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191
쾅!
아이반이 묠니르를 집어 던지자 악신 아발로크가 살짝 뒤로 밀려났다. 녀석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아이반을 바라보며 손을 휘두르자 주변 공간이 휘어졌다. 신격다운 막대한 권능이 움직이며 아이반을 짓누르려 했다.
하지만 천에 달하는 에인헤랴르가 그것을 막아섰다. 본디 세계를 파멸 시키려는 초월자들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된 자들이었다. 대악마와 싸우던 때보다 훨씬 강력해진 모습으로 악신 아발로크에게 덤벼들었다.
캉!
악신 아발로크가 제대로 움직이기도 전에 에인헤랴르가 날려 보낸 창 수십 개가 녀석의 몸을 찔렀다. 그걸 막아내고 나면 그 몇 배에 달하는 화살이 날아오고, 또 그것을 막아내면 수십의 전사들이 몸으로 녀석을 붙잡았다.
하나하나는 감히 신격과 싸워 이길 수 없었으나, 애초에 세계 멸망의 위기를 막기 위해 준비된 전사들은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상대와 맞서는 것에 익숙했다.
그 모든 전사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지극히 효율적인 방법으로 악신 아발로크를 밀어붙였다.
정면으로 싸워 이길 수 없다면 뒤를 노렸고, 뒤가 막힌다면 자신을 미끼로 틈을 만들었다.
하나의 목숨으로 한 번의 공격을 할 수 있다면 대박이었고, 열의 희생으로 한 번의 상처를 만들 수 있다면 성공이었다.
무기를 휘둘러 상처 입힐 수 없다면 손발로 녀석을 붙잡았고, 이빨로 깨물었다. 단 한 순간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수백이 미끼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에인헤랴르, 결코 죽지 않는 최후의 전사들이었기에 천이 만이 될 수 있었고, 십만이 될 수도 있었다.
– 이런 식으로 나를 막을 수 있겠나?
화아아-
악신 아발로크가 에인헤랴르를 찢어발겼다. 괴물의 모습으로 날뛰던 때와 비교하면 힘의 크기는 작아도 극도로 정밀한 움직임이었다.
가볍게 집중한 신력으로 오딘이 에인헤랴르에게 걸어 준 불사의 축복을 끊어내고 그들을 발할라로 돌려 보냈다. 그러나 그 힘을 이끌어 냈다는 것만으로 에인헤랴르는 수만 대군의 역할을 한 셈이었다.
스걱!
악신 아발로크가 에인헤랴르를 날려 버리는 그 틈으로 얇은 검이 비집고 들어왔다. 실로 초월적인 수준의 감각을 지닌 이들조차 제대로 반응하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였다.
악신 아발로크의 어깨가 베였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게 갈라져 핏물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카락취가 마음으로 만든 검을 쥐고 악신 아발로크를 바라보았다.
쉬이익!
카락취의 손이 움찔 움직이자 허공에 여든여덟 개나 되는 검의 형상이 나타나 악신 아발로크를 향해 쏟아 졌다.
그동안 카락취가 보고, 휘두르고, 경험했던 최고의 검식을 다듬고 다듬어 펼쳐낸 것이다.
대륙에 능히 이름을 떨칠 수 있는 검객 여든여덟 명이 새롭게 나타나 악신 아발로크를 공격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갈라진 어깨를 순식간에 회복한 악신 아발로크는 자신의 피와 가죽으로 만든 마도서를 펼쳐 들었다. 그러자 공간이 요동치며 무언가 커다란 것이 나타나 검을 막았다.
스걱!
크라라라라!
카락취가 펼쳐낸 검이 무너진다. 여든여덟 명의 검객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두껍고 역겨운 점막에 뒤덮여 힘을 빼앗기고 있던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가 공간을 뛰어넘어 카락취의 검을 막은 것이다.
혼탁하게 변한 그녀의 눈동자 너머 짙은 분노가 느껴졌다. 악신에게 이리 이용당하는 자신의 처지가 극도로 불쾌한 모양이다. 그러나 제대로 제압되어 힘을 빼앗기고 있는 사브리나는 어찌 반항할 수조차 없는 듯 했다.
화르륵!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의 목과 팔, 다리, 날개와 꼬리를 조이고 있는 쇠사슬이 보였다. 누군가의 피와 뼈로 새겨진 주술진이 격렬하게 불타 오르고 있었으나 결코 끊어지지 않았다.
