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158
마침내 숲을 장악한 주술사의 주력이 일행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들을 발견하고 강렬한 적의를 내뿜었다.
파아앗!
주술사의 주력에 반응한 나무들이 날카로운 뿌리를 창처럼 찔렀다. 눈바람이 뭉쳐 혹한의 정령이 되어 칼날처럼 날카로운 바람을 날렸다.
일순간에 숲 전체가 그들을 적대하고 있었다. 아이반은 움츠리고 있던 몸을 펴고 창을 들었다.
휘이잉!
아이반의 몸에서 폭풍이 뿜어져 나무 정령의 뿌리를 갈아 버리고 혹한의 정령을 짓눌렀다. 억누르고 있던 마력이 흘러나오며 사방에 쌓여있던 눈을 모두 날려 버렸다.
피우웅-
묵직하게 바람을 가른 화살이 아이반의 가슴을 노렸으나 미처 그에게 닿기 전에 사나운 이빨의 방패에 튕겨 나갔다.
아우우우!
폭풍과도 같은 눈바람을 뚫고 늑대 기수가 달려들었다. 사나운 이빨이 그에 맞서 검을 휘둘렀다.
스걱!
새하얀 겨울 산에 붉은 피가 뿌려졌다. 추위는 곧 전투의 열기에 밀려났다.
“뱀신께서 제물을 원하신다!”
늑대 기수가 산비탈을 뛰어다니며 화살을 쏘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제대로 잡아당기지도 못할 만큼 장력이 강한 활이 오크의 손에서는 우습게 휘어지고, 마치 발리스타가 발사되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쉬이익!
공기를 찢고 날아오는 화살이 무척이나 난폭했다. 두꺼운 얼음을 깨고 바위를 파고들 정도였다.
그러나 아이반은 그런 무식한 화살을 가볍게 피하면서 다가갔다. 그리고 창을 내밀어 늑대 기수를 그대로 꿰뚫었다.
오크 하나가 가슴에 구멍이 뚫려 바닥에 떨어졌다. 기수를 잃은 늑대가 분노한 듯 이빨을 들이밀었지만, 바닥에서 솟아난 뾰족한 얼음이 녀석의 뱃가죽을 찢고 내장을 끊었다.
녀석의 죽음을 확인하기도 전에 아이반은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날카로운 도끼가 그의 귓불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쾅!
아이반이 발로 후려치자 도끼를 휘두른 오크가 피를 뿜으며 뒤로 날아갔다. 가슴이 으스러지고 심장이 터지는 감각이 선명했다.
늑대의 머리에 창을 박아 넣은 아이반은 마력을 땅에 흩뿌리며 주문을 읊었다.
“폴다르드로틴(Foldardróttinn: 대지의 주인).”
숲을 장악하고 공격을 펼치던 주술사의 주력을 밀어냈다. 약간의 반발을 각오하고 거칠게 마력을 쑤셔 넣으니 주술사가 크게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환상과 현혹의 안개가 피어오르다가 사라지고, 혹한의 정령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정령계로 쫓겨났다. 나무 정령의 움직임마저 굼뜨게 변했다.
‘내상을 입었군.’
솜씨가 나쁘지는 않았으나, 대단한 수준의 주술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긴, 적이 올 가능성이 낮은 곳에 실력자를 배치하지는 않겠지.
“바기 울프스(Bági ulfs: 늑대의 적).”
아이반이 다시금 주문을 뱉으며 마력을 움직였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 온 위압감에 늑대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바람처럼 빠르게 움직이던 늑대들의 몸놀림이 둔해졌다.
거칠게 몰아 붙이던 늑대의 눈빛에 두려움이 차 올랐다.
늑대 기수들은 자신의 형제가 공포에 물들었다는 것을 빠르게 알아차렸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짧은 고민의 순간이 그들의 목숨을 끊었다. 늑대의 움직임이 둔해지자 더 쉬운 표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피우웅!
이레인이 쏘아 보낸 화살이 늑대 기수를 꿰뚫었다. 사나운 이빨은 아예 방패를 휘둘러 늑대의 머리를 터트리고, 기수의 목을 붙잡고 바닥에 내리찍었다.
몇몇 늑대 기수는 델피노를 노렸으나, 빛의 방어막을 뚫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헛된 공격을 한 대가로 이레인이 불러낸 정령들에게 몸이 찢겨야만 했다.
마침내 늑대 기수가 공격을 포기하고 후퇴를 시도했다. 본인들로서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물론 아이반은 살려 보낼 생각이 없었다. 아예 싸우지 않았다면 모르되, 일단 붙었다면 모두 죽여야만 했다.
휘리릭!
아이반이 집어 던진 도끼가 늑대기수의 머리를 쪼갰다. 이레인이 쏘 아 보낸 화살들이 또 몇몇 목숨을 빼앗았다.
‘궁니르(Gungnir).’
아이반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창을 쥐었다. 주신 오딘의 창, 궁니르의 힘이 어두운 용의 발톱에 깃들었다.
스걱!
창을 가볍게 휘두르자 저 멀리 달아나던 오크들의 목이 잘려 나갔다. 몇몇 늑대는 자신의 형제가 죽은 것도 모르고 계속해서 달려갔다.
‘늑대는 괜찮겠지.’
도망가던 오크의 목숨을 모두 끊어버린 아이반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새하얀 눈밭은 사라지고 피와 시체로 뒤덮인 지옥도만 가득했다. 뜨거운 김을 내뿜던 피가 어느새 얼어붙고 있었다.
