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187
그런 와중에 아이반은 창을 쥐고 내질렀다.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본능이었다.
푸슉!
악신의 촉수들이 뻥 구멍이 뚫려 쓰러진다. 그러나 아스트랄 플레인에서 넘어오는 촉수의 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단번에 모두 끊어낼 수가 없었다.
“브리카!”
아이반이 소리쳐 부르자 피의 검 브리카가 다시금 용의 모습으로 그를 태웠다.
부웅-
커다란 날개를 힘차게 움직여 하늘로 솟구치니 바닥에서 그를 노리던 촉수들이 길게 늘어지며 따라왔다.
이레인이 화살을 날려 그 촉수들을 잘라내었지만, 잘려 나간 촉수들이 모습을 바꿔 피부가 벗겨진 뒤틀린 박쥐 같은 괴물이 되어 계속 덤벼들었다.
스읍-
한껏 숨을 들이켠 브리카가 불길을 토해냈다. 잠깐 태양이 뜬 것같이 세상이 밝아지고 괴물들이 재가 되어 떨어졌다.
“이곳에 내가 있다!”
사나운 이빨이 호응하며 불길을 내 뿜었다. 용의 심장이 거칠게 불꽃을 토해내니 악신의 촉수가 지글지글 타올랐다.
그사이 카락취는 바쁘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하나, 그다음은 둘, 넷, 그렇게 차례로 드러난 검격이 하늘을 잘게 쪼개면서 악신을 베었다.
방어막이 사라진 악신의 몸이 길게 찢어지며 안개 같은 피를 뿌렸으나, 치명적인 상처는 아닌 모양이었다.
스스슥-
악신이 흘린 안개 같은 피가 낮게 깔렸다. 모든 생명을 모욕하는 것처럼 불길한 기운이 조금씩 다가왔다.
“후우…….”
낮은 숨을 내뱉은 카락취가 두 발을 단단히 딛고 검을 들어 올렸다. 눈높이에 맞춰 눕혀진 검이 피의 안 개를 향했다.
그리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가며 검을 휘둘렀다. 눈높이에서부터 원을 그리며 바닥을 거쳐, 하늘을 찍었다.
피 안개가 갈라진다. 사악하고 불길한 벽을 넘어 악신을 베었다.
퉁!
그러나 중간에 무언가 걸린 듯 검이 멈췄다. 악신의 육신을 단번에 가르지 못하고 그의 검이 막혔다.
제멋대로 꿈틀거리는 역겨운 손으로 악신이 카락취의 검을 붙잡았다. 낡은 검이 악신의 사악한 권능에 당해 순식간에 녹슬었다.
절반으로 부러진 검을 보면서 악신이 마치 비웃듯이 몸을 뒤틀었다. 촉수를 뻗어 카락취를 짓누르려 했다.
카락취는 당황하지 않았다. 비록 검이 부러졌지만, 그것으로 그의 검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스걱-
카락취는 부러진 검을 휘둘러 악신의 손을 꿰뚫었다. 낡고 부러진 검은 이제 무기의 역할을 못 할 것 같았으나,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의 검은 손이 아니라 마음에 있었다.
검신 카락취. 감히 검을 자신의 본질로 삼은 신격이 베고자 하니 세상 만물이 모두 검이 되어 그의 뜻을 따랐다. 악신이 그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자신의 색으로 뒤덮었으나, 카락취의 검은 기어이 적을 베었다.
쿵!
악신의 몸이 크게 밀려났다. 갓 태어난 신격에게 크게 한 방을 먹은 것이다.
그게 견딜 수 없이 불쾌한지 악신 이 몸을 크게 부풀렸다. 수백 개의 눈이 하늘을 뒤덮어서 감히 자신에 게 무기를 들이댄 불경한 자들을 바 라보았다.
“으어어어!”
전사 몇몇이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악신의 속삭임이 파고들었다. 그의 시선을 마주한다는 것만으로 정신이 무너지고 영혼이 비틀렸다.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전사들이 어찌 대항하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두 말할 것 없이 신화시대를 뒤흔들어 놓았던 초월적인 존재의 정신 오염을 이겨내려면 따로 정신을 보호할 방법이 필요했다.
“타르칸이시여! 당신의 전사에게 타오르는 용기를 주시오!”
우웅-
오크 전사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소리치자 오크투신 타르칸의 권능이 그들을 가호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용기가 치솟고, 격렬한 투쟁심이 악신의 정신 오염을 밀어냈다.
오크투신 타르칸은 광전사의 신이라 진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은 항상 광기를 품고 있었다. 이미 미쳐 버린 자들이 또다시 미칠 수는 없는 법, 오크 전사들은 전투에 대한 열망과 광기로 자신의 정신을 보호했다.
“오크투신께서 보고 계신다! 우리의 위대한 아버지를 만족시킬 전투를 시작하라!”
광기로 무장한 오크 전사들이 악신의 권속을 베어 넘겼다. 배에 구멍이 뚫린 것 정도는 웃으며 넘겼고, 팔다리가 잘린 것 정도는 즐겁게 받아들였다.
오크투신 타르칸을 모시는 전사들에게 전투와 죽음은 곧 축제나 다름 없었다. 오히려 마녀나 그들이 부리는 괴물들보다 오크 전사들이 더욱 섬뜩할 정도였다.
