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17
그때쯤 아이반은 또 다시 덤벼드는 오크 전사의 목을 베고 다른 쪽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피, 상처, 죽음.
순식간에 여섯 명의 전사가 바닥에 쓰러지자 오크들은 침착함을 잃고 흥분하기 시작했다.
“우! 우! 우!”
기묘한 소리를 내뱉으며 오크전사들이 아이반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의 부담이 한결 줄었으나 이미 몇 명이나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기습에 많은 이들이 당한 것이다. 안타까운 일. 하지만 아이반이라고 모두를 구할 수는 없었다. ‘역시 제대로 된 광역기가 있어야만 하나? 공격이든 버프든 뭔가 하나는 있었으면 좋겠군.’ 아이반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착실하게 검을 휘둘렀다. 여러 명의 오크 전사들에게 둘러싸여 거센 압박을 받으면서도 하나씩 바닥에 눕혔다. 그가 짙은 안개와 소음에 방해받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케빈이 소리쳤다.
“아이반! 주술진을 구성하는 토템들을 먼저 파괴해야만 하오!”
옳은 소리였다. 하지만 케빈은 본인이 그렇게 외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몇 명이나 되는 오크 전사들을 홀로 상대하고 있는 와중에 숨겨진 토템까지 찾아야 한다고? 그게 가능할까? 물론 아이반은 가능했다. 치직, 치지직! 오크전사들을 상대하는 와중에 아이반의 검에서 번개가 쏘아져 어딘가로 날아갔다.
토템이 까맣게 타버려 바닥에 떨어졌다.
그렇게 번개로 셋, 도끼로 하나, 발뒤꿈치로 둘. 주변의 토템을 몇 개쯤 부수자 안개가 확연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시야가 확보되자 케빈은 얼른 부대원들의 상태를 먼저 확인했다.
서른 명의 부대원 중에 멀쩡히 서있는 사람은 겨우 열다섯. 절반이나 되는 인원이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젠장, 피해가 너무 큰데 .”
그렇게 중얼거리던 케빈이 흠칫 놀랐다.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있는 아이반 주위에 그 두 배쯤 되는 수의 오크전사들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습격한 오크전사들은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었다.
나름 그린스킨이 가려 뽑은 실력 있는 전사들.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강자였다. 동수라면 전멸을 각오해야만 하는데 그것을 아이반이 거의 혼자 해결한 셈이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이 모두를 혼자 상대하고 있었단 말이오?”
케빈이 경악하며 물었으나 아이반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어딘가를 노려보며 말을 내뱉었다.
“얼른 병력을 수습해서 빠져나가야하오. 뭔가 더 있소.”
주술이 깨지고 안개가 풀리기 시작하자 남은 오크전사들이 일제히 후퇴하기 시작했다.
호전적이기 짝이 없는 오크전사들이 그냥 후퇴할 리가 없었다. 그것도 동료들의 시체를 내버려두고. 단순히 죽음이 두려웠다거나 상황이 불리해서 도망간 것이 아니다. 그런 놈들이 아니었으니까.
오크들은 강자와 싸우다 죽는 것을 명예로 생각하는 족속이었다. 그렇게 진심으로 싸우다 숨이 다하면 위대한 오크투신 타르칸의 곁에서 영원한 영광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오크나 노르드인이나 전투에 눈이 돌아간 건 똑같네. 오크투신 타르칸이라, 혹시 오딘이나 토르가 투잡이라도 뛰고 있는 건가.’ 그렇게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아이반은 긴장감을 내려놓지 않았다. 아무래도 오크들의 움직임이 영 껄끄러웠다. ‘뭔가 있어.
아직 네임드도 나오지 않았고.’ 오크 전사들은 강하지만 훈련 상태가 썩 뛰어나지는 않았다. 그런 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면 실시간으로 누군가의 지시를 듣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아직 네임드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게 호전적인 놈들이?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만 하는 거지? 아이반의 머릿속이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 네임드가 전사가 아니군. 주술사가 네임드였어.”
그러면 곧 무시무시한 주술이 퍼부어질 것이 틀림없었다.
서둘러 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시신들은 .”
“수습할 시간이 없겠지. 알고 있소. 하지만 입맛이 쓰군.”
살아남은 부대원들을 재촉해 움직이면서도 케빈의 시선이 계속 뒤쪽을 향했다. 시신을 그냥 숲속에 내버려둬야만 한다는 사실이 못내 괴로운 모양이다.
용병들에게는 익숙한 일이지만 케빈에게는 아니었다.
그는 기사이자 지휘관.
