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139
묠니르라고 하기에는 너무 평범해 보여서 의아했던 것이지 싫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아이반이 평소 생각하던 무기에 대한 철학이 그러했으니까.포르니는 껄껄 웃으면서 묠니르를 들어 올렸다.
“그래, 이게 묠니르야. 내가 그것을 재현했지. 그러나 이것 또한 완전하지는 못해.”
묠니르(Mj?lnir), 뜻은 박살 내는 것.천둥신 토르의 망치이자 신들이 모두 인정한 아홉 세계 최고의 보물, 최강의 무기.그 자체로 하나의 신화를 대표하는 보물이자 상징이며, 모두가 탐내던 무기였으나 의외로 그 기능은 단순했다.그저 던지면 다시 손으로 돌아온다는 것, 세상 그 무엇도 부술 수 있을 만큼 단단하다는 것.묠니르가 최강이 된 것은 소유주가 천둥신 토르였기 때문이다. 부인할 수없이 아스가르드 최강의 투신이 사용하던 무기였으니 그 명성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묠니르가 강한 것은 토르가 사용해서야. 천둥신의 권능이 깃들고 수많은 적을 쓰러뜨리며 업적을 쌓았기 때문이지.”
그러니 만들어졌을 때 완성되는 무기가 아니라 사용하면서 완성하는 무기였다. 그게 포르니가 자신의 작품들을 세상에 흩뿌린 이유이기도 하고.
“한 번 무기의 영성을 깨우고 신기로 진화시켜보았으니 이것도 할 수 있을 거야. 쉽지는 않겠지만, 그때가 되면 진정으로 자신만의 묠니르를 가지게 되는 셈이지.”
그전까지는 빌려 쓸 수밖에 없었다. 천상에 있는 묠니르를 지상으로 소환하기 위한 단말기의 역할을 해야겠지.
“기대되는군.”
아이반이 손을 뻗어 묠니르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끌어당기는데, 어째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허공에 단단히 고정된 것만 같았다.준다고 해놓고 막상 넘겨주려니 아까워진 건가? 하긴 노르드 신화에서 난쟁이는 대개 사악하게 그려졌다. 대가 없는 호의를 믿을 수는 없었다.
“···이게 무슨 뜻이오?”
갑자기 사나워진 아이반의 눈빛에 포르니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협조하기로 했어. 부족한 장비도 만들어 줄 생각이야. 하지만 장비에게 인정을 받는 건 다른 문제지. 이 정도면 될 줄 알았는데 아니로군. 하긴 묠니르인데 눈이 낮을 리가 없지.”
피의 검 브리카와 묠니르는 시작점이 달랐다. 묠니르는 이미 신기라 불러도 좋을 만큼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무척이나 영성이 뚜렷했다.이 녀석에게 인정을 받고,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려면 자격을 증명해야만 했다. 그건 포르니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묠니르의 의지였다.
“망치 주제에 실로 건방지군.”
“내 손으로 만들었지만, 이건 묠니르야. 그걸 아무런 시험 없이 그냥 날름 사용하려고 했다면 그게 더 건방진 생각이지.”
시련과 보상. 그것이야말로 영웅을 키우는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방법이 아닌가.그저 주어지는 것은 없었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자신을 증명해야만 했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앞을 가로막는 벽을 깨부수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면 묠니르는 스스로 찾아갈 거야. 그때까지는 내가 보관하고 있지.”
손에 닿았던 묠니르가 다시 멀어졌다. 아이반은 아쉬운 듯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니 포르니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그나저나 몸에 토르의 신력이 가득한데 지금까지는 어찌 그 힘을 사용했단 말이야?”
아이반이 그냥 묠니르의 화신을 소환해 날렸다고 대답하니 포르니가 웬 미친놈을 바라보듯 보았다.
“묠니르를 맨손으로 집어서 사용했다고? 정신이 나간 것인가?”
