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154
이번에 권력을 잡은 둘째 황자가 그들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대관식만 치르지 않았을 뿐, 새로운 황제의 부름이나 다름없었다.
깔끔한 의상으로 갈아입은 일행은 궁중 예법에 대해 간단히 교육을 받고 둘째 황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둘째 황자는 접견실이 아니라 굳이 대전으로 불렀는데, 그건 자신의 위엄을 과시하려는 목적인 것 같았다.
넓은 대전에 기사들이 두 줄로 서서 그를 호위하고 있었다. 일행에게 무기는 허용되지 않았으며, 일정 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금지되었다.
섬뜩한 기세를 흘리는 기사들 사이로 걸어가야만 하니 보통 사람이라면 크게 위축될 법도 하지만 일행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겪은 일들이 너무 많았다. ‘무기가 없다고 무해한 것이 아닌데.’ 그들은 인벤토리까지 검사하지는 못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일행이 약하지는 않고. 황실 시종이 어서 배운 대로 예를 표하라고 눈치를 줬으나 아이반은 고개를 숙이지 않고 빳빳이 들어서 둘째 황자를 바라보았다. 이레인 역시 마찬가지였고, 사나운 이빨도 물론이었다.
델피노는 약간 난감해하는 것 같았으나, 그도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다.
“흠흠!”
황실 시종이 필사적으로 신호를 주고 기사들의 눈빛이 험악해졌다. 날카롭던 기세가 더욱 강해져 일행을 덮쳤다.
“어서 예를 표하시오!”
누군가 그리 말했으나 아이반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저 덤덤한 목소리로 인사를 내뱉었을 뿐이다.
“반갑소. 아이반이오. 아이반 에시르손.”
사실상 황제가 되어버린 자를 대하는 말투가 아니었다. 무례하다고 소리치고 기사들이 금방이라도 검을 뽑을 듯 노려보았다.
“···그래, 아이반. 그대의 이름은 이미 들었다.”
황자가 그리 말하자 소란스럽던 대전이 조용해졌다. 생각보다 황자의 장악력이 좋은 듯했다. 하긴, 그러니까 첫째 황자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겠지. 쿠데타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대들에 대해 많은 자들이 이야기하였지. 듣던 것보다 훨씬 더··· 기개가 대단한 자로구나.”
이건 칭찬이 아니었다. 뭘 믿고 그리 건방지냐는 뜻이다. 야만인이라 고개 숙일 줄 모르냐는 질책이기도 했다.
“나는 아이반 에시르손, 신의 자손이자 옛 왕가의 후손이니 함부로 고개를 숙일 수가 없소.”
물론 아이반이 그런 걸 따질 리가 없지만 그런 이름을 받았다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직 황제도 되지 못한 자에게 고개를 숙인다면 저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토르가 망치로 뒤통수를 후려칠 테니까.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아이반은 아스가르드의 화신이었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은 그가 한낱 인간에게 고개 숙이기를 원치 않았다.
“하하, 그렇단 말이지.”
둘째 황자는 호탕한 듯 웃음을 터트렸으나 눈빛은 그러지 못했다. 대륙에서 노르드인은 야만인 취급이었다. 그런 하찮은 자가 자신에게 굴복하지 않으니 속으로 분노가 끓어오르는 모양이다. 아마 아이반과 그 일행에 대해 여러 사람이 늘어놓은 이야기가 없었다면 벌컥 화를 내면서 목을 베라고 외쳤을 것이다.
“그대들은 요정의 숲을 구하기 위해 떠났다고 했지. 다시 돌아온 것은 혹 제국의 도움을 바란 것인가?”
“그렇지 않소.”
“어째서? 대악마가 상대라면 세계수도 쉽지는 않을 텐데. 그대들의 공이 적지 않으니 그 대가로 약간의 병사는 내어줄 의향이 있다. 최근 알아낸 바로는 이 땅에 소환된 대악마가 하나가 아니라는······.”
“요정의 숲은 이미 구원받았소. 대악마 죽음의 인도자와 가장 깊은 절망을 토벌하고 마계로 쫓아 보냈으니.”
그 말에 둘째 황자를 포함해 대전에 있던 모든 이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설마 그 짧은 시간에 해결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대악마가 둘이나 소환되었다면 엘프와 세계수가 감당하기 어려웠다. 설령 세계수가 힘을 낸다고 해도 쉽게는 처리할 수가 없었다.
