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188
– 겨우 화신으로 나를 막을 수 있 을 것 같으냐!
쿠구궁!
하늘이 쩍 갈라지고 불타는 바위가 저 머나먼 곳에서부터 날아왔다. 악신이 이계의 파편을 끌어와 하늘에서 떨어뜨리는 것이다.
산 하나는 그대로 으스러뜨릴 수 있는 공격이었다. 그것을 막기 위해 아이반과 카락취가 나섰다.
치지직!
묠니르가 뜨겁게 달아오르며 연속으로 벼락이 떨어졌다. 메긴기요르드와 야른그레이프가 공명하며 그 힘을 증폭했다.
바다를 밀어내고, 산을 던지듯이 묠니르를 집어 던졌다. 천둥신 토르가 아이반의 손을 붙잡고 힘을 더했다.
작은 성만 한 크기의 바위가 그대로 으스러졌다. 폭발하듯 터져 나가며 자잘한 돌가루로 흩어졌다.
스윽-
카락취가 부러진 검으로 하늘을 베었다. 그의 육신은 무척이나 작고, 부러진 검은 더욱 초라했으나 그 검에 하늘이 갈라졌다. 어느 선을 기점으로 떨어지던 바위들이 마치 지워지듯 사라졌다.
그는 바위를 베지 않았다. 이 세상을 감싸는 차원의 틈을 베어 바위들을 이계로 다시 날려 버린 것이다.
이미 차원 방벽이 완전히 무너진 상황이라고는 해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기술이었다.
“감히 돌아온 것을 후회하라.”
델피노의 육신에 강림한 아룬이 신성의 증명을 들고 가볍게 휘두르자 밤낮이 바뀌고 어두운 하늘에 태양이 떠올랐다.
치이익-
신성한 빛이 세상을 비추자 악신의 권속들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악신의 육신마저 불길에 휩싸여 커다란 장작이 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 아룬! 아룬……!
악신은 고통스러운 옛 기억이라도 떠올랐는지 빛의 신을 소리쳐 부르며 주먹을 내리쳤다.
수십 개의 촉수가 얽힌 악신의 주먹이 아룬의 위로 떨어졌으나 천상의 빛을 타고 내려온 빛의 천사들이 방패를 들어 올려 막았다.
파앗-
마치 파편처럼 빛이 사방으로 튀었으나 빛의 천사들은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악신의 주먹을 밀어내고 그들의 신과 성자를 보호했다.
쿵!
아룬이 손을 천천히 들어 올리자 커다란 빛의 문양이 악신을 손을 묶어 봉인했다. 악신이 거세게 움직일 때마다 터져 나갈 듯이 요동쳤으나, 기어이 한쪽 팔을 붙잡았다.
스걱!
카락취의 검이 잠깐 흐릿해지는 것 같더니 악신의 육신을 가르고 지나갔다. 지나치게 단단하거나 지나치게 흐물흐물하던 이전까지와 달리 명백히 육신을 가르는 손맛이 있었다.
쉬이익!
악신이 살기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자 주변 공간이 일렁이며 변이를 시작했다. 이계의 땅이 나타나 일반적인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역겹고 위험한 마물을 토해냈다.
그 모두가 악신의 권속이었다. 신화시대 이후 이계에 같이 갇혀서 이성이 완전히 사라진 광기의 산물이었다.
정신이 나가서 자신의 몸을 뜯어먹고 재생하기를 반복하여 더는 옛 육신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기괴한 놈들이 카락취에게 덤벼들었다.
팅!
카락취가 괴물의 손톱을 흘려냈다. 떨어진 나뭇잎이 바람에 휘날리듯, 시냇물을 타고 흐르듯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괴물들의 공격을 걷어냈다.
으어어어어!
격한 움직임이 전혀 없었음에도 카락취를 둘러싼 악신의 권속들이 몸이 잘게 조각났다. 그 느릿한 움직임을 뚫지 못하고 모두 쓰러졌다.