천둥신 토르조차 쇠장갑 야른그레이프가 없으면 다루기 어려워하는 것을 그냥 사용했다고?한 번 묠니르를 소환할 때마다 팔이 다 타버리고 회복하기를 반복했다고 알려주니 포르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친놈이군. 하긴, 제정신이었으면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선택을 했을 리가 없지.”
“말이 심하시군. 어쩔 수 없는 일이었소. 웬만한 것은 죄다 묠니르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녹아내렸단 말이오.”
파편이 살에 박히고 뜨거운 쇳물이 끼얹어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냥 맨손이 나았다. 어차피 팔이 엉망이 되는 것은 똑같은데 이물질이 박히면 회복이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보통이라면 죽어도 한참 전에 죽었을 텐데, 과연 범상치 않은 몸이야.”
“죽으면 그대로 발할라로 끌려가니까. 그렇게 끌려가고 싶지는 않았소.”
“덕분에 그리 죽는 것보다 더욱 괴로운 삶을 살고 있지. 허, 아스가르드의 화신이라. 원치도 않는 자에게 우리 세계의 업을 넘기려 하다니. 오딘도 지독하지.”
포르니는 오딘의 의도를 어느 정도 짐작하는 듯했으나 아이반이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며, 설령 알고 있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어서라고 했다.아이반에게는 몹시 답답한 일이었으나, 포르니는 뜻을 꺾지 않았다. 수천 년을 넘게 살아온 자의 고집을 몇 마디 말로 어찌 꺾겠나? 아이반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당장 닥친 일이나 생각해. 여기서 평생 살고 싶나? 빨리 내 집에서 나가줬으면 좋겠는데.”
“다른 이들이 모두 회복한다면 그러겠소. 그때까지만 참아주시오.”
“뭐, 그러지. 짧은 생을 사는 인간들과 나는 시간관념이 다르니까. 하지만 괜찮겠어? 여유로운 상황은 아닐 텐데.”
대악마가 소환되었다. 이제 북상을 시작했을 텐데 과연 마리난 제국이 그걸 막을 수 있을까? 모든 힘을 다 동원한다면 가능하겠지만, 그럴 여유가 있을까?북동쪽에서는 피의 동맹과 전쟁이 한창이었고, 이종족을 크게 배척하는 문화 때문에 다른 종족과 힘을 합치기도 어려울 거다.아이반은 우울한 미래를 그리다가 한숨처럼 대답했다.
“노력해야지.”
소리 없이 숲을 달리던 아이반이 뒤로 손을 뻗었다. 멈추라는 뜻. 뒤에서 움직이던 사나운 이빨이 주변을 경계하고 나무를 타고 돌아다니던 이레인이 활을 들어 올렸다.컹, 컹!게리와 프레키, 아이반이 소환한 두 마리 늑대 정령이 재빠르게 뛰어가면서 코를 벌렁거렸다.축축하고 누릿한 냄새. 짐승의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악마의 것이리라. 아이반은 늑대 정령과 시야를 연결해서 적을 살폈다.짧은 뿔과 긴 꼬리, 어설픈 날개와 거칠게 튀어나온 이빨.그리 강해 보이지는 않는 소악마였다. 이대로 덮치면 그대로 목을 꺾어서 죽일 수가 있겠지. 그러나 아이반은 공격을 지시하는 대시 후퇴를 결정했다. 아이반의 손짓에 따라 일행이 왔던 길을 되돌아 움직였다.한참을 달려 포르니의 동굴까지 돌아온 아이반은 그제야 긴 호흡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이 근처까지 악마들이 제법 돌아다니는군. 녀석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는 뜻이지.”
“그나마 보이는 것이 소악마라는 것은, 힘 좀 쓰는 악마들은 죄다 북쪽으로 몰려갔다는 뜻이고.”
“마리난 제국은 개판이 되었겠지만, 주력이 빠져나갔으니 마경을 빠져나가는 것은 더 쉬울 거요.”
