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166
둥-
어디서 북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숲의 주력이 다시금 요동치며 뒤흔들렸다. 강력한 충격파와 저주, 지독한 정신공격이 동시에 아이반의 육신을 뒤흔들었다.
아이반은 무표정하게 마력을 끌어 올렸다. 아니, 몸속에 잠든 신성을 끌어올려 그 끈적끈적한 주력을 털 어냈다.
강력한 충격파라고 한들 아이반의 몸을 상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흡혈공 아키우스의 피 웅덩이마저 흡수한 그에게 닿을 저주는 없었고, 이런 정신공격에 흔들리기엔 아이반의 정신이 너무나 단단해졌다.
끼에에엑!
주력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새들이 허공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가벼운 날갯짓에 폭풍과도 같은 바람이 불었다. 때로 녀석들은 뜨거운 불꽃을 토해내기도 했다.
바람과 불꽃. 역시 아이반에게는 익숙한 것들이었다. 폭풍신의 가호가 바람을 막아 내고, 로키의 화염이 불꽃을 잡아먹었다.
피우웅-
멀리서 활시위를 당긴 이레인이 주 력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새들을 떨어뜨렸다.
비록 완전 개방이 아니더라도 고대 요정의 활은 엘프의 결전병기였다. 가벼운 화살이 막대한 주력을 흩어 버렸다.
으드득!
나무 정령이 뻗은 뿌리를 한 손으로 꺾어버린다. 그리고 사나운 이빨이 자신의 방패에 용의 불길을 휘감으니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나를 넘을 수 없다!”
불길에 따라 그림자가 이리저리 일렁였다. 그러다가 테잔이 주력을 불어넣으니 그림자가 생명을 얻어 일행을 공격했다.
타아악!
발밑에서 뚫고 들어오는 그림자의 공격은 예상하기 어려웠다. 이레인과 사나운 이빨이 마력을 터트리며 그림자를 베었으나, 실체가 없는 그림자는 아무렇지 않은 듯 몸을 찔렀다.
음차원의 마력이 토해지고 활력과 생기를 뽑아 육신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때 델피노가 생명의 한 조각을 쥐고 외치니 그림자가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빛이 우리의 어둠을 비추리라!”
강력한 신성력의 빛이 한 점 그림자마저 흩어버렸다. 그림자가 없는 세계란 무척이나 새로운 경험이었다.
“자연의 위대함을 깨달으시게.”
자연의 구도자 테잔이 지팡이를 내리치니 땅이 갈라졌다. 평탄한 숲은 사라지고 양옆으로 절벽이 높게 솟았다. 얼음처럼 차가운 시냇물이 졸졸 발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환상?’
아이반이 그런 생각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의 날카로운 기감과 황금으로 빛나는 현자의 눈으로도 이것이 환상이라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 달리 말해 이 모든 것이 진짜란 뜻이었다.
일순간 공간을 왜곡하고 전혀 다른 자연물을 만들었다. 비록 그것이 수 많은 주술사가 힘을 합쳤기 때문이라고는 해도 실로 놀라운 술법이었다.
쿠구구궁!
그때 멀리서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겨우 발목을 적시던 물이 급격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고 아이반이 소리쳤다.
“물이 쏟아진다!”
한껏 차오른 둑이 무너지듯 막대한 양의 물이 계곡을 뒤덮으며 밀려왔다.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르려 했으나 강력한 주력이 그를 방해해 일행을 땅에 붙잡았다.
그 짧은 순간, 아이반은 검을 땅에 박아 넣었다. 그리고 온 사방에 가득한 주력을 한껏 빨아먹은 브리카가 용의 모습으로 현실에 나타났다.
크르르르-
브리카는 단번에 마력을 불태워 입에 화염을 머금었다. 드래곤의 숨결을 흉내 낸 불길을 내뱉었다. 뜨거운 열기가 번지고 브리카의 화염 숨결이 몰아치는 물길을 향해 뿜어졌다.
치이익-
물이 끓어오르다 못해 기화되어 하늘로 솟구쳤다. 그렇게 막대한 양의 수증기가 피어올랐으나 쏟아지는 물길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아이반은 창을 뽑아 들고 그 앞을 막아섰다. 몰아치는 자연재해 앞에서 창을 휘둘렀다.
“오딘!”
아이반이 폭풍신의 이름을 외치자 오딘의 권능이 그의 몸과 창에 깃들었다. 끓어오르는 수증기와 그 열풍으로 만들어진 상승기류를 타고 진실로 폭풍이 등장했다.
휘이잉-
땅에서부터 하늘을 향해 솟구친 폭풍이 물길을 바꾸었다. 쏟아지는 물을 그대로 빨아올려 하늘로 뿜어냈다.
막대한 양의 물길을 모두 막을 수는 없었으나, 모든 것을 쓸어버릴 듯 몰아치던 기세만큼은 확실히 줄었다.
이레인이 불러낸 정령이 그 남은 물길을 잠재우니 모든 것을 쓸어버릴 듯한 홍수에서도 버틸 수가 있었다.
