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163
아이반이 망치의 이름을 부르자 하늘이 어두워졌다. 곧 천둥소리가 세상을 뒤흔들었다.
이름 모를 용의 육신을 찢고 승리의 포효를 터트리던 그라드발이 움 찔 몸을 떨었다. 급격하게 부풀어 오른 기운을 느끼고 아이반을 보았다.
그렇게 고개를 돌린 순간, 천둥신의 망치가 그를 후려쳤다. 그대로 뒤로 튕겨 나가 몸으로 바위를 깨부수고 나무를 몇이나 꺾었다.
쾅!
“커헉!”
그라드발이 피를 내뱉었다. 강한 충격에 손목이 꺾이고, 짜릿한 번개에 온몸이 저렸다. 폐가 잠깐 맛이 갔는지 호흡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못하고 끊겼다가 겨우 이어졌다.
한참이나 데굴데굴 굴러가던 그라드발이 고개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와중에 잠시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렸으나 어찌어찌 자세를 가다듬을 수가 있었다.
강력한 번개를 휘감은 망치였다. 찰나의 순간에 반응하여 검을 휘둘 렀으나, 오히려 힘에 밀려 낭패를 보았다.
단 한 번의 공격에 이리 큰 상처 를 입은 것이 대체 언제인지 가물가 물했다.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군.”
온몸에 소름이 쫙 번졌다. 죽음의 두려움이 아니라 즐거움 때문이었다.
새로운 강자, 새로운 싸움. 오크투신 타르칸을 만족시킬 위대한 전투.
더없이 즐거웠다. 흥분으로 몸이 떨렸다. 입으로 피를 내뿜으면서도 그라드발은 씨익 웃었다.
묠니르를 한 손에 쥐고 걸어오던 아이반이 그 웃음을 발견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한 방으로 끝나진 않으리라 여겼 지만······.”
물론 한 번에 대악마 머리를 깨부수던 위력은 아니었다. 그건 천둥신 토르가 아이반의 몸을 빼앗아 아스가르드의 신력을 한껏 털어 넣었기에 가능한 일이니까.
그러나 묠니르는 묠니르였다. 틀림없이 산을 부수고 강을 끊어 버릴 파괴의 상징이었다. 그걸 얻어맞고도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니 그저 놀랍기만 했다.
찰나의 순간에 번개처럼 날아오는 묠니르에 반응할 수 있는 실력과 세상 모든 기운을 반감하고 소유자를 지킨다는 검의 방어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과연 테잔이 내게 몇 번이고 경고 할만한 실력이다. 오크투신께서 관심을 기울일 만한 전사로다.”
천천히 말을 내뱉는 그라드발의 육신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전투의지가 뜨겁게 불타오를수록 오크투신 타르칸이 직접 축복을 내린 검이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내 목숨의 끝이 이곳일지도 모르겠군. 예상하지 못했으나, 그게 전사의 삶이겠지.”
하늘을 바라보며 껄껄 웃던 그라드발이 웃음을 지웠다.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이 전투를 우리의 위대한 아버지, 타르칸께 바친다.”
우웅-
그라드발의 선언을 들은 오크투신이 축복을 내렸다. 자신의 두 번째 도끼, 감히 그런 별명으로 불리는 전사의 등을 두드리고 기운을 불어 넣었다.
그라드발의 육신이 한층 성장했다.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폭발적인 마력이 흘러나왔다.
아이반은 그것을 지켜보면서도 차마 공격하지 못했다. 변신 중에는 공격하지 않는다는 암중의 법칙 때문이 아니라 빈틈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격하려 묠니르를 들어 올리자 섬뜩한 느낌이 등허리를 쓸고 지나갔다. 본능의 경고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아이반이 애써 공격하고자 하는 욕구를 참아내자 그라드발이 희미하게 웃었다.
‘감이 좋군.’
축복을 내려 주기 위해 오크투신 타르칸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공격했다면 대응하는 것은 그라드발이 아니라 타르칸이었을 것이다.
오크투신의 축복을 받은 전사와 싸우는 것과 전사의 몸을 빌린 오크투신과 싸우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였다.
“후우······.”
길게 호흡을 내뱉는 그라드발의 육신을 감싸고 검붉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전투의 광기를 머금은 오크투신 타르칸의 축복이 그런 형태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슥-
그라드발이 움찔하는 것과 동시에 아이반의 앞에 다가왔다. 이전보다 두 배는 더 빠른 속도, 그보다 더 강한 힘으로 검을 휘둘렀다.
아이반은 그 검이 가슴이 갈라져 피를 뿌렸다. 갈비뼈를 자르고 심장을 꿰뚫는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라드발은 그것을 손으로 느끼면서도 동요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이미 한번 보았던 것에 두 번은 속지 않는다.
스스슷-
가슴이 갈라진 아이반이 환영이 되어 사라지고 새로운 아이반이 한 걸음 뒤에서 나타났다. 그가 손을 내 밀자 바닥에서 날카로운 바위가 솟아올라 그라드발의 몸을 찔렀다.
그러나 그라드발의 몸을 찌른 바위 가 오히려 부서졌다. 오크투신 타르칸의 축복이 깃든 검은 자잘한 마법을 무시했다.
쿵!
그라드발이 강하게 발을 구르자 땅이 훅 꺼졌다.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크레이터가 생기고 그를 붙잡으려던 마력이 밀려났다.
쉬이익!
솟구치는 흙 사이로 그라드발이 검을 휘둘렀다. 한 호흡이 끝나기도 전에 몰아친 스물다섯 번의 공격. 힘도, 방향도 제각각 다른 마력의 칼날이 아이반을 노리고 쏟아졌다.
