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199
치지직!
토르의 권능을 휘감은 망치가 날아 왔다. 아이반이 고개를 젖혀 피해 내니 망치가 크게 회전하며 전사의 손으로 되돌아갔다.
“토르!”
하늘 망치 부족의 대전사 로그니르가 천둥신의 이름을 외치며 망치를 휘두르자 번개가 뻗어 나와 아이반을 후려쳤다.
치지직!
쾅!
중대형 몬스터조차 한 방에 구워 버릴 번개가 하늘을 꿰뚫는 것을 본 주변 사람들은 몹시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로그니르는 오히려 인상을 굳혔다. 아이반이 아무렇지 않게 걸어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역시 에시르손인가. 신의 힘이 통하지 않는다니.”
“그걸 알면 쓰지 말았어야지.”
실로 파괴적인 힘이었으나 아이반 에게는 그저 짜릿하기만 했다. 기본적인 항마력이 높은 것은 물론이고, 그 누구보다 토르의 권능에 익숙해서였다.
노르드 전사들이 아무리 신들의 힘을 빌려 온다고 해도 아스가르드의 화신을 상대로 제 위력을 보일 수는 없었다.
“묠니르.”
아이반이 낮게 중얼거리자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매서운 바람이 불고 시커먼 하늘이 번쩍거리며 빛을 뿌렸다. 그때마다 온 세상을 울리는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르르, 쾅!
아이반이 묠니르를 쥔 손을 하늘 위로 향하자 거대한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치지직!
마치 불타는 듯 아이반이 온몸에 휘감고 있는 번개와 시뻘겋게 달아 오른 묠니르의 모습을 본 하늘망치의 대전사 로그니르가 헛웃음을 내뱉으며 무기를 내렸다.
실로 거대한 신성이 아이반의 몸에 가득했다. 분명 천둥신 토르의 권능 이었으나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수준의 힘이었다.
호승심이 무의미할 정도의 격차였다. 로그니르의 투기가 빠르게 가라앉았다.
싸울 의지가 없다는 것을 파악한 아이반은 애써 불러온 묠니르를 그대로 허공에 던져 버렸다. 막대한 마력과 천둥신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파괴의 상징이 땅에서부터 하늘로 솟구쳤다.
쾅!
땅을 울리는 굉음과 충격파에 사람들이 비틀거리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커먼 먹구름에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마치 하늘이 꿰뚫린 것 같은 모양이었다.
“후, 운동 끝났으면 술이나 먹지. 아직 고기가 많이 남았어.”
아이반이 자리로 돌아가 바닥에 뒹굴던 술잔을 들자 하늘망치 부족의 대전사 로그니르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말한 대로, 나는 노르드 위에 군림할 생각이 없소.”
적당히 힘자랑이 끝나고, 아이반은 크고 작은 부족에서 찾아온 자들을 한 곳에 모두 모았다.
오만하고 거만한 말투가 본래대로 돌아온 것은 더는 연기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 정당한 왕이 가진 힘과 권위를 충분히 보여 주었으니 노르드 부족들의 지도자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까지 그럴 이유는 없었다.
이들은 모두 전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또한 지도자였다. 그저 순수하게 옛 전설과 개인의 무력으로만 설득한다면 마음으로 따르지 않을 터였다.
“이그드라실이 불타고 아홉 세계가 멸망한 이후, 새롭게 자리 잡은 이 땅에 또다시 어둠이 찾아왔소. 멸망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또다시 세상을 잃는 슬픔을 막기 위해 나를 도와주시오.”
에시르손의 이름이 전설로 사라지고 노르드가 분열한 것도 벌써 수백 년이었다. 노르드라고 같은 마음이라 할 수 없고, 하물며 다른 세력과도 순탄치는 않았다.
노르드인은 워낙 호전적이고 거칠었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투와 삶을 동일시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륙 북부에서 가장 거친 약탈 민족이었고, 그렇기에 소위 문명화된 자들이 야만족이라며 혐오했다.
이들을 하나로 묶고, 다른 세력과도 힘을 합쳐 싸우게 만들려면 명분과 실리가 모두 필요했다. 개인은 뜨거운 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으나, 집단은 차가운 이성이 따라오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다.