그라드발이나 무스파, 그 외 오크 전사들이 오크투신 타르칸을 향한 신앙심과 전투의 광기로 악신에 대항했다면, 튀르긴을 중심으로 한 트롤 전사들은 조상신과 자연령을 자신의 몸에 받아들였다.
강인한 트롤의 육신이 조상신과 자연령을 맞이하면서 변이했다. 덩치가 더욱 커다랗게 변하거나 더욱 날렵해지며, 뼈로 된 갑옷이 튀어나오거나 칼날 같은 손톱을 가지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 트롤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종족 중 가장 고대의 술법을 잘 보존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샤머니즘으로 육신과 정신을 강화했다.
차라락!
악신의 천사가 그들을 노리고 덤벼 들었다. 드래곤에게서 강탈한 초월적인 힘과 악신의 육신으로 엮은 마도서는 고스란히 악신을 이 땅으로 불러오는 데 사용했으나, 기세만큼은 이전보다 더욱 날카로웠다.
트롤의 육신이 간단하게 잘려나갔다. 악신의 천사가 손을 휘두를 때마다 주인을 잃은 고깃덩이가 날아 다니고 붉은 핏물이 바닥을 적셨다.
그러나 조상신과 자연령을 받아들인 트롤은 육신이 찢어지는 것을 무시하고 악신의 천사에게 달려들었다. 팔다리가 잘려나가도 그걸 순식간에 재생하면서 튀르긴이 다가갔다.
쾅!
악신의 천사가 뒤로 밀려난다. 날카로운 가시로 몸을 찌르고 단단한 방어막을 세워 막았으나, 튀르긴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 기어이 한 방 먹인 것이다.
어린애 머리통만한 구멍으로 내장이 보이던 배가 멀쩡해졌다. 뒤틀리고 짓눌러서 이리저리 뼈가 튀어나 왔던 오른팔이 시간을 되감은 것처럼 순식간에 회복했다.
바닥에 피를 퉤 뱉으면서 튀르긴이 웃었다.
“트롤왕의 시대가 지나도 우리는 죽지 않았다.”
튀르긴이 달려가 다시 악신의 천사를 공격하려는데, 바닥에서 검붉은 사슬이 튀어나와 그의 몸을 묶었다. 저주와 원념을 재료로 만들어낸 마녀의 술법이었다.
치이익-
원념의 사슬이 튀르긴의 육신을 지졌다. 그리고 그 상처로 온갖 절망적인 기억이 스며들었다.
악신의 정신 오염을 이겨낸 그가 그런 수작에 당할 리는 없지만, 아주 잠깐이나마 움직임이 멈췄다는 것만으로 치명적이었다.
스걱!
악신의 천사가 손을 휘두르자 허공에서 나타난 수백 개의 가시가 튀르긴의 몸을 찔렀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수준의 고통이 밀려왔다.
“으으윽!”
산 채로 불타는 것보다 수십 배는 더 고통스러웠으나 튀르긴은 눈에 핏발을 세우며 힘을 주었다. 그의 육신을 붙잡은 원념의 사슬이 조금씩 끊어졌다.
쾅!
기어이 사슬을 끊어버린 튀르긴이 악신의 천사를 후려쳤다. 그 대가로 팔다리가 다 잘려나가고 내장이 잘게 끊어졌지만 튀르긴은 크게 소리 쳐 웃었다.
“이게 트롤이다! 육신의 상처로 우리의 의지를 꺾지 못한다!”
악신의 천사가 만들어낸 가시에는 육신의 회복을 방해하는 힘이 있었던 모양이다. 잘려나간 팔다리도 어렵지 않게 재생하는 튀르긴의 육신이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핏물이 계속 흘러나왔다. 두꺼운 가죽을 지닌 트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때 신성한 힘이 이계의 땅을 정화했다. 마녀의 저주와 악신의 마력을 밀어내고 아군을 치료했다.
화아아-
하늘에서부터 빛이 내려왔다. 거대한 빛의 문양이 떠오르고 온갖 사악한 자들을 징벌했다.
델피노. 수백 년 만에 나타난 성황청의 성자가 당당히 선언했다.
“어둠이 가득한 곳에 항상 빛이 있으라. 가장 절망적인 곳이 희망이 되리라.”
펄럭-
어느새 그가 펼쳐든 깃발이 천천히 흔들렸다. 옛 성자가 수백 년간 일념으로 기도하고 천상의 아홉 신이 인정한 신물이 이 땅에 나타났다.
성자 델피노, 성황청 아홉 신격의 신성대리인은 옛 성자가 만든 지상에서 가장 신성한 깃발을 들고 소리 쳤다.
“이 땅에 주께서 임하시노라!”
지상에서 가장 신성한 깃발, 신성의 증명이 새하얀 빛을 뿜었다. 그리고 그것을 쥐고 있는 델피노의 몸에 그가 내려왔다.
현재 대륙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신격, 신화시대 이후의 세계를 이끈 자.
빛의 신 아룬이 성자 델피노의 청 을 받아들여 지상에 강림하자 모든 마녀와 마물이 몸을 떨었다.
– 아룬……!
말 한마디 하지 않던 악신이 증오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치자 성자의 몸으로 강림한 아룬이 그를 바라보 았다.
“너의 시대는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다.”
아스트랄 플레인에서 대기하고 있던 악신의 육신이 차원을 뚫고 온전히 나타났다. 주변 공간이 일그러지고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