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186
킬킬킬킬-
신화시대, 차원 너머로 악신이 유폐되면서 같이 추방되었던 악신의 권속들이 이 땅에 나타나자 델피노와 테잔의 표정이 동시에 굳었다. 악신을 붙잡고 있던 사슬이 끊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피우웅-
악신의 권속을 꿰뚫은 이레인의 화살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신성한 나무가 되어 크게 자랐다. 다시금 세계수의 가호가 이 땅에 내리고 이리 저리 꼬여 있는 공간을 풀어헤쳤다.
공간의 벽이 무너지자 마녀들은 마력을 흩뿌려 또 다른 악신의 권속을 불렀다.
“진정한 법칙의 추종자여, 이 땅에 나타나 그분의 의지를 대행하라!”
그러자 악신의 유폐를 풀기 위해 뚫어 놓은 이계의 통로에서 불쑥 손이 나타나 좁은 구멍을 찢고 넘어왔다.
피부가 벗겨져 근육과 핏줄이 그대로 보이는 남자였다. 등 뒤에는 검붉은 피막으로 된 뒤틀린 날개가 여섯 개나 달려 있었고, 몸통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손으로는 누군가의 가죽으로 만든 책을 펼쳐 들고 있었다.
악신의 천사였다. 너무나 뒤틀리고 뒤틀려 무엇이 근원이었는지 도저히 추측할 수가 없는 악신의 권속.
스윽-
동공이 없이 새빨간 눈이 아군을 바라보자 뇌를 쑤시는 고통이 느껴졌다.
찌릿!
“윽!”
들은 적이 없는 말이 들리고, 본 적이 없는 풍경이 보였다. 맹세컨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음습한 욕망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커억!”
전사들이 하나씩 피를 토하며 쓰러 졌다. 눈을 뒤집어 까고 게거품을 뿜으며 날뛰는 자도 있었다.
너무나 강력한 정신 공격.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주변에 있는 모든 존재를 타락시킬 정도였다.
개중에서도 더 강한 정신력을 가진 전사들과, 예전에 이미 이보다 강력한 대악마의 정신 공격을 경험한 적이 있는 일행만이 차분한 표정으로 무기를 휘둘렀다.
쾅!
튀르긴의 묵직한 공격이 악신의 천사를 후려쳤으나 녀석은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무스파가 휘두른 도끼는 아예 환상이라도 마주한 것처럼 놈을 통과했다.
아이반이 휘두른 창이 녀석의 목을 노렸을 때는 제법 격렬한 반응이 있었으나, 악신의 천사가 들고 있던 가죽으로 된 책이 한 장 찢어지더니 스스로 비명을 지르며 타오르자 악신의 천사가 멀쩡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 모습에 아이반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악신도 아니고 그 권속이 버틴다고?”
물론 강한 적이었으나 공격이 아예 통하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대악마나 거인 신도 무시할 수는 없었는데 어찌 악신의 천사 따위가 그럴 수 있단 말인가.
그때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를 뒤덮고 있는 점막이 꿈틀거리며 그녀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막대한 양의 마력이 사브리나의 몸에서 뽑혀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우웅-
거인 신과 싸우고 다시 검의 모습 으로 돌아갔던 피의 검 브리카가 요동쳤다. 사브리나의 고통에 공감하며 몸을 떨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녀석이 휘두르는 힘은 드래곤에게서 강탈한 것 같소. 초월자의 힘을 그대로 뺏어 쓰고 있으니 쉽게 당할 리가 없지.”
원래라면 드래곤이 겨우 마녀에게 당하지는 않을 거다. 겨우 악신의 천사에게 힘을 빼앗기지도 않을 거다.
그러나 천 년의 잠에서 이제 막 깨어난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는 완벽한 상태가 아니었다. 대주술사에게 천 년 동안 육신과 영혼이 나뉘어 봉인되어 있었고, 위신 사샨트가 육신을 강탈하려 했었다.
결정적으로 피의 검 브리카가 신기로 성장하면서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의 피와 영혼의 일부를 집어삼켰으니 드래곤의 완전함에 흠결이 생겼다. 위대한 초월자의 격이 깎여나간 것이다.
그 미세한 틈이 문제였다. 악신과 마녀는 그 틈을 노리고 사브리나의 영혼과 육신을 붙잡은 것이다.
‘···구해야만 한다.’
아이반은 한 손으로 어두운 용의 발톱을, 다른 손으로 피의 검 브리카를 뽑아들고 속으로 그리 중얼거렸다.
그가 가진 두 개의 무기는 모두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를 통해 얻은 것이니 지금 사태에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녀석의 육신이 아니 라 들고 있는 책이야.”
세계수의 가호를 받아 정보를 나누고 있는 이레인이 악신의 천사를 분석해서 알려 주었다. 녀석이 들고 있는 책은 신화시대 수많은 목숨을 제물로 만들어 낸 악신의 신기이니 그것을 파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라드발과 사나운 이빨이 나섰다. 마력을 듬뿍 머금은 검을 휘두르고 용의 심장이 뿜어낸 화염을 쏟아냈다.
그 어떤 마물도 단번에 토막내고 불태울 공격이었으나, 이미 또 다른 악신이나 다름없는 악신의 천사는 손을 내뻗는 것으로 그 공격을 막아 냈다.
