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183
너무나도 거대해서 그게 무엇인지 단번에 파악할 수 없었지만, 그건 손이었다.
쩌저적!
강대한 존재감에 세상이 뒤흔들렸다. 주변에서 기회를 노리던 마물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고 세상이 떨면서 고개 숙였다.
거대하고 거대한 자. 위대하고 위대한 신화 속의 거인.
이름 모를 원시 거인이 공간을 넘어 이 땅에 나타났다. 그 거대한 덩치로 하늘을 가리며 하찮은 땅 위의 존재들을 내려다보았다.
– 하찮은 피조물아, 너희의 발악은 이 어둠을 밀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 작은 육신으로 세상의 흐름을 막 으려 하느냐!
세상을 호령하듯 울려 퍼지는 막대한 정신파에 전사들이 미간을 찌푸렸다. 명백히 초월적인 존재를 마주 하고 이를 꽉 깨물었다.
“…여기서 원시 거인이라, 드래곤을 노릴 만한 패가 있었군.”
아이반이 그리 중얼거릴 때, 마침내 보고만 있던 자가 나섰다. 그가 품에 안고만 있던 낡은 검을 뽑아 들었다.
“덩치가 강함을 증명하지는 않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고블린이,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쾅!
카락취의 검이 휘둘러지자 거인이 마주 주먹을 휘둘렀다. 그 와중에 퍼지는 충격파만으로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고 마력이 휙 밀려났다가 다가왔다.
– 너희가 나의 분노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원시 거인이 소리치며 발을 구르자 땅이 쩍 갈라지고 협곡이 무너져 내렸다. 땅에서 산이 솟아나고 하늘이 떨어져 짓눌렀다.
창칼로 막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공격이라 전사 몇몇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들은 그 어떤 적과도 싸울 각오가 있었으나, 이를 어찌 막아야 할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모두 정신 차리시게!”
테잔이 그리 소리치면서 지팡이를 내리찍었다. 세상이 무너질 듯 덮치던 공격이 테잔이 만들어낸 결계를 뚫지 못하고 그대로 스러졌다.
몇 개의 공간을 겹쳐서 뒤덮어 거인이 만들어낸 변화를 막아낸 것이다. 그러나 테잔의 주름이 더욱 깊어지고 그를 보조하던 주술사 몇이 피를 뿜었다.
“전에 보았던 원시 거인보다 더욱 강력한 자로군, 이자는 명백히 초월자야. 신격이나 다름없다는 소리지.”
얼어붙은 대지에서 마주한 원시 거인은 비록 자신의 존재를 불태우며 강대한 힘을 발휘하기는 했으나 한없이 초월자에 가까울 뿐, 결코 초월자는 아니었다.
반면 지금 앞을 가로막은 거인은 명백히 초월자였다. 필멸자를 완전히 벗어난 위대한 자. 격이 달랐다.
‘어쩌면 진짜 신격이었을지도 모르겠군.’
초월자라고 반드시 신격이라는 법은 없었으나, 그런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악신의 유폐를 풀고 이 땅으로 시 불러오려면 고대 요정, 신격, 드래곤 중의 최소 둘은 동의해야만 했다. 고대 요정은 모두 사라졌고, 그 들을 대리할 수 있는 세계수와 뱀신 모르나 역시 악신의 유폐를 풀길 원하지 않으니 남은 것은 신격과 드래곤뿐이었다.
이곳에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가 사로잡혀 있다면, 그리고 그녀에게서 강제로 동의를 받아낼 방법이 있다면 신격의 동의도 준비된 상황이란 뜻이겠지. 이 원시 거인이 한때 악신의 유폐에 참여했던 옛 신격임이 틀림없었다.
한때 다른 신격의 편을 들었으나 현대에는 잊힌 거인 신, 오랜 세월 신앙을 수급하지 못해 쌓인 존재의 위협과 불합리한 증오가 막을 수 없는 광기가 되어 그를 변하게 했을지도 모르지.
불멸자가 불변하지는 않으니, 진정으로 불멸한 것은 아닌 셈이다.
탁!
쩍 갈라진 땅을 붙잡고 크기가 약간 작은 거인들이 기어올라왔다. 원시 거인이 자신의 육신을 일부 잘라 내어 그것으로 새로이 거인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원시 거인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거인은 거인이었다. 커다란 덩치와 무식할 정도로 강인한 육신으로 전사들에게 덤벼들었다.
쉬이익!
바위를 간단히 깨부수는 거인의 주먹을 방패로 튕겨낸 사나운 이빨이 검을 휘둘러 발목을 끊어냈다. 그렇게 거인을 쓰러뜨리니 다른 전사들이 달라붙어 녀석의 두개골을 깨버렸다.
원시 거인이 만들어낸 거인들은 피를 뿌리지 않았다. 대신 뜨거운 용암을 터트리고는 돌이 되어 차갑게 식었다.
옛 신화에 이르기를 원시 거인의 육신을 재료로 대륙의 산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 신화적 내용이 거짓이 아님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쿵!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 아이반이 피 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신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프레이!”
그러자 프레이의 무기, 스스로 움직여 거인을 쓰러뜨리는 검이 피의 검 브리카에 깃들었다.