지금이 기회였다. 이제 움직여야만 했다.아이반이 그런 의지를 가득 담아서 말하자 다른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대악마 죽음의 인도자와 마주하고 벌써 한 달이 흘렀다. 그동안 몸을 회복하느라 움츠리고 있었지만 모두 마음이 급했다.상태가 악화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포르니의 조치에 이어서 델피노를 비롯해 사제와 성기사가 아낌없이 신성력을 퍼부었다. 죽지 않은 것이 이상한 상처도 많았으나 지금은 적당히 회복되었다. 아직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더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다섯이 남은 레인저 중에 가장 선임인 파울로 코넬이 지도를 펼치며 말했다.
“내일 아침에 출발해 동쪽으로 움직여서 마경을 탈출하겠습니다. 그대로 돌아서 시베린 영지로 들어가죠.”
마경에서 가장 가까운 영지는 물론 그들이 출발했던 요새 도시 코넬이겠지만, 그곳은 이미 초토화가 되었을 거란 사실에 모두가 동의했다. 도저히 대악마를 막을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파울로 코넬, 요새 도시 코넬의 주인이었던 움베르토 코넬의 셋째 아들이 담담하게 인정했다.
“코넬은 마지막까지 용맹하게 싸우다 무너졌을 겁니다.”
마경을 지키는 요새 도시 코넬의 영주 가문은 대대로 마경을 누비는 레인저에 자원입대하는 전통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살아남아서야 마침내 후계자로 인정받는다고.보통은 2년이나 3년 정도 하고 빠져나가는데, 파울로 코넬은 셋째 아들이라 계승권이 없기에 10년이 넘게 말뚝을 박고 지내는 중이라고 했다.레인저들은 저번 전투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고, 부대장마저 난전 중에 사망했다.살아남은 레인저는 겨우 다섯. 파울로 코넬이 그에 포함된 것은 운이 좋았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다른 레인저들이 그를 지키기 위해 은근히 노력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레인저로 들어온 순간 신분과 계급은 상관이 없었으나, 무시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최악의 순간에도 레인저는 그를 지키고자 움직였다.물론 레인저의 숭고한 신념과 냉철한 이성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적인 모습이었다.그렇기에 파울로 코넬은 살아남고도 스스로 크게 자책했다. 10년을 넘게 레인저로 살았음에도 결국 한 명의 레인저로 죽지 못하고 코넬의 아들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게 만들었다.지도를 빤히 바라보던 백색 마탑의 주인 오비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는 많이 줄었으나, 다행히 장비는 괜찮아. 이대로 진행하지.”
파라스와 포르니, 드워프와 난쟁이가 아군의 장비를 손질했다. 부서진 것을 고치고, 없어진 것은 새로 만들었다. 장비만 본다면 예전보다 좋으면 좋았지, 나빠진 것은 없었다.악마 썩어가는 손아귀와의 전투를 통해 은연중에 리더로 인정받은 아이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내일 아침에 출발하겠소. 악마 대가리를 자를 준비를 해두시오.”
다음 날 출발하기로 정하고 모두 마지막 점검에 들어갔다. 하나같이 표정이 비장했다. 자신들의 목숨은커녕 세계의 운명을 걱정해야 했기 때문이다.마경은 그 자체로 위험한 곳이었다. 매 순간 생존을 시험하고, 미래를 갉아먹는 장소였다. 그러나 자신에게 닥친 위험보다 세계를 위협하는 거대한 어둠이 더욱 신경 쓰였다.대악마 죽음의 인도자, 그 압도적인 절망과 공포를 느꼈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장비를 점검하는 것과 동시에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 압도적인 절망과 공포에도 저항할 수 있도록 마음속에 칼날을 세웠다.그래서 마지막 날 밤은 몹시 차분하고 조용했다. 어딘가 경건하기까지 했다.
‘남부 제국 마리난, 그린스킨, 대악마, 세계수.’
아이반은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키워드를 억지로 잊으려 애썼다. 괜히 인벤토리에 남은 물자를 몇 번이고 확인하고 무기를 꺼내서 휘둘러보았다.그때, 파라스가 머뭇거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겠나?”