악신의 권속들은 조각난 몸을 제멋대로 뭉쳐서 일어섰으나, 그때 이미 카락취는 그곳을 벗어나 악신에게 향했다.
파아앗!
사방에서 튀어나온 온갖 괴물과 촉수가 카락취의 앞을 막았으나, 그는 한걸음에 공간을 뛰어넘어 악신의 눈앞까지 다가갔다.
수백 개가 넘는 눈알이 카락취를 바라보며 마력을 내뿜었다. 온갖 지독한 저주가 마안의 형태로 흘러나와 카락취를 붙잡았으나 아룬이 신성의 증명을 펄럭이자 그 모든 저주가 깨지며 길을 열었다.
악신이 몸을 비틀어 카락취를 붙잡아 뭉개려고 했으나, 빛의 기둥이 악신의 육신을 꿰뚫고 완전히 붙잡았다. 오래지 않아 빛의 기둥은 부서져 사라졌지만, 그 약간의 멈칫함은 카락취가 검을 수십 번도 넘게 휘두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만 카락취는 생각 없이 수십 번 휘두르기보다 진심을 담아 한 번 휘두르기를 선택했다. 부러진 검을 들어 악신을 노렸다. 땅과 하늘을 잇고 거인 신을 베었던 검을 그대로 재현해 녀석을 공격했다.
‘집념이 좋겠군.’
검을 휘두르는 그 짧은 순간에 카락취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땅 에서부터 하늘까지, 마침내 신격이 되어 신격을 베었으니 그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집념.
아무도 모르지만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검은 악신의 머리를 베고 지나갔 다. 수백 개가 넘는 악신의 눈알 삼 분의 일이 그대로 터져 나가며 사라졌다.
그렇게 카락취가 한 방 먹이는 사이, 그를 노리고 악신의 천사가 달려들었다. 카락취의 검은 그 움직임을 쫓기 힘들 정도로 빨랐지만, 악신의 천사는 용케 틈을 놓치지 않고 공격했다.
카락취의 검이 악신을 베고 있을 때, 악신의 천사 역시 카락취의 목에 뼈로 된 칼을 들이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카락취의 목이 잘릴 것 만 같았다. 그러나 피를 뿌리며 쓰러진 것은 오히려 악신의 천사였다.
푸슈욱!
평범한 생명체의 핏물과는 조금 다른 체액을 흘리며 악신의 천사가 쓰 러졌다. 녀석을 벤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카락취였다.
그 장면을 옆에서 보았던 아이반은 헛웃음이 튀어나올 뻔했다. 자신이 본 것이 언뜻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을 동시에 공격했어. 가능한 일 인가?’
악신을 베던 검을 회수하고 악신의 천사를 벤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악신을 베고 있는 와중에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를 검이 악신의 천사를 벤 것이다.
황당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이반에게 카락취가 낮게 말했다.
“마음이 움직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손으로 베는 것은 그저 확인할 따름이다.”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이제 겨우 마음으로 창을 잡은 아이반에게는 너무나 수준 높은 조언이 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귀한 말인지 아는 아이반은 몇 번이고 곱씹어 삼켰다. 그 짧은 말에 담긴 진의를 깨닫는다면 또다시 성장하리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대악마의 핵을 흡수한 아이반은 품고 있는 신성의 크기만 따지면 이미 반신이나 다름없었다. 아스가르드의 화신이며, 수많은 전장을 경험한 용사이니 격이 부족하지도 않았다. 아주 잠깐, 필멸자를 벗어던지고 초월자가 되는 길이 보인 것도 같았다. 종이보다 얇으나 결코 닿을 수 없는 벽 너머가 손끝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화아아-
어디선가 멧돼지 구이 냄새가 풍겼다. 벌꿀주의 향기가 또한 흘러왔다.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호탕한 웃음소리 역시 들렸다.
발할라(Valhalla), 창으로 기둥을 만들고 방패로 지붕을 만든 전사들의 전당.
