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159
쿵!
트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그 모든 공격을 튕겨 냈다. 그리고 아이반의 멱살을 붙잡아 바닥에 내리꽂았다.
“컥!”
거친 신음을 토해 내는 아이반을 빤히 바라보던 트롤이 낮게 중얼거렸다.
“아이반 에시르손, 노르드의 전사.”
녀석이 창을 집어 던지자 활을 들 고 있던 일행의 상반신이 사라졌다. 휘두르는 검은 날을 그대로 손으로 쥐고 주먹으로 머리를 터트렸다. 방패는 벗겨지고 목을 꺾어 버렸다.
아이반이 피를 토하면서 창을 향해 손을 뻗으니 일행을 모두 처리한 트롤이 다가와 그것을 멀리 차버렸다.
힘겹게 마력을 끌어모아 휘두르는 주먹을 가볍게 막아낸 녀석이 커다란 손으로 아이반의 머리를 감싸 쥐고 말했다.
“그대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다음번에는 이런 개수작이 아니라 제대로 붙었으면 좋겠군.”
그 말에 아이반이 입술을 비틀어 올리며 트롤어로 대꾸했다.
“그러면 당신은 죽을 텐데.”
“강자와 싸우다 죽는 것은 전사에겐 영광스러운 일이지.”
파각!
아이반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그리고 거기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아이반이 낮은 신음을 흘리며 뒤를 보았다.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꽤 까다로운 상대가 있군. 이거 괜히 얼굴을 보여 준 모양이오.”
강자와 싸우다 죽는 것은 전사에겐 영광스러운 일이라니, 참으로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좋아할 말이었다.
요정의 숲에서는 발키리의 영업이 잘 먹히지 않은 모양인데 어쩌면 그 트롤에게는 먹힐지도 모르겠다.
우웅-
드라우프니르, 오딘의 황금 팔찌가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천천히 식었다. 아이반이 만들어 낸 분신들이 너무 허무하게 사라졌다. 아무리 제 힘을 발휘할 수가 없는 미끼들이라고는 해도 기분이 썩 상쾌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시선은 확실히 끌었소. 빠져나가는 것이 어렵지는 않겠어.”
일행은 절벽과 계곡을 넘어 동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야생의 살기가 여기저기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저쪽은 피의 동맹이 들쑤시고 다녀서 몬스터가 죄다 굴복하거나 도망 쳤지만 이쪽은 그렇지 않았다. 피의 동맹도 차마 쫓아내지 못한 몬스터의 땅이었다.
얼음처럼 투명한 광석을 마치 갑옷 처럼 두르고 있는 곰, 칼날처럼 날카로운 깃털이 가득한 거대한 새와 눈 밑에서 음습하게 기회를 노리고 있는 독사들까지.
얼마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벌써 몬스터의 기척이 가득했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움직인다고 해도 그 모든 괴물을 피해서 갈 수는 없으리라.
휘이잉!
거센 바람이 불어와 시야를 가렸다. 발은 눈 속에 푹푹 빠지고 때때 로 하늘에서 날카로운 얼음이 쏟아 졌다. 딱 계곡 하나를 건넜을 뿐인 데 어째 자연환경마저 더욱 가혹하게 변한 느낌이었다.
이 험한 산을 올라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썩 기쁘진 않았으나 혹시나 모를 추적자들을 방해한다는 점에서는 아주 나쁠 것도 없었다. 그리 생각하고 싶었다.
휘리릭!
도끼를 던져 습격할 기회를 노리던 설인의 두개골을 갈라놓은 아이반이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
“적당히 올라가서 쉴 자리나 만들어 봅시다. 날씨가 영 심상치 않아.”
우르릉
하늘이 낮게 울부짖었다. 비록 폭풍신과 천둥신의 권능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아이반은 그 소리가 전혀 반갑지 않았다.
‘빌어먹을 오딘, 빌어먹을 토르.’
괜히 속으로 욕설을 내뱉은 아이반 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차가운 날씨와 달리 부글부글 끓는 것처럼 뜨거운 체액이 뿜어졌다. 마치 용암과도 같던 녀석의 몸이 쩍 갈라지자 아이반은 창을 회수했다.
부정형의 몸을 꿈틀거리던 화염 슬라임이 죽어 흐물흐물 바닥에 번지니 이레인이 정령을 불러 그 잔해를 저 멀리 날려 버렸다.
그렇게 주인을 쫓아내고 일행은 동굴에 자리를 잡았다. 바깥쪽은 날씨가 한층 험해져 얼음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으나 온천이 솟아오르는 동굴은 제법 아늑하기까지 했다.
“이런 곳에 화염 슬라임이 있을 줄은 몰랐군. 겉으로 보이는 날씨와 달리 제법 화산 활동이 활발한 모양이오.”
“이곳은 사람이 다니지 못하는 곳 이라 잘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오늘 밤은 따뜻하게 잠들 수가 있겠어. 운이 좋네.”
물의 정령을 불러 온천을 확인한 이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들어가도 괜찮을 만큼 물이 깨끗했다. 미네랄 성분이 많아서 건강에도 좋을 것 같았다.
그 소식에 가장 기뻐한 것은 사나운 이빨이었다. 여행 중에는 어쩔 수 없이 참고 있었지만, 리자드맨에게는 목욕이 바로 행복이었다.
그가 느긋하게 온천욕을 즐기는 동안 아이반은 제대로 된 식사를 준비 했다. 폭풍이 몰아치는 날씨 덕분에 냄새가 퍼져 나갈 걱정은 덜었다.
