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14
사용자에 따라서 강해지는 옵션은 다른 이들이 보기에도 꽤나 탐나는 것이 아닐까? 개나 소나 전설급, 신화급 무기를 들고 다니는 게임 속도 아니고 현실이 된 지금이라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성능일 텐데.
아이반의 의심스러운 눈빛을 읽지 못하는 것인지 요릭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알아보지 못하겠나? 노르드의 유물이야. 주변에 흩어진 물품들을 보면 아스가르드의 신들을 모시던 전사의 물건이 틀림없어.”
” 그렇군.”
“화려한 기능은 없어도 단단하고 날카롭지. 사용자의 근력을 미약하게 강화하고 활력을 불어넣어주기도 하고. 솔직히 그 반지 하나와 바꾸기는 아깝지만 연구할 만한 것은 다 연구했어. 다시 노르드의 전사가 사용한다면 나쁘지 않겠지.”
아이반은 자세히 살피면서 슬쩍 떠보듯 물었다.
“기능은 그것뿐이오? 다른 것은 없고?”
“그래. 왜? 부족한가? 그대에게 썩 어울리는 물건 같은데.”
“글쎄, 하필이면 창이라는 것이 좀 그렇군. 검이었다면 망설이지 않았을 텐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늘어놓으면서 시간을 끌었다. 혹시 자신이 잘못 본 것은 아닌지, 요릭의 표정은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정말 모른다고?’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다. 레벨에 따라 같이 성장하는 무기.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었고,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혹시 플레이어였던, 상태창을 가지고 있는 자신에게만 반응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반이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면서도 짐짓 고민스럽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으니 요릭이 마치 호객하듯 덧붙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유물이지만 상한 흔적 하나 없지. 이 정도면 충분히 훌륭한 물건이야!”
한참이고 그것을 들어주던 아이반이 마치 못 이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하긴. 무기가 튼튼하고 날카로우면 충분하긴 하지. 그런데 혹시 마법서를 좀 구할 수는 없겠소? 마탑에서는 기초 마법서를 팔기도 한다던데.”
“기초 마법서? 그렇기는 하지만 . 공짜로 줄 수는 없어! 그건 따로 골드를 받아야해.”
“반지도 팔기 싫은 거 억지로 바꾸는데 좀 깎아 주실 수는 없소?”
그 말에 요릭이 기분이 팍 상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청색 마탑이 어디 시장 바닥에서 생선 파는 곳인 줄 아나? 흥정은 거기 가서 하게. 지식의 가치는 깎을 수가 없어. 대신 다른 편의를 봐주지.”
마법사들은 대개 자존심이 강했다. 돈 몇 푼으로 그들의 심기를 건드릴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정말로 금액을 깎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성장형 아이템에서 시선을 돌리는 것이 목표였으니.
“뭐, 알겠소. 그러면 그 정도로 만족하기로 하지.”
“흐흐, 정말인가? 잘 생각했어!”
아이반은 반지 대신 창을 챙기고, 거기에 더해서 금화 수십 개를 건네받았다. 주머니에 묵직하게 들어있는 것이 모두 금화라니, 숲에서 그 개고생을 하며 벌어들인 의뢰비가 겨우 금화 하나라는 것을 생각하면 웃기지도 않았다.
“의뢰 하나 잘 해결해서 대박이 터졌군.”
하물며 가장 중요한 성장형 무기까지.
항상 이런 보상이 뒤따른다면 아이반은 몇 번이고 악마의 대가리를 날려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좋은 거래였소.”
“클클클, 합리적인 거래였지. 우리 마법사들은 장사치나 용병 놈들처럼 서로의 뒤통수를 후리기 위해 노려보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아.”
너스레를 떠는 요릭을 보며 아이반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개소리가 무척이나 아크로바틱하군.’ 아이반의 경험에 의하면 마법사들도 다를 것이 없었다. 오히려 괴팍하고 자존심이 강한 성격 탓에 계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하긴, 그것이 마법사들의 본질이지.’ 세계의 법칙을 왜곡하고 자기 마음대로 바꾸려면 본인의 생각이 옳다는 독선적인 사고방식과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정신세계가 있어야만했다.
모든 마법사가 괴팍하고 독선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향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 게 당연했다.
스윽, 휘익! 아이반이 몇 번 창을 휘둘러보다 얼른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요릭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창은 별로라더니 자세가 그럴듯하군. 그 무기의 주인도 에시르손이 사용한다면 만족할거야.”
그러자 옆에서 눈치만 보고 있던 에민이 머뭇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계속 에시르손, 에시르손 하시던데 아이반 씨의 성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겁니까?”
그 질문에 요릭은 표정을 굳히고 에민을 바라보았다. 이 빡대가리 새끼는 무슨 그런 한심한 질문을 하는 거지? 도대체 스승에게 뭘 배웠기에? 그런 눈빛을 하던 요릭은 이 멍청이의 사부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깊은 한숨을 흘렸다.
“이 한심한 녀석아! 노르드인에게는 성이 없어. 그저 누구의 아들이라는 것을 말할 뿐이지.”
스벤의 아들이라면 스벤손, 아이반의 아들이라면 아이반손.
그러니 에시르손, 에시르의 아들.
“에시르는 아사 신들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노르드 신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신들이 바로 아사 신족이지.”
“그렇다면 .”
“아사 신족의 아들, 그들의 피를 이은 자. 고귀한 혈통을 가졌으며, 신들의 인정을 받은 대전사. 그런 자만이 감히 에시르손이라 자칭할 수가 있지.”