그때 하늘로 솟구친 물이 비처럼 쏟아지다가 얼어붙었다. 눈보다는 무겁고 날카로운 우박이 되어 일행 의 몸을 두드렸다.
“후우······.”
아이반이 내뱉는 숨이 김이 되어 번졌다. 급격하게 떨어지는 온도가 피부로 느껴졌다. 뼛속까지 시렸다. 명백히 주술적인 추위였다.
쩌저적!
단번에 얼어붙은 강 위에서 테잔이 말했다.
“아직 자연의 분노는 끝나지 않았다네.”
절벽이 눈 덮인 산으로 변했다. 그리고 꼭대기에서부터 조금씩, 그 눈이 밀려 내려왔다.
우르르, 쾅!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기도 했다. 어찌 보면 비슷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자신을 향해 무너져 내리고 있었으니까.
거대한 산의 한 면이 모두 떠밀려 온다. 거대한 눈사태가 일행을 짓누르려 했다.
아이반은 정면으로 상대하는 대신 훌쩍 뒤로 물러나 일행과 합류했다. 그리고 창으로 땅을 내리찍으며 주문을 내뱉었다.
“폴다르드로틴(Foldardróttinn: 대지의 주인).”
땅이 꿈틀거리며 쩍 벌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땅굴 속으로 일행이 모두 들어가자 입구를 막고 몸을 움츠렸다.
쿠구궁!
거세게 땅이 흔들렸다. 아이반의 마력으로 굴을 지탱하고 있었는데, 그 위로 쏟아지는 눈사태가 어찌나 격렬한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다.
착!
사나운 이빨이 자신의 방패로 입구를 막았다. 그는 마치 하늘을 들어 올리는 거인처럼 버티고 서서 무너지려는 천장을 지탱했다.
잠시 후 흔들림이 멎었다. 이제 굉음도 들리지 않았다. 눈사태가 끝난 모양이다.
그때였다. 뼈가 시린 추위가 갑자기 사라졌다. 아니, 오히려 더워진 것 같기도 했다. 그걸 깨닫자마자 일행은 모두 뛰어오르듯 땅굴을 벗어났다.
땅굴을 벗어나자마자 보인 풍경에 아이반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 진짜로?”
하늘 높이 솟아 있던 설산은 사라졌다. 대신 오랫동안 축적했던 분노를 토해 내듯 불을 뿜는 화산이 있었다. 주변 온도가 무섭도록 치솟았다.
치익!
머리와 어깨에 묻은 눈덩이가 그대로 사라졌다. 어쩌면 일행의 육신도 곧 그리될지 몰랐다.
쾅!
세상을 깨부수겠다는 것처럼 거대한 폭음을 터트리며 화산 분출이 시작되었다. 눈사태가 우습게 여겨지는 지진과 폭력적인 충격이 덮쳤다.
어디까지 솟구치는지 모를 두껍고 거대한 분연주와 그게 붕괴하면서 사방으로 퍼지는 화산쇄설성 밀도류.
날카롭고 뜨거운 돌가루와 폭력적인 가스가 먼저 스치고 뒤이어 용암이 끈적거리며 흘러내린다.
어마어마한 속도의 바람이 휘몰아 쳤다. 집채만한 돌덩이가 반쯤 녹은 상태로 그에 휘말려 사방으로 날아다니다 서로 부딪혀 깨지고 또 퍼지기를 반복했다.
재빨리 델피노가 보호막을 펼치고 이레인이 정령을 불러내지 않았으면 온몸이 불타고 찢어졌을지도 몰랐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델피노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지 않으면 바로 옆에 있어도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시끄러웠다.
“이대로 버틸 수만은 없어요! 주술을 멈춰야만 합니다!”
대륙에서 가장 강한 영맥이 흐르는 대지의 심장에서 수많은 주술사의 보조를 받은 자연의 구도자, 테잔은 자연의 분노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처음엔 홍수, 그다음은 눈사태, 이번에는 화산 폭발이었다. 다음은 또 무엇일지 알 수 없었다. 혹시 해저 1만 미터의 심해라도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이건 정상적인 싸움이 아니었다. 승산을 따지려면 적어도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야만 했다.
“테잔을 찾아야만 하오! 그를 찾지 못하면 주술을 멈출 수가 없어!”
아이반이 황금으로 빛나는 오른쪽 눈으로 온 사방을 훑어보고 있었으나, 도무지 테잔의 본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해임달, 당신의 힘이 필요하오.’
우웅-
아이반의 감각이 깨어난다. 세상의 끝을 살핀다는 눈으로, 양털이 자라는 소리마저 들을 수 있다는 귀로 테잔을 추적했다.
비록 시커먼 화산재가 눈을 가리 고, 시끄러운 화산의 폭발음이 귀를 가렸으나 비프로스트의 파수꾼, 아스가르드의 수문장은 그 모든 것을 보고 들으며 아이반에게 길을 알려 주었다.
스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