요정의 숲에서 밀어내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토벌해서 마계로 보내버렸다니, 대악마 하나에게 삼 분의 일이 불타버린 마리난 제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말이었다. 드워프 중갑병과 수인 연맹의 야수전사, 나가 왕국의 정예들이 엘프를 돕기 위해 움직였단 사실은 몰랐다.
내부 사정이 엉망이라 미처 그런 것까지 파악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대악마가 사라졌다?”
“그렇소.”
그제야 둘째 황자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일행이 더욱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둘째 황자는 웬만한 기사 수준의 실력이 있었으나, 그 정도로는 일행의 능력을 가늠하지 못했다. 다른 이에게 들은 것만으로는 제대로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군. 제국을 위협하는 큰 적이 사라졌다는 소리니. 그렇다면 그대들은 공의 대가로 무엇을 원하는가? 제국과 황실을 대표해 내가 그대들에게 상을 내리겠다.”
아이반은 둘째 황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제국 황실의 보물창고에 잠든 성물을 되찾고자 하오.”
대륙 유일의 제국이 보유한 보물들은 정말 막대한 양이었다. 그중에서 성물이라 불릴만한 물건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둘째 황자는 언뜻 알아듣지 못했다.
“성물이라? 어떤 성물을 말함인가?”
“옛 시대에 흩어진 성물이오. 우리에게는 귀한 것이나 제국에게는 아닐 테니 오랜 세월 먼지만 쌓고 있을 것이오.”
마리난이 제국으로 성장하면서 다른 종족에게서 빼앗은 성물이었다. 이제는 그 의미마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물건일 테고. 황실 보물창고에 들어갈 정도니 가치가 낮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보상으로 주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지나치게 귀한 물건을 요구하면 이런저런 조건을 걸어보려던 둘째 황자는 약간의 실망을 감추며 되물었다.
“정녕 그것이면 충분한가? 제국의 보물창고는 함부로 열리는 것이 아니니 신중해야 할 것이다.”
슬쩍 미끼를 흔드는 황자의 말을 아이반이 단호하게 끊어냈다.
“그거면 충분하오. 달리 필요한 것은 없소.”
일행의 장비는 죄다 드워프와 난쟁이의 손길이 닿은 최고의 명품이었다. 엘프가 아득한 세월을 모아온 보물은 마리난 제국에 비할 바가 아니었고. 탐나는 것이 없지는 않았으나 귀찮음을 감수하고 덥석 받아들일 만큼은 아니었다. 이쯤에서 인연을 끊어내는 것이 옳았다. 둘째 황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일행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가 있다면 일행이 벽을 세우는 의미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대들은 언제까지나 손님이 될 수 있는가?”
“제국이 우리를 손님으로 생각한다면.”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쁘지도 않았다. 아군은 아니었으나 적군도 아니란 뜻이니까. 하긴, 엘프와 리자드맨이 섞인 파티였다. 아무리 실력이 대단하다고는 해도 황좌를 노리는 이가 영입할 수는 없었다. 인간의 제국, 마리난을 이끄는 자라면 모두가 그러했다.
“그대들은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다.”
가볍게 피아식별을 마친 둘째 황자가 축객령을 내리자 일행은 순순히 물러났다. 아이반은 대전을 나가면서 흘깃 둘째 황자를 보았다. 정확히는 그가 아니라 그의 뒤쪽이었다. 일행이 완전히 사라지고 몇 분 후, 둘째 황자는 손을 내저어 기사들을 물렸다. 아무도 남지 않은 대전에서 헛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저자가 그대들을 알아보았군. 내게 올라온 보고가 거짓은 아니었던 모양이야.”
둘째 황자의 뒤쪽 공간이 일렁이며 온통 시커먼 옷을 입은 자들이 나타났다. 그의 곁을 지키는 비밀 수호대였다. 이들은 제국 기사단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다. 그런 숨겨진 검이 있었기에 감히 쿠데타를 일으킬 수가 있었던 거다. 제국 기사단장과 동급이라는 수호대장이 한참이고 서 있다가 낮게 말했다.
“···이번은 무모하셨습니다. 만약 그자들이 음흉한 마음을 품고 공격했다면 어쩌시겠습니까? 아직 불순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사들을 그리 부르지 않았나? 그대들도 있었고.”
“부족했습니다.”
“···뭐?”
