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165
검의 방어력과 오크투신 타르칸의 축복이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했다.
오크투신 타르칸의 축복을 받아 급격하게 강해지는 광화의 단점은 짧은 시간이 지나면 그 이상으로 약해 진다는 것이었다. 만약 유지 시간이 조금만 더 길었다면 아이반의 목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을 거다.
“그러면 그라드발을······.”
“죽이진 못했소. 테잔이 회수했거든.”
델피노가 한껏 신성력을 불어넣어서 속이 조금 진정된 아이반은 사과를 꺼내 으적으적 씹었다. 놀라울 정도로 달콤한 과육이 넘어가면서 생명력이 차오르고 그의 몸이 조금 더 빠르게 회복되었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본격적으로 이 세상에 개입하겠다고 선언한 이후로 지금껏 사용하지 못하던 신의 권능까지 일부 쓸 수가 있었다.
숙련도의 문제도 있어서 대부분은 크게 쓸모가 없었으나, 그중 청춘의 여신 이둔의 권능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실질적으로 몸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사과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쪽 세상은 제대로 품종 개량이 되지 않아 생각보다 과일의 맛이 밋밋했다. 엘프의 손길이 닿거나 축복 받은 과일 정도는 되어야 만족스러웠는데, 이제 언제든 과일을 맛있게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 권능은 가치가 있었다.
“···오크들이 지켜보고 있군. 다시 덤벼들려는 걸까?”
먼 곳을 바라보는 이레인의 말에 아이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지는 않을 거요. 테잔의 말대로라면 이미 강자의 증명은 끝난 셈 이니까. 그저 내버려 둘 수가 없으니 감시하는 것이겠지.”
이전과 달리 일행은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지치고 상처 입은 몸을 회복해야 했기 때문에 천천히 움직이며 휴식을 취했다.
그때마다 오크들이 멀리서 지켜보았으나 더는 덤벼들지 않았다. 그저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따라오고 있을 뿐이다.
처음에는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던 사나운 이빨도 이제는 익숙한 듯 그들을 무시했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몸을 치료하며 앞으로 걸었다.
어느 순간 따라오던 오크들이 머뭇거리며 멈춰서기 시작했다. 그걸 확인한 아이반은 대지의 심장이 가까워졌음을 알아차렸다.
그라드발을 쓰러뜨리고 일주일, 일행은 주술사들의 성지에 도착한 것 이다.
스스슥-
겨울의 끝자락임에도 숲은 여전히 푸릇했다. 스치는 바람, 잘게 떨리는 나뭇잎 하나에도 누군가의 주력이 가득 느껴졌다.
······.”
아이반은 검을 뽑았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그 속으로 들어갔다.
대지의 심장, 주술사의 성지는 대륙에서 가장 생명력이 넘치는 곳이 었다. 놀라울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 영맥을 타고 솟구친 성소이기에 마치 이계에 들어온 것처럼 기묘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떤 면에서 마경이나 대수림과도 비슷했다. 그러나 대지의 심장은 그 둘과 비교하여 더없이 조용했고, 평화로웠다. 그 환상과도 같은 고요함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훌륭한 숲이야. 아주 조화로운 곳이네.”
이레인의 말에 아이반이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주술사의 성지로군.”
대지의 심장은 치우침이 없었다. 어느 한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싶으면 또 다른 기운이 그걸 부드럽게 감싸고 지나갔다. 자칫 제멋대로 만들어진 장소 같았으나, 그것이 하나 같이 거슬리지 않았으니 완전하고 완벽했다.
온 사방에 주력이 가득한데, 그게 껄끄럽게 느껴지지 않으니 놀라웠다. 아이반, 이레인, 델피노, 사나운 이빨. 하나같이 예민한 감각을 지닌 자들이 위화감을 느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이미 그들은 상대의 영역에 들어와있었다. 지금은 평화롭게 느껴지는 이 모든 기운이 언제든 그들을 짓누를 수가 있단 소리였다.
꽈악-
아이반은 칼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더했다.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짹짹-
새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움직이던 아이반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누군가 근처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바위를 방석으로 삼아, 오래된 나 무를 등받이로 삼아 앉아 있는 자가 있었다. 초록색 피부를 덮고 있는 낡은 옷은 마치 이끼로 감싼 것 같 았고, 길게 자란 머리카락과 수염이 얇은 가지나 넝쿨처럼 느껴졌다.
온갖 벌레들이 그의 몸을 자연스럽게 오르내리고 새들이 떡 벌어진 어깨에 앉아 그런 벌레를 쪼아 먹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연에 동화하다 못해서 스스로 바위나 나무가 되어 버린 것만 같은 남자였다.
푸드득!
아이반의 거친 기운에 놀란 새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남자의 눈꺼풀이 천천히 움직였다.
틀림없이 오랜만에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 남자의 눈동자는 무척이나 깊고 깨끗했다.
“···수행하러 온 자들은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오셨소?”
긴 시간 기름칠을 하지 않은 기계처럼 쇳소리가 가득한 목소리로 남자가 묻자 아이반이 답했다.
“신의 의지를 따라 크뮨을 만나러왔소.”