찌른다. 벤다. 후려치고, 휘감는다. 걷어내고, 누른다.
아이반은 창을 꺼내 들고 집중했다. 창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기교를 동원해 마력의 칼날을 막아냈다.
그 여파만으로 숲이 폐허가 되었다. 한순간에 평지가 언덕이 되고 산이 절벽이 되었다.
그러나 그 파괴의 흔적을 미처 확인하기도 전에 그라드발이 다가와 재차 검을 휘둘렀다.
오크투신 타르칸의 축복을 받아 육체적 능력이 한층 좋아진 그라드발은 정말 빠르고 강했다. 아이반이 제대로 반응하기 힘들 정도였다.
스걱!
아이반의 왼쪽 팔뚝이 쩍 갈라졌다. 잘려 나가지는 않았으나, 결코 얕지 않은 상처였다. 그리고 아이반은 그것을 미끼로 그라드발의 몸에 갖다 대었다.
묠니르, 천둥신의 망치.
치지직!
쾅!
그라드발이 다시금 뒤로 밀려났다. 두 다리가 긴 고랑을 만들면서 한참이나 멀어졌다.
오크투신의 축복을 받은 몸으로도 묠니르를 정면으로 받아치기는 어려웠다. 손이 덜덜 떨리고 온몸이 번개에 익었다가 빠르게 회복되었다.
“다시!”
땅을 박차고 달린 오크투신이 재차 검을 휘둘렀다가 묠니르에 얻어맞았다. 그리고 또 몸을 일으켜 덤벼들었고, 또다시 묠니르가 후려쳤다.
주르륵
두 눈으로는 피눈물을 흘리고, 고막은 이미 터져서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 코로는 온통 자신의 피 냄새밖에 맡지 못했고, 입으로는 끊임없이 찢어진 내장이 섞인 피를 토해 냈다.
또한 천둥신의 권능을 닮은 번개에 온몸이 시커멓게 타버렸다가 회복되기를 반복했다. 제멋대로 근육이 움찔거리다가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서도 그라드발은 한 걸음씩 거리를 좁혔다. 한번 얻어맞고 다시 일어날 때마다 밀려나는 거리가 줄 었다.
내리치는 번개와 같은 묠니르의 속도에 적응하고, 불합리한 충격에 익숙해졌다. 더욱 효율적으로 검을 휘두르고 반응했다. 그를 죽이지 못하는 공격은 그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조금씩 거리를 좁히는 그라드발을 보며 아이반은 올라오는 핏물과 욕설을 삼켰다.
묠니르는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막대한 마력이 필요했다. 예전처럼 단 번에 팔이 타 버리고 사경을 헤맬 수준은 아니었지만 버거운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치이익!
차가운 겨울바람을 타고 눈이 내리 다가 근처에 이르러 비가 되었다. 그것이 뜨겁게 달아오른 묠니르에 닿아 다시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힘의 허리띠와 쇠장갑, 달리 말해 메긴기요르드와 야른그레이프가 묠니르와 공명하며 몸을 떨었다. 메긴 기요르드로 강화된 힘으로도 묠니르를 다시 들기 힘들어지고, 묠니르의 열기를 막아줘야 할 야른그레이프마저 이제 슬슬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라드발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그가 묠니르의 압도적인 위력에 적응한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아이반의 힘이 조금씩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스걱!
마침내 거리를 좁힌 그라드발의 검 이 아이반을 스치고 지나갔다. 다시 분신과 환영으로 현실을 속이고 거리를 벌리려 했으나, 그라드발은 그것마저 꿰뚫고 아이반의 몸에 상처를 새겨 넣었다.
아이반의 목이 쩍 갈라지고 핏물이 흘러나왔다. 손가락 한 마디만 더 깊었다면 목숨을 가져갔을지도 모를 상처였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가느다란 숨소리,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그라 드발이 씨익 웃었다.
“지금 것은 좀 아쉽군.”
그라드발이 힘겹게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이번에야말로 아이반의 목을 베어 버리기 위해 한 걸음을 내 디뎠다.
아이반은 로키의 불꽃으로 상처를 불태웠다. 상처 입은 현실을 왜곡하고 멀쩡한 몸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곧 이어질 그라드발의 공격을 막기 위해 준비했다.
그러나 그라드발은 다가오지 않았 다. 한 발을 내민 그 상태로 서서 가만히 아이반을 노려보고 있었다. 눈을 뜨고, 검을 들어 올린 상태로 기절한 것이다.
계속 전투를 이어 나가겠다는 의지는 대단했다. 오크투신의 축복과 고대의 신비로운 힘을 간직한 검도 훌륭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묠니르의 공격을 버틸 수는 없었다. 조금씩 누적된 충격 때문에 마지막 한 번의 검을 휘두르지 못한 것이다.
아이반은 묠니르를 휘둘러 그라드발의 골통을 깨부수려다 말고 망치를 내렸다. 이미 승부가 났으니 목숨을 끊을 필요는 없었다. 자비로워서가 아니라 그랬다가는 정말 피의 동맹과 끝까지 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오크투신 타르칸의 두 번째 도끼, 피의 동맹에서 가장 용맹한 지휘관, 오크로드 카르타크의 오래된 동료, 검귀 카락취의 친구.
무엇 하나 가볍지 않은 타이틀이 없었다. 그것을 알고도 목숨을 거두기는 어려웠다.
“고맙네. 그라드발을 살려 주어서.” 어느새 나타난 자연의 구도자 테잔이 그리 말하자 아이반이 고개를 저었다.
“고민 중이었소. 만약 당신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목숨을 끊었을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