더 오래 본 징글징글한 사이였으나 그 죽음에 분노하지 않았다. 그보다 신념이 더욱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처음 마경을 수색하는 레인저가 되었을 때 결의한 것은 하나였다. 마경의 일은 마경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마경의 위험은 마경에서 끝낸다.
“이번에도 코넬은 마경의 위험을 막아낼 것입니다.”
레인저 부대장의 지시와 함께 레인저들이 서로 자리를 교대하며 사방으로 퍼졌다. 비어있는 자리는 예비를 맡은 누군가가 채웠다. 지극히 당연하고 담담한 일이었다. 레인저 부대장이 건방지고 무례하다고 불쾌하게 생각하던 자들마저 입을 다물고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대륙 최고의 금지라 불리는 마경을 지키는 레인저들의 신념이 얼마나 단단한지 깨달았기 때문이다.대악마, 언데드, 리치. 섬뜩한 말에 마음이 흐트러지려던 사람들이 다시 평상심을 되찾았다.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는 정예 중의 정예. 방심하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도 스스로 용납하지 못했다.
“출발하지.”
힐끔 주변을 둘러본 오비도의 말에 레인저 부대장이 길을 인도했다. 가끔 몬스터들이 공격했고, 가끔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걷는 중에 땅이 무너져 내리고 괴물이 날뛰는 것은 보통이고, 밤에 악령이 습격하는 것은 평범한 일이었다. 어쩌다가는 불침번이 하나씩 사라졌고, 때로는 환영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렇게 일주일. 일행은 여전히 투지를 잃지 않았고, 마침내 적이 숨어있는 곳까지 닿을 수가 있었다. 지속해서 마계의 에너지에 노출되어 완전히 이계의 식물이 되어버린 괴물들이 꿈틀거리고, 죽은 몬스터들이 생명에 대한 적대감을 불태우는 지독한 곳. 아이반이 사납게 웃으면서 창을 들어 올렸다.
“이제야 악마의 피를 볼 수가 있겠군.”
왼발을 앞으로, 오른발을 뒤로. 축을 단단히 잡고 허리를 비틀어 튕기듯이 단번에 쏘아낸다. 쉬이이익! 쾅! 아이반의 창이 날아가 박혔다. 하늘에서 반쯤 썩은 와이번이 떨어지는 것을 신호로 삼아 기사들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한때는 평범한 식물이었을 괴물이 꿈틀거리며 가지를 내뻗었다. 기분 나쁜 점액질로 가득한 촉수가 사방에서 솟아올라 일행을 덮쳤다.
남부 기사단은 그 기묘한 촉수를 잘라내고, 방패로 좀비 늑대를 후려쳤다. 뼈와 가죽만 남은 좀비 늑대의 몸이 으스러지며 멀리 튕겨 나갔다.
피우웅! 이제 길잡이가 의미 없었기에 레인저들은 모두 본대에 합류해 싸우고 있었다. 그들은 날렵하게 움직이며 석궁을 쏘았다.
뛰어다니며 쏘는 것임에도 빗나가는 것이 극히 드물었다. 석궁은 활과 비교하면 연사가 어려웠지만, 어느 자세에서든 발사가 가능했기에 레인저들이 크게 선호하는 무기였다.
쾅! 갑자기 바닥에서 일어난 오염된 진흙 골렘이 레인저 하나의 다리를 붙잡고 땅에 패대기를 쳤다. 단번에 머리가 터져나가고 피가 확 퍼졌다.
사제들이 미처 회복시키기 전에 하나의 목숨이 사라졌다. 크르르, 륵! 묘한 함성을 지르던 진흙 골렘의 몸이 조각나서 쓰러진다.
남부 기사단장 브라움이 골렘의 핵을 베어내고 소리쳤다.
“발밑을 조심하라!”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몸을 일으키는 괴물들. 대부분은 신체의 일부분이 사라지거나 썩어버린 언데드였고, 가끔은 오염된 진흙 골렘과 타락한 나무 정령이었다. 하나하나 상대하기에는 수가 많았다.
천천히 깎아 먹어야 하나? 완전히 정리하면서 밀고 들어갈까? 그런 생각을 하던 남부 기사단장 브라움이 미간을 찌푸렸다.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멀지 않은 곳에서 사악한 기운이 물씬 느껴졌다. 그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뚫고 지나간다! 전원 돌격 준비!”