몇 번이고 보았던 익숙한 얼굴의 전사들이 술 마시고 웃고 떠들며 싸우느라 소란스러운 전당의 가장 높은 곳에서 추레한 모습의 늙은이가 그를 바라보았다.
주신 오딘.
직접 위그드라실을 심어 아스가르드와 아홉 세계를 창조하고 마지막까지 멸망을 막으려다 실패한 자.
지혜를 얻기 위해 스스로 눈을 뽑았기에 한쪽밖에 남지 않은 눈동자로 그가 아이반을 바라보았다.
앉으면 세상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위대한 황금 옥좌 흘리드스캴프는 그 무엇보다 화려하고 웅장 했으나, 정작 오딘은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의상이 아니라 낡고 지저분한 방랑자의 행색이었다.
그는 노르드 신화에서 가장 위대한 자이지만 세상의 멸망을 예언 받은 이후로 그 영광을 누려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다가올 멸망에 쫓기며 미래를 준비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행색이 오딘의 위대함을 폄하할 수는 없었다. 그리 추레한 모습이기에 오히려 그 숭고함을 찬양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반은 그러지 않았다. 오딘도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오딘이 명했다.
– 건방진 전사야, 가서 아스가르드의 힘을 보여주어라. 네 힘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려 주어라. 아스가르드는, 아홉 세계는 또다시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델피노가 성황청 아홉 신격에게 인정받은 신성 대리인이라면 아이반 역시 아스가르드와 아홉 세계가 선택한 챔피언이었다.
오딘은 아스가르드의 위대한 이름이 이 땅에 널리 퍼지기를 원했다. 실패한 자들에게 새로운 영광을 가져오기를 원했다.
아이반은 그런 헛된 명예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스가르드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헌신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받아들였다. 위대한 신들의 영광이 아니라 주변에서 쓰러지고 있는 동료들을 위해서.
아이반이 창을 단단히 쥐자 오딘이 무심히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발할라의 풍경이 흐려지고 새로운 힘이 그의 육신에 휘몰아쳤다.
“싸우다가 갑자기 명상이라니, 장소가 좋지 않군. 그동안 자네는 적어도 세 번은 죽을 뻔했다네.”
테잔이 두꺼운 나무를 몇이나 엮어 아이반을 보호하다가 그가 눈을 뜬 것을 확인하고 히죽 웃었다.
“나중에 오리털 뽑아서 이불이라도 만들어 줘야겠어. 아주 포근하게 잘 수 있을 거야.”
짐짓 여유로운 듯 그리 말하는 테잔의 이마로 땀이 주룩주룩 흐르고 있었다. 지금도 막대한 주력이 요동 치는 것을 보면 치열한 주문 싸움을 진행 중인 듯했다.
“나의 주술로 이 환경을 완전히 뒤엎을 수는 없네. 마녀들의 실력이 만만치 않아.”
그는 무거운 눈빛으로 마녀들을 바라보았다. 대주술사와 맞먹는 수준의 술사가 저쪽에도 있었다.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사악한 지혜와 경험을 생각하면 이제 갓 대주술사가 된 테잔이 감히 맞설 상대가 아니었다.
‘허, 대주술사가 그리 가벼운 이름 이 아닌데……’
테잔은 세상이 열린 이후 나타난 열두 번째 대주술사였다. 필멸자의 끝에 도달한 것으로 부족해 반쯤은 초월자나 다름없는 자연의 화신이었다.
만약 육신을 버리고 진심으로 우화하고자 한다면 아홉 번째 대주술사 메신처럼 자연의 한 부분이 되어 그 영역 내에서는 신격이 될 수도 있을 위대한 존재였다.
그러나 어째 그런 힘과 격을 지니고도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상대하는 적은 하나같이 초월적인 자들이고, 이겨내야 할 밤은 너무나 깊고 어두웠다.
한때는 대주술사가 되기만 하면 어둠을 밀어낼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더 큰 힘과 격을 지녔음에도 느껴지는 무력함을 모두 털어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