당황한 목소리로 되묻는 둘째 황자에게 수호대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들이 정말로 공격했다면 막을 수가 없었을 겁니다. 듣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자더군요. 저런 수준인 줄 알았다면 끝까지 반대했을 겁니다.” 날 때부터 감이 좋았던 그는 아이반의 몸속에 가득 채워진 위대한 존재감을 느꼈다. 조용히 꿈틀거리는 거대한 힘을 보았다. 과연 그를 쓰러뜨릴 수가 있었을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겠지. 이곳에 있던 기사들 태반이 죽고 나서라면. 그러나 그 상황에서 황자를 지킬 자신은 없었다.
“저는 지금껏 저런 존재감을 가진 자는 딱 둘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그게 누구인가?”
“라인하르츠 공작과 권왕 바르투이입니다.” 라인하르츠 공작이라 하면 제국 최강의 기사였고, 권왕 바르투이는 대륙 최고의 무투가였다. 둘은 모두 인간이 닿을 수 있는 끝자락에 도달했다는 괴물들이었다. 아이반이 그런 자들과 비슷하다는 말에 둘째 황자가 표정을 굳혔다.
“설마 그 정도란 말인가? 내가 크게 실수한 것 같은데······.”
“그저 느낌일 뿐입니다. 진정으로 공작이나 권왕과 같은 수준은 아니겠지요.”
“그렇다고 해도······.”
“차라리 이게 나을 겁니다. 어차피 누군가의 아래에 있을 자가 아니니 말입니다. 공작이 어떠한가를 생각하십시오.” 백 년 전에도 제국 최강자 소리를 듣던 라인하르츠 공작은 이미 인간의 법도로 붙잡을 존재가 아니었다. 그처럼 드높은 경지에 이르면 일반적인 세상의 일에 무심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일반적인 권력자와는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필멸자의 업을 벗어던지기 위해 노력하는 그에게 제국의 황좌를 누가 차지하느냐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황제가 되려는 입장에서 제어할 수 없는 힘이란 무척이나 거슬리는 것이었으나, 안 되는 것을 억지로 하려다 다치느니 그냥 무시하는 것이 나았다. 입을 다물고 생각을 정리하던 둘째 황자가 말했다.
“저들은 무시하라. 다른 할 일이 많으니.” 가까이하지도 않고, 멀리하지도 않는다. 그런 결정에 따라 일행을 지켜보던 감시의 눈길이 모두 사라졌다. 아이반이 원했던 성물은 아주 빠르게 전해졌다. 아래로 명령이 내려지는 속도를 고려하면 놀라울 정도였다. 그래도 황자가 제법 신경을 써준 모양이라 생각하면서 아이반은 상자를 열었다. 둥근 알이 제법 큼직한 목걸이였다. 먼지 하나가 없었다. 하긴, 찾는 이가 아무도 없는 물건이라고는 해도 황실 보물창고에 있는 물건을 정말로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겠지. 당연히 관리했을 거다.
“그게 찾던 물건입니까? 별 힘은 느껴지지 않네요.”
“아주 대단한 힘이 잠들어 있다면 이렇게 쉽게 내어주지도 않았겠지. 이건 자격이 없는 자들에겐 소용없는 물건이오.” 아이반은 실험 삼아 자신의 목에 걸어보았다. 그러자 목걸이가 은은한 빛을 뿌리며 막대한 힘을 토해냈··· 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 아이반 역시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목걸이를 다시 상자에 집어넣은 아이반이 설명했다.
“이건 원래 라이칸스로프의 보물이오. 달의 여신인 셀룬의 성물이지.” 그러나 오랜 옛날 라이칸스로프가 달의 여신에게 반역을 시도하면서 힘을 잃었던 물건이었다. 달의 여신이 라이칸스로프에게 저주를 내린 이후로는 여기저기 떠돌다가 어느 이종족으로 흘러 들어갔었는데, 그들을 싹 쓸어버리고 마리난 제국이 약탈해서 가져간 것이다. 사연이 많은 물건이었다. 아이반은 그 사연에 딱히 관심은 없었지만.
“이건 라이칸스로프에게 줘야겠소. 아마 여신의 저주를 벗기 위한 시련에 필요할 테니. 그러면 우리는 빨리 제국을 벗어납시다. 귀찮아지기 전······.” 그리 말하던 아이반은 문득 미간을 찌푸리며 사나운 이빨을 보았다. 그의 눈빛이 아주 요염하고 섹시하게 변한 것이 영 거슬렸다. 사나운 이빨의 몸을 빌린 뱀신 모르나가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아주 탐나는 물건이로구나. 그것을 내게 주지 않겠느냐?”