지금 상황에 깊은 자괴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 사이 방금 전의 습격에서 홀로 살아남은 레인저가 길을 찾고 있었으나 생각보다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방금 전 주술진 안을 헤매면서 방향감각이 완전히 틀어진데다 숲도 뭔가 이상했다.
“익숙한 숲이 아닙니다. 놈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숲속 지형이 완전히 달라져있습니다.”
“길을 잃어버렸다고?”
“방향은 잡을 수 있습니다. 이쪽으로 가면 숲을 빠져나갈 수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형이 너무 변해서 안전한 길인지 장담할 수가 없군요.”
“젠장, 시간이 없는데 .”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탁! 탁! 탁! 낮고 맑은 소리였으나 명백히 이상한 일이었다.
크지도 않은 소리가 부대원 모두의 귀에 선명하게 들렸으니까. 아이반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젠장, 늦었군.”
그 외침과 동시에 사방에서 폭발적으로 주력이 흘러나왔다. 기감이 둔감한 병사들마저 몸을 움츠릴 만큼 강력한 힘이었다.
기이이에에에악! 숲이 울부짖는 것 같은 기묘한 소음이 들리고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좌우로 거세게 흔들려서 중심을 잡기 어려울 정도였다.
“뭐지? 지진인가?”
당황스러워하는 병사들에게 아이반이 대답했다.
“지진이 아니라 주술이오. 숲이 움직이고 있소.”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
아이반의 말에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던 용병 하나가 얼어붙었다. 농담이 아니라 주변 숲이 슬금슬금 움직이고 있었다. 강력한 주력으로 생명력을 얻어 나무들이 뿌리를 들어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툭! 투두둑! 파악! 주술에 의해 눈을 뜬 나무정령이 하나둘씩 몸을 일으켰다.
행동은 굼뜨고 느릿했지만 커다란 나무들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은 무척이나 두려운 것이었다.
“젠장, 이러려고 숲속에 토템을 뿌려서 주력을 먹이고 있었군.”
쾅!
“흡!”
가까이서 눈을 뜬 나무정령 하나가 두꺼운 팔을 내리쳤다.
케빈은 기사답게 방패로 그 공격을 받아냈지만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꽤나 버거웠던 모양이다.
[실드차지!] 쿵! 그냥 막고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여긴 케빈이 오히려 공격적으로 나섰다. 그가 방패로 후려치자 그 덩치 큰 나무정령이 휘청거리며 뒤로 쓰러졌다.챙!
“윽! 이건 어떻게 상대해야하는 겁니까?”
병사 하나가 쓰러진 나무정령에다 검을 휘둘렀다가 인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야말로 나무로 이루어진 몸은 무척이나 단단했다.
웬만한 공격은 제대로 박히지도 않으리라.
“제대로 마력을 사용하지 않은 공격은 소용이 없을 거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
“내가 길을 열어줄 테니 숲을 빠져나가시오.”
“뭐? 그게 어떻게 가능 .”
거기까지 말한 케빈은 입을 다물었다.
방금 전에 홀로 오크전사 서른을 도륙한 것을 확인한 참이었다.
말이 안 되지만 어쩌면 그는 가능할 것 같기도 했다.
나무정령들은 무척이나 위협적이었으나 움직임이 빠르지는 않으니 누군가 어그로를 끌어준다면 충분히 도망갈 수 있을 터였다. 그 어그로를 끈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아니, 그러면 당신은 어쩌려고? 설마 스스로를 희생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 텐데, 아직 만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았잖소?”
영웅적인 희생, 찬란한 산화.
기사인 케빈은 그런 것을 떠올리고 있는 모양이지만 아이반의 성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할 수 있으니까할 뿐이다.
“주술사의 주력이 무한하지는 않을 터. 적당히 이들을 막아내다가 몸을 빼겠소.”
“젠장! 그렇다면 나도 남겠소!”
그 말에 아이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휘관이 여기 남아서 뭐하려고? 병사들을 이끌어야지.”
“하지만 여기에 그대만 내버려둘 수는 .”
“방해요. 혼자가 편하오.”
그 말에 케빈이 이를 악물었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아이반과 케빈의 실력차이는 명백했고, 스스로가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는 이해하고 있었다.
” 꼭 살아오시오.”
“당연한 말을. 사령부에 성과금이나 넉넉히 준비해달라고 전해주시오. 용병에게는 그게 최고의 칭찬이니.”
“반드시 그리하겠소. 만약 상부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내 재산을 털어서라도.”
쓸데없이 열혈이군.
그냥 빨리 빠져나가줬으면 좋겠는데.
아이반은 애써 심드렁한 표정을 숨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길을 열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