노르드인이 모두 전투에 미친 광전사라는 것은 편견이었다. 이들이 진심으로 전투를 즐기는 것은 사실이나,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냉정한 판단력이 우선이었다.
아이반이 에시르손이라는 자격과 압도적인 힘으로 명분을 세웠으니 이제 이들이 진심으로 싸울 수 있도록 실리를 제시해야만 했다.
“앞으로의 겨울은 더욱 혹독할 것 이오. 대륙 전역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온갖 사악한 마물이 날뛰겠지. 사냥은 어려울 것이며 수확은 더욱 힘들 거요.”
여기서 수확은 단순히 작물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약탈을 의미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노르드인들이 노략질을 해서 먹고산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으니까.
“그건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대규모 전쟁은 더욱 어렵지 않겠습니까?”
노르드에서 숙련된 전사는 곧 숙련된 일꾼이기도 하다. 그들이 모두 전장으로 빠지면 남은 자들이 더욱 궁핍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무기도, 식량도 부족합니다.”
전쟁에서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싸우지도 못하고 죽는 것은 두려웠다. 적과 맞서 싸울 검과 창이 없어서 굶주림으로 죽는 것은 그 누구도 원치 않았다.
약탈과 전쟁은 완전히 달랐다. 노르드는 그럴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이반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노르드는 멸망을 이겨 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소. 그러니 더욱 싸워서 쟁취할 수밖에.”
아이반은 노르드를 4자 연맹에 합류시킬 생각이었다. 이미 각 세력으로부터 구두 협약을 맺은 상태이기도 했다. 피와 명예, 용맹의 대가로 자원을 전해 주기로.
“드워프의 광산이 마르는 일은 없고, 요정의 숲에서 식량이 부족할 일은 없소. 대수림에는 여전히 사냥감이 풍부하며, 나가 왕국은 마력을 빚어내지. 지원이 부족해 제대로 싸우지 못하는 일은 없을 거요.”
강철 모루에서 창과 방패를, 엘프에서 식량을, 수인 연맹에서 고기와 가죽을, 나가 왕국에서 마력 수정을.
때로는 신뢰의 연합과도 거래할 수 있을 거고, 피의 동맹과의 거래도 어렵지는 않았다.
아이반은 현재 대륙을 삼분하고 있는 연합, 동맹, 연맹 모두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 노르드가 변방의 야만인 취급을 벗어나려면 이보다 좋은 기회가 없었다.
그것을 깨달은 족장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하여 분위기가 한쪽으로 점점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대륙의 다른 세력과 다르게 노르드인은 세계수 이그드라실이 불타고 아홉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세계 멸망이 그저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살아남은 자들의 후손이기에 그 처절함을 알았다.
정당한 왕의 후예가 신의 뜻을 등에 업고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 싸우자고 하는 것만 해도 거부하기 힘든데, 이런 실리까지 들이밀면 선택은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다들 아이반이 묠니르로 하늘을 꿰뚫는 것을 보았다. 그런 자 앞에서 감히 다른 소리를 내뱉을 수가 있겠나.
그러나 그때, 가장 가까이서 아이반의 힘을 보았던 하늘망치 부족의 대전사 로그니르가 입을 열었다.
“노르드의 정당한 왕이 돌아왔음을 부인하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오. 왕께서 관대하게도 군림하지 않겠다고 하시니 그깟 권력 나부랭이에 집착하는 소인배들도 따르지 않을 수 없을터요. 왕의 지휘 아래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한 싸움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모르겠소.”
“그런데? 뭐가 부족하오?”
“왕께서 싸우라 하시면 기쁜 마음으로 싸울 것이오. 혹 전장에서 용맹을 증명하여 신께서 거둬 주시면 더할 나위가 없지. 다만 세계의 멸망이 엮인 큰일이라면 응당 예언을 들어 보는 것이 어떻소?”
노르드 문화에서 예언은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었다. 큰일을 앞두고 미래를 점치는 것을 당연히 여겼고, 심지어 직접 세계수 이그드라실을 심어 세상을 창조했다는 오딘조차 예언을 받아 라그나로크를 대비했다.