“그럴 수는 없소. 그랬다가는 정말 달의 여신이 화를 낼 테니까.” 신의 분노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아는 아이반은 그런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적이 많은데 제 손으로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안타까운 일이구나. 달의 여신이 지상에 남긴 신성의 조각이라, 미약한 힘이지만 색다른 것일 텐데.” 뱀신 모르나는 혀를 슬쩍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사나운 이빨의 모습으로 그러고 있으니 아이반의 표정이 무척이나 오묘하게 변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표정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그것 역시 뱀신 모르나가 지닌 매혹의 마력 때문일 것이다. ‘태생을 생각하면 원래 그런 힘은 없었을 텐데, 오랫동안 나가와 동화된 영향인가? 아니면 모르나의 힘이 나가를 변화시켰던 걸까?’ 그런 생각을 숨기면서 아이반은 질문을 계속했다.
“새롭게 육신을 만든다면 여유가 없을 텐데, 무슨 이유로 나타나셨소? 설마 정말로 목걸이가 탐나서 그럴 리는 없고.”
“빈말은 아니다. 별미는 될 것이니.” 그녀는 아이반의 가슴팍을 콕 찌르면서 덧붙였다.
“그대 역시 탐나는 먹이로다. 설마 세계수가 남은 대악마의 핵을 그대에게 건네준다니, 실로 예상하지 못한 일이지.” 뱀신 모르나는 아주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아이반을 바라보았다.
“혹 미래를 약속한 내자가 있느냐? 시르오네나 안데리나라면 외모가 썩 나쁘지 않으니 사내라면 한 번쯤 품고 싶을 테지. 어떠한가?”
“나가 여왕과 뱀무녀라, 과분한 여인이군. 거절하겠소.”
“긴 꼬리에 칭칭 감기는 것은 인간에게는 제법 색다른 쾌락일 것이다. 그게 싫다면 그 아이들에게 다리를 만들어주겠노라.”
“거절한다고 하였소.”
“굳이 미래를 함께할 필요는 없다. 잠깐의 쾌락을 즐기고 씨만 준다면······.” 뱀신 모르나는 실로 끈질겼다. 마치 뱀이 먹이를 물고 놓지 않듯이 달라붙었다. 아이반은 일일이 대꾸하는 대신 미간을 찌푸리며 화제를 돌렸다.
“아무리 의식만 나타났다 해도 강신을 오래 할 수는 없을 텐데. 빨리 할 말이나 하시오.” 그러자 뱀신 모르나가 못마땅한 듯 중얼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쯧, 혹여 여인이 취향이 아닌가? 남성이나 중성으로 후계를 만드는 것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인데······.”
“내 인내심이 길지는 않소.” 아이반이 진심으로 짜증을 내며 어두운 용의 발톱을 들어 올리자 뱀신 모르나가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우고 진지하게 말했다.
“나의 전사와 그대들에게 하나의 임무를 내리고자 한다. 흩어진 나의 옛 육신을 찾아 그것을 가져오라.”
“이미 세상에 녹아서 사라진 것이 아니었소?”
“신격의 육신이니 설마 모두가 사라지기는 했겠느냐? 아직 하나의 조각이 남아있다. 더는 나의 힘도 신성도 담지 않았지만.” 뱀신 모르나가 새롭게 만들 육신의 재료로 그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악마의 핵만 가지고 육신을 만들 수는 없으니까.
“나가는 모두 나의 부활을 위한 기도를 시작했다. 그들은 움직일 수 없으니 내가 부릴 수 있는 것은 겨우 나의 전사뿐이구나.” 다른 리자드맨은 뱀신 모르나의 뜻을 직접 받을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깊게 연결된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뱀신 모르나와 리자드맨 사이에 이어져 있던 신앙의 고리가 끊어진 지 너무나 오래되었다. 아이반은 힐끔 이레인과 델피노의 얼굴을 보았다. 그들은 알아서 결정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건 어디에 있소? 설마 위치도 모른다는 것은 아니리라 믿소.”
“대지의 심장. 크뮨이 지니고 있다.” 그걸 들은 아이반이 딱 잘라 거절했다.
“못하오. 불가능한 일이오.” 대지의 심장은 대륙 모든 주술사의 근원이나 다름없는 장소였다. 그곳에 있는 크뮨은 모든 주술사의 스승이라는 반신이었고. 대지의 심장에서 대스승 크뮨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져오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크뮨은 합리적인 자다. 신격의 시련이라면 그것을 내어줄 것이다.”
“그건 희망 사항이지. 그리고 지금 대지의 심장이 어디에 있는 줄은 알고 있소? 거기는 지금 피의 동맹의 영역이오. 그들은 나와 사이가 아주 좋지 못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