우웅-
거인에게 치명적인 검이 거인 신의 육신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의 거대한 팔뚝이 쩍 갈라지고 하늘에서 핏물이 마치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거인 신의 덩치를 생각하면 너무나 작은 상처였다. 거인 신이 불쾌한 듯 손을 휘저으니 날아오른 아이반이 큰 충격을 받으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스스슥-
바닥을 뚫고 들어갈 듯 떨어지던 아이반의 몸을 따뜻한 기운이 부드럽게 받았다. 거인 신의 공격을 받아 욱신거리는 온몸을 어루만지듯 상처를 지우고 활력을 불어넣었다.
델피노가 그를 지원하고 있었다. 그걸 느낀 아이반이 말없이 엄지를 치켜올리고는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브리카!”
아이반이 소리치자 스스로 움직여 거인을 쓰러뜨리는 검에서 브리카의 영체가 빠져나와 실체를 가지고 울음을 터트렸다.
캬아아악!
실제 드래곤과 비교하면 작았으나, 웬만한 드레이크보다 큰 브리카가 아이반을 태우고 거인을 향해 솟구 쳤다.
한껏 마력을 머금은 브리카가 화염 숨결을 토해내고, 아이반은 어두운 용의 발톱을 집어 던졌다.
휘이잉-
어두운 용의 발톱은 곧 폭풍이 되어 브리카의 화염숨결을 머금고 거인 신을 후려쳤다.
거인 신의 어깨가 붉게 물들었다. 그의 신력이 강하게 흔들렸다.
귀찮은 녀석이!
거인 신이 손을 위로 뻗어 하늘을 붙잡아 내렸다. 그러자 브리카를 타고 날아다니던 아이반에게 막대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마치 하늘을 짊어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브리카가 똑바로 날지 못하고 비틀거리자 그 위로 거인 신의 손바닥이 떨어졌다. 너무 범위가 넓어서 미처 피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러나 거인 신의 손바닥이 반으로 쩍 갈라지며 아이반을 피해갔다. 지상에서 카락취가 검을 털어내고는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있었다.
이놈이 감히……!
거인 신이 고통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몸을 비틀거렸다. 하늘을 가릴 듯이 거대한 거인이 고블린의 검에 충격을 받아 움찔 뒤로 물러난 것이다.
그의 한쪽 팔이 너덜너덜하게 변했다. 그 커다란 팔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듯이 덜렁거렸다.
거인 신의 위대한 육신은 그 치명적인 상처조차 없었던 것처럼 회복 했으나, 그게 정말로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찮은 필멸자들에게 위대한 거인 신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심어 주었다.
– 이 땅의 법칙을 새로 세우겠다!
거인 신이 소리를 지르자 주변 환경이 마치 재조립되듯 변하기 시작 했다. 땅이 거세게 요동치고 평야는 바다가 되었으며, 협곡은 산이 되었다.
세상을 다시 만드는 것 같은 그 극심한 변화에 테잔이 또다시 나섰다.
“자연은 그대의 것이 아니라오.”
지팡이를 바닥에 박아 넣은 테잔이 두 눈을 빛내며 주력을 내뿜었다. 주변의 자연이 그와 동조하며 거인 신의 명령을 거부했다.
바다는 다시 평야가 되었고, 산은 다시 협곡이 되었다. 그와 함께하던 주술사들이 하나씩 쓰러져서 결국 그 홀로 남았으나 위대한 거인 신의 권능을 받아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도대체 무엇인지 예상할 수 없는 이계의 땅보다는 차라리 거인 신이 움직이는 세상이 테잔에게는 훨씬 상대하기 편했다.
‘그러나 피해가 크군.’
평범한 전장이 아니었다. 강력한 전사들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쓰러지고 있었다.
이렇게 죽을 자들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상대가 거인 신만 아니었더라도 제대로 한 방을 먹일 수가 있었을 텐데…….
쾅!
세상을 재조립하던 거인 신이 권능을 발휘하던 것을 멈추고 뒤로 밀려 났다. 카락취의 검이 또다시 그의 몸을 베고 가르며 위협한 것이다.
세상이 비틀리며 요동치는 순간에도 카락취가 서 있는 장소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강력한 의지가 강제로 주변을 안정시키고 있는 것이다.
마법사나 주술사도 아니면서 그게 가능한 것은 카락취가 반쯤 벽을 넘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깨달은 거인 신이 진심으로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 어찌하여 그게 가능한 것인가? 위대한 신격의 눈은 카락취의 본질을 꿰뚫었다. 그의 삶을 통찰했다. 그런데도 납득할 수가 없었다.
한낱 고블린이 이리도 강해질 수는 없었다. 하찮은 육신으로 위대한 거인 신을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신격조차 불가능하다고 소리치는 일에, 카락취가 덤덤히 대답했다.
“내가 검을 들고 있으니.”
카락취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이 남들과 다른 존재임을 깨달았다. 자신의 부모, 형제, 친구와 자신이 같지 않음을 알았다.
조잡한 함정과 독침보다 칼 하나를 쥐고 휘두르는 걸 좋아했다. 뒤에서 기회를 노리다 적의 목숨을 끊는 것보다 정면에서 이기기를 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