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145
이미 마리난 제국의 삼 분의 일이 악마와 언데드에게 불타서 사라졌다. 피의 동맹과 전투로 잃어버린 땅까지 생각하면 남부 제국 마리난의 영역은 절반 이하로 줄어든 셈이다.
생존을 걱정해야지 누굴 도와줄 상황이 아니었다. 물론 아이반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더 싸워달라고 붙잡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지.
“제국을 위해 싸워준 것을 잊지 않겠소. 수도로 오면 언제라도 반드시 보상하겠소.” 당장은 상황이 급박하여 아이반과 일행에게 내어줄 것이 없었다. 받을 시간도 없었고. 그러나 결코 잊지는 않으리라. 아이반과 그 동료의 활약을 보았던 모든 이들이 그리 말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뵙겠소.” 서부 기사단장 타이런이 손을 내밀자 아이반은 무겁게 악수했다. 다른 이들도 다가와 인사하고 그를 배웅했다. 라인하르츠 공작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영지로 먼저 떠났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도 전투가 한창이라고 했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길을 떠나면서 델피노가 물었다. 요정의 숲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알았으나,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요정의 숲은 스스로 봉인한 상태였다. 대악마 죽음의 인도자가 무슨 방법으로 그것을 뚫고 공격을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그곳으로 갈 수가 없었다.
“쉽게는 건너가지 못하오. 어찌어찌 차원 좌표를 찾는다고 해도 억지로 찢고 들어갈 수밖에 없지. 그래서는 대악마와 다를 바가 없소. 오히려 녀석들을 도와주는 셈이고.”
“옳은 말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무엇입니까?” “요정의 숲으로 건너가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오. 세계수와 극히 가까운 자, 이 땅에 남은 초월자, 언제라도 요정의 숲으로 가는 문을 만들 수 있는 자. 그쪽에서 도와줄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방법이 없소.” 그 말에 이레인이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그런 존재가 있다고?” 이레인은 최초의 일곱 요정 중 하나인 팔라시온의 직계 후손이었다. 고대 요정의 피를 가장 짙게 이어받은 그녀조차 알지 못한 것을 아이반이 알고 있다는 말인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던 이레인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그가 보여준 것들이 워낙 많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도 일단은 믿을 수밖에. 아이반은 단편적인 미래를 본다고 하지 않았던가. 세계수가 선택한 사내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 이레인은 그리 납득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그게 누구지?” 그 물음에 아이반이 조금 망설이면서 사나운 이빨을 흘깃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눈빛에 사나운 이빨이 의아한 듯 바라보자 아이반이 입을 열었다.
“뱀신 모르나. 그녀의 도움이 필요하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존재가 언급되자 모두 눈을 크게 떴다. 그중에서 가장 크게 놀란 것이 사나운 이빨이었다.
“뱀신께서 요정의 숲과 관련이 있다고? 들어본 적이 없다!”
“뱀신 모르나는 무척이나 비밀스러운 존재요. 그녀를 따르는 자들조차 그녀의 제대로 된 정체를 알지 못하지.” 아이반이 무거운 표정으로 설명했다. 그동안 사나운 이빨에게 말할 수가 없었던 진실을 이제야 털어놓으려 했다.
“사실 뱀신 모르나는······.” 그때 기묘한 힘이 움직이며 사나운 이빨에 깃들었다. 그는 무심코 용의 심장에서 마력을 뽑아 그것에 대항하려 했으나, 그 힘이 무척이나 익숙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온전히 받아들이려 애썼다. 그리고 사나운 이빨이 다시금 눈을 떴다.
그 이름에 어울리는 날카롭고 험악하던 눈빛이 어딘가 요염하게 빛을 뿌렸다.
“···나에 대해 알고 있는 자는 흔치 않은데, 너는 어찌하여 나를 아느냐?” 사나운 이빨의 몸을 빌린 뱀신 모르나의 물음에 아이반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오. 설마 최초의 요정이 이런 형태로 아직 남아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만.”