‘저게 영혼 족쇄로군.’
단순히 육체를 붙잡은 것이 아니었다. 완전성을 잃어버린 사브리나의 틈을 파고들어 영혼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천 년이 넘는 세월 육신과 영혼이 떨어져 있던 사브리나였기에 당할 수밖에 없는 사악한 술법이었다.
챙!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를 묶고 있는 사슬이 크게 출렁거렸다. 그러자 그녀는 원치도 않게 입을 벌리고 뜨거운 숨결을 토해냈다.
용의 불꽃을 막아라!
불을 이겨내라!
에인헤랴르가 방패를 들어 올려 용의 숨결을 막았으나, 약해진 상태로도 용의 숨결은 숨결인지라 제법 많은 수가 발할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끼야아아악!
영혼 족쇄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를 붙잡고 억누르고 있는 사슬은 수천, 어쩌면 만 명이 넘는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든 것이었다. 그 원혼이 지르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스스슥-
악신 아발로크가 허공에 날아올라 손을 내밀자 하늘이 갈라지며 날카로운 가시 기둥이 비처럼 쏟아졌다. 평범한 가시가 아니라 영혼을 꿰뚫는 힘이 담겨 있었기에 카락취도 제법 경계하는 기색이었다.
휘이잉-
카락취의 검이 세차게 흔들리다 멈춰 섰다. 하나의 점을 노리고 아주 천천히 나아갔다.
경지에 도달하지 않은 자들은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가 없었겠지만,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자라면 모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카락취는 검 하나로 하늘을 밀어내고 있었다. 쏟아지는 가시 기둥이 어느 순간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멈췄다가 오히려 천천히 물러나고 있었다.
스윽-
아이반이 묠니르를 하늘로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천둥이여!”
그에 호응하듯 수백의 에인헤랴르가 천둥신의 이름을 불렀다.
– 토르!
거대한 벼락이 떨어지며 가시 기둥을 내렸다. 하늘을 빽빽하게 메운 가시 기둥을 따라 번개가 움직이며 그것들을 모두 태워 버렸다.
그렇게 가시 기둥을 처리하니 카락 취가 검을 돌려 악신 아발로크를 향 해 휘둘렀다.
챙!
악신 아발로크가 한 손에 거머쥔 영혼의 사슬을 당겨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를 움직였다. 그녀가 지친 몸으로 카락취의 앞을 가로막았다.
검신의 칼이 사브리나에게 향했다. 그 검에 담긴 막대한 힘을 알기에 아이반이 소리쳤다.
“그녀를 베어서는 안 되오!”
아이반답지 않은 말이었다. 비록 그 처지가 딱하다고는 해도 상황이 그렇다면 목숨을 거두는 것을 망설일 그가 아니었는데, 얄팍한 인연이 책임감이 되어 그가 소리치게 한 모양이다.
물론 카락취는 아이반의 외침을 듣고도 검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힘을 담아 휘둘렀다.
검신의 검이 사브리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피분수가 터질 것을 예상하며 아이반의 표정이 굳었으나 드래곤의 몸에는 상처가 없었다.
피를 뿌린 것은 뒤에 있던 악신 아발로크였다. 카락취의 검이 앞을 가로막는 드래곤의 육신을 넘어 녀석을 베어 버린 것이다.
마음이 동한다면 한낱 길가의 잡초로도 산을 가를 수 있었으나, 원치 않는다면 세상 다시 없을 날카로운 검조차 몽둥이나 다름없었다.
베는 것은 마음이니 손에 쥔 검은 중요치 않았다. 베어야 할 상대를 고르는 것은 검신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드래곤의 육신을 넘어 악신 아발로크를 벤 카락취는 사브리나의 날카로운 발톱을 얻어맞고 한참이고 뒤로 날아갔다.
가슴이 깊이 찢어지고 흐르는 피가 심상치 않았다. 지금껏 흘린 피만 해도 적은 양이 아니었다. 아무리 신격이 되었다고는 해도 멀쩡할 수는 없었다.
퉤!