남부 기사단이 일제히 방패를 앞에 내밀었다. 날카로운 눈으로 전방을 바라보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길을 열어라!”
브라움의 명령이 떨어지자 기사들이 폭발적인 속도로 튀어 나갔다. 말이 없어도 그들은 기사였다.
앞을 가로막는 것은 뚫고 지나간다. 쾅! 남부 기사단 전원이 방패를 앞세우고 충돌했다.
마력을 듬뿍 머금은 실드차지. 강력한 충격파가 앞으로 퍼지고, 몬스터들이 크게 밀려났다. 그렇게 남부 기사단이 길을 열자 성기사들이 검과 철퇴를 휘둘렀다. 언데드들은 사지가 날아가도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움직였지만, 신성력을 머금은 몽둥이에 얻어맞고도 그럴 수는 없었다.
사령술이 깨지고 언데드가 정화되어 흙먼지로 흩어졌다. 키에에엑! 하늘에서는 언데드 와이번 무리가 그 썩은 몸을 이끌고 날아다녔다. 그러다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내리찍었다.
탁! 기사 하나를 뒤에서 낚아챈 와이번이 그대로 날아 오르려다 말고 바닥을 뒹굴었다. 사나운 이빨이 녀석의 다리와 날개를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바닥에서 버둥거리는 녀석의 머리를 방패로 내리찍어서 부숴 버린 사나운 이빨이 석화의 마안으로 하늘을 노려보았다. 위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던 놈들이 움찔 몸을 굳히고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피슈욱! 이레인의 화살이 녀석들을 꿰뚫었다. 압축된 공기가 급격히 팽창하며 언데드 와이번의 몸을 찢어발겼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저 멀리 사악한 제단이 보였다.
뼈로 쌓은 제단을 피로 물들이고, 마계의 땅을 이곳으로 불러오는 것이 보였다. 흑마법사가 둥글게 모여 의식을 치르니 허공에 검붉은 게이트가 깜빡깜빡하다 선명해졌다.
마계의 문이 열리고 사악한 에너지가 밖으로 넘쳐흘렀다. 짙은 안개가 가득 밀려왔다.
검은 안개는 시야를 가로막고 기감을 흐려놓았다. 마력 흐름이 더욱 요동치고 신성력이 억눌렸다.
공기조차 이계의 것을 닮아 호흡이 거칠어졌다. 악령 전사, 악귀 투사, 검게 물든 원령귀, 온갖 사악한 언데드, 그리고 악마가 있었다.
5m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인부터 생명을 불태우는 사악한 불길, 지독한 독기를 내뿜는 거미까지.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었으나 그들이 평범한 몬스터와는 다른, 마계의 악마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후우, 후우······.”
녀석들을 바라보며 모두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흐르는 땀이 바닥을 적시고 열이 올라 온몸이 뜨끈뜨끈했다.
지난 일주일이 넘는 시간,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계속 싸우고 있었다. 아무리 강철 같은 체력을 가진 기사라 해도, 무너지지 않는 신앙심을 가진 사제라 해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악마를 뚫고 마계의 문을 닫을 수 있을까? 그게 정말 가능할까? 해야지. 어떻게든 해내야지. 아이반이 창을 굳게 쥐었다. 그리고 땅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치지직! 푸른 번개가 번쩍이고 아이반은 어느새 저 멀리 나아가 있었다.
천둥걸음으로 단번에 거리를 좁힌 아이반이 창을 휘둘렀다.스걱! 거미 악마의 다리가 셋이나 잘려 나갔다. 그러나 아이반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녀석의 몸을 베려던 것이 빗나갔기 때문이다. 반응 속도가 좋았다.
커다란 덩치임에도 상당히 날렵했고 몸도 튼튼했다. 보통 녀석이 아니었다.
쾅!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거인 악마가 주먹을 휘둘렀다. 아이반이 얼른 방패를 꺼내 막았으나 충격이 만만치 않았다.
괴력을 가진 아이반이 한방에 균형을 잃고 비틀거릴 정도라면 평범한 기사는 감당할 수 없었다. 쉬이이이! 거미 악마가 질긴 거미줄을 쏘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