하늘과 땅이 제대로 나뉘지 않고, 바다와 대륙의 경계마저도 흐릿하던 아득한 옛날. 이제 막 태동을 시작한 세계에 흥미를 느낀 자들이 있었다. 태생이 정령과 놀랍도록 흡사한 위대한 영혼들, 눈을 떴을 때부터 세상 만물을 이해했다는 초월적인 정신체. 그들 중 일부는 이 어설프고 생동감 넘치는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고, 결국에는 초월적인 정신체를 벗어나 스스로 육신을 뒤집어쓰고 이 땅에 나타나 자리를 잡았다.
이리딘, 팔라시온, 라그네르자, 오필리아스, 마이네르, 시릴, 베이론. 최초로 이 땅에 발을 내디딘 일곱과 그들을 따라 넘어온 자들, 그리고 그들의 힘을 이어받은 후손이 바로 고대 요정이었다. 그들은 태초의 드래곤, 원시 거인과 함께 선주종족이 되었다.
태초의 드래곤이 세계를 만들었다면, 원시 거인은 대륙의 형태를 잡고 생명을 채워 넣었다. 그것이 번성하도록 가꾸는 것은 고대 요정의 몫이었다.
셋의 사이는 결코 좋다고 할 수 없었고, 서로 돕고자 하는 생각도 없었으나, 미칠 듯이 싸우면서도 그 기묘한 균형은 한참이나 지속되었다. 그리고 적당히 시간이 흘러 원시 거인이 잠들고, 태초의 드래곤이 다른 세계를 찾아서 떠날 때, 최초의 일곱 요정 또한 스스로 만든 육신을 버리고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제 이 땅에 남은 것은 그들의 멀고 먼 후손, 엘프만이 전부였다.
모두 그렇게 알고 있었다.
“최초의 요정? 설마 뱀신 모르나가 위대한 어버이 중의 하나란 말이야?”
이레인, 달리 최초의 요정인 팔라시온의 직계 후손인 그녀가 두 눈을 크게 뜨고 소리를 질렀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입에 물고 있던 곰방대마저 떨어뜨렸다.
그녀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사나운 이빨의 몸을 빌린 뱀신 모르나는 그녀를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입을 열어 대답하지는 않았으나, 그게 긍정의 뜻이라는 걸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도와주시오. 그대와 연이 있는 자들이 아니오?”
아이반의 말에 그녀는 천천히 입꼬리를 밀어 올렸다. 사나운 이빨의 얼굴로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놀라웠으나, 휘감고 있는 분위기가 무척이나 요염하여 전혀 어색하지가 않았다.
“한때의 인연이라고 한들 아득한 세월이 흘렀음에, 내가 그들을 도와야 할 이유는 없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최초의 요정이 아니라 그들이 남긴······.”
“사념체지. 알고 있소. 이미 당신이 최초의 요정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은.”
뱀신 모르나는 최초의 일곱 요정이 이 땅에 남기고 간 미련이었다. 갑갑한 육신을 벗고 위대한 정신으로 되돌아가며 남긴 그리움의 흔적이었다.
그들은 위대한 정신체로 돌아가면서 불필요한 허물은 이 땅에 두고 갔다. 최초의 일곱이 품고 있던 힘은 워낙 대단한 수준이라 그 허물에 남은 힘조차 평범하지 않았다.
그 대부분을 세계수를 더욱 튼튼하게 뿌리내리기 위해 사용했으나, 위대한 정신체가 육신을 뒤집어쓰면서 생긴 욕망의 찌꺼기는 차마 세계수에 담지 못했다. 그들의 위대한 정신에서 떨어져 나온 감정의 부스러기조차 필멸자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세계수가 그 욕망의 감정에 물들 것을 우려한 최초의 요정들은 떠나기 전, 그것을 새로운 형태로 가공하였다. 최초의 요정들이 남긴 욕망이 담긴 사념체. 그것이 오랜 세월을 거쳐 새로운 자아를 얻고 성숙하여 탄생한 신격. 그게 뱀신 모르나의 정체였다.
“당신이 엘프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소. 그러나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존재는 당신뿐이오.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시오.”
그 말에 뱀신 모르나가 코웃음을 흘렸다.
“자비라, 나는 그러한 것을 모른다. 나를 설득하려면 다른 것을 제시하라. 나의 욕망이 동하는 것을.”
“그렇다면 부디 우리가 당신을 찾아가는 것을 막지 마시오.”