그러나 아이반은 심드렁했다. 이미 초월자와 신격이 몇이나 뒤섞여 날뛰는 판에 과연 누가 제대로 된 예언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제 신들조차 미래를 확신할 수 없소. 그런데 누구의 예언을 들으란 말이오?”
인간 점쟁이는 의미가 없다. 대주술사로 각성하는 순간 본다는 미래 정도는 되어야 고민할만했고, 그 방면으로 신명을 얻은 신격의 예언만이 가치가 있었다.
아이반이 알기에 이 세계에는 예언으로 신명을 얻은 신은 없었다. 세상의 법칙을 초월했다는 초월자의 운명마저 뒤흔들리는 흐름을 읽을 자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몇몇 오래된 역사를 지닌 부족의 족장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뭔가 아는 것이 있다는 소리다.
그들을 보며 아이반이 자세를 바로 잡으니 로그니르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사실 잊힌 전설이고, 오래된 이야기에 불과하오. 그러나 신화와 전설이 아무렇지 않게 돌아오는 시절이니 옛이야기를 무시할 수는 없지 않겠소?”
대륙 북부,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살얼음 골짜기는 노르드의 옛 선조들이 이 땅에 최초로 발을 디딘 곳이라고 했다.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 험한 곳이라 모두 떠나왔지만, 노르드의 역사를 잘 아는 자들은 신성시하는 장소였다.
그러나 사실 신성하기로는 아스가르드의 신들과 직통으로 대화하고, 아예 발할라 에인헤랴르에게 대장 소리를 듣는 아이반이 있는 이곳이 더 신성했다. 중요한 것은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였다.
“살얼음 골짜기 끝에 거울 동굴이라고 있는데, 그곳에 들어갔다가 살아 돌아온 자들이 많지 않소. 그런데 살아 돌아온 자들은 모두 같은 말을 했다고 하오.”
“뭐라 그랬소?”
“그곳에 볼바가 있다고 하였소.” 볼바(vQlva), 오딘에게 라그나로크에 대해 예언한 자들.
아이반이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그들이 어디에 있다고?”
일찍이 노르드의 세계에서 오딘은 최초의 거인 이미르를 죽이고 그 육신으로 세상을 창조했다고 하였다. 친히 세계수 위그드라실을 심고 그 위에 아홉 세계를 만들어 가장 높은 자리에 군림하였다.
그러나 가장 영광스럽고 가장 위대한 오딘은 정작 그 위엄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예언된 파멸, 라그나로크를 막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오딘은 탐욕스럽게 지식을 습득하고 지혜로워지고자 했다. 우주의 비밀과 마법의 힘을 얻기 위해 스스로 물푸레나무로 만든 창에 꿰어져 9 일, 혹은 99일간 본인에게 제물로 바쳐 죽음 너머의 세계에서 룬 문자를 얻었고, 가장 지혜로운 거인 미미르가 지키는 지혜의 샘을 이용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한쪽 눈을 대가로 지급했다.
오딘은 또한 여신 프레이야에게 마법을 배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배운 세이드(Seiðr)는 주로 여성이 사용하는 주술이었고, 노골적으로 성적인 요소가 들어 있었다.
상남자 마초 문화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창조주 오딘이 자랑스럽게 배울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 때문에 여장을 하고 계집 흉내나 내는 음탕한 놈이라고 욕을 먹었으니까.
미드가르드에 전쟁이 넘쳐나고 발키리가 전사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도 모두 오딘의 계획 때문이었다. 오딘은 라그나로크에 함께 싸울 에인헤랴르를 모집하기 위해 스스로 만든 세계에 전쟁이 끊이지 않도록 여신 프레이야와 힘을 합쳐 마법을 불어넣었다.
그 모든 전쟁이 결국 세상이 파멸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믿으면서 언젠가 다가올 전쟁을 준비한 것이다.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 누구였나, 그를 편집적으로 몰아넣은 것이 무엇이었나.
볼바였다. 그들이 예언한 참혹한 미래였다.
“볼바는 깊은 지혜와 미래를 보는 눈을 가진 예언가요. 인간 세상에서는 대체로 여신 프레이야를 모시는 무녀를 말하지만, 오딘이 찾아간 자들은 그와 비교할 수 없는 초월자겠지.”