요릭은 아이반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 덧붙였다.
“말하자면 노르드의 오래된 왕족이라 할 수 있겠어. 물론 이자가 사기꾼이 아니라면.”
그래, 그런 설정이 있었지.
캐릭터 배경설정 따위는 관심이 없어서 제대로 찾아서 읽어본 적이 없었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이반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노르드에는 왕가가 없소. 그러니 오래된 왕족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군. 따지고 보면 지금 노르드인들 중에서 서로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도 없고.”
“신의 인정을 받은 전사라는 말은 옳고?”
“신이 나를 인정했는지가 지금 무슨 의미가 있소? 당신이 나를 인정했는지가 중요하지.”
“노르드인답지 않은 말이야.”
“당신이 나보다 노르드인들에 대해 잘 알 것 같지는 않은데.”
“흐, 그것도 그렇군.”
거기까지 말한 요릭은 어서 나가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는 이번에 얻은 유물들을 얼른 연구해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요릭의 연구실을 빠져나온 아이반은 에민의 안내를 받아서 무사히 기초 마법서 몇 권을 구할 수가 있었다. 덕분에 방금 받았던 금화 주머니가 단숨에 홀쭉하게 변했지만. 탈탈탈 금화 대신 먼지만 흘러나오는 주머니를 바라보며 아이반이 이를 악물었다.
‘사기꾼보다 더한 놈들!’ 아이반은 눈물이 찔끔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맹자 왈,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라, 맹자가 말하길 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만 못하다 하였소. 공자 왈, 덕불고 필유린이라, 공자가 말하길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으며 반드시 이웃이 있다고 했지. 그대는 상정고금예문이 1234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소? 칸트의 정언명령에 대해서는 논할 수가 있겠소? 수요와 공급의 법칙, 베블런 효과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아이반이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으니 에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다 무슨 소리입니까?”
“지금 내 심정이 딱 그것이오. 이해가 하나도 되지 않는다는 뜻이지.”
청색 마탑에서 기초 마법서를 구매하고 약속대로 에민이 그것에 대해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아주 친절한 목소리로 천천히 또박또박 외계어를 읊었다. 그렇게 며칠쯤 강의를 듣고서야 아이반은 어렵게 인정할 수가 있었다. 더럽게 어려워서 무슨 말을 늘어놓고 있는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
역시 문과인가? 문과가 문제인가?
“으흠, 도대체 뭘 말하고 있는 것인지 .”
답답한 표정으로 두꺼운 마법서를 뒤적거리던 아이반이 손을 펼쳤다. 화르륵! 순식간에 타오르는 불꽃이 나타났고, 이내 그것이 다섯 개로 갈라졌다가 화살표, 하트를 그리고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그걸 바라보던 에민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 그렇게 잘하시면서 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겁니까?”
솔직히 에민은 마법의 기초에 대해 알려주면서도 아이반이 금방 그것을 따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마법은 학문이고, 그것은 겨우 며칠 만에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놀랍게도 아이반은 겨우 3일 만에 기본적인 마력 사용법에 대해서 깨닫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이해가 잘되지 않아서 답답하다고 말을 내뱉고 있으니 황당하기만 했다.
‘내가 기초를 익히기까지 얼마나 걸렸더라?’ 솔직히 에민은 아이반의 뒤통수를 한 대 후려갈기고 싶었다. 물론 그랬다가는 아이반의 굵직한 팔뚝에 자신의 대가리가 박살날 것 같아서 차마 행동으로 옮길 수는 없었지만. 그런 에민의 생각이야 어쨌든 아이반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원래 힘을 다루는 것은 익숙하니까. 몸에 때려 박으면 기초적인 속성변환이나 움직임 정도야 간단하지. 하지만 도대체 그 원리를 모르겠단 말이오.”
솔직히 말하자면 아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개소리를 그럴듯하게 늘어놓은 것 같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마법의 원리라는 것이 그동안 아이반이 알고 있던 상식과는 완전히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마법사라는 족속은 일반적인 상식을 무시하고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옳다고 세계에 떼쓰는 지독한 고집쟁이였다. 누구나 옳다고 여기는 세상의 법칙에 의문을 제시하고 그렇지 않다고 우기는 뼛속까지 반골들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누구보다 이성적이었으나 그 이성은 자의적이고, 누구보다 현명하지만 그 방향이 편향되어있었다. 그래야만 마법이 현실에 발현되니까. 스스로를 상식인이자 지성인이라고 믿고 있는 아이반에게는 그것이 영 껄끄러운 일이었다.
뭔가 하나씩 불편하게 걸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렵군, 어려워. 이 마법사적 사고방식이 없다면 높은 수준의 마법을 구사하기는 어렵겠어.”
아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유 불문하고 머릿속에 지식을 때려넣고 몸에 경험을 새겨주는 스킬 포인트의 존재가 있었으니.
‘ 조금만 더 참아보자.’ 쉬운 길이 눈앞에 있으니 점점 눈이 돌아갔지만 의지력으로 억눌렀다. 이제는 큰 그림을 봐야만 했다.
당장이 아니라 미래를 그려야만 했다.
“후 .”
답답한 마음에 바깥을 바라보던 아이반의 눈에 어딘가 바쁘게 달려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왠지 성문이 소란스럽고 사람들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았다. ‘무슨 일이지?’ 피, 부상. 겨우 살아남아 도망친 패잔병들.
그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아이반은 오크 전사의 모습을 떠올렸다.
블루라인으로 오던 길에 먼 산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던 오크 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