“내가 왜 그래야 하느냐? 너희들이 나를 찾아오면 괜히 귀찮기만 할 것인데.”
심드렁한 그녀의 말에 아이반이 진지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그게 흥미로울 테니까. 당신의 오랜 권태를 깨울 만큼.”
뱀신 모르나의 눈이 반월을 그리며 휘었다. 그 웃음기 어린 눈빛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발견한 아이반이 마주 웃으니 초월적인 기운이 흐려졌다. 뱀신 모르나가 떠난 것이다.
“으흠!”
사나운 이빨이 순간 비틀거리다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비록 뱀신 모르나에게 몸을 빌려줬다고는 해도 정신이 완전히 잠들지는 않았다. 조금 전 일은 그에게도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그는 아이반을 빤히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제는 들을 때가 되었다.”
아이반은 얼떨떨한 표정의 이레인과 델피노를 깨우며 대답했다.
“가면서 이야기하겠소.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아이반은 일행을 이끌고 대수림으로 향했다. 웬만한 나라 하나는 통으로 들어가고도 남는다는 대륙 최대 규모의 숲. 온갖 몬스터와 이종족이 가득하기에 인간은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곳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에게는 마경만큼이나 위험한 셈이다. 마리난 제국의 도움을 받아 뛰어난 군마를 몇 번이나 바꿔 타면서 달린 일행은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할 수가 있었다.
이제 겨우 끝자락이라 목표를 찾기까지는 또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정말 이곳에 뱀신께서 계신 것이 확실한가?”
사나운 이빨은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반을 따라 움직이다 보면 언젠가 뱀신에게 닿을 수도 있지 않을까 여겼으나 그때가 이리도 갑작스럽게 찾아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소. 대수림의 아주 깊숙한 곳에, 뱀신 모르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오.”
아이반은 그리 대답하고는 이레인을 바라보았다. 끊임없이 뻐끔뻐끔 곰방대를 피우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꽤 불안해 보였다.
“다른 엘프들에게 다시 한번 일러두시오. 전투 준비를 하고 약속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만약 성공한다고 해도 요정의 숲으로 가는 문은 길게 유지되지 않을 거요. 단번에 넘어가야만 하오.”
“이미 모든 고행자와 대륙에 있는 요정 군단, 프로스트 엘프에게 소식을 알렸어. 모두가 상황을 알고 있을 테니 지금쯤 바쁘게 달려오고 있을 거야.”
“그러면 우리만 잘하면 되겠군.”
탁! 숲의 끝자락에서 아이반은 말의 엉덩이를 때려 멀리 쫓아냈다. 혈통 좋고 훈련이 잘된 군마였으니 알아서 길을 찾아 돌아갈 터였다.
아니면 중간에 재수 좋은 사람이 챙기던가. 이레인과 델피노도 자신의 말을 그리 보내고, 사나운 이빨은 정령마를 역소환했다.
뚜벅이가 되었으나 빽빽한 숲속이라면 이게 오히려 나았다.
“다른 생각할 필요 없이 일직선으로 달리겠소.”
보통 아이반은 숲속에서라면 극도로 조심스럽게 움직이고는 했다. 웬만한 몬스터들은 그대로 토막을 쳐서 저녁거리로 삼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 후에는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경계심을 낮추지는 않았고. 그러나 이번에는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자신의 존재를 알아달라는 것처럼 은폐엄폐도 없이 당당하기 움직이고, 음식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돌아다녔다. 당연히 몬스터들이 덤벼들었으나 숲 외곽에 있을 정도로 자잘한 놈들은 이미 준비 운동도 되지 못했다.
오히려 더욱 피 냄새를 풍기며 움직일 뿐이었다. 그렇게 이틀째가 되어서야 일행은 당당하던 발걸음을 멈췄다. 기다리던 자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이빨, 손발톱, 때로 수북한 털과 꼬리. 그런데도 많은 부분이 인간과 닮아있었다. 이들이 바로 대수림에서 가장 번성한 이종족, 수인이었다.
날카로운 창이나 검, 활 따위를 들고 있는 자들도 있었으나, 많은 수가 맨몸이었다. 그건 무기가 부족해서나 미개해서가 아니라 본인들의 육신 자체가 강인한 무기라는 자신감이었다.