모처럼 뜨끈한 국물 요리까지 더해지니, 마치 캠핑이라도 나온 기분이 었다. 지나치게 굳어있던 표정이 조금 풀렸다.
마지막으로 피의 동맹을 따돌리고도 벌써 며칠째 설산을 넘고 있었다. 때때로 덤벼드는 몬스터나 지독 한 날씨가 그들의 발걸음을 막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제법 피로한 상태였다. 적절한 때에 휴식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 삼아 달달한 과자를 씹고 있는데, 동굴 깊숙한 곳에서 낯선 기척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반쯤 풀어져 있던 눈빛이 다시 날카롭게 변하고, 언제든 무기를 뽑아 들 수 있도록 자세를 바꿨다. 사나운 이빨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델피 노가 슬그머니 지팡이를 쥐었다.
‘동굴 안쪽? 분명히 막혀 있었는데?’
동굴이 제법 깊어서 자세히 살핀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막혀 있었다. 마냥 무방비하게 있었던 것은 아니란 소리다.
일행이 잔뜩 경계하며 동굴 안쪽을 노려보고 있으니 거적때기 같은 망토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나타났다. 제법 건장한 덩치였다. 지팡이를 쥐고 있는 손을 보면 오크인 것 같았다.
“이리 만나게 되니 반갑구먼.”
흘흘 웃음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북동부식 오크 사투리. 아이반은 그 목소리를 듣기 전에도 그가 누구인 지 파악하고 있었다.
자연의 구도자 테잔.
열두 번째 대주술사가 되기 위해 주술사들의 성지인 대지의 심장으로 향했던 오크 주술사.
“테잔, 수련은 끝낸 것이오?”
아이반의 물음에 테잔이 망토를 걷어 얼굴을 보이며 대답했다.
“아직은. 그러나 얼마 전에 무시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어서 이리 찾아왔다네.”
아무렇지 않게 푸근한 미소를 짓던 테잔이 툭 말을 내뱉었다.
“결국 우리와 싸우기로 한 것인가?”
자연의 구도자 테잔은 얼어붙은 땅 에서 원시 거인을 쓰러뜨린 후 대지의 심장으로 떠나기 전에 아이반에게 부디 적이 되지 않기를 부탁했다.
아이반은 세계의 운명에 얽매이지 않는 특이점이었다. 앞으로의 세계를 움직일 핵심이 되는 이였다.
심지어 신격의 관심을 듬뿍 받고 있었으니 그의 결정에 따라 모든 것이 뒤바뀔 수도 있었다.
자신이 제어하지 못하는 사이 동맹이 특이점을 적대하여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빠져들지 않기를 원했다.
“나는 노력했소. 그동안 피의 동맹과 마주치지 않도록 멀리 돌아서 활동했지. 그러나 부딪힐 때가 되었으니 어쩌겠소?”
“뱀신의 부탁이 우리와 싸움을 각 오할 정도로 중요했나?”
그 말에 아이반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걸 어찌 알고 있지?”
“뱀신 모르나는 자신의 의도를 굳이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네. 그래서 우리의 대스승 크뮨께서는 어렵지 않게 미래를 읽으셨지. 뱀신의 사자가 곧 자신에게 올 것임을 예언하셨어.”
테잔은 얼마 전 일행이 피의 동맹과 충돌하고 움직인 방향을 통해 뱀신의 사자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래서 급히 추적하여 나타난 것이라고.
“뱀신 모르나가 부활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닌 줄은 알고 있나?
이 땅에 신격이 나타남이 얼마나 큰 영향을 줄 것임은 아냐는 말이야. 자네에게 그것이 과연 우리와 적대 하는 것을 감수할 정도로 중요한 일인가?”
그 말에 으르렁거리며 사나운 이빨 이 나서려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아이반이 대화를 하고 있는 와중에 끼어드는 것은 아니라고 여긴 것이 다.
아이반은 그런 사나운 이빨을 힐끔 살피고는 대답했다.
“뱀신 모르나는 애초에 이 땅을 떠난 적이 없는 신격이니 부활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오. 게다가 이미 대악마가 나타나고 각지에서 잊혔던 옛 신들이 눈을 뜨고 있으니 뱀신 모르나가 육신을 되찾는다고 해도 새삼스럽지는 않지.”
“하지만 신격이 다시 나타난다고 함은! 그 신격의 성향에 따라서······!”
“오크투신 타르칸은 퍽이나 상냥한 신격인가 보군.”
그것에는 할 말이 없는지 테잔이 입을 다물었다.
오크투신 타르칸은 그 어느 신격과 비교해도 투쟁심이 강하고 폭력적인 존재였다. 그런 종족신을 섬기는 오크가 다른 신의 성향을 지적할 수는 없었다.
“나는 뱀신 모르나의 도움을 얻는 대가로 신체를 되찾아 주겠다고 약속했소. 그것을 어길 수는 없는 법이지.”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우리와 싸우겠다는 뜻인가?”
“그런 게 전쟁이잖소? 어쩔 수 없는 법이지.”
일찍이 아이반은 용병으로 피의 동맹과의 전쟁에 참여했었다. 그 와중에 오크로드 카르타크의 아들을 죽였고, 복수를 위해 찾아온 또 다른 아들을 폐인으로 만들어 돌려보냈다.
그때 이미 악연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오크의 은원은 말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만약 내가 대지의 심장으로 가고자 하니 길을 열어 달라고 했다면, 과연 순순히 길을 열어 주었겠소?”
그럴 리가 없었다. 복수심이든 투쟁심이든 아이반의 앞을 가로막으며 싸우고자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