그 말에 남자는 한탄과도 같은 신음을 흘렸다.
“어찌 대스승께서 외인에게 숲을 열어 주었나 하였더니 신의 뜻이라, 그러면 그대들이 뱀신의 사자인 모양이오.”
대스승 크뮨이 뱀신 모르나의 사자가 찾아올 것임을 예언했다는 사실은 이미 대지의 심장에서 유명했다. 세상의 많은 일에 관심을 끊고 사는 그였지만 떠도는 소문을 모두 듣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안으로 가시오. 하나 명심하시오. 그대들을 환영하지 않는 자들이 있는 모양이니.”
“테잔이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소.”
“새로 탄생한 대주술사만이 아니오. 그와 뜻을 같이하는 자들이 많 소. 대스승께 가는 길이 평탄치는 않을 거요.”
그런 말을 남긴 남자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를 흘깃거리며 한 참이나 멀어진 후에야 델피노가 낮게 물었다.
“심상치 않은 자였습니다. 누구일 까요?”
“글쎄, 알 수 없는 일이지. 하나 대지의 심장에 머무는 주술사치고 하찮은 자들은 아무도 없소.”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씩 자신을 갉고 닦아 경지에 오른 자들 만이 대지의 심장에 머물며 수행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개중에는 당장 대주술사를 노려볼 만한 자들도 수십이나 있었다. 그런 자들도 차마 대주술사가 되는 시련을 견딜 자신이 없어서 수행만 계속 하고 있었지만.
“어쩌면 저 트롤 역시 그런 수준의 주술사일지도 모르겠군.”
아이반이 그리 중얼거리자 이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틀림없을 거야. 숲과 완전히 일체화된 자였어. 그만한 경지의 주술사가 흔치는 않지.”
주술사의 경지라는 것은 단순히 강함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자연의 힘은 파괴적이기도 하니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처음 만난 자가 그들에게 적의를 보이지 않는 건 다행이나, 그가 경고한 내용이 껄끄러웠다. 대지의 심장에서 그들을 노리는 자들이 그저 테잔만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탁! 탁! 탁!
한참을 안으로 들어가던 일행의 예민한 귀에 기묘한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딱딱한 것을 두드리는 듯한 소음. 그 이상한 소리가 점차 가까 워지고 있었다.
“올 것이 왔군.”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느낀 아이반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우웅-
아이반의 오른쪽 눈이 황금으로 빛나며 먼 거리를 꿰뚫어 보았다. 그러자 늙은 오크 하나가 지팡이를 짚으며 걷는 것이 보였다.
자연의 구도자 테잔, 마침내 열두 번째가 된 위대한 주술사.
그가 지팡이로 땅을 두드릴 때마다 영맥이 꿈틀거리고 주력이 퍼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자연의 흐름이 그의 곁에 서서 일행을 적대하고 있었다.
스스슥-
평화롭던 숲이 음산하게 변했다. 맑고 부드럽던 기운이 거칠고 날카로워졌다. 사방에서 살기가 흘러나 온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오크, 트롤, 고블린, 수인, 아주 드물게 인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족의 주술사들이 그의 주력에 호응하여 힘을 보탰다.
대지의 심장에서 수행할 정도로 대단한 경지에 이른 자들이 일제히 힘을 내뿜으니 순간 호흡이 턱 막힐 정도로 강력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부디 우리의 뜻이 헛된 것이 아님을 알아주시게.”
“결과만이 옳고 그름을 증명할 것이오.”
자연의 구도자 테잔이 지팡이를 바로 세우자 아이반이 검을 휘둘렀다. 갑자기 뿌리를 들어 올리는 나무 정령을 베어내고 강하게 발을 굴렀다.
쿵!
마력을 터트려 사방에서 내리누르 는 압력을 밀어냈다. 그리고 공간을 뛰어넘듯 아이반이 테잔의 앞에 나 타났다.
우르르, 쿵!
뒤이어 천둥소리가 따라왔다. 툰드 Þundr: 천둥소리를 내는 자), 아이반 본인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으나 실로 천둥의 화신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쉬이익!
아이반의 검이 테잔의 목을 베었다. 그러나 흘러나오는 것은 붉은 피가 아니라 진흙과 모레, 나뭇잎의 파편.
이미 그게 분신이라는 것을 짐작한 아이반은 놀라지 않았다. 대신 피의 검 브리카로 분신에 담긴 주력을 한 조각 흡수했을 뿐이다.
우웅-
테잔의 주력을 빨아들인 피의 검 브리카가 떨리면서 방향을 가리켰다. 그 주력의 흐름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알아차리고 아이반을 이끌었다.
쾅!
다시금 천둥을 휘감고 움직인 아이반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이번에도 거짓, 테잔의 분신이 쓰러지며 미소 지었다.
“그리 쉽게 찾을 수는 없을 거야.”
피의 검 브리카가 기운을 흡수하고 그것을 파악하는 것은 무척이나 빨랐다. 그러나 대주술사의 치밀한 주력의 흐름을 따라잡는 것은 무리였다. 하물며 이 땅은 주술사의 성지였고, 수많은 주술사가 테잔을 보조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