그러나 카락취는 입에 머금은 피를 뱉어내고는 다시 일어섰다. 몇 번이고 피를 토해서 붉게 물든 몸으로, 계속된 싸움으로 손발이 잘게 떨리는 상태로 카락취는 검을 들었다. 그러자 창백하던 얼굴도, 잘게 떨리던 손발도 안정을 되찾았다.
검을 쥐고 있는 순간만큼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였다. 그는 스스로 그렇게 믿었고, 그걸 증명하며 살아왔다. 손에 검이 있는 한 그는 쓰러지지 않는다.
그를 짓누르기 위해 날아오는 사브리나를 바라보면서 그는 검을 휘둘렀다. 그 어느 때보다 가볍게,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스걱-
카락취의 육신을 짓눌러 터트리려던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가 멈칫 몸을 세웠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악신 아발로크를 바라보았다.
푸스스.
그녀를 붙잡고 있던 영혼의 족쇄가 하나씩 끊어졌다. 드래곤의 강대한 영혼을 억누를 만큼 질기고 튼튼한 사슬이 검신의 검에 잘려나갔다.
크르르르르.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 너머로 사브리나의 분노가 담겼다. 이 세상의 정당한 창조주가 남긴 화신이 분노하자 세상이 그에 호응하며 덜덜 몸을 떨었다.
그걸 지켜보던 아이반이 피의 검 브리카를 뽑아 낮게 중얼거렸다.
“가서 도와라.”
그의 말을 알아들은 브리카가 용의 모습이 되어 사브리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품으로 스며들어 하나가 되었다.
잃어버린 완전함을 한순간이나마 되찾은 사브리나가 세상에 명령했다.
-나는 악신 아발로크를 징벌한다.
용언. 세상의 정당한 창조주가 세 상에 명령하는 방법.
사브리나의 용언이 울려 퍼지자 대 륙 각지에서 잠들어 있던 드래곤이 깨어나 동의했다.
-나는 이 땅의 어둠을 치죄한다.
-나는 세상의 혼돈을 거부한다.
-나는 세계의 멸망을 유예한다.
오랜 세월 침묵하던 드래곤이 그리 외치자 세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을 만든 옛 주인을 위해 새로이 법칙을 만들었다.
쿠구궁!
악신 아발로크의 몸이 꺾였다. 활짝 펼친 날개가 뒤틀리고 바닥으로 처박혔다.
세상이 악신 아발로크를 거절했다. 그가 품고 있는 신성이 흔들리고 겨우 회복한 육신이 흩어진다.
그 틈으로 아이반이 창을 찔러 넣었다. 에인헤랴르가 녀석을 붙잡아 아이반을 도왔다. 아스가르드 신들의 환영이 나타나 힘을 실었다.
푸슉!
어두운 용의 발톱이 악신 아발로크 의 가슴을 꿰뚫었다. 날카로운 창이 녀석의 심장을 파괴하는 감촉이 선명하게 전해졌다.
아이반이 그 상태로 창을 비틀자 내장이 빨려들 듯 갈리고 핏물이 거세게 뿜어졌다. 신격이라 해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인 상처였다.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보던 악신 아발로크의 눈이 칼을 지팡이처럼 기대고 있는 카락취를 훑었고, 하늘에서 분노한 채 내려다보고 있는 화염 드래곤 사브리나를 향했다. 그리고 나서야 아이반을 바라보았다.
-나를 쓰러뜨린다고 해서 어둠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헛된 기대일 거요.”
-파멸은, 이미 시작되었다.
악신 아발로크의 육신이 흩어진다. 오랜 세월 이계에서 기회를 노리던 비틀린 자의 숨이 끊어졌다.
불멸자이니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지만, 그때는 아주 아득한 시간이 지난 후일 것이다. 필멸자가 신경 쓸 것은 아니었다.
스르륵-
이계 너머, 또 다른 악신들이 그 죽음을 깨닫고 이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발로크의 심장을 꿰뚫은 아이반을 노려보며 손을 내뻗었다.
치지직!
하늘이 혼돈으로 변하여 악신들의 손이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졌다. 대주술사 둘이 만든 결계가 악신들의 간섭을 막아내고 있었다.
잠깐 모습을 드러냈을 뿐인데도 느껴지는 격이 심상치 않았다. 짧은 순간 몸이 떨리며 털이 삐죽 섰다.
‘그래, 어차피 쓰러뜨리면 모두 사천왕 중 최약체일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