그의 얼굴은 어두웠다.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물론이오. 자리에 앉으시오.”
아이반이 그리 말하자 파라스는 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도 한참이나 망설였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아직 확신이 없는 표정이었다.망설이는 그를 대신해서 아이반이 말했다.
“이곳에 남고 싶으면 남으시오. 포르니가 괜찮다고 했다면 그것도 좋겠지.”
한 달,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짧다면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이렇게 떠날 거라면 그 고생을 하며 난쟁이를 찾아온 보람이 없었다. 상황이 급박하지만 않았더라면 아이반도 이러지는 않았으리라.파라스는 대를 이어서 난쟁이의 흔적을 쫓아온 자였다. 오랜 세월이 흘러 마침내 난쟁이를 만났는데, 이대로 그냥 떠날 수는 없겠지. 평생의 목표를 찾았으니 이곳에 머물고 싶다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같이 마경으로 들어가 난쟁이를 만나게 해준다, 최초 우리의 계약은 그것이었소. 그동안 쓸데없는 싸움에 휘말리게 해서 미안하오.”
“결국 나는 큰 도움도 되지 않았는데. 내가 이대로 여기 남아도 될지 모르겠네.”
파라스는 긴 한숨을 내쉬며 그리 말했다. 다들 세계의 안위를 위해 싸우러 떠나는데 자신만 욕심을 채우려 멈춰 선다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이지. 모두 창칼을 들고 싸울 필요는 없소. 이만하면 당신의 몫은 충분히 한 셈이오.”
파라스는 그동안 밤잠을 줄여가며 장비를 제작하고, 수리했다. 끊임없이 불을 지피고, 쇳물을 녹이고, 망치로 두드렸다.포르니가 가끔 거들기는 했지만, 솔직히 그는 대악마와의 싸움이나 인간의 투쟁에는 그리 관심이 없는 모양인지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그나마 의욕을 보인 것은 아이반의 장비를 만들 때뿐이었다.아군이 지금처럼 훌륭한 장비를 갖춘 것은 모두 파라스의 노력 덕분이었다. 아이반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겼다.파라스는 전사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어울리지도 않았다. 그는 대장간에서 쇠를 두드릴 때가 가장 행복해 보였다.
“그동안 고생하셨소. 그리고 앞으로도 고생해주시오.”
“···미안하네, 그리고 고마워.”
파라스는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보니 눈물을 꾹 참는 것 같았다. 하여간 일행 중에서 가장 감성적인 자였다. 어울리지 않게.아이반이 피의 검 브리카를 툭 치면서 말했다.
“영원히 헤어지는 것도 아니잖소? 앞으로도 도움을 많이 받게 될 거요.”
포르니가 어찌어찌 손을 보더니, 피의 검 브리카와 이곳 동굴이 이어지도록 만들어놓았다. 언젠가 묠니르가 아이반을 인정했을 때 공간을 넘어 찾아갈 수 있도록.그것을 조금만 응용하면 서로 물건을 주고받을 수가 있었다. 언제든지 아이반이 물건을 보내고, 이쪽에서 장비를 수리하거나 제작해서 넘겨줄 수가 있는 것이다.어느 정도 조건은 필요하지만 그래도 거리에 상관없이 그게 가능하다는 것이 실로 놀라웠다. 과연 신화 속의 대장장이, 난쟁이의 솜씨였다.
“아시다시피 나는 무기를 여럿 사용하오. 장비도 자주 망가뜨리고. 꽤 귀찮을 테지.”
“걱정 마시게. 자네 장비는 언제든지 환영이니까.”
그러면서 싱긋 웃던 파라스가 아차 하는 얼굴로 덧붙였다.
“물론 그렇다고 장비를 아무렇게나 쓰면 안 되네. 다치라는 뜻도 아니야.”
그리고 민망한 듯 파라스가 자리를 피했다. 이곳에 남기로 했으니 다른 이들과도 작별 인사를 나눌 셈이었다.다들 아쉬워했으나 그를 붙잡지 않았다. 붙잡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마경에 자리를 잡고 살겠다는 것이 쉬운 결심도 아니었고.