“이렇게 난리를 피웠는데 이틀이나 걸리다니. 제법 오래 걸렸군요.”
델피노가 그리 중얼거리자 사나운 이빨이 고개를 저었다.
“저들은 한참 전에 우리를 발견했다. 다만 멀리서 감시하고 있었을 뿐이다.”
무척이나 은밀하고 자연스러웠다. 웬만큼 단련된 자들도 그들의 시선을 느끼지는 못했으리라. 모닥불을 피우고 사슴을 굽고 있던 아이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화할 준비는 되었소?”
너무도 당당한 태도에 수인들이 움찔했다. 그들의 동물적인 감각이 아이반은 감당하기 힘든 강자라고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대수림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괴물들보다도 강력한 기세. 거의 폭풍을 눈으로 보는 듯 초월적인 존재감이었다. 원래라면 자신들의 영역으로 들어왔을 때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공격했을 것이다.
그게 인간이라면 더욱. 그러나 아이반을 직접 보고도 그럴 수는 없었다. 강자는 대우받을 자격이 있었다.
이처럼 초월적인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게 인간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곳에 있는 수인들은 아무도 그를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그런 외형을 뒤집어쓰고 있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라고 여겼을 뿐이다. 물론 그건 아이반이 자신의 힘을 숨기지 않고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아스가르드 신들의 권능마저 끌어와 뿜어내고 있으니 감각이 무척이나 예민한 수인들은 실제보다 더욱 거대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대는 누구요? 도대체 우리의 땅에 이리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오?”
늑대 수인의 물음은 퍽 정중했다. 당장 공격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그래 봐야 의미가 없으리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대들의 도움이 필요하오. 혹시 족장 가론을 만날 수 있겠소?”
가론은 예전 원시 거인을 상대하던 때 대수림에서 원군으로 왔던 늑대 수인족의 족장이었다. 깊은 인연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니, 부탁을 마냥 거절하지는 않으리라.
“족장 가론? 쓰린 이빨의 족장 가론님을 말하는 거요? 당신이 그분을 어찌 알지?”
“북부에서 같이 거인을 상대로 싸웠던 적이 있소.”
“태산보다 거대했다는 그 괴물?”
“그렇소.”
“···들어본 적이 있소. 인간 전사 하나가 그 괴물의 목을 베었다지.”
“자르진 못했소. 그러기엔 칼이 짧았거든.”
아이반이 허세를 좀 섞어서 말을 내뱉으니 수인들이 감탄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군.”
하늘을 가리던 그 거대한 존재를 직접 본 자들이 있어서 그런지 대수림에 소문이 제법 많이 퍼진 모양이었다. 인간의 나라에서는 그런 소문이 있어도 과장된 것이라며 크게 믿지도 않았는데. 어쨌든 아이반이 이런저런 이야기로 자신을 증명하자 수인들은 일행을 쓰린 이빨의 족장 가론에게 안내하기로 했다.
한때 대수림의 수인들은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미친 듯이 싸웠으나, 지금은 대족장 아래 부족들이 연맹 형태로 뭉쳐있었다. 만약 대족장이 오크로드 카르타크처럼 공격적인 성향이었다면 아마 지금과는 또 다른 상황이었을 것이다.
신뢰의 연합에는 무척이나 힘든 시간이 되었겠지. 수인족 전사의 안내를 받아 며칠쯤 움직이자 마을의 모습이 보였다.
“이곳이 바로 쓰린 이빨 부족이오.”
흙과 나무를 적당히 사용해 만들어진 마을은 멀리서 보기에는 그저 수풀이 우거진 언덕처럼 보였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그 모든 것이 놀라울 정도로 자연과 어우러진 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건물을 두르고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커다란 나무 아래 집이 있었고, 바위틈에 길이 있었다. 수없이 많은 곳을 돌아다녔으나, 수인족의 마을은 그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신선한 모습이었다.
미리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인지 마을의 입구에 족장 가론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처 가득한 근육질 몸매에 늑대 가죽을 망토처럼 두르고 있는 남자. 겉으로는 인간과 다를 바가 전혀 없었으나, 그가 늑대의 모습으로 변하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아이반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오랜만이오, 가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