전투의 열기가 식으니 싸늘한 바람만 가득했다. 끓어오르던 마음도 가라앉고 덤덤해졌다.
“추격이 더 심해지겠군.”
이레인이 불러낸 물의 정령으로 몸에 묻은 피를 닦아 낸 일행은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곧 피의 동맹이 보낸 추격대가 들이닥칠 터였다.
늑대 기수 부대 하나를 통으로 썰어낸 것이 충격이었는지 피의 동맹에서 병력을 제법 많이 풀었다. 한산하던 주변이 온통 적들로 바글바글했다.
적어도 수천이 눈밭을 다 뒤질 셈으로 돌아다니니 일행의 움직임이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기다란 꼬챙이를 들고 혹시 눈 밑에 숨은 것은 아닐까 쿡쿡 찌르고 다니는데, 어찌 돌아다니겠나.
다행히 아이반이 이 지역을 장악한 주술사에게 내상을 입혔기에 아직 들키지는 않은 모양이나 이대로 있 으면 방법이 없었다.
몰래 오크의 목을 따고 길을 만들어 도망가는 것도 한계였다. 점점 포위망이 좁혀지는 것이 느껴졌다.
“양동을 써야겠소. 서쪽에서 시선을 끌고, 동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지.”
이보다 동쪽은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곳이었다. 그 많은 몬스터 무리를 뚫고 가기가 그래서 아슬아슬한 선을 타고 움직였는데, 놈들이 추적 하는 기세를 보니 이제는 완전히 빠져야 할 것 같았다.
몬스터들의 영역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아무래도 피의 동맹이 추적하기가 어렵겠지.
늑대를 피해 호랑이 소굴로 들어가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일행을 잡아 찢으려고 눈이 벌겋게 변한 피의 동맹 전사 수천 명보다는 흉포하기는 해도 이성이 없는 몬스터가 상대하기는 편할 거다.
작전이 세워지자 절벽을 파고 눈을 덮어 만든 임시 은신처를 벗어나 네 명이 움직였다. 새하얀 코트를 깊숙이 뒤집어쓰고 조심스럽게 움직이니 언뜻 눈과 구별이 되지 않았다.
얼음과 바위, 나무로 만들어진 그림자를 타고 은밀하게 이동하던 그들은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멀리서 부터 포위망이 좁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빨리 발견되었는데, 이거 위험하겠어.”
그렇게 중얼거린 아이반이 속도를 높여 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들킨 이상 조심스러운 움직임은 필요가 없었다.
“녀석들을 잡아라!”
뒤에서 오크 전사들이 외치는 소리 가 들렸다. 때로 고블린의 언어와 트롤의 언어도 있었다. 그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아이반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쉬이익!
쿵!
그때 빠르게 쏘아진 창 하나가 앞을 막아섰다. 창에 담긴 힘이 어찌나 강력한지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진 줄 알았다.
흰색 코트로 눈바람과 충격파를 막아낸 넷이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커다란 덩치의 트롤 하나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너희는, 누구냐?”
그가 어색한 공용어로 그리 물었지만 아이반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주변을 살피며 승산을 계산해 보았을 뿐이다.
‘벌써 포위망이 두터워졌군. 반응 이 빨라. 이길 수는 없겠어.’
무기를 들어 공격 자세를 잡으니 트롤의 심기가 나빠진 모양이다. 덩치 큰 트롤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주먹을 휘둘렀다.
“건방진 놈들!”
트롤어로 욕설을 내뱉으며 휘두른 주먹이 아이반을 때렸다. 방패를 들어 올려 막았음에도 훌쩍 뒤로 밀려날 만큼 강력했다. 단 한 방에 드워프가 공들여 만든 방패가 찌그러졌다.
그렇게 아이반이 튕겨 나가자 다른 이들도 각자 공격을 시작했다. 빠르게 화살을 쏘아 내고, 창을 휘두르고, 검으로 찔렀다.
트롤은 창을 걷어 내고 검은 막았다. 화살은 무시하듯 몸에 몇 대 맞아 주었으나 어찌나 가죽이 두껍고 근육이 억센지 깊이 박힌 모습이 아니었다.
그나마도 뛰어난 재생력이 화살을 밖으로 밀어냈다. 상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화살은 바닥을 굴렀다.
“겨우 이런 실력으로 덤벼들었단 말이냐?”
트롤은 벌컥 화를 내며 거세게 창 을 휘둘렀다. 보통의 창보다 훨씬 두껍고 긴 창이 후려치자 그걸 막아 낸 검이 삐걱거렸다.
웬만한 거인보다도 강한 힘이었다. 아무리 육체적으로 강인한 트롤이라고는 해도 이런 자가 흔치는 않으리라.
아이반은 눈을 가늘게 뜨고 녀석을 노려보았다.
‘누구지? 혹시 내가 아는 녀석인가?’
이미 포위망이 단단히 만들어져 있었으나 다른 자들은 공격하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건 이 트롤이 그만큼 권위 있는 자라는 의미였다.
아이반이 잠시 눈을 돌리는 것을 발견한 트롤이 냉큼 창을 찔렀다. 얼른 허리를 비틀어 피했지만, 그 여파만으로 코트가 찢어질 정도였다.
아이반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창을 찔렀다. 또한 뒤에서 화살을 쏘아 보조하고 옆에서 빈틈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