“그리울 겁니다.”
파라스와 인사를 마친 델피노가 그리 말하자 아이반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서로 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거요. 운이 좋다면 또 만나겠지.”
각자 바라던 것을 위해 움직일 뿐이다. 비록 그 길이 험하지만 죽어서 헤어진 것도 아니니 슬퍼할 이유도 없었다.
“그나저나 당신이 파라스를 받아들인다니, 좀 신기하군. 언제는 귀찮다고 얼른 나가라고 투덜거리더니.”
아이반이 구석을 바라보며 말하자 포르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워낙 감쪽같이 숨어있어서 델피노는 움찔 물러났다.
“그냥, 뭐. 하도 기술을 가르쳐달라고 사정을 하니까. 혼자 지낸 지도 오래되었고, 또 저 녀석을 데리고 있어야 특식이라도 보내줄 것 아니야?”
난쟁이 포르니는 생각보다 감성적이고 외로움을 많이 탔다. 그가 신적인 존재이며 벌써 수백 년을 이 마경에 틀어박혀 살고 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을 만큼.그는 생각 외로 털털하고 편안한 남자였다. 항상 신적인 존재들이 내뿜는 압도적인 위압감에 익숙한 아이반에게는 무척이나 놀라운 존재였다.
“이제 헤어지는 마당이니 제대로 된 이름이라도 알 수 있겠소?”
그 질문에 포르니는 한참이나 망설였다. 자신의 악명이 어떠한지 본인이 가장 잘 알았기 때문이다. 괜히 이름을 알려주었다가 지금껏 쌓아온 신뢰가 모두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포르니는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툭 내뱉었다.
“···레긴. 한때는 난쟁이의 왕 흐레이드마르의 둘째 아들이며, 악룡 파프니르의 동생이며, 영웅 시구르드의 스승이었다.”
오딘과 로키, 회니르는 흐레이드마르의 셋째 아들 오트르를 실수로 죽이고 그 배상금으로 수달로 변신했던 오트르의 가죽을 완전히 감쌀 수 있을 만큼의 보물을 주었다.그 보물 중에 핵심이 바로 욕심의 황금 반지, 안드바라나우트. 소유주를 파멸로 이끈다는 저주의 반지였다.그 저주 때문인지 흐레이드마르와 두 아들, 파프니르, 레긴은 보물을 두고 다투었다. 그 와중에 흐레이드마르는 목숨을 잃고, 레긴은 쫓겨났다.홀로 보물을 독차지한 파프니르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용으로 변신해 악룡 파프니르가 되었고, 레긴은 그를 쓰러뜨리기 위해 영웅 시구르드를 키웠다.레긴은 그렇게 형인 파프니르를 죽인 후 보물이 탐나서 결국에는 자신의 제자인 시구르드를 처리하려다 역으로 목숨을 잃었으니 참으로 덧없고 지독한 삶이었다.노르드 신화에서 난쟁이는 위대한 대장장이였지만 사악하고 욕심 많은 존재로 묘사되었다. 레긴은 그것에 너무나 들어맞는 삶을 살았다. 자신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기에 이야기를 꺼렸던 것이다.아이반은 잠시 멈칫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레긴, 그렇군. 평범한 자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거물이셨어.”
시구르드에게 목숨을 잃었다는 자가 어찌 이곳에 살아있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라그나로크가 끝나고 모두 뒈졌어야 할 아스가르드의 신들도 멀쩡히 있는 마당에 그게 무슨 소용일까.노르드의 현자들은 그 이유에 대해 온갖 신학적 해석을 덧붙였지만 아이반은 솔직히 관심이 없었다.이제 이런 소리를 하는 것도 좀 우습지만, 까놓고 말해서 원래 게임이었던 곳에 자신이 들어와 있는 것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 이름은 이제 잊었으니 그냥 포르니라고 불러라. 별로 기억하고 싶은 이름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