검은 방어막으로 버티고 사나운 이빨의 화염은 그대로 집어삼켰다. 사나운 이빨이 용의 심장을 가졌다면 악신의 천사 역시 드래곤의 힘을 뽑아서 쓰는 중이었다.
스걱-
그래도 검신 카락취의 공격은 감히 무시할 수가 없는지 격렬하게 몸을 뒤틀었다. 그런데도 완전히 피할 수 가 없어서 악신의 천사는 몸이 쩍 갈라졌다가 천천히 달라붙었다.
그러면서 카락취의 검이 놈의 몸을 가르고 피와 가죽으로 만든 책을 스치고 지나갔으나, 악신의 사악한 권능이 담긴 책은 파괴되지 않았다. 악신이 직접 자신의 가죽을 벗겨 만든 신기이기에 검신의 공격조차 견뎌낸 것이다.
물론 그 대가로 뒤에서 의식을 진행하던 마녀 몇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적어도 수백 년을 살아온 고대의 제사장들이 단지 검신 카락취의 검 한 번을 막기 위해 목숨을 던졌다.
사아아아-
악신의 천사는 책을 얼른 차원 너머로 보냈다.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의 마력을 가득 담아서 자신이 모시는 악신에게 바쳤다.
카락취의 검이 그것을 베려고 했으나, 악신의 천사는 몸을 날려 막았다. 비록 녀석은 여섯 조각이 되어 흩어졌지만, 이내 조금씩 몸을 회복 했다. 책을 잃고 힘은 약해졌으나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기세가 강해 지는 것 같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찢어진 차원 문 너머로 악신의 존재감이 너무나 강렬하게 뻗어왔다.
신화시대가 끝나고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 마침내 악신이 이 땅으로 돌아왔다. 그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꺄아아아
세상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 다. 이 세상이 낳은 지독한 악의가 다시 돌아오는 것에 경악하며 몸을 떨었다.
쩌저적-
마녀들이 공을 들여 만들었던 결계가 무너지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이계의 지독한 환경은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그저 이계에 오염된 땅이 아니라 악신이 강림하면서 이 땅이 이계의 영역으로 넘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세상을 깨트리고, 차원의 벽을 무너뜨리면서 악신이 나타났다. 오랜 유폐를 끝내고 다시금 그 비틀린 악의를 흩뿌리기 위해 돌아왔다.
하늘을 떠돌던 구름이 악령의 둥지로 변하고, 스치는 바람이 지독한 독성을 품었다. 작은 언덕만큼이나 커다란 악신이 수백 개의 눈을 빛내며 내려다보았다.
“···괜찮은 상대로군.”
카락취가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검을 들었다. 그 뒤로 아이반이 피의 검 브리카와 어두운 용의 발톱을 허공에 띄워두고 새로운 무기를 불렀다.
“묠니르.”
검을 뽑아 들고 달려가는 검신의 곁에 천둥신이 나타났다.
시작은 카락취가 알렸다.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가며 검을 찔렀고, 그 작은 점에서 시작된 힘이 공간을 뒤흔들어 악신을 후려쳤다.
쿵!
산이 무너지고 강이 끊어지는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졌다. 그러나 정작 악신은 멀쩡했다. 그를 감싸듯 떠오른 방어막이 카락취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카락취는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이들에게는 필살의 공격일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가벼운 인사에 불과했다.
꽈아악-
그가 쥐고 있던 검이 비틀리면서 낭창하게 휘어졌다. 그리고 수백이 넘는 검의 환영이 떠올라 주변을 휩쓸고 지나갔다.
아스트랄 플레인, 영적인 영역에 몸을 감추고 카락취를 노리던 악신 의 촉수가 잘게 끊어졌다.
투두둑-
그 작은 육신의 파편이 현실로 튀어나오면서 주변을 오염시켰다. 악신은 이 세상에서 태어났으나 너무나 비틀려서 존재하는 것만으로 세상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공기가 딱딱하게 굳고 땅이 물처럼 흘러내렸다. 공간이 이리저리 꼬이고 시간의 흐름도 느려졌다 빨라지기를 제멋대로였다.
아이반은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묠니르를 높이 들어 올리고 목소리 를 높였다.
“흐베드룽그(Hvedrungr: 날씨를 만드는 자)!”
검고 비틀린 이계의 하늘에 먹구름이 나타났다. 폭풍과도 같은 바람이 불고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먹구름이 서로 부딪히며 거센 울음을 터트렸다.
치지직!
쾅!
번개가 내리쳤다. 묠니르가 아이반의 손을 떠나 악신의 몸을 파고들었다. 악신이 펼친 방어막이 옅게 금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스윽-
수백 개가 넘는 악신의 눈동자가 아이반을 바라보았다. 감히 세상을 뒤집어 놓겠다고 날뛰었던 악신답게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참을 수 없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아이반은 신격의 시선을 견디는 것에는 익숙했다. 언제나 그를 지켜보고 있는 아스가르드의 신들 덕분이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빌어먹을 놈들.
“토르, 한 손 거드시오.”
아이반이 낮게 중얼거리자 천둥신이 껄껄 웃었다. 묠니르를 쥐고 언제 튀어 나갈까 기다리고 있던 토르가 망치를 후려치자 어두운 하늘이 번쩍 밝아지며 거대한 벼락이 떨어 졌다.
쾅!
악신의 펼친 방어막이 쩌적 갈라졌다. 토르가 어찌나 많은 힘을 사용 했는지 아이반의